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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방비> Naked of Defenses
이치이 마사히데 | 일본 | 2007년 | 88분 | 컬러 | 뉴커런츠 | 17:00 메가박스2
<무방비>는 다른 일본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공장의 내부를 비추며 시작한다. 시골마을 한가운데 우뚝 선 플라스틱 공장 안에서는 거친 기계들이 바닥과 공중을 오가고 있다. <무방비>는 이곳에서 일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숙련공인 리츠코는 어느 날 신참동료인 치나츠를 맞이한다. 치나츠는 만삭에 가까운 임신부. 리츠코는 그녀에게 꼼꼼히 일을 가르치며 우정을 나누지만, 곧 치나츠의 부른 배에서 교통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잃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사고 뒤, 남편과 함께 자지 않고 함께 먹지도 않으며 오로지 일만 하고 있는 리츠코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공장의 기계에 비유한다. <무방비>는 모성의 비극이 다시 모성으로 극복되는 과정을 꾸밈없는 연출로 묘사한다. 그녀들이 상처를
그녀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 <무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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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의 노래> Songs From the Southern Seas
마랏 사룰루 | 카자흐스탄, 프랑스, 독일, 러시아 | 2008년 | 82분 | 아시아영화의 창 | 14:00 부산2
“아기 머리가 왜 검은색이지?”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며 재차 묻는 러시안 이반(블라디미르 야보르스키). 그는 아내 마리아(이리나 아게치나)가 산후조리를 마치자마자 옆집의 카자흐스탄인 아산(드자이다르벡)과의 아기가 아니냐며 구타한다. 이반의 의심이 깊어질수록 옆집 아산 부부와의 관계는 멀어진다. 15년 뒤, 그의 아들 샤샤는 말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만큼 장성했다. 이반은 “왜 학교에 안 가고 말만 타냐”고 괜히 아들을 못마땅해 하고, 아들 역시 “저에겐 이게 더 중요해요”라고 자신에게 애정을 쏟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한다. 스스로 가족, 이웃 사이에 벽을 세워 삶에 의욕을 잃은 이반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가족의 뿌리(역사)에 대해 듣는다. 이야기는
진지하게 담아낸 중앙아시아의 모습 <남쪽 바다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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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풍> Winds of September
린슈유 | 홍콩, 대만 | 2008년 | 105분 | 35mm | 아시아영화의 창 | 20:00 프리머스9
대만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1990년대 대만 죽동고등학교의 어느 날, 옌과 탕을 비롯한 9명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늘 어울려 다닌다. 딱히 불량 친구들은 아니지만 프로야구에 미쳐 있는 이들은 야구장에서 말썽을 부리기도 한다. 이들의 리더격인 옌은 여자친구가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하는데, 탕은 옌의 여자친구를 좋아하면서도 속만 태우고 있다. 다른 진짜 건달들과 싸우기도 하고 크고 작은 사건을 겪으면서 이들의 우정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 위태로움은 결국 옌의 불미스런 교통사고로 영원히 틀어지고 만다.
<구월풍>은 아련한 옛 추억을 자극하는 청춘드라마다. 밤에 삐삐로 서로서로 연락해 만난 친구들은 한밤의 학교 수영장에서 일탈을 만끽한다. 벌거벗은 남자아이들의 해맑은
수채화 같은 청춘의 서정 <구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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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Still Walking
고레에다 히로카즈 | 일본 | 2008년 | 114분 | 컬러 | 아시아영화의 창 16:30 대영1
온 가족이 모였다. 이 자리가 팽팽한 긴장의 공간이 되리라는 건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걸어도 걸어도>는 이 불안한 모임의 1박2일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이날은 이 집 장남의 제삿날이고, 그의 죽음은 이 가족에게 공공연한 금기다. 영화는 간만에 모인 이들이 함께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풍경, 아이들끼리 동네를 산책하는 모습 등을 아무런 감정의 기복없이 담아내지만 TV에서 흘러나온 사고뉴스의 한 토막과 매년 이맘때면 찾아와 음식을 먹고 가는 한 남자의 방문 등이 이들을 멈칫하게 만든다. 그 순간 이들은 장남의 죽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모여 식사에 열중하는 풍경은 분명 오즈 야스지로의 것이다. 현업에서 은퇴한 뒤 산책으로 소일거리를 하는 아버지는 아내와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가족은
죽음의 기억을 통해 삶의 기운을 찾는다, <걸어도 걸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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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Pyre
감독 라제쉬 잘라 | 인도 | 2008년 | 74분 | 컬러 |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경쟁 | 10:00 메가박스2
