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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웨이브> Heatwave
필립 노이스|호주|1982년|91분|컬러|칸 감독주간 40주년 특별전
젊은 필립 노이스의 가슴에는 시뻘건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호주의 혹서(heatwave)를 견디며 영화를 향한 열정을 가슴에 품은 것이다. 헐리우드로 건너와 <패트리어트 게임>이나 <죽음의 항해>, <본 콜렉터>같은 걸출한 스릴러들을 내놓기 전의 필립 노이스는 사회적인 문제제기가 돋보이는 20대의 호주 출신 신예 감독이었다. 이 시절의 필립 노이스를 대표하는 작품은 단연코 <뉴스프론트>와 <히트웨이브>다. <뉴스프론트>가 런던 영화제와 뉴욕 영화제에 초청되며 필립 노이스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계기가 되었다면, <히트웨이브>는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며 그 입지를 굳힌 영화에 해당한다. 청년 필립 노이스가 만들었다는 꼬리표와 함께 전통과 진보를 대립시키는 삐딱한 시선은 두 영화를 하나로 묶는
전통과 진보를 대립시키는 삐딱한 시선 <히트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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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카는 이제는 추억의 수사법이 된 ‘은막(銀幕)의 여배우’란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우다. 할리우드에 명멸한 무수한 스타 중에서 영국식 기품과 지성미를 갖춘 배우라면 단연 데보라 카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녀가 출연한 50편 가량의 작품 중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화는 <왕과 나>와 <지상에서 영원으로>가 아닐까 싶다. 설혹 이 영화의 상세한 줄거리를 잊어버렸더라도, 페티코트로 한껏 부풀린 드레스를 입고 율 브리너와 춤을 추거나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해변에서 버트 랭커스터와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은 기억의 한 자락에 선명히 새겨져 있을 것이다.
금발에 초록 눈동자가 인상적인 데보라 카의 대표작 4편을 제2회 충무로 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 영국에서 찍은 <검은 수선화>(1946)와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왕과 나>(1956), <어페어
기품과 지성, 성숙한 여성미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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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한번쯤 봤을 것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싸이코>에서 자넷 리의 샤워실 장면을 표지로 두른, 국어사전처럼 두꺼운 책 말이다. 과거 이 책의 방대함에 놀랐고, 저자에게 되묻고 싶었다. ‘당신은 이 1001편을 다 보고 독자에게 소개하는 거냐고.’ 드디어 추궁할 기회가 왔다. 이 책의 책임편집자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가 서울을 방문한 것이다. 과거 LA에서 열렸던 학술대회에서 차승재 기획위원장을 만나 맺은 인연이 계기가 되어 ‘리메이크 게임: 할리우드와 아시아, 그 문화교류의 역학관계’라는 이름의 발제자로 영화제에 참석하게 됐다고. 어떤 내용의 포럼이기에 ‘여행 귀차니즘의 신봉자’인 그가 비행기에 올랐을까. “한국영화를 비롯한 아시아 영화들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와 관련해 최근의 현상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라는 그는 9월 5일 오후2시에 개최되는 포럼에 와야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며
죽기 전에 볼 영화는 다 봤던 그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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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극장, 명동극장, 계림극장, 성남극장을 돌며 포스터를 찢던 중학생이 있었다. 간첩 잡는다고 헬리콥터 타고 전방에 투입됐다가 슬쩍 극장으로 도망친 뒤 <007 위기일발>을 보며 희희낙락하던 군인이 있었다. 통행금지에 걸렸다가 주머니 속 포스터 수집용 칼과 고무줄 때문에 소매치기로 오해받던 영화인이 있었다. 월급날 보다 귀한 포스터 한짐 싸들고 퇴근할 때 가장 행복했던 가장이 있었다. 전시회로 회갑연을 대신하고서도 충분히 만족했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영화연구가이자 수집가인 정종화 씨의 지난 50년이다. 직접 쓴 책 제목처럼, 그는 “영화에 미친 남자”다. 오죽했으면 얼마전 전시회를 찾았던 배우 최은희 씨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영화 미치광이가 셋 있다. 한 명은 신상옥 감독이고, 또 한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고, 또 한 사람은 정종화.”라고 했을까. “한국영화 포스터 2300종을 무려 1만여점의 국내 개봉영화 포스터를 소유하고 있는” 그가 지금까지 연 영화포스터 전시회만
반세기 영화광이 전하는 충무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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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하늘에 별이 떴다. 제2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의 개막식에 쉽게 볼 수 없는 얼굴들이 등장했다. 영화제 알리기에 혼신을 다한 이덕화 위원장의 활약 덕분인 듯. 최고의 환호를 받은 게스트는 역시 장동건이다. 정동일 조직위원장의 개막 선언 도중 카메라에 잡힌 그의 얼굴에 여성팬들이 한숨을 내쉬었고, 그 바람에 개막 선언이 멈칫되기도 했다. 어쨌든 개막은 선언됐고, 축제는 시작됐다.
