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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차인표에게 궁금한 건 없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의 의도는 명백해 보였다. 아내인 신애라와 함께 쌓아온 선행들이 모든 질문의 답변일 것이다. 그런 차인표에게 <크로싱>을 촬영하면서 보고 느꼈던 바를 듣는다고 한다면, 과연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에게 <크로싱>은 신의 뜻이었거나, 인간 차인표가 가진 가치관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에게서는 너무나 따뜻하고 온유한 이야기만 들을 게 뻔했다. 하지만 그게 차인표의 본령이라면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차인표란 배우를 이야기할 때, <크로싱>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했다. 차인표가 연기한 <크로싱>의 용수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다. 두 아이를 입양하고,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품는 실제의 차인표와 오롯이 겹치는 인물이다. 아직 <크로싱>은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그와의 대화를 통해
[차인표] 흔들림 없는 진실된 자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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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명박 정부에 억울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들의 말대로 이 협상은 참여정부에서 수립한 일정을 일관성있게 중단없이 진행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도시는 계승 안 하겠다는 그들이 자신들의 판단에 대한 책임을 참여정부에 떠넘긴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 논변으론 누리꾼이 참여정부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는 있어도 현 정부의 책임을 덜 수는 없다.
광우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조소하는 이들의 말처럼 협상 반대론자들이 유포하는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조건없는 수입의 정당성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피뢰침을 세워도 재수없는 사람은 벼락에 맞아 죽고, 피뢰침을 안 세워도 대부분의 사람은 벼락과 상관없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이 경우 확률을 계산하여 피뢰침 건립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것이 ‘과학적인’ 태도이겠는가. 물론 한국인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광우병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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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리가 잘 보이는 카페의 테라스가 싫다. 보도보다 한발 정도 높은 나무 바닥에, 스테인리스 소리 챙챙거리는 의자에 앉아, 라테를 마시며 책을 보고, 음악을 듣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광경이 좀 밉다. 길을 걷더라도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고, 시야에 들어오면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특히 홍대 앞 C, 논현역에서 강남역으로 가는 길 오른쪽의 J, 명동 대로의 C, 청담동 검정 빌딩 앞의 T. 뭐 이 말고도 무수히 많겠지만 특히 앞의 두 C와 하나의 J, T는 테라스의 방향이나 위치, 구조, 그리고 거기에 앉은 사람들까지 이상한 뉘앙스를 뿜고 있다. 무언가 으스대고, 사방의 시선을 의식한다. 땀을 식히며,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한 휴식 같진 않다. 적당한 책과 잡지, 아이포드와 담배를 테이블 위에 놓고, 대부분 한쪽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는 마치 연출된 백화점 쇼윈도의 마네킹을 닮았다. 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번지르르하다. 아니, 차가 쌩쌩 달리는 2차선 도로의 앞을 치고 나온
[오픈칼럼] 마네킹 세대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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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금 찰턴 헤스턴에 대해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인위적인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게 아쉽군요. 왕년엔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나 때려도 되는 동네북 같아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죠. 그의 정치적 신념과 연기력에 대한 재평가.
첫 번째 주제는 제가 그렇게 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뭐, 사람들에겐 정치적 의견을 가질 자유가 있지요. 그리고 전 전미총기협회(NRA) 회장이었던 그의 말년 경력이 스튜디오 내의 인종차별을 반대했던 젊은 시절의 행동과 그렇게 모순돼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국이라는 나라의 괴상한 정신체계를 고려해본다면 말이죠. 여전히 괴상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는 거죠. 아무리 <볼링 포 콜럼바인>의 결말이 재미있어도요.
