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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주식회사>의 괴물 설리반을 탄생시킨 최초의 스케치가 보고 싶은가? 그 위에, 야근으로 인한 아티스트의 커피 얼룩까지 덩그러니 남아 있다면 어떨까. <픽사 애니메이션 20주년 기념전>(PIXAR展 IN SEOUL: 20 Years of Animation)은 <토이 스토리>(1995)에서 <라따뚜이>(2007)까지, 미국 픽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들의 바로 그런 흥미로운 탄생 과정을 공개하는 전시회다. 오는 7월2일부터 9월7일까지 약 두달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게 될 이 전시회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드로잉을 비롯한 각종 컨셉·스크립트 아트워크, 마켓(marquette: 3D애니메이션 데이터 작업에 필요한 캐릭터 조형물), 미공개 단편 등 총 650여점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2005년 겨울 뉴욕을 시작으로 런던, 도쿄, 에든버러, 멜버른, 헬싱키를 거쳐 도착한 전세계 7번째 행사로, 전시 규모가 가장 크
공개합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탄생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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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적벽대전>에서는 손권이 왜 전쟁을 피하려는지 자세한 내막이 드러나지 않는다. 손권이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이해했나.
=내가 이해한 손권을 만약 현대에 적용한다면 그는 매우 지혜로운 지도자 또는 국가의 관리자가 되었을 것 같다. 그는 자기가 데리고 있는 사람 중 인재를 알아보고 그들을 이용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가 전쟁을 주저한 이유는 당시 오나라가 비록 작은 땅덩어리이긴 하나 충분히 부유했고 백성들도 평안히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그걸 깰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전쟁을 선택한 건가.
=(옆에 앉은 금성무, “제갈량이 속여서”. 일동 웃음) 제갈량은 손권과 조조를 모두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알고서 그에 맞춰 계략을 짠 것이다. 그러니까 손권이 제갈량에게 속은 거다. (웃음)
-손권을 표현하기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이전에 고전극을 찍어본 경험이 없어서 그 점에서 우선 흥미를 많
[장첸] “손권은 두려움과 용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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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여러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본인은 제갈공명 말고 다른 역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유가 뭔지.
=아마도 내 자신이 그만큼 지혜롭고 똑똑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제갈공명은 지혜롭고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영웅을 다루는 이야기는 대부분 전투를 잘하는 용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갈공명은 지혜로 전쟁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한번도 지혜로운 인물을 연기한 적이 없다. <적벽>의 출연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명장>을 찍고 있었다. 몸을 써서 전쟁을 하느라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웃음), 머리를 써서 전쟁을 한다기에 흥미로웠다.
-영화에는 지략가가 두명이다. 제갈량과 주유. 둘은 똑같이 지혜롭다. 차이라면 주유는 현장을 뛰고 제갈량은 뛰지 않는다는 것뿐인데 두 인물을 분별하는 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 둘을 모두 지혜로운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 일반적으로는 둘이 서로를 견제했다고 알려졌는데, 감독은 그 둘
[금성무] “제갈공명 말고 다른 역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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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의 주유는 매우 전형적인 스타일의 영웅이다. 마음에 드는 다른 캐릭터로 조조를 꼽았다. 이유가 뭔가.
=그가 갖고 있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는 도덕률과 같은 어떤 규칙에 구속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주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인물을 연기하면 얼마나 짜릿할까, 얼마나 흥분될까 싶었다. 내가 보기에 주유는 매우 완벽한 사람, 정면의 얼굴만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워낙 해보고 싶은 인물이었는데 사실 이번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베이징어라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준비기간이 부족해서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조조를 했으면 관객에게도 신선함과 궁금증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의외의 조합이라고 여겼을 것 같다.
-오우삼이 해석한 <삼국지>는 어떤 것인가.
=마찬가지다. 감독이 바라보는 <적벽대전>은 <삼국지>에 대한 매우 정면적인 시각의 영화다. 단결, 용기,
[양조위] “주유는 정면의 얼굴만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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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빵! 정의는 살아 있다,
라는 문자메시지를 친구에게 날렸다. 한달 전이다. 정말로 오대빵이었다. 재판을 게임으로 친다면, 5 대 0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2년 전, 나는 어느 언론사 사장 한분이 보기에 대단히 기분 나쁜 칼럼을 썼다. ‘몰상식의 표본’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어떤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격분했고, 민·형사 소송을 걸었다. 아무리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글이더라도 ‘공익에 부합하면’ 쉽게 죄가 되지 않는 게 명예훼손 소송의 일반적인 판례다. 다행스럽게도 대법원까지 간 세 차례의 형사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그리고 1억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당한 민사소송 1심과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원고쪽에서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으니 경기종료 휘슬까지 분 셈이다.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은 전혀 딴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재판이 끝난 뒤 우연히 어떤 책 한권을 읽다 두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노골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도올과 오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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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혈속집>(1992) 이후 거의 15년 만에 홍콩영화계로 복귀한 것은 물론,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은 당신의 첫 번째 베이징어 영화다.