제3세계의 아이들은 어느 덧 다큐멘터리의 보고가 됐다. 끼니를 잇고자 일터로 나선 이 아이들이 온갖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노동을 하는 모습은 굳이 많은 설명과 연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을 담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은 쓰라릴 테니 말이다. <화장터의 아이들> 또한 감독의 시선보다 소재가 가진 아픔이 먼저 다가오는 다큐멘터리다. 인도 바라나시의 화장터에 사는 아이들에게 남의 죽음은 자신의 밥줄이다. 영화는 시체들의 수의를 벗겨 장의사에게 되팔면서 생계를 잇는 7명의 아이들과 대화한다. 5살 때부터 일을 시작해 15살까지 약 1천구가 넘는 시체의 옷을 벗긴 아이도 있고, 다른 아이가 차지한 수의를 때리고 협박해 뺏는 아이도 있다. 몰래카메라로 담아낸 듯한
제3세계 보고서 <화장터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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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의 모든 남자들이 반한 신비의 여인, 임희뢰는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모두가 그를 좇지만 언제나 그는 저만치 멀리 달아난다. 이른바 ‘두기봉 사단’에는 멋진 남자들만 득시글대는 것 같지만 여배우들의 파워도 그에 못지않다. <풀타임 킬러>(2001)에서 유덕화의 연인으로 등장했고, <매드 디텍티브>(2007)에서 유청운과 호흡을 맞추었으며, <참새>에서 모든 남자들의 넋을 빼놓았던 임희뢰는 바로 정수문과 더불어 두기봉이 아끼는 여배우들 중 하나다. 유덕화, 유청운, 임달화, 이름 만으로도 쟁쟁한 두기봉의 남자들을 상대로 전혀 눌리지 않는 눈빛을 보여줬다. <풀타임 킬러>로 두기봉과 처음 만났던 그는 “홍콩영화계에서 가장 악랄한 4대 감독 중 하나라는 얘기를 듣고 만났고(웃음), 그래서 촬영 시작하고도 오래도록 말도 못 붙였는데 사실은 아이처럼 정말 귀여운 분이셨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고전적 여배우의 풍모
두기봉이 아끼는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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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제작지원작인 <그녀들의 방>은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은 여자와 자기의 방을 나눠같고 싶은 여자의 만남을 그리는 이야기다. 만약 그들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결론이었다면 보는 이의 마음도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거를 이루지 못한 두 여자의 만남은 결국 어느 하나 믿을 게 없다는 듯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그녀들의 방>을 연출한 고태정 감독은 "희망이 없다고 단정짓기 보다는 지금의 관계를 돌이켜보았으면 했다"고 말한다. "과연 지속적인 위로가 가능할까? 나도 자신없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그러고 살지 않냐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언뜻 여성감독이 여성의 만남을 섬세하게 그린 여성영화, 혹은 인물들의 침잠하는 내면만을 비춘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의 말처럼 <그녀들의 방>은 "그녀들의 방이 아니라 그들의 방이었도 상관없었을 이야기"이고, 현실적인 디테일로 가득찬 작품이다
현실적인 디테일 속에 물음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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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아르노 데스플레샹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골치아픈 가족 이야기다. 유전병으로 골수이식이 필요한 엄마를 살리기 위해 가족이 모인다. 그들은 싸우고 투쟁하고 미워하고 화해하거나 혹은, 끝내 화해하지 않는다. 주말 드라마도 지겨운데 지긋지긋한 가족 이야기를 또 봐야하냐고? 이 걸작을 놓치지 않은 PIFF 관객들이라면 데스플레샹의 대사들이 위대한 프랑스 배우들의 입을 통해 쏟아져나오는 순간 발현하는 영화적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됐을 것이다. 데스플레샹 감독 또한 자신의 영화를 똑 닮았다. "한국영화의 역동성과 마찬가지로 생동감이 넘친다"고 부산을 표현한 그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영화의 형식, 그리고 지적인 오락거리로서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유희처럼 즐겼다.
-2002년작 <에스더 칸>은 연극적인 영화고 예술 자체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런데 최근 세 편의 영화는 극영화 형식으로 어떻게든 ‘가족’이라는 테마를 다룬다.
=캐릭터를
지적인 것을 대중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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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앨런 크로슬랜드 감독의 <재즈싱어> 개봉은 당시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영화산업에 큰 충격을 안겼다. 영화에 소리가 도입된 것이다. 세계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의 개봉과 함께 무성영화 스타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스튜디오 시스템은 새로운 기술(사운드)에 의해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처럼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운드’가 연출, 촬영, 조명 등 다른 파트에 비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 그런 의미에서 10월4일, 6일 양일간 열린 사운드 엔지니어 다니엘 데애와 기쿠치 노부유키의 ‘AND 사운드 마스터클래스’자리는 가치가 있었다.