그럼에도 제가 헤스턴의 말년 모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의 실제 모습과 캐릭터와의 연관성을 계속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뭘까요? 공정하려면
[듀나의 배우스케치] 찰턴 헤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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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있어서 일상이란 단어는, 거대 담론에서 사적인 이야기로 예술의 내용이 확장 또는 이행하게 되는 지점을 상징한다. 예술 소재로서 일상이 갖는 매력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예술과의 거리감 역시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부여한다. 이유진, 최원정, 허정은 작가가 회화, 영상, 설치 등의 매체로 이야기하는 일상은 좀더 내밀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상의 이면에 대한 포착이다. 이는 일상과 연결이 되어 있으면서도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는 극단적으로 사적인 영역이다. 작가와 작품간의 거리감은 더 가까워졌으되, 감상자와 작품간의 거리감은 더 멀어진 꼴이다. 하지만, 작가들의 무의식적인 상상력이 작품이라는 틀 속에 완성되어 표현될 때 발견되는 아이러니는 초현실적인 영역을 미술언어로 표현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즉흥적인 감정으로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기를 반복해서 완성한 이유진의 회화, 붓이나 연필로 그린 이미지와
일상의 이면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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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즈피아니스트들. 빌 에반스의 창조적 계승자 키스 자렛,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1969)가 예견한 현대 퓨전재즈의 거장 칙 코리아, 재즈레이블 GRP의 예술적 지주 데이브 그루신, 팝과 록, 솔과 스탠더드의 실험적인 퓨전 아티스트 허비 행콕…. 그렇다면 1932년 영국 출신 에디 히긴스는 어떤가. 에디 히긴스는 재즈계에서 창조적 아티스트로 분류되진 않는다. 역사에 남을 오리지널 송을 써내는 것도 아니고 재즈 장르의 지평을 넓히는 실험을 도모하지도 않는다. 그는 <Autumn Leaves> <Cheek To Cheek> <My Romance>와 같이 모두가 아는 곡들을 박박 긁어모아 스탠더드 연주 앨범만 낸다. 심지어 다작이라 희귀성도 없다. 그러나 그렇듯 수십년간 고집해온 그의 스탠더드 연주는 들을 때마다 곧고 품격있다. 그가 만드는 애드리브는 쉽지만 가볍지 않고, 원곡을 살아 있
곧고 품격있는 연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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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부터 시작된 거다. 유대인계 영국인 백인소녀 와인하우스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될 ≪Back to Black≫으로 진정한 ‘솔(과 타블로이드 가십거리)’을 토해내며 보수적인 그래미까지 휩쓸었다. 그녀의 업적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영국 내에서 복고적인 사운드와 솔풀한 목소리로 승부하는 솔로 여가수의 붐을 일으켰다는 거다. 얼마 전 앨범이 발매된 더피가 음(陰-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대구를 이루는 양(陽)이라면 아델은 그 사이를 비집고 올라선 젊은 영재다. 19살에 만들어 제목도 ≪19≫인 데뷔앨범에서 아델은 서정적인 브릿팝 사운드에 음영이 짙은 목소리를 덧입힌다. 정돈된 와인하우스 같다가 걸쭉한 코린 베일리 래 같고, 브릿팝 그룹 ‘카타토니아’의 세리스 매튜스 이복동생 같기도 하다. 와인하우스나 라이벌 더피에 비하면 앨범의 전체적인 풍광은 조금 덜 여물었다. 물론 그게 무슨 대수겠나. 영국 차트 2위에 올랐던 <Chasing P
음영 짙은 목소리, 열아홉의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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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쓴 뮤지컬. <뉴욕타임스>가 “미국 뮤지컬 사상 가장 위대하고, 아마도 가장 유명한 예술가”라고 찬사를 보낸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와 작곡을 맡았다. 지난해 무대에 오른 그의 또 다른 뮤지컬 <스위니 토드>가 피범벅에 다분히 냉소적이었던 데 비하면 결혼이냐, 아니냐를 저울질하는 다소 말랑말랑한 작품이지만, 손드하임 특유의 날카로운 입담은 생생하게 살아 있으니, 달짝지근한 사랑 이야기라면 지긋지긋한 이들이여, 염려놓으시길. 뉴욕 맨해튼에 살고 있는 로버트. 그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먼저 결혼 생활의 전형이라 할 만한 다섯 커플, 싸움이 그칠 날이 없는 사라와 해리, 완벽해 보이나 실은 이혼한 수잔과 피터, 권태의 단계로 접어든 제니와 데이빗, 식을 앞두고 신경이 곤두선 에이미와 폴, 남자를 수없이 갈아치운 조앤과 그녀의 현재 남편 래리. 그리고 달라도 너무 다른 로버트의 여자친구들, 섹시하지만 아둔한
결혼이냐, 독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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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만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순정만화만이 고유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는 유일한 장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르 속에서는 끊임없는 세포분열이 진행되고 있어 마치 3세계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순정만화가 등장하곤 한다. 일본 순정만화계의 신성, 오노 나쓰메의 <리스토란테 파라디조>가 바로 그런 작품. 오노 나쓰메는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한 만화계에선 독특한 이력의 작가로 주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그리고 있다. <리스토란테 파라디조> 역시 이탈리아의 한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50줄에 접어든 중년 남성과 그들을 사랑하는 중년 여성들과 한 풋내기 아가씨의 로맨스를 담고 있는 만화다. 중년들이지만 레스토랑 ‘카제타 델로루소’에서 일하는 이들은 사장부터 종업원까지 하나같이 늘씬하고 탄탄하다. 게다가 어찌나 사려깊은지 막 사랑을 시작한 여주인공 니콜레타의 연모의 대상이요, 성장통을 풀어주는 훌륭한 상담사 역할까지 한다. 여느 순정만화에서라면