반짝반짝~, 영화의 거리를 비추는 별,별,별! (+개막식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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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인> 大日本人
마츠모토 히토시|일본|2007년|113분|컬러|칸 감독주간 40주년 특별전
마사루(마쓰모토 히토시)는 ‘접는 우산’과 ‘건조미역’을 좋아한다. 이유는 “필요할 때면 커지게 만들 수 있어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시의 외로운 독신남처럼 보이는 마사루도 접는 우산이나 건조미역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사실 그는 전기 충격을 받으면 거대한 몸집으로 팽창해서 도시의 괴물들과 싸우는 슈퍼히어로 ‘대일본인’이기 때문. 일본의 만담 개그맨인 마쓰모토 히토시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대일본인>은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언제든지 달려가 온 몸에 전기코드를 꽂아야 하는 마사루의 고단한 일상을 담아낸다. 몸집이 커졌을 뿐, 그리 막강한 힘을 가지지 않은 마사루는 괴물과 싸우다 다치는 일이 다반사다. 4대째 대일본인이었던 할아버지는 시민들의 환호에 휩싸여 살았고 심지어 그의 싸움은 황금시간대 녹화중계 됐지만, 마사루의 싸움현장은 새벽2시에 방송돼 일기예보보다
기이하고 괴상한 유머로 가득찬 영화 <대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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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에도 포르노가 있었다. 이름하여 도색영화회 사건. 1946년 12월5일, 수도경찰청은 20여명의 주객(酒客)들이 요정 명월관에서 불법 16mm 도색영화를 관람했다며 기생 최선 등을 붙잡아 취조에 들어갔다. 도색영화 상영을 주도한 상인 김린이가 자수하면서 수사는 불이 붙었다. 이어 도색필름 제공자인 충무로 악기상 김재영과 영상기 대여자인 신당동 사진사 정화세가 잇따라 검거됐고, 상업은행 지점장 등 “기생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주흥과 향락에 취한” 유력인사들 또한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아름다운 조선의 남녀풍기를 어지럽혔다”는 문제의 도색필름은 시시한 수준의 애정물은 아니었던 듯 싶다. 김재영이 1945년 11월 전 동아장미상사 이사로 일했던 일본인 관정희(管政喜)로부터 건네받은 이 도색필름은 거금 1천원(당시 영화 관람료 20원)의 관람료를 받고 상영됐는데, 한 신문은 “서양 남자 1명과 서양 여자 2명이 나체로 추잡한 실연을 하여 관람자에게
[한국영화후면비사] 1940년대에도 포르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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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와일더가 <뜨거운 것이 좋아>(1959)를 만들 때, 원래 염두에 뒀던 배우들은 밥 호프나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코미디에서 이름을 날린 스타들이었다. 그러나 마릴린 먼로를 캐스팅하면서 남자배우들에게까지 높은 개런티를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감독은 아직 신인급이던 잭 레먼을 우선 선택했다. 그리고는 꽃미남 이미지에서 이젠 벗어나고 싶어 했던 토니 커티스로 짝을 맞추었다. 두 배우 모두에겐 이 영화는 도전이었다. 영화의 대부분을 여장 남자로 등장해야 하니 자칫하면 자신들의 캐릭터에 큰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일더는 여성 분장사를 붙여 두 남자가 여성으로 거듭나도록 훈련시켰다. 토니 커티스는 마음 속에 그레이스 켈리를 염두에 두고 여장 연습을 했다. 우아하고 옷맵시가 뛰어난 여성을 그리고자 했다. 잭 레먼은 토니 커티스에게 맞추는 쪽으로 나갔다. 하이힐을 신고 걷는 것부터 남성 근육이 드러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까지 세심하게 연습했다. 최종 테스트는 들키지 않고
미움 받은 먼로, 영원한 스타로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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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디텍티브> Mad Detective
두기봉, 위가휘|홍콩|2007년|87분|컬러|국제경쟁부문
번 형사(유청운)의 눈에는 다른 사람의 인격이 보인다. 형사인 그가 남다른 재주를 사건 해결에 활용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경찰 서장 앞에서 했던 이상한 행동으로 미친 형사라는 오명을 쓴 번 형사는 결국 경찰을 그만둔다. 몇 년 후 잠복 중이었던 형사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의 담당자 호 형사(안지걸)는 사건 수사에 번 형사를 다시 끌어들인다. 현재 홍콩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두기봉 감독은 전작을 통해 ‘현대 홍콩’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이번 영화인 <매드 디텍티브>는 ‘현대 홍콩인’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로 들어갔다. 영화에서 번 형사는 자신의 눈을 과신한다. 왜냐하면 눈을 통해서 사건들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 형사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다. 번 형사에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의 눈
현대 홍콩인’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 <매드 디텍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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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매> German Sisters
마가레트 본 트로타|서독|1981년|106분|컬러|독일영화사 특별전