프랑스 출신의 다니엘 데애는 샹탈 아커만의 <1980년대>, 아녜스 자우이의 <룩 앳 미> 등 프랑스 및 유럽 감독들의 사운드 엔지니어로 활동해 온 사운드 분야의 거장. 특히, 그는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새벽의 경계>를 연출한 필
사운드, 또 하나의 영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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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이끌어 갈 뉴커런츠 감독 프리젠테이션이 6일 오전 11시 그랜드호텔에서 열렸다. 총 14명의 감독 중 5명이 불참했고, 크리스 마르티네즈, 에드윈, 자오예, 노경태, 백승빈, 오 나타폰, 라제쉬 쉐라, 김태곤, 리홍치 등 9명의 감독이 프리젠테이션에 참석했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감독 소개가 끝나자 9명의 감독들은 자유롭게 질의응답에 응하며 뉴커런츠에 출품된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날고 싶은 눈 먼 돼지>의 에드윈 감독은 “한국인들이 영화를 매우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것 같아 인상깊었다”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인상을 피력했고 <장례식의 멤버> 백승빈 감독은 “작년에는 단편 <프랑스 중위의 여자>로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에 초청됐었는데 올해는 장편으로 영화제에 참석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GV때 반응이 좋았고, 난생 처음 사인도 해봤다”는 <독>의 김태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90%이상 만족하지만 뉴
우리가 아시아 영화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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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입장에서 올해 영화제의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라면 '통역의 퀄리티'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 라운드 테이블이나 개별 인터뷰시 통역자의 실력과 자질 문제는 기자들 사이에서 늘 불평의 대상이었다. 자원봉사자가 제법 큰 규모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도 있었고, 영어가 원활하지 않은 아시아 지역 게스트에게도 어쩔 수 없이 통역자의 부족으로 인해 영어 통역자가 붙어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올해는 통역으로 인한 잡음이 깔끔하게 해소된 편이다. 조종국 기획홍보실장은 “자원봉사자들을 인터뷰에 투입시키는 일이 절대 없게 하려 했고, 단기간이라도 전문통역자들을 고용하려고 스탭들의 인맥을 풀가동했다”며 “아무래도 통역에 있어 고급인력을 가동하는 것은 예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분이라 내년에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라 말했다.
[BEHIND PIFF] 언제나 통역 구하기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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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남자>는 또다른 남자가 되고싶어한 남자의 이야기다. 시골마을 소식지 기자인 프랑수아는 어느날 갑자기 영화평론을 맡는다. 영화에 대한 식견도 없고 글 쓰는 재능도 없는 그는 유명 평론지를 표절한다. 그리고 시사회에서 만난 비평가이자 언론재벌의 딸인 로자와 사랑에 빠진다. 이 불행한 남자의 신분상승 투쟁기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기자로서 왠지 가슴이 찔리는 순간도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감독 리오넬 바이에르는 기 드 모파상의 <벨라미>와 소극장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경험을 엮어서 영화를 만들었다. "<벨라미>는 재능없는 파리 남자가 예술평론가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재능이 없는 인간이 잘 모르는 세계를 원하는 이야기에 흥미가 끌렸다. 또한 소극장에서 일해본 덕에 평론가들을 잘 안다. 나같은 감독과 평론가들의 관계는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Love or Hate)’아닌가.(웃음) 물론 우리는 서로가 꼭 필요하다". 바이에르 감독은 현
영화평론가를 이해하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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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여 일체 공식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던 최민식이 해운대에 나타났다. 6일 오후 4시 30분,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리야>의 전수일 감독과 최민식이 '아주담담'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최민식은 “미지의 땅 히말라야를 가보고 싶다는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며 오랜 해외촬영의 고충을 털어놓았고, 전수일 감독은 “(최민식씨가) 다른 사람을 통해 건네받은 시나리오를 보고 선뜻 승낙해줘 기뻤다. 그래서 염두에 둔 다른 배우를 밀어냈다(웃음)”는 얘기와 더불어 자신의 롱테이크 미학에 대해서도 진솔한 얘기를 들려줬다.
해운대에 등장한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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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이 어제 6일, 미국 영화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의 칵테일 파티에서 닐슨 임팩트 상(nielsen impact award)을 받았다. 닐슨 임팩트 상은 <할리우드 리포터>를 보유한 닐슨 미디어 그룹이 매년 영화의 발전과 국제적인 교류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지난해에는 첫 수상자로 선댄스 영화제의 제프리 길모어 집행위원장이 수상한 바 있다. 이날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수상소감에서 "엄청난 영광이다. 지난 13년동안 부산영화제를 일궈내기 위해서 온힘을 다해서 노력했지만, 사실 앞으로 할일이 더 많고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닐슨 임팩트 상 받은 김동호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