=홍콩 시절 나의 모든 영화는 광둥어 영화였다. 70년대 이전에는 대륙 영화인들이 홍콩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베이징 표준어 영화가 대부분이었지만, 내가 활동을 시작했던 70년대 이후부터는 다시 광둥어가 주도권을 쥐었다. 그래서 <적벽대전>도 광둥어로 만들면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쓸 생각도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말하자면 할리우드에서 영어와 부딪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월이 지나 고향에 돌아와서도 다시 언어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웃음) 그래도 별 문제는 없었다. 아시아영화는 아시아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더 중요하다.
-앞서 만들어진 <삼국지: 용의 부활>에서 당신과 당신의 스승 장철 감독이 아꼈던 적룡이 관우로 출연했다. 섭섭하지 않았나.
=사실 &l
[오우삼] “주유와 제갈량은 끝까지 마음이 통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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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건대, 나는 얼마 전까지 불면증 환자였다. 불면증은 무서운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하루 스물네 시간 중 고작 한두 시간 정도만 온전히 잠들 수 있다. 그런 생활이 몇 개월쯤 지속되면 잠을 자고 있어도 자는 것 같지 않고, 깨어 있을 때에도 약간은 몽롱한 정신으로 살게 된다. 아주 늦은 새벽에도 내가 깨어 있다는 걸 아는 몇몇 친구들은 나를 완벽한 야행성 인간으로 여겼다. 하지만 숙면을 위해 온갖 노력을 반복하다 해가 떠오를 때쯤 잠이 드는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았음을 지금은 말할 수 있다. 2007년 여름부터 2008년 5월까지의 일이다.
불면증에 대한 나의 고백을 절대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나의 ‘선배’가 되신 <씨네21>의 기자들. 사연은 이렇다. 이곳에 입사하기 전 나는 1년 동안 <씨네21>의 객원기자로 일했다. 객원기자의 주요 업무는 일정 기간 동안 열리는 국내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 참석해 <씨네21> 기자들과
[오픈칼럼] 불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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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은 서기 208년, 위·촉·오 3국이 대립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위의 조조(장풍의)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륙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유비 진영은 조자룡(후준)이 유비의 하나뿐인 아들을 구해오는 대활약 속에서도 퇴각에 퇴각을 거듭한다. 이에 유비의 책사 제갈량(금성무)은 강남 지역의 최고 실력자 손권(장첸)과의 동맹을 제안한다. 제갈량은 손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손권 휘하 제일명장 주유(양조위)의 마음을 먼저 얻는 데 주력한다. 한편, 강남을 공격하는 조조의 마음속에는 주유의 아내인 소교(린즈링)를 차지하겠다는 욕망도 있다. 그렇게 조조 군대와 유비, 손권의 연합군대는 적벽에서 대치하게 된다.
조자룡 대신 관우가 마무리하는 장판교 전투
오우삼 감독은 <삼국지: 용의 부활>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선수를 친’ 작품이기도 하지만 유덕화를 조자룡으로 캐스팅했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
오우삼의 스펙터클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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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을 기를 수 있겠소? 나 없이도 말이요.” 거처도 알리지 않고 몇달 동안 떠돌다 슬그머니 돌아온 남편의 뜬금없는 물음에 부인 이씨는 아무 말도 못했다. 괜한 소리 말고 어서 노곤한 몸 뉘이라고 안방으로 밀었을 따름이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무슨 일 때문인지 서둘러 광희동 집을 떠났다. 어디로 가시오, 언제 오시오, 물어볼 참도 없었다. “벗은 옷 빨 필요 없으니 그냥 두구려.” 이틀이 채 되지 않아 이씨는 남편 소식을 들었다. 죽었다고 했다. 남편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집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종로구 삼청공원 안이었다. 남편은 집에서 들고 간 빨랫줄로 소나무에 목을 맸다. 호주머니에는 시계를 판 돈 3600원이 있었다. 생활비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는데 장례비 걱정까지 맡길 순 없다는 남편의 마음이 느껴져 이씨는 진저리, 몸서리쳤다.