마가레트 본 트로타 감독은 뉴저먼 시대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여성 감독이다. ‘본 트로타적 여성 주인공’이라는 용어가 있을 만큼 그의 영화 속 여성들은 늘 무언가를 강하게 욕망하고,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 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독일 자매> 역시 혁명을 꿈꾸는 두 자매가 주인공이다. '독일의 가을'이라고 설명되기도 하는, 강렬한 정치적 억압과 엘리트들에 의한 무장공격이 동시에 일어났던 1970년대 서독이 그 배경이다. 전쟁 중에 태어나, 답답한 50년대에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도덕 교육을 받고 자란 두 자매 율리아네와 마리안네는 68혁명의 시대를 통과하며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품는다. 열정적이며 반항기 가득했던 율리아네는 이후 여성 잡지의 편집자가 되어 여성운동에 뛰어 들고 단계적이며 현실적인 혁명의 길을 걷는다. 반면 순종적인 성
혁명을 꿈꾸는 두 자매 <독일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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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와 다시마> The Musical Note and the Seaweed
이노우에 하루오|일본|2008년|75분|컬러|공식초청부문
<음표와 다시마>는 지난 2006년 에픽레코드 재팬이 설립한 시네뮤지카의 4번째 작품이다. 시네뮤지카는 연간 3,4편의 영화와 음반을 매칭시켜 공동프로모션을 유도하는 브랜드다. <음표와 다시마>에는 일본 그룹 칙 칙스(Chix chicks)의 노래가 곳곳에 삽입됐다. 산뜻한 음악과 동화적인 감성으로 가득한 <음표와 다시마>는 낯선 언니와 이복동생의 우연한 만남과 동거, 그리고 성장을 그린다. 푸드 코디네이터인 고구레 모모(이치가와 유이)는 아버지가 부재한 틈을 타 애인을 집으로 불러 함께 밤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을 준비하던 모모에게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찾아온다. 짐이 잔뜩 든 트렁크를 껴안은 그녀는 오래 전에 쓰인 듯한 메모를 건넨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여기로 찾아오너라. 동생 모모가
낯선 언니와 이복동생의 성장 이야기 <음표와 다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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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침몰>을 연출한 히구치 신지 감독은 어느 날, 소속사인 도호로부터 부담스러운 제의를 받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을 리메이크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당장 도망치고 싶었지만, “내가 사무실에서 맨 끝자리였는데, 앞에 있는 10명의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연출을 맡았다고 한다. 결국 히구치 신지는 마츠모토 준과 나가사와 마사미를 데리고 1958년도의 영화를 정확히 50년만에 재현해 냈다. 인터뷰가 마무리 될 무렵, 그는 이 프로젝트의 연출을 맡을 수 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밝혔다. “옆에 있는 야마우치 아키히로 PD의 선조가 야마우치 카제토요라는 유명한 사무라이다. 칼을 들지 않고도 사람을 베어버렸다더라. 너무 무서워서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웃음)
- 왜 도망치고 싶었나.
= 일단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팬이다. 그처럼 훌륭한 영화를 많이 만든 사람의 작품을 다시 만들때, 실패는 불 보듯
사무라이가 아닌, 낮은 신분의 관점에서 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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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기술할 필요가 있을까. 아마도. 아르헨티나 여성 아니타는 암투병 중이다. 그녀의 투쟁을 지켜보러 온 것은 친구 베아트리스와 애인 포지다. 하지만 아니타는 도무지 두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중산계급의 딸인 그녀에게 페미니스트 베아트리스와 좌파 변호사 포지는 왠지 어려운 상대다. 도무지 호전될 기미가 없는 투병생활에 지친 그녀는 어느 날 백일몽을 꾼다. 그리고 두 여인을 만난다. 한명은 1930년대의 할리우드 스타 ‘여주인’. 다른 한명은 미래의 전체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명령을 받고 남성들에게 섹스를 제공하는 ‘W218’이다. 그 백일몽으로부터 아니타는 30년대 누아르와 거대한 디스토피아적 환상으로 빠져든다.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에 영향을 끼친 <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와 <거미여인의 키스>의 작가인 마누엘 푸익은 70년대 페미니즘 운동과 라캉의 정신분석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 <천사의 음부>를 썼다. 그러니 질문은 명확하다.
여성의 완전한 자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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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까지 민주노동당 문화정책 연구원으로 일했던 저자가 <레디앙>에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포함해 책을 펴냈다. 월경(月經)의 고통을 강요하는 서울을 벗어나 파리에서 월경(越境)의 환희를 베어물었던 10년 전 유학 시절부터 원피스 나풀거리고 집회에 갔다가 전경들에게조차 무시당했던 날라리 여대생이 좌파정당에 잠입해서 활동가 명함을 내밀기까지의 곡절들이 섬세한 문체에 실려 있다. 세금으로 관광하는 한국 공직자들에 대한 날선 비판이나 68세대 좌파 의사들이 만든 프랑스 산부인과 체험도 흥미롭지만, 한국과 프랑스의 이질적인 문화 충돌을 경험한 이의 생생한 진술이야말로 눈에 띈다(사진을 찍은 프랑스 출신 예술가 희완은 저자의 연인이다. 두 사람은 결혼 대신 시민연대계약을 맺었고, 칼리라는 예쁜 딸을 낳았다). 자유와 정치, 문화와 교육의 문제들을 공적 영역에서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적 영역에까지 끌어내려 확장하는 독특한 에세이.
한 좌파 활동가의 반자본주의 처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