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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Red Army│2007│와카마츠 코지│190분│일본│오후 5시│전주 시네마 8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실화다. 붉고 굵은 제목이 작렬하는 첫 화면 이후. 1960년부터 시작된 일본 학생운동의 연대기는 다섯명의 적군파가 아사마 산장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체포되는 197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긴박한 편집과 장중한 내레이션, 개개인의 소속과 나이와 실명을 밝히는 자막이며 흑백의 실제 자료화면과 이후 연출된 화면의 비율은 자연스럽게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간다. 기나긴 프롤로그가 언제쯤 끝나려나 싶은 어리둥절함 속에 정신을 차려보면 관객들은 자신들이 연합적군의 동계 군사훈련기지의 지독한 밀실까지 흘러들어왔음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운동에 투신한 동지들은 ‘공산주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자아비판을 강요한다. 질투는 의심으로, 의심은 아집으로, 아집은 처형으로 이어지는 아찔한 추락. 퇴직금을 헌납하고 아내와 아이까지 산으로 끌어들인 적군파
혁명은 대체 어디에 있나 <실록 연합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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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Photos in The City of Sylvia│Dans La Ville De Sylvia│2007│호세 루이스 게린│67, 84분│스페인 등│오후 2시│메가박스 10
호세 루이스 게린의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과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당연하게도 각각의 두 작품이지만 둘이 묶여야 하나의 완성품이다. 실비아에 대한 기억을 좇는다는 명목으로 한쪽이 ‘이미지’의 영화를 추구한다면 또 한쪽은 ‘소리’의 영화를 추구한다.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은 스틸 이미지와 자막의 영화 즉 보는 것의 영화이며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즉물적인 사운드로 가득한 듣는 것의 영화다. 어쩌면 실비아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실비아를 영화의 은유라고 놓을 때만 이 두 영화는 가치 있다. 실비아의 도시에서 실비아는 영화이며 실비아의 도시는 영화적 감각의 도시이고 이 두 영화는 묶여서 영화에 관한 영화가 된다.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
둘이 묶여야 하나의 완성품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 <실비아의 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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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와 일등이 동시에 불행하고(<진주는 공부중>), 운동부를 그만두려 해도 “지금은 너무 늦었어”라는 말을 들어야 하며(<유.앤.미>), 의도치 않은 출산으로 인한 아픔도 버거운데 양육권과 학업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릴레이>), 엉망진창 한국사회에서 파생된 문제를 고스란히 떠안는가 하면(<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다르게 생긴 엄마가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달려라 차은>). 대한민국의 청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험난함을 말하기 위해, 다섯명의 감독이 모였다. 방은진, 전계수, 이현승, 윤성호, 김태용. 실사로 만들어진 네 번째 인권영화프로젝트 <시선 1318>의 감독들이다. ‘청소년 인권’이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주어졌다는 것이 예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진주는 공부중>의 현장에서 방은진 감독은 싱글벙글이었다.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마지막, 방준석 음악감독이
대한민국 청소년의 삶, 그 험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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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와 <실비아의 도시에서>의 스페인 감독 호세 루이스 게린은 지금 세계 영화제 순례중이다. 베니스에서 시작하여, 토론토, 벤쿠버, 뉴욕, 부에노스 아이레스, 리스본, 홍콩, 그리고 전주까지. 하나씩 적어가며 알려주던 그는 “너무 힘든 여행이었다”며 웃는다. 그 긴 영화제 순례의 동기가 된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실비아라는 옛 여인의 허상을 좇아 도시를 돌아다니는 한 남자에 관한 영화이자, 그를 둘러싼 이 도시의 시선과 소리에 관한 영화다. 당신이 전주 어느 노천 까페에 1시간만 앉아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에 관해 상념에 젖어 본다면 호세 루이스 게린이 표현하고 싶었던 바를 이해하게 되리라.
-두 편의 영화를 보고나니 당신이 관객으로서 좋아하는 영화들이 궁금해졌다.
=위대한 영화감독들이 있었다. 브레송, 채플린, 오즈, 존 포드, 드레이어 등등. 이런 감독들의 영화를 좋아한다. 60년대 이후부터 그런 거장들의 분위기가
“영화 작업은 짜여진 것과 우연적인 것의 변증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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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했던 축제가 아쉬운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다. 폐막을 이틀 앞둔 지난 5월7일 영화제쪽의 집계에 의하면,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예년보다 좋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영화제 7일차인 7일까지 이뤄진 216번의 상영 중 매진된 것은 총 140회. 지난해는 전체 상영횟수 271회 중 109회가 매진된 바 있다. 좌석 점유율은 7일간 평균이 약 84%로 8일차까지 집계한 지난해 좌석 점유율 평균 80%에 비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전북대 문화관을 2회 매진시키는 저력을 보여준 <키사라기>, 상영과 무대인사 내내 엄청난 호응을 받았던 <우린 액션배우다> 등이 올해의 화제작이며,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특별전의 주인공은 벨라 타르였다는 것이 영화제 쪽의 전언. 435분이라는 무시무시한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사탄 탱고>까지 거의 매진시킬 정도의 관객 호응에 감동한 벨라 타르 감독은 예정에 없던 GV까지 자청하고 나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던 것으로
이번 영화제, 예년보다 좋은 점수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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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김아론│63분│한국│오후 2시│메가박스 6
“제가 원하는 것들이 현실로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릴 적, 성폭행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시나리오 작가, 김수진(라라)은 이미 정당방위로 판결난 ‘박물관 살인사건’을 계획적인 복수극으로 가정하고 시나리오를 집필하려 한다. 그녀는 자료조사를 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복수를 ‘박물관 살인사건’을 통해 상상한다. 라라의 상상력이 창조해낸 허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과의 간극을 좁혀가고, 라라는 혼돈상태에 빠진다.