노필 감독이 세상을 끊은 건 1966년 6월29일 새벽이었다. 노 감독의 부음에 충무로도 발칵 뒤집혔다. <안창남 비행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사람 잡는 영화규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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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클라이맥스를 영화화한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이 드디어 그 뚜껑을 열었다. 아시아 영화사상 최고 제작비로 얘기되는 800억원(8천만달러)의 이 영화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자본이 결합된 범아시아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장대한 스케일의 적벽을 재현하기 위해 서안 지역에 실제 40피트(?미터) 가까운 어마어마한 높이의 언덕을 재건했고, 조조의 100만 대군을 보여주기 위해 2천척의 배를 띄우는가 하면 36m 높이의 실제 배를 직접 제작해 촬영했다. 그리고 오우삼식 무협영화를 보좌하기 위해 뛰어든 무술감독은 바로 할리우드에서 직접 <D. O. A>를 연출하기도 했던 원규다. 그야말로 올해 ‘최대’의 아시아영화라 해도 틀리지 않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7월10일 개봉하는 전편에 이어 올 겨울 2편을 개봉할 예정이다. 할리우드에서나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사전 동시 제작 시리즈물’인 셈이다. <적벽
아시아 블록버스터: 거대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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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부를 것’이라는 묵시록적인 제목의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에 나왔던 세속적인 성직자(폴 다노)를 기억할 것이다. 종교를 팔아 부와 명예를 챙기려는 파렴치한 소인배다. 신심과 순결을 강조하며, 달리 말해 죄의식을 부추기는 선동을 통해 그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뒤에서는 돈을 탐닉했다. 그의 영화적 선배를 찾자면 로버트 미첨이 연기한 성직자 해리 파월이 전범이다. 명배우 찰스 로튼이 유일하게 감독했던 <사냥꾼의 밤>(1955)의 주인공이다. 오른손 주먹 위엔 ‘LOVE’, 왼손 주먹 위엔 ‘HATE’라고 문신을 하고, 사랑은 결국 증오를 이길 것이라는 유아적이고 광적인 설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선동가다. ‘사랑과 증오’에 관련된 그의 주먹 문신이 얼마나 인상적인지, 이는 미첨 자신에 의해 <케이프 피어>(1962, 리 톰슨)에서, 그리고 리메이크된 <케이프 피어>(1991, 마틴 스코시즈)에서 로버트 드 니로에 의해 다시 반복
[걸작 오디세이] 종교적 배금주의에 대한 비판의 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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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 채리스의 부고를 막 읽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끌어갈지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제 영화 경험에 큰 즐거움을 주었던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를 예찬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시드 채리스에 대해 깊고 복잡한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할리우드 스타 시드 채리스의 역할은 단 하나였어요. 댄서요. 그건 MGM 뮤지컬 배우로 봐도 제한된 기술이죠. 진 켈리나 프레드 아스테어는 자기네들이 송앤댄스맨이라고 겸손해했지만, 그들의 역할은 보기보다는 다채로웠습니다. 그들은 연출과 안무를 책임졌고, 춤을 추는 동안 직접 노래도 불렀으며, 뮤지컬 전성기가 끝난 뒤엔 정극 배우로도 어느 정도 좋은 작품들을 남겼지요.
하지만 시드 채리스의 경우는 춤밖엔 생각이 나지 않아요. 노래 부르는 장면이 좀 있긴 했지만 다 다른 가수들의 더빙이었죠. 심지어 대표작 중 하나인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는 대사도 캐릭터 이름도 없습니다. 그냥 춤만 추고 지나가지요. &l
[듀나의 배우스케치] 시드 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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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질문의 다른 판본. <공공의 적>에서 정작 질문되지 않는 것은 ‘적’이 아니라 ‘공공’(Public)의 정의인 것은 어떤 이유일까? 공공에 대한 정의없이 적을 정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혹시 여기에는 공공을 내세운 집단적인 동의 아래 진행되는 폭력만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함으로써 사실상 정말 해결되어야 할 방법을 쉽게 포기하고, 나쁜 것과 싸우기 위해 더 나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포기함으로써 우리는 더 큰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공공의 적>은 그 자체로 민주주주의에 대한 위협적인 제스처가 아닌가? <공공의 적>이 내세우는 믿음은 단순하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무언가 지금 민주주의적 절차가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거나, 아니면 그 과정이 게으르거나, 혹은 형식에 불과하거나, 이도저도 아니어서 악을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다. 지금까진 참았지만 이번에는 더이상
[전영객잔] 강철중이 회피하는 것은 무엇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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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의 열여섯 번째 영화 <강철중: 공공의 적1-1>(이하 <강철중>)을 보았다. 남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제목의 뒤에다가 ‘1-1’이라는 일련번호로 셈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아니, 꼭 처음은 아니다. 무성영화시대에 실험영화들이 그런 식으로 제목을 붙인 적은 있다. 혹은 미술 인스톨레이션에서 그렇게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마치 논문을 쓸 때처럼 1번에 관련된 보충 설명을 할 때 그 아래에 ‘1-1’이라는 번호를 붙이는 방식으로 제목을 정했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처음에 ‘빼기’로 읽었다). 영화를 본 다음에야 이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우석에게 <공공의 적> 혹은 <강철중>은 두개의 판본이 있는데, 혹은 ‘동명이인’ 강철중 두 사람이 있는데, 이 세 번째 영화는 검사 강철중이 아니라 강동서 강력반 형사 강철중의 판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강동서
[전영객잔] 강철중이 회피하는 것은 무엇인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