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령 첫 등장에 놀람 지수 ★★★★★
유령 지루함 지수 ★★★☆
특수효과 ‘안습’ 지수 ★★★★
※스포일러 있습니다.
매 맞던 아내 마니(팜케 얀센)는 경찰이었던 남편 마이크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혔다가 모범수로 풀려나 가택연금형에 처한다. 남편을 죽인 곳으로 돌아온 마니는 100피트(30.48m) 반경으로만 움직일 수 있도록 전자 발찌가 채워지는데, 마이크의 파트너였던 생크스(바비 카나베일)는 규정을 하나라도 위반하면 감옥으로 돌려보내겠다며 수시로 그녀를 감시한다. 2년 넘게 비워뒀던 집에는 혈흔과 먼지가 뒹굴고, 이웃은 살인자라고 손가락질한다. 전기도 끊긴 지 오래라 냉장고의 음식까지 모두 상한 집에서 마니를 맞아주는 것은 고양이 한 마리와 식료품을 배달해주는 청년 조이(에드 웨스트윅)뿐이다. 철창 안에서 범죄자들과 생활하던 이전과 집안에서 족쇄를 차고 경보가 울릴까 전전긍긍하는 지금의 삶 중 어느 것이 나을까. 감옥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마니
21세기에 만나는 낡은 공포 <100피트>
-
깜짝 놀라 벌벌벌 지수 ★★☆
타이에도 <전설의 고향>이 지수 ★★★★
아난다 에버링엄 띠용 지수 ★★★☆
불교의 세계에서 절대적 탄생과 죽음이란 없다. 인간이 현세에서 저지른 업(業)에 따라 죽은 뒤 환생해서 여섯 세계 중 한곳에서 내세를 누리게 되며, 다시 그 내세의 업에 따라 그 다음 세계를 겪는다는 윤회의 고리에서 해탈하지 못하는 한 탄생은 곧 죽음이요, 죽음은 곧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한 우주의 수레바퀴를 거스르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특별한 의식을 통해 죽음을 회피해보려는 <카핀> 속 주인공들이다. ‘논 로엥 사도르크로’라는 이름의 이 의식은 승려들이 경을 읽는 가운데 사람들이 관 속에 들어가 뚜껑을 닫은 채 일정 시간을 보내는 것. 사람들은 이 의식을 거치면 사신(死神)을 속이게 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불운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폐암에 걸린 수(막문위)와 혼수상태인 여자친구를 두고 있는 크리스(아난다 에버링엄) 또한 각
크로스오버 호러영화 <카핀>
-
주성치다운 유머 지수 ★
허무맹랑 코믹액션 지수 ★★
시바사키 고우의 무술실력 지수 ★★★
태어날 때부터 소림권을 좋아했던 린(시바사키 고우)은 3천일 동안의 소림사 수련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함께 수련을 했던 다른 친구들이 스튜어디스와 여배우를 꿈꿀 때도 오로지 일본에 소림권을 전파시키겠다는 의지를 품었던 그녀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고향 땅에서 운영하던 소림도장은 폐허가 됐고, 린을 가르치던 사부는 중국집 주방장으로 살고 있다. 낙심한 린에게 친구 밍밍(장우기)은 라크로스(라켓을 이용해 공을 패스로 연결, 상대편의 골대에 넣는 게임)와 쿵후를 결합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라크로스 부원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면서 린은 잃어버린 도장을 되찾고, 점차 소림권의 기본 정신에 새롭게 눈을 뜬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의 학장인 오바(나카무라 도오루)가 린에게 잠재된 가공할 위력을 감지하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쿵후는 지금의 중국인들에게 어떻게든 부활시키고픈 존재다. 언뜻 보기에는
소녀들의 발랄한 소동극 <소림소녀>
-
무공해 웰빙 시각만족 지수 ★★★★☆
아기자기 감칠맛 지수 ★★★★
애정 폭력 공포 기타 등등 자극 지수 ☆
무료한 학교 생활에서 최고의 이벤트 중 하나는 전학생의 등장이다. 한반 급우들이 40~50명에 달하고 전교생이 수천명인 학교를 다녀도 그럴진대 초·중등을 합쳐 전교생 달랑 6명인 시골의 분교에서 그 신선함이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영화는 전학생을 맞느라 분주한 학교 풍경으로 시작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달랑 여섯뿐인 이 시골분교의 맏언니 격인 소요(가호)는 설레는 마음으로 첫인사를 연습하며 전학생의 등장을 기다린다. 그러나 도쿄에서 온 동급생 히로미(오카다 마사키)는 샤방샤방 꽃가루 날리는 외모와 달리 싸가지없는 멘트를 거침없이 날리며 소요의 부푼 마음을 단박에 실망으로 가득 채운다. 그러나 소요가 히로미가 단골 과일트럭 할아버지의 손자라는 사실과 귀향한 속사정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풀고, 여기에 히로미의 돌발적인 대시가 이어지면서 둘 사이엔 풋풋한
도시 소년과 시골 소녀의 만남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
-
나는 어쩌다 기자가 됐을까? 영화잡지 기자인 만큼 영화에 관한 글을 읽다가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기자 지망생의 숫자가 줄었다지만 언론고시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기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다. 언론업계 종사자끼린 3D직종이라 자조해도 일반적으론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해봤으면 하는 직업에 속한다. 신문이나 잡지기자가 아니라 방송사 기자 혹은 방송사 PD라면 더 그렇다. 직업선호도에서 공무원을 최고로 친다 해도 직업 안정성을 빼고 생각하면 어떠냐고 물으면 기자를 하고 싶다는 응답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으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자존심 지키며 살 확률이 높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수많은 할리우드영화에서 불의에 맞서 싸우는 당당한 기자들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권력이나 재력에 맞선 기자들의 무용담은 언론의 사명을 선서의 형태가 아니라 로망의 형태로 가공해 이 업계
[편집장이 독자에게] 과 YTN 노조, 힘내라!