“화초를 키우면 언젠가 나비가 날아오지 않을까?” 망상의 목소리가 이야기하는 ‘나비’는 행복을 의미한다. 라라는 화사한 햇살이 비치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햇살을 막고 있는 창문 위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 현실을 지배하는 과거의 기억. 너덜너덜한 신발마냥 너무 많이 쓰여 닳아버린 소재지만 그만큼 매혹적이다. ‘라라’라는 인물은 소재의 진부함을 없애고 그 매력은 배로 만드는 이 영화의 오아시스다. 세
복수를 이루고 나비가 되다 <라라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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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의 <씨네21> 표지 촬영 현장과 영화 <크로싱>에 관한 인터뷰 영상입니다.
영상 중간에 배우가 직접 내는 돌발퀴즈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퀴즈도 풀고 배우가 주는 선물도 받아가세요.
정답은 2008년 5월 25일까지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당첨자는 커뮤니티 '씨네21 소식'에서 확인해 주세요
동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 보기> 버튼을 눌러 주십시오.
[차인표] 도움의 신호가 되어 줄 영화 <크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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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 뉴욕 타임스스퀘어 42번가의 주인은 호사스러운 관광객도, 젠체하는 사업가도 아닌 도시의 그림자에 몸을 맡긴 창녀와 포주, 마약쟁이들이었다. <더 라이프>는 브로드웨이의 전설이라 불리는 작곡가 사이 콜먼의 음악을 배경으로 거리의 여자 퀸, 그녀의 기둥서방 플릿우드, 다분히 기회주의적인 포주 조조,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 메리를 비롯해 바로 그 시절 42번가를 점령한 이들의 비극적이고도 강렬한 삶을 그리는 뮤지컬이다. 몸을 판 지 수년. 퀸은 돈을 모아 42번가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플릿우드가 자신의 돈을 마약 빚을 갚는 데 다 써버렸음을 알게 된다. 그 사이 플릿우드와 조조는 미네소타에서 갓 올라온 메리와 만나게 되는데 플릿우드는 갈 곳이 없는 그녀에게 함께 지내도 좋다고 관대한 척 군다. 젊고 예쁜 소녀의 미래가 걱정된 퀸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하지만 메리는 이미 남자들의 달콤한 말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 그날 밤 퀸은 매춘을 하다 경찰서로 끌려가고 그녀가
80년대 뉴욕의 그림자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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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9일까지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 02-580-1300
각 문화, 예술 장르간의 특성이 교차되거나 서로의 것을 모방, 혼성하는 것이 그다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한때 상당수의 전시들의 기획 의도에 이를 뜻하는 ‘하이브리드’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던 것도 최근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제야, ‘크로스컬처’라는 이름으로 만화와 미술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시 기획에서 주목한 것은 지금의 대중이 현대미술을 즐기는 방식이다. 이제 미술은 소비의 대상이다. 작품 자체에 대한 소비, 작품의 이미지에 대한 소비, 작품에 대한 취향의 소비. 여기에 만화는 미술에 대한 이런 방식의 소비를 좀더 쉽게 만들어준다. 그러니까 여기서 만화는 ‘제9의 예술’로서보다는 대중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전달 매체로서의 만화에 가깝다. ‘만화 이미지’를 통하여 ‘우리 시대’를 이야기해보겠다는 것이 전시 기획의 의도다. 26명에 달하는 참여작가와 작품의 면면도 다양하다. 귀여운 동물
만화, ‘우리 시대’ 현대미술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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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 프롬 파리스, 밥 싱클러, 헤드 칸디 등 1990년대를 주름잡은 세계적인 디스코·하우스 DJ 뮤지션들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오리엔탈펑크스튜의 이름도 아마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오리지널 웨스턴 스타일의 하우스 사운드를 구사하는 오리엔탈펑크스튜는 1992년 뉴욕 유학 중 디제잉의 길에 들어선 한국 뮤지션이다. 1997년 삐삐밴드 이윤정의 솔로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그때까지 대중에게 생소했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메인신에 소개하기도 했고 국내 최초의 테크노 클럽으로 기억되는 ‘상수도’의 DJ로 활동했던 이력도 있다. 무엇보다 그는 15년여간 뉴욕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세계적인 DJ들과 교류를 가지며 ≪The Way We Slice≫ ≪It’s Luv≫ ≪Simple Things≫ 등 영미권 하우스뮤직차트 상위 랭킹의 앨범들을 속속 발표해왔다. 그가 처음으로 국내 발표한 하우스 장르 앨범 ≪The Housekeeper≫는 완전한 구미 클럽신 지향의 퀄리티 높은 하우스 사운드다
