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극장, 명동극장, 계림극장, 성남극장을 돌며 포스터를 찢던 중학생이 있었다. 간첩 잡는다고 헬리콥터 타고 전방에 투입됐다가 슬쩍 극장으로 도망친 뒤 <007 위기일발>을 보며 희희낙락하던 군인이 있었다. 통행금지에 걸렸다가 주머니 속 포스터 수집용 칼과 고무줄 때문에 소매치기로 오해받던 영화인이 있었다. 월급날 보다 귀한 포스터 한짐 싸들고 퇴근할 때 가장 행복했던 가장이 있었다. 전시회로 회갑연을 대신하고서도 충분히 만족했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영화연구가이자 수집가인 정종화 씨의 지난 50년이다. 직접 쓴 책 제목처럼, 그는 “영화에 미친 남자”다. 오죽했으면 얼마전 전시회를 찾았던 배우 최은희 씨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영화 미치광이가 셋 있다. 한 명은 신상옥 감독이고, 또 한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고, 또 한 사람은 정종화.”라고 했을까. “한국영화 포스터 2300종을 무려 1만여점의 국내 개봉영화 포스터를 소유하고 있는” 그가 지금까지 연 영화포스터 전시회만 무려 106회. 1986년 12월 충무로 지하철 역사에서 개최했던 첫 행사부터 8월21일까지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기념 사전 행사로 열었던 ‘한국영화 포스터전’까지, 쉬지 않고 한국영화의 추억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자임해 왔다. 젊은 시절 영화광으로, 영화잡지 기자로, 영화제작사 기획실장으로 일했던 그는 이번 영화제 기간에도 어김없이 남산 한옥마을에 귀한 포스터를 내건다. “1년 중 장마철이 가장 싫고” “개인적으로는 누구에게도 자료를 자랑하거나, 보여주거나, 빌려주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2만여점의 각종 영화관련 자료를 수집, 보관 중인 그는 내년 쯤엔 책 <영화에 미친 남자2>를 내놓을 계획이다. “한국영화의 황금기인 동시에 자신에게도 가장 가슴 벅찬 10년”이었다는 1960년대,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충무로의 풍경들이 그 안에 오롯이 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