-
안티조선운동 몇년이 하지 못한 일을 촛불은 단 며칠 만에 이루어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산 쇠고기에 섞여 들어온 뼈 조각 하나에도 호들갑을 떨던 조중동. 갑자기 논조를 180도로 바꾸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떠들어대다가 본색을 들켜버렸다. 촛불집회의 배후에 선동세력이 있다는 보도에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애먼 사람도 졸지에 빨갱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 촛불집회가 보수언론의 본색과 행태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귀한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대중이 갑자기 등을 돌리자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다. 조중동의 지면은 온통 촛불에 대한 원한으로 넘쳐흐른다. 그중의 어떤 기사는 마치 한여름 텔레비전의 납량특집을 보는 듯하다. 특히 공영방송을 겨냥한 <조선일보>의 사설에서는 어떤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KBS, MBC가 전경 어머니들 마음을 매일 밤 인두로 지져댄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기껏 조선시대의 고문방법을 끄집어내는 이 몰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촛불에 덴 보수언론
-
난생처음 대출 상담이란 걸 받아봤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을 좀더 좋은 곳으로 옮겨보려는 단순한 요량이었는데, 상담 뒤의 내 기분은 역시나 심란했다. 상담에 응한 은행원은 “근로자·서민대출이 이율도 싸고 좋다”고 말했다. 내가 근로자이자 서민이라는 사실이 생경했다. 게다가 수입이 특정금액 이하(!)여야만 하고,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어야 한다는 대출 자격요건에 내가 딱 맞는다는 사실도 기쁘게 들리지 않았다. 내 직장과 연봉, 근무연차들을 털어놓고 그것을 분석한 은행원의 답변을 들으면서 나만 자각하기 어려웠던 내 자신이 오롯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이 사회에서 저의 위치는 이곳이군요. 네, 당신은 직장을 다니며 나이든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는 서른살의 대한민국 남자예요. 적어도 은행의 전산망과 내규에 따르면 근로자이자 서민인 거죠.
평소 은행 대출에 대해서는 비호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행복한 신혼생활
[오픈칼럼] 뒤늦은 성장통
-
백인이 아닌 관객으로서 웨스턴을 본다는 게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특히 웨스턴 장르의 공식이 다듬어져가던 30, 40년대의 작품들을 보면 끝까지 참고 있기가 고문일 때도 있다. 존 포드의 <역마차>(1939)를 기억해보자. 이른바 ‘인디언’은 아무 이유없이 폭력을 일삼는 타자이고, 그래서 백인 영웅에 의해 파리 목숨보다 더 하찮게 죽임을 당한다. 외부의 유색인은 모두 처치의 대상인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그나마 제정신을 좀 차리는 것은 40년대 후반 좌파 성향 영화인들이 반성적인 시각을 드러내면서부터다. <하이 눈>(1952)이 그 사례다.
<리오 브라보> <하이 눈>에 대한 우익들의 답변
웨스턴의 걸작 중에서도 정치적인 시각에서만 보자면 역시 참기 힘든 게 많다.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1958)가 대표적이다. 먼저 그런 면부터 살펴보자. 이 영화는 <하이 눈>에 대한 우익들의 응답으로 주로
[걸작 오디세이] 정치적 선전 혹은 웨스턴의 신전
-
1등=대한극장 C225번(상금 5만환)
2등=국도극장 F944, 국제극장 B4415(상금 2만환)
3등=단성사 400환권 22153, 동 극장 동 환권 6983, 을지극장 A1012(상금1만환)
한편 개봉관을 제외한 기타 극장에 대한 추첨은 상오 11시 현재 계속 중에 있다.
