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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리, 이지호 감독의 작품들이 할리우드 스타의 진용으로 화제를 모으고는 있지만, 지금 미국 비평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라면 역시 르완다 내전의 고통을 다룬 <문유랑가보>의 리 아이작 정이다. 특히 지난 3월 <문유랑가보>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한 ‘새로운 작가들/새로운 영화들’을 통해 개봉하면서 리 아이작 정은 <뉴욕타임스>와 <헤럴드 트리뷴> 등 뉴욕의 주요 언론들에 큰 비중으로 소개됐다. 현재 차기작 <러키 라이프>(Lucky Life)를 준비하고 있는 리 아이작과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인’에 대해 서면으로 서신을 교환했다. 아직도 한국이 그립다는 그는 “한국 잡지에 실릴 예정이라 지나치게 치우친 발언처럼 들릴 게 걱정된다”면서도 “부산영화제에서의 경험이 가장 흥분되는 경험이었다”고 툭 털어놓았다. “정말 정직하게 말하자면 한국 관객이 가장 좋았다. 특히 내가 선택한 영화적 언어에 대해 그토록 많은 질문을
[리 아이작 정]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는 한국에서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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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모차르트, 쇼팽 그리고 비투스. 모두 피아노 신동이지만, 비투스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수학, 주식투자에도 뛰어난 애늙은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여섯살(파브리지오 볼자니)에 이미 음악적 재능을 드러낸 비투스는 매사에 아이답지 않다. 베이비시터를 여자친구라고 생각하고, 모르는 단어를 들으면 조용히 백과사전을 찾는다. 밝은 미래를 위해 최고를 주려는 부모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초고속 승진 중인 아빠는 늘 바쁘고 엄마는 아이를 피아노 앞에 옭아맨다. 열두살(테오 게오르규)에 일찌감치 초등학교를 월반한 비투스의 행실이 계속해서 삐딱한 것은 이런 ‘영재의 삶’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 유일하게 자신과 소통하는 괴짜 할아버지(브루노 간츠)와 하늘을 나는 꿈을 말하며 나누는 대화 중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은, 사고를 위장해 천재성을 상실한 척 연기할 만큼 절실하다. 부모는 일견 ‘보통 아이’가 된 아들에게 실망하지만 힙합을 듣고 또래와 친구가 된 비투스는 순진하고 행복
천재 소년 비투스의 이중생활 <비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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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댄스의 불씨를 댕기다.’(<월스트리트 저널>) ‘스릴 넘치고, 섬세한 묘사와 이목을 끄는 개성으로 가득하다.’(<뉴욕타임스>)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그들의 움직임은 스릴 넘친다.’(<뉴욕데일리뉴스>) 언뜻 보면 뮤지컬 공연 리뷰에 가깝지만, 실은 비보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플래닛 비보이>의 리뷰에서 등장한 말이다. 지난 3월21일 뉴욕과 LA에서 단관개봉해 연장상영에 돌입하고, 25개 도시 개봉으로 확대상영이 결정된 <플래닛 비보이>는 한국계 미국인 벤슨 리 감독의 작품이다.
1998년 데뷔작 <미스 먼데이>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던 한국계 미국인 벤슨 리(38) 감독은 이듬해 ‘배틀 오브 이어’(국제 비보이 경연대회)의 비디오를 처음 접한 뒤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한국 비보이 ‘갬블러’가 우승했다는 소식을 접한 벤슨 리 감독은 비보이 자료조사차 한국을 방문
[벤슨 리] 한국 비보이의 열정, 다큐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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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미스터리다. 쉽게 눈치챌 수 없는 단서가 관계를 변화시키고, 언제나 유사한 이유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우리의 중첩되는 연애사(史)는 단아한 기승전결을 지닌 영화 속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다. 꼬마숙녀 마야(애비게일 브레슬린)가 이혼을 앞둔 아빠 윌(라이언 레이놀즈)에게 청하여 듣게 되는 ‘지난 여자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세 여자 중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를 맞혀보라는 아빠의 제안에, “미스터리 러브스토리란 말이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마야의 야무진 대사는 영화의 주제인 셈이다.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는 워킹 타이틀에서 시나리오작가로 활약했던 애덤 브룩스의 감독 데뷔작이다. 영화적인 뿌듯한 결말 그 이후(<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 로맨틱코미디의 상황에 개입된 현실적 커리어와 선택(<윔블던>) 등 그의 전공은 ‘그래서 그와 그녀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로맨틱(코미디)물의 공식
사랑은 미스터리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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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감독에 따르면 <내가 숨쉬는 공기>는 “<오즈의 마법사>라는 서양적인 이야기와 ‘희로애락’이라는 동양적인 개념의 합일”이다. 확실히 이지호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에는 할리우드 이야기 구조와 동양적인(좀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적인’) 감수성이 한데 얽혀 있다.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가 재미있는 방식으로 충돌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제는 확실히 ‘코리안 아메리칸 시네마’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스타 캐스팅에 눈멀지 않으려 노력한들 포레스트 휘태커, 브렌단 프레이저, 사라 미셸 겔러, 케빈 베이컨, 앤디 가르시아와 에밀 허시가 희로애락의 운명적 고리 속에서 허둥거리는 걸 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말이다. 저예산 할리우드 데뷔작에 화려한 이름들을 데리고 격전을 치러낸 이지호 감독은 뉴욕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지난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뮤직비디오 및 음반 제작, 광고 분야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지호] 한국에서 영화 만드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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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숨쉬는 공기>는 희로애락(喜怒‘愛’樂)의 네 가지 챕터로 구성된 다중 캐릭터 영화다. 첫 번째 챕터 ‘해피니스’(Happiness). 펀드매니저 포레스트 휘태커는 조작 승마에 돈을 걸었다가 갱두목 핑거스(앤디 가르시아)에게 빚을 지고 은행을 털기로 계획한다. 두 번째 챕터 ‘플레저’(Pleasure). 핑거스의 부하인 브렌단 프레이저는 자신의 능력으로도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받는다. 세 번째 챕터 ‘소로우’(Sorrow). 핑거스에게 학대당하는 젊은 팝스타 사라 미셸 겔러는 자신을 숨겨주는 브렌단 프레이저와 사랑에 빠진다. 마지막 챕터 ‘러브’(Love). 의사 케빈 베이컨은 짝사랑해온 친구의 아내(줄리 델피)를 살리기 위해 희귀 혈액 소유자인 소로우를 찾아다닌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삶와 운명 속에서 헤엄치지만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보편적 우화로서 <내가 숨쉬는 공기>는 <숏컷> <바벨> <크래쉬
