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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후면비사] 1940년대에도 포르노가 있었다?
이영진 2008-09-04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에도 포르노가 있었다. 이름하여 도색영화회 사건. 1946년 12월5일, 수도경찰청은 20여명의 주객(酒客)들이 요정 명월관에서 불법 16mm 도색영화를 관람했다며 기생 최선 등을 붙잡아 취조에 들어갔다. 도색영화 상영을 주도한 상인 김린이가 자수하면서 수사는 불이 붙었다. 이어 도색필름 제공자인 충무로 악기상 김재영과 영상기 대여자인 신당동 사진사 정화세가 잇따라 검거됐고, 상업은행 지점장 등 “기생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주흥과 향락에 취한” 유력인사들 또한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아름다운 조선의 남녀풍기를 어지럽혔다”는 문제의 도색필름은 시시한 수준의 애정물은 아니었던 듯 싶다. 김재영이 1945년 11월 전 동아장미상사 이사로 일했던 일본인 관정희(管政喜)로부터 건네받은 이 도색필름은 거금 1천원(당시 영화 관람료 20원)의 관람료를 받고 상영됐는데, 한 신문은 “서양 남자 1명과 서양 여자 2명이 나체로 추잡한 실연을 하여 관람자에게 성욕을 충동케 하는” 12분가량의 성애물이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경성방송국, <경향신문> 등에서 기자로 일했던 문제안(86)씨는 “이 무렵 요정 등에서는 덧문까지 걸어잠그고 비밀리에 도색영화들을 상영했다”며 “직접적인 성행위 장면을 담고 있는 분명한 포르노물이었다. 심지어 수간(獸姦) 등의 장면도 있었다”고 전한다.

경천동지할 도색필름들은 당최 어디서 건너온 것일까. 당시 서울재판소는 명월관에서 상영된 도색필름이 “만주지방에서 밀수입한” 것으로 추정되며, “러시아 남녀가 출연하는” 음란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문씨는 “당시 대부분의 도색영화들은 미군의 위락거리로 들여온 미국영화”라고 말한다. “국일관 등에 나도 초대받아서 몇번 본 적이 있다고. 대개 요직에 있던 사람들의 부탁으로 큰 기업체 사장들이 나서서 미군을 초대하는 식의 파티가 열렸고, ‘재밌는 거 한번 보자’ 하는 즉흥적인 제안으로 그런 상영회가 열렸어. 다, 미국영화야. 현상소를 돌며 여러 번 뜬 거라 화질은 별로였는데, 스크린 대신에 벽에 흰 종이를 붙여서들 봤지.” 주목해야 할 것은 여론의 향방이다. 당시 도색영화회에 대한 도덕적인 엄단 요구 보다 고급 요정을 폐쇄하고 이를 일반인에게 개방하라는 질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을 아는지. 해방 직후 조선총독부가 자국민의 귀국 자금 마련을 위해 통화를 남발하고, 악질 모리배들은 토지와 식량 등을 매점매석하기 바쁘고, 미군은 구경꾼을 자임하던 1946년의 민생은 도탄, 그 자체였다. 도덕적 질타는 있었다손 치더라도 배부른 소리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