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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출신의 솔밴드 <데블스>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그들의 ‘휠링’과 ‘쏘울’을 한눈에 알아보는 건 기자이면서 팝 칼럼니스트인 한 중년의 남자다. 그가 <데블스>를 화려하게 데뷔시킨다. 그는 약속과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시대의 청춘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불사른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되게 엄숙한 인물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갈색 라이방(선글라스)에, 백색 양복, 장발, 과장되고 희화화된 말투, 절도있지만 낭만적이기도 한 몸짓. 치밀한 연구 끝에 나온 그 설정과 연기가 부담스럽지 않을뿐더러 생동감있다. 배우 이성민은 이병욱이라는 이 역할을 매우 유쾌하고 매력있게 해낸다. 억지로 짜내지 않는다. <씨네21>은 영화 <밀양>에 출연했던(주인공의 마을 친구인 주방장) 그를 비범한 조연으로 점찍어 일찌감치 만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빨리 또 다른 ‘휠링’을 보여줄지 미처 몰랐다. 정말 180도 다른 모습이다.
-영화를 먼저 본 동료들이
[이성민] “기억에 가라앉은 것들 하나씩 뽑아 이병욱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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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다기리! 지수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지수 ★★★★☆
그래도 아리송해 지수 ★★★
전각 새기는 남자는 나비 날개 모양의 ‘아닐 비’(非) 아래 ‘꿈 몽’(夢)을 새겨 넣는다. 나비 꿈 혹은 꿈 아님. 이어 세심히 비(非) 아래 ‘마음 심’(心)을 새겨 넣으니 슬픈 꿈(悲夢)이라는 낱말이 조합된다. 처절함에서 처연함으로 정념의 좌표를 이동시켰으나 사랑과 적대감의 양면성, 순환과 재생의 메시지에 집중하는 김기덕 감독의 일관성은 여전하다. 그러나 그의 영화들은 서서히 악몽의 세계에서 푸른 감수성이 스며든 비몽의 세계로 이행하고 있다.
남자 진(오다기리 조)이 꿈을 꾸면 몽유 상태의 여자 란(이나영)이 그 꿈을 실행한다는 설정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옛 애인을 따라가다가 교통사고를 내는 꿈에서 깬 남자는 사고 현장을 찾아간다. 뺑소니 혐의로 잡힌 여자는 몽유 상태에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정신과 의사(장미희)는 둘이 본래 한몸이며, 한명이 행복해지
사랑과 적대감의 양면성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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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지수 ★★★★
대놓고 된장질 지수 ★★★★
연기 앙상블 지수 ★★★★
영화의 시작과 끝은 영화에 대해 꽤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오프닝에서 행인들의 하체만 클로즈업한 뒤 ‘진퉁’ 명품백과 높은 하이힐로 운을 떼고 시작하는 <내 친구의 사생활>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엔딩 크레딧을 장식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친구의 사생활>은 미국 상류층 여성들의 번드르르하고 추문 가득한 삶을 다루는 영화다.
상류층 여성들의 삶은 언제나 수다로 뜨겁다. 주인공인 메리 헤인스(멕 라이언)는 유명하고 부유한 남편과 함께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유한계급의 여성이다. 그녀의 친구인 실비(아네트 베닝)는 유명한 잡지사의 편집장이고, 알렉스(제이다 핀켓 스미스) 역시 유명한 수필가다. 이들은 임신 중독에 시달리는 에디(데브라 메싱)와 함께 걸쭉한 수다를 늘어놓으며 의리와 우정을 키워간다. 영화는 이 여성들의 다툼과 화해, 거듭남을 그리고 있다. 수동적인 여인 메리는 한
미국 상류층 여성들의 번드르르하고 추문 가득한 삶 <내 친구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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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으로 대화를 감청하고, GPS 시스템을 통해 당신의 위치를 찾아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2008년 영화로 만들어진 <이글 아이>는 정보가 곧 권력임을 이야기하는 액션스릴러다. 정보를 수집하는 도구는 ATM, CCTV, 신용카드, 교통 감시 카메라 등 편의를 위해 도입된 기술이 대부분으로, 이 기술들이 악용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낸다. 주머니 속 휴대폰처럼 익숙한 테크놀로지에 현재라는 배경이 주어졌지만 다분히 SF적인 <이글 아이>의 이모저모를 뜯어보자.