“행운을 드립니다. 여러분께 드립니다” 1960년대 극장에는 ‘골든 시트’가 있었다. 1961년 8월23일 자 <한국일보>는 경관 입회하에 극장입장권 제1회 추첨을 실시했고, 그 결과 5개 극장에서 6명의 당첨자가 결정됐다고 쓰고 있다. 이른바 ‘극장 복권’의 등장. 1947년 12월, 대한올림픽위원회가 제16회 런던올림픽 참가경비 마련을 위해 올림픽후원권을 발행하고, 이어 1949년 재해대책자금 조성 목적으로 후생복표를 발행했던 정부는 1961년 7월31일 극장입장권에 복권을 첨부하겠다고 발표한다. 까닭은 해외영화제 참가 영화인의 경비 마련도 아니었고, 열악한 영화인들의 생활을 보조하기 위한 기
[한국영화 후면비사] 복권 아니 탈세극장 현상금 등장
-
<궤도>는 장애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옌볜 최초의 독립영화’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옌볜은 양팔이 없거나 말을 못하는 장애인을 대리자로 내세워 자기 자신을 영화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어떤 지역과 시대상의 문화 정치적 코드로 이해하는 이런 식의 추론이 타당한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영화가 만들어진 경위라든가 감독의 의도 따위를 조사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문화 정치 코드가 실어나르는 것은 작가의 창의성이 아니라 해당 시공간의 뿌리 깊은 사회적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옌볜 방송국 촬영감독 출신인 김광호는 실제 장애인인 최금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8부작을 제작했었다. 우리는 이로부터 뭔가를 한참 만지작거리다보면 그 소재로부터 참신한 상상력이 탄생할 수 있다는 미술가들의 격언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소설 <백치 아다다>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장철 감독의 외팔이 시리즈 같은 ‘훼손된
[영화읽기] 현명한 승화의 방식
-
<롤링스톤>의 평론가 피터 트래버스는 <플래닛 테러>의 ‘쓰레기’ 같은 자질을 나열한 뒤, 이렇게 정리한다. “어떻게 그것에 저항할 것인가? 내 충고는, 저항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피와 고름의 분출, 사지절단 행위와 훼손된 신체에 대한 페티시즘, 집단 살육과 같은 이 영화의 선정적 요소들을 나름대로 옹호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를 다시 꺼내 들며, 고색창연하게도 폴린 케일의 말을 인용한다. “극소수의 영화만 위대한 예술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위대한 쓰레기(great trash)를 감상하지 못한다면 영화라는 것에 흥미를 가질 이유란 별로 없는 것이다.” <빌리지 보이스>의 네이선 리도 비슷한 기조의 평을 썼고, <LA타임스>의 평은 재미있게도 폴린 케일의 같은 에세이의 다른 말(“우리는 극장의 어둠 안에 홀로 앉아 있을 때, 모든 책임감, 그리고 선한 의지로부터 비로소 해방된
[전영객잔] 죄의식을 날려버리는 명랑한 상상력
-
제임스 맥어보이가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 툼누스씨로 출연했을 때를 기억하시는지요? 전 원작을 읽어서 툼누스가 어떤 캐릭터인지, 이 드라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판으로 분한 제임스 맥어보이가 나와서 조지 헨리가 연기하는 루시 페번시 앞에 섰을 때는 조마조마하더군요. 만약 근처에 정상적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와 “당장 그 아이한테서 떨어져! 이 변태**야!”라고 호통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전 아직도 왜 맥어보이가 툼누스 역으로 캐스팅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툼누스는 관객을 굉장히 불안하게 합니다. 지나치게 유혹적이고 모호하지요. 여담이지만, 조지 헨리는 분장한 맥어보이를 세트에서 처음 보고 정말로 무서워했답니다.
<어톤먼트>에서도 마찬가지. 물론 <어톤먼트>는 철없는 아이의 편견이 갈라놓은 연인들의 비극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어톤먼트>
[듀나의 배우스케치] 제임스 맥어보이
-
[팬더댄스와 명화극장] <에일리언> 에일리언 VS 팬더댄스
[팬더댄스와 명화극장] <에일리언> 에일리언 VS 팬더댄스
-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주목받는 사람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타인의 시선을 감내해야만 하는 사람들 말이다. 주목의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차승원의 경우 시작은 찬란한 외모였다. 188cm의 훤칠한 키에 깊은 눈매와 날렵한 몸을 가진, 아름다운 남자. 영화 제작자들은 단번에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 이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가 런웨이에 머물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모델 차승원은 10년간 몸담았던 무대에서 내려와 1997년, <홀리데이 인 서울>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르며 배우 차승원이 되었다. 당시 배우 차승원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스크린에 모델 차승원의 잔상을 남기는 것이었다. “이슈가 될 만한 남자들을 끌어다가 잘못된 용도로 쓰는”(<씨네21> 393호) 영화산업의 본질을 진작에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안 어울리는 말투를 멋있게 하려다가” 흔적없이 사라진 모델 출신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차승원] 작정하고 멋을 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