한국어 가사 쩍쩍붙는 웨스턴 하우스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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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은 마돈나의 귀환이다. 아니, 좀더 확실히 말하자면 이번 앨범은 마돈나의 미국 귀환이다. 그동안 마돈나가 어디 있었냐고? 다들 알다시피 그녀는 영국에 있었다. 지난 10여년간 마돈나는 자신의 최고 앨범들인 <<Ray of Light>>와 <<Music>>을 영국 일렉트로니카 거장들과 만들어냈다. 영국 감독 가이 리치와 결혼한 김에 영국 교외의 저택에서 우아하게 애들 동화나 쓰고 지냈다. 가장 최근에 나온 <<Confessions On A Dancefloor>>가 왜 그렇게 따분했는지 알 만하지 않은가. 게다가 미국인들은 그 앨범의 디스코 재해석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새 앨뱀 <<Hard Candy>>는 다르다. 확실히 미국 사운드다. ‘변신의 여왕’이 미국 차트의 정상에 오르겠노라 다짐한 결과물이랄까. 먼저 귀에 들어오는 건 팀벌랜드와 파렐 윌리엄스가 근사하게 뽑아놓은 힙합 리듬. 전통
마돈나의 미국식 하드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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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아토다 다카시/ 행복한책읽기 펴냄
단편의 명수, 아토다 다카시의 블랙유머란 그런 것이다. 툭툭 던져진 문장의 미로를 헤매다 어느새 촌철살인의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는 것. 아찔하면서도 매혹적인 그 맛에 중독되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시소게임>으로 국내에 알려진 아토다 다카시의 단편집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도 같은 매력을 가진 책이다. 표제작은 사업에 실패한 남자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이야기. 산책하며 만난 남자의 조언에 따라 새로 시작한 냉장고 사업의 비밀이 밝혀지는 반전에 이르면 독자는 그때까지 맞춘 퍼즐이 흩어져 새로운 결합을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반전이 뒤통수를 치는 것은 아니다. 간절한 염원이 분신으로 나타나는 <미지의 여행>은 애잔하고, 시체의 양분으로 자라는 <기묘한 나무>는 예상 가능하면서도 웃기다. <취미를 가진 여자>는 영리한 이중구조로 독자를 교란하고, <
반전부터 유머까지, 짧은 즐거움 몇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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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미국 대중문화 속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할리우드의 영원한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과연 <인디아나 존스> 효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조지 루카스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인기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단지 ‘우리가 보아왔고, 또 보고 싶었던 종류의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인기 비결이 있다면 그것이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답변 속에는 사실 <인디아나 존스>의 인기 비결은 물론 할리우드식 정통 모험영화가 가진 매력의 근원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귀중한 보물 상자가 숨어 있다. 그런데 이 보물 상자를 열려면 ‘새터데이 마티네’ 및 ‘맥거핀’, ‘액션과 스피드’, ‘영웅성’ 등 네 가지의 <인디> 키워드를 잘 이해해야 한다.
옛날 옛적 극장 이야기와 맥거핀
‘새터데이 마티네’는 엄밀하게는 특정한
A급 스탭들이 만든 진짜 B급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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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달까지> 애덤 고프닉/ 즐거운상상 펴냄
파리에 대한 책은 한국에도 많다. 하지만 진짜 파리에 대한 책은 드물다. 한국에 출간된 대부분의 책들은 파리에 대한 짝사랑만을 샤방샤방한 문체와 일러스트로 고해바치는 데 그친다. 하지만 마레 지구의 카페에 매일 들락날락거린다고 해서 파리를 알게 되는 건 아니다. <파리에서 달까지>는 다르다. 이 책은 <뉴요커>의 애덤 고프닉이 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간 파리에서 살며 겪은 일들을 술술 풀어놓은 칼럼 모음집이다. “미국인은 파리를 천상의 도시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는 헨리 제임스의 말처럼, 그 역시도 처음엔 파리행 비행기표를 월면행 우주선표 정도로 여겼던 남자였다. 하지만 그가 직접 경험한 파리는 천상의 도시가 아니다. 모두가 톨레랑스를 외치지만 실제 파리는 도무지 톨레랑스를 체화할 수 없을 만큼 갑갑한 관료주의의 수도다. 파리의 우아한 식도락 문화도 이미 런던과 뉴욕에 추월당한 지 오래다. 애덤
진짜 파리에 대한 애정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