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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참으로 괄시받는 존재다. 영화는 적어도 10분 이상은 보고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지만 광고는 그냥 한눈에 ‘될 놈’, ‘안 될 놈’ 판가름이 