희로애락에 대한 멀티 플롯 우화 <내가 숨쉬는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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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밥상>은 신인 노경태 감독이 연출한 독립장편영화다. 짐작건대 화성으로 이민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화성이 그들에게 무엇을 약속하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그들은 어쨌든 더이상 지구(라기보다는 대한민국)에서 살 여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직장을 잃은 중년의 남자, 무력과 실의에 빠져사는 것 같은 젊은 남자, 장터에 무언가를 내다팔며 근근이 삶을 견디는 시골의 할머니, 군에서 아들을 잃고 무속에 기대어 사는 중년의 여자, 컴퓨터에 매달려 사는 덩치 큰 젊은 여자.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가난하고 외로워 보인다는 점이다. 실은 이 인물들이 어떤 사회적 소집단으로 서로 얽혀 있는지 마침내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 영화는 밝히고 있지만 그걸 밝히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어법상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다. 중요했다면 좀더 긴밀하게 다뤄야 했으며, 밝힌다고 해서 영화의 사유가 더 진전되는 지점이 없다. 그들이 외롭고 헐벗어서 기댈 곳 없는
기댈 곳 없는 사람들 <마지막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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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베를린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된 <정원의 반딧불들>(Fireflies in the Garden)은 어느 미국 중산층 가족의 초상이다. 작가 마이클(라이언 레이놀즈)은 어머니 리사(줄리아 로버츠)와 아버지 찰스(윌렘 데포), 이모 제인(에밀리 왓슨)을 만나기 위해 시골집으로 향한다. 어린 시절 폭압적인 찰스의 훈육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마이클에게 리사는 가족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그러나 리사가 갑작스런 사고로 사망하자 그간 숨겨져왔던 가족의 비밀이 밝혀진다. 영화 속 미국 중산층 가족은 폭압적인 아버지와 인고의 어머니, 그리고 덜컹거리는 부자관계까지 기이할 정도로 한국적인 가족상에 가깝다. 그토록 미묘한 한국성은 작가 최인호 감독의 외조카이기도 한 감독 데니스 리의 핏줄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서면 인터뷰로 궁금한 점들을 물어봤다.
-올해 베를린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저예산 인디영화 감독으로 화제를 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데뷔작으로 이만한 국제적 인지도를 얻
[데니스 리] 캐리 앤 모스를 캐스팅한 것이 행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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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한국에서 보편적인 주거형태다. 인구는 많고 땅은 좁으니 많은 사람이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점유하기에 적당한 방식이다. 여러모로 도시생활자의 편의를 고려해 설계한 집인데 그렇다고 아파트에 사는 각자의 필요를 모두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 2인 가구라면 왜 30평도 안 되는 아파트에 방을 3개나 만들었나 불만스럽고 5인 가구라면 좁더라도 방을 4개로 만들어주길 바랄 것이다. 가족 구성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불만사항이 다르지만 아파트는 각자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 가장 많은 가족 형태를 모델로 평균치의 감각으로 만든 집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에서 방 하나에 거실 넓은 30평 아파트를 찾아달라고 하면 면박당하기 십상이다. 현대사회에서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스템에 포섭되지 않는 욕망을 실현하는 일은 어렵다. 돈도 노력도 더 많이 들여야 한다. 아파트를 예로 들었지만 평균치 감각과 평균치 욕망을 원하는 것은 건설회사만이 아니다. 대형 마트에서, 커피 체인점에서, 브랜드 의류
[편집장이 독자에게] 틈새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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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마이클 강의 <웨스트 32번가>를 통해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의 간을 슬그머니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마이클 강의 <웨스트 32번가>는 한국 자본으로 동포감독을 이용해 미국을 공략해보겠다는 충무로적인 전략의 일환이었고, 서사와 미학적 경향에서도 (<올드보이>의 리메이크판을 연출할!) 저스틴 린의 <베터 럭 투모로우>처럼 전형적인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 감독들은 더이상 뉴욕과 LA의 뒷골목에서 총을 들고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아시아계 아이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들은 줄리아 로버츠, 케빈 베이컨, 브렌단 프레이저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데리고 중저예산의 데뷔작을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거나 혹은 뉴욕 인디영화계의 지원을 받으며 노마드적인 예술적 자화상을 그려나간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베를린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출품된 &l
코리안 아메리칸 시네마가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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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당당한 표절은 처음이었다.