순정만화에 담아낸 중년 로맨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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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숏을 단어에, 편집을 통사론에 비유하는 시도는 다분히 과장의 위험을 내포한다. 그러나 몽타주를 통해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문체로 비로소 전달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몽타주의 개념과 역사를 논한 이 책의 1부에서 몽타주는 세 가지 개념의 종합이다. 자르고 붙이는 물리적 행위인 커팅, 시청각 요소를 배치해 영화의 꼴을 완성하는 에디팅, 그리고 숏 사이 관계를 결정하는 좁은 개념의 몽타주가 그것이다. 편집기사 출신 영화학자인 저자 뱅상 피넬은 몽타주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줄 세우는 글을 최소화하고 몽타주 개념의 진화를 실제 영화의 예를 통해 살핀다. 고전기까지 모든 영화감독들은 발명가이며 이론가이기도 했기에 이는 무리한 방식이 아니다. 몽타주의 실제를 다룬 2부는 180도 가상선과 장비의 진화를 소개하는 한편 히치콕의 시퀀스를 분석하고, 앙드레 바쟁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쓴 글에서 몽타주의 핵심을 지적한 한 대목을 발췌했다. “몽타주는 촬영이 감추었던 불
실용적이며 핵심적인 몽타주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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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김중혁은 수집가다. <펭귄뉴스>를 통해 라디오, 타자기, 자전거 등 시대의 조류에 반걸음 뒤처진 사물들을 불러모았던 그가 이번에는 다양한 소리들을 채집했다. “음악을 몸으로 소멸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 영화음악가,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열정으로 수백 가지의 악기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하는 남자, 엇박자를 성대에 새기고 태어난 듯 늘 합창을 망가뜨리고 마는 소년 등 <악기들의 도서관>은 피아노와 오르골, 턴테이블과 전자기타, 인간의 음성이 맞물리며 유려하게 이야기를 연주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금세라도 음악이 들려올 것처럼. 이른바 “0.5cm SF”인 김중혁 특유의 화법은 여전하면서도 좀더 풍성해졌다. 나이와 국적이 다른 두 피아니스트는 수화기를 통해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며 묘한 우정을 쌓고, 지하철에서 엉킨 실을 풀던 백수 청년들은 대중의 호기심을 얻고 졸지에 예술가의 자리에 등극한다. 경쾌하면서도 알싸한, 가벼우면서도 뻐근한 8편의 이
0.5cm SF식 화법이 들려주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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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에 대한 혐오가 <장미의 이름>의 사건을 낳았다면, <세상을 삼킨 책>은 제목 그대로 세상을 삼킬지도 모르는, 새로운 사상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이야기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한입에 삼키기엔 다소 묵직해 보이는 소재로 보이지만,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는 비밀단체, 스파이, 예술, 문학을 철학에 버무려낸다. 1780년, 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어수선한 독일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을 수사하던 의사 니콜라이는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의 이름이 사건과 연관되었음을 알게 되지만 조사 중단을 명령받는다. 그즈음 니콜라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장미십자회와 프리메이슨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새로울 것도 없다. 이 책에서 정말 재미있는 것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태어나던 당시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이다. <순수이성비판>이 가졌던 파급력의 실체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
꿀꺽, <순수이성비판>이 삼켰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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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연의 황후>의 배우 여명과 진혜림이 오랜만에 한국팬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내한하여 인터뷰자리를 마련했다. 그들의 대표작으로 어떤 영화를 손꼽아야 할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홍콩의 대중스타이다. <연의 황후>는 춘추전국시대 연나라를 배경으로 연나라 황제의 딸 '연비아'(진례림)와 그녀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 무사인 '난천'(여명)의 운명같은 사랑이야기이다. <연의 황후>의 촬영 뒷이야기와 배우들의 진솔한 인터뷰 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보기'버튼을 클릭해주세요.
[여명, 진혜림] <연의 황후> 내한 인터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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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남자도, 새끈한 레이서도 전설의 왕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이언맨>이 개봉 2주만에 전국 300만명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킨 가운데,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의 왕자>가 약 50%의 예매율로 1위를 차지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비롯해 티켓링크를 제외한 전 사이트에서 1위다. 특이한 것은 다음 주 개봉인 <인디아나 존스 4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통합전산망 집계에서 2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개봉 전 미리 예매를 연 몇몇 극장의 예매율이 이 정도란 이야기다. 지난 주 <스피드 레이서>의 공세에도 1위를 재탈환했던 <아이언 맨>은 2위로 내려왔다. 하지만 개봉 3주차에도 <아이언 맨>의 기세를 주목할 만하다. 예매사이트마다 20%에서 30% 사이를 오르내리는 <아이언맨>의 예매율은 한 자릿수로 내려간 <스피드 레이서>의 예매율을 크게 웃돈다. <스피드 레이서>와 각축을 벌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 예매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