1. Reference_더없이 익숙한 공포
사실 <이글 아이>의 설정이 새롭지는 않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빅 브러더’나 ‘과학기술의 반격’ 같은 테마를 놓고 SF소설과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통해서 예습과 복습을 반복해왔다. D. J. 카루소 감독은 조지 오웰의 <1984>와 <워 게임>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변주했다고 말하지만, <에너미
[알고 봅시다]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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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어 라버프 성장 지수 ★★★☆
배럭 오바마 지지 지수 ★★★☆
왜 그리 사서 고생을 지수 ★★★★
다른 누군가로 오인된 한 남자가 범죄의 함정에 빠진다는 플롯은 히치콕 이후 스릴러영화에서 자주 사용돼왔다. 히치콕의 <이창>에서 영감을 얻은 게 분명한 <디스터비아>로 성공을 거둔 D. J. 카루소 감독의 신작 <이글 아이>는 히치콕의 <너무 많이 안 사나이>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이 영화에서 음모에 빠져드는 인물은 제리 쇼(샤이어 라버프)다. 공군에서 근무하던 쌍둥이 형이 갑자기 사망한 직후 그의 계좌에 75만달러가 들어오더니 혼자 사는 아파트에 폭약과 총기 등이 배달된다. 그는 수상한 전화를 받은 뒤 FBI에 체포되지만, 또다시 걸려온 전화 속 목소리를 따라 탈출을 감행한다. 곧 그는 전화 속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똑같은 존재로부터 아들의 생명을 위협받고
침해받고 있는 개인의 사생활과 기본 권리 <이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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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인기를 모은 배우 아야세 하루카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해피 플라이트>를 통해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아야세 하루카는 6일 저녁 <해피 플라이트> 야외상영 전 열린 무대 인사에서 전통 한복 의상을 입고 등장해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그녀는 서툰 한국어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귀여운 어투로 인사를 했고, "부산은 처음 왔지만 영화 열기가 놀랍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는 걸 기쁘게 생각한다"며 방한 소감을 밝혔다. 또, 처음 입어본 한복에 대해선 "정말 사랑스러운 의상"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 <해피 플라이트>는 비행기에 관련된 일과 공항의 뒷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 재기 발랄한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했다. 아야세 하루카는 이 영화에서 엉뚱하고 솔직한 막내 스튜어디스 역으로 열연했다.
[PIFF2008] 아야세 하루카, 한복 맵시 뽐내며 첫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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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미러> 거울 속의 또 다른 나
[정훈이 만화] <미러> 거울 속의 또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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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 지수 ★★★★
모나한의 들창코 매력 지수 ★★★★
안녕 시드니 폴락 지수 ★★★★
사랑은 영원히 학문으로 정리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엇이다. 남녀관계를 둘러싼 갖가지 예측은 항상 빗나가고 목도하게 되는 것은 항상 뜻밖의 결과다. 그에 비해 단순해 보이는 우정 역시 급작스러운 모략과 배반으로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누게 만든다. 하물며 우정과 사랑을 오가는 <남주기 아까운 그녀>의 두 남녀는 어떻겠는가. 대학의 할로윈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해나(미셸 모나한)와 톰(패트릭 뎀지)은 자신들조차 감정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10년이라는 세월을 허송한다.
하여간 알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흐른 뒤 둘은 친구 이상 애인 이하의 기묘한 관계로 지내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미지수로 가득한 사랑의 물리공식은 톰과 해나 사이를 연인의 관계로 엮는다. 겨우내 ‘같은 여자와 이틀 이상 함께 자지 않는’ 바람둥이 톰이 해나를 두고 가슴앓이를 하기 시작할
우정과 사랑을 오가는 두 남녀 <남주기 아까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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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일제강점기. <모던보이>는 잊혀진 그 시대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독립투사로 한몸 불사르는 난실(김혜수)도, 그녀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모던보이 해명(박해일)도 흥미롭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임팩트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해명과 비밀거래하는 사립탐정 ‘백상허’다. 어둠침침한 탐정소,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백상허 역은 개성있는 배우 김준배에 의해서 완성된다. 그는 주로 인간미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조폭 역으로 충무로에서 이미 얼굴이 ‘팔린’ 배우다. <강적>에서 잔인하게 경찰을 죽이던 조폭은 그의 대표작. <무방비도시>에선 조폭 대신 형사로 변주를 주지만 <트럭>에서 다시 가차없이 사람을 죽이는 조폭 두목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혀를 차게 한다. 필모그래피가 모두 조폭과 형사로 채워진 그에게 탐정을 연기하는 <모던보이>는 다시 없는 기회다. “정지우 감독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록 편집됐지만, 모자 하나
[김준배] “짐승 같다고? 더 나빠질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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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냐 매케인이냐. 차기 미국 대통령 자리를 놓고 진행 중인 치열한 난타전에 할리우드도 출병했다. 현재 최전방에서 공격의 포문을 연 것은 단연 야구 모자를 쓴 악동, 마이클 무어다. 2004년 대선 시즌에 <화씨 9/11>을 개봉하며 노골적으로 부시 정권에 주먹을 날렸던 무어는 당시 미국 전역 대학가를 순회하며 젊은이들에게 투표할 것을 호소했던 (그러나 부시의 재집권으로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던) 자신의 여정을 기록한 신작 다큐멘터리 <슬래커 업라이징>(Slacker Uprising)을 9월23일 온라인에 무료 개봉했다. 할리우드에서 이른바 메이저급의 감독이 장편을 통째로 온라인에, 그것도 무료로 배포한 것은 사상 최초의 일로, 무어의 파격적인 선택은 명성에 걸맞은 파괴력을 여실히 입증하는 중이다.