6년쯤 전이었다. 사무실로 두툼한 우편물이 하나 날아왔다. 남쪽 지방의 한 도시에서 자칭 ‘소설가’라는 50대 아저씨가 자신의 신작 소설이라며 보내온 것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사이공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헤어진 한국군 사병과 베트남 여인이 1990년대에 다시 만나 피치 않게 악연을 맺는다는 내용이었다. 책을 펼쳐 잠깐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소설의 상당 부분은 당시 내가 일하던 잡지의 기사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동료들이 쓴 르포기사의 문장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기가 막혔다. 짜깁기와 베끼기로 소설을 바느질해놓고서, 원문을 쓴 기자에게 책을 보내주는 것은 무슨 심리란 말인가. 우편물 겉봉엔 자신의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당당히 적혀 있었다. 제 기사를 활용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전화라도 해달라는 말인가. 항의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관두었다. 첫째, 귀찮았다. 둘째, 표절을 했지만 그가 명성이나 영달을 누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표절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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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밤과 낮>을 보자고 했다. 아니, 도대체 왜? 나름 데이트라면 데이트인데, 홍상수의 영화가 웬말인가. 영화를 보는 동안 그녀는 영화 속의 남자에 빗대어 옆자리에 앉은 나를 간볼 게 분명했다. 너도 똑같잖아. 너가 아무리 입에 침바른 소리를 해봤자 저 남자랑 다를 바 없는 거 아냐?(알면서 왜 그러시는지).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홍상수의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에 빗대어 ‘자기는 뭐 다른가?’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상황은 더이상 연애에 기대를 걸지 않는 나이가 돼버린 남녀의 냉소 가득한 데이트처럼 보였다. 더이상 순진한 척을 할 수 없는, 했다간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나 들을 게 뻔한 데이트. 아마 <밤과 낮>을 미리 봤다면 내 스스로에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 조심해.”
그래놓고선 정작 <밤과 낮>을 볼 때는 내내 키득거렸다. 그녀는 그만 좀 웃으라며 내 팔을 찔렀지만, 웃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었다.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김성
[오픈칼럼] <밤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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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때였다. 나는 창문도 없고 전압이 낮아서 냉장고만 돌아가도 형광등이 깜박거리고 헤어드라이를 켜면 전기가 나가버리는 그런 곳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공동화장실에는 지붕이 없어 비가 오는 날에는 화장실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정취가 있는 곳이었다. 자취방은 재래시장 건물 안에 있었는데 내부에는 낮에도 빛이 안 들어오는(방에 창문이 없으니까) 한칸짜리 작은 방들이 수십개 모여 있었다. 건물 기둥은 시멘트가 떨어져나가 철근이 들여다보였다. “시멘트와 철근을 기준량의 절반도 안 쓴 것 같아. 학교에서 배운 건물 붕괴 조짐 사진하고 똑같은데…. 곧 무너지겠다.”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가 말했다.
친구여, 무너지겠는 건 내 청춘이라네. 나는 그때 첫사랑과 막 이별을 한 참이었다.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이 180도인 것처럼 알 듯 모를 듯한 자연스러운 이유로 헤어졌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엇갈리는 마음에 이상함과 서글픔을 더 느꼈었다. 게다가 무너질 것 같은 자취방에 새벽이면 술을 사
[내 인생의 영화] <중경삼림> -장형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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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골목, 서울의 주름 사이를 가쁘게 미끄러져가고 있는 한 사내를 떠올린다. 미진(서영희)이 선 우연의 문(門) 앞에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남자의 적당히 이완된 말씨를 그려본다. 그의 이름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이름을 자꾸 생각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보라.’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아프고, 어느 작품은 머리가 아픈데, 이 영화를 보고나선 며칠간 몸이 아렸다. 영화가 끔찍한 장면을 다뤄서만은 아니었다. 영상 속 폭력에 무던해진 지 오래고, 어느 면에선 그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다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그런데도 필름이 피를 타고 도는 느낌이 났다. 가까스로 화염 속에 들어간 소방관이 결국 시신을 안고 나왔을 때처럼, 몸에서 지워지지 않는 탄내가 났다. 나는 내가 왜 힘든지, 또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름’이란
[냉정과 열정 사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