<슬래커 업라이징>은 공개되기가 무섭게 아마존 VOD 리스트 1위를 꿰찼으며, 아이튠즈를 통한 다운로드는 일반적인 블록버스터의 3배에 가까운 속도를
[포커스] 차기 미국 대통령? 할리우드에게 물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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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 부산국제영화제가 13번째 축포를 쏘아 올렸다. 서양에서는 완벽한 숫자 12에 1이 더해진다고 해서 13을 완벽을 파괴하는 불길한 기운의 숫자로 낙인찍었지만, 달리 해석해보면 13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산영화제 역시 올해 숙원사업이던 부산영상센터 두레라움 착공식을 가지는 등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개막식 당일 오전 10시부터 개막식 불꽃이 터지는 순간까지의 매시 13분,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해 개막식의 궂은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날씨는 쾌청했다. 오전에는 개막식이 열린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오후 12시를 전후로 자원봉사자들은 전날 배열해둔 5천개의 야외상영장 의자들을 일일이 걸레로 닦았다. 무대에선 음향 테스트를 시작으로 리허설이 진행됐다. 오후 4시부터는 일반 관객 입장이 시작됐고 좌석은 금세 꽉 찼다. 영화제 사회를 맡은 정진영과 김정은, 영화
축제의 멋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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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라는 표현. 지겨워죽겠다. PIFF에 초청된 배우의 절반 정도가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대표 배우를 뽑나? 그런 의문을 갖고 있다가 킴 보드니아를 만났다. 웬걸, ‘덴마크의 국민배우’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킴 보드니아는 94년작 <나이트워치>(Nattevagten)로 늦은 나이에 데뷔한 덴마크 배우다. 그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96년작 액션영화 <푸셔>(Pusher). 타란티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한 이 액션 영화는 보드니아를 덴마크는 물론이거니와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배우로 치켜올렸다. 정작 보드니아는 별로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고백한다. "<나이트 워치>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배우가 됐지만 그냥 조용히 살고싶었다. 그런데 어째어째 출연한 <푸셔>가 또 대히트를 거뒀다. 이젠 어쩔 수 없다.(웃음)".
올해 ‘미드나잇 패션’ 부문에서 상영한 <
덴마크 국민배우에서 인류배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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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얀테 멘도사의 영화 <서비스>에 등장하는 이 극장의 이름은 ‘패밀리’다. 정겨운 이야기가 피어날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다. 화장실의 하수도는 막혀있고 복도마다 ‘성행위 금지’라고 쓰여 있으며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그걸 보는 대신 따라 하는 관객이 더 많은 곳이다. 여기는 필리핀의 빈민가에 위치한 다 쓰러져 가는 동시 상영 극장이다. 늘 섹스물이나 틀어주며 인근 클럽에 출근하는 게이들을 손님으로 받는다. 그들은 이곳을 아지트처럼 드나들며 영화도 보고 장사도 한다. 하지만 비관적이거나 어두운 영화는 아니다. 이걸 만든 브리얀테 멘도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되는 것”이라고 밝게 웃으면서 말한다. 삼대가 운영하는 이 극장에 살고 있는 인간 군상들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싶었다고 한다. 게다가 “영화 속에 나오는 중혼죄로 남편을 고소한 중년의 여인이 실제 운영하는 극장 이름이 패밀리였다. 1년 동안이나 리서치를 하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 할까 고민했는데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3차원 관람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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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마르티네즈 감독의 영화 <100>은 필리핀판 <버킷 리스트>다.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조이시는 의사로부터 자신이 암 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그날로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포스트잇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메모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메탈로 된 관을 알아보러 가고, 평소에 바빠서 할 수 없었던 파스타요리를 하고, 길거리의 낯선 남자에게 키스를 하는 등 그녀의 특별한 ‘기행’을 경쾌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죽음이 가까워오자 그녀는 자신의 삶과 주위를 둘러본다. 데뷔작으로 부산을 처음 찾은 <100>의 크리스 마르티네즈 감독을 만나보았다.
-당신은 영화감독, 작가, 연극연출가, 배우까지 다재다능하다.
=17살 때부터 소설을 썼다. 그리고 대학 때 비즈니스를 전공하면서 극단에서 연극을 했었다. 졸업 후에도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연극연출가로 활동했다. 29살 때, <신부파티>라는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필리
<100>은 <버킷 리스트>보다 더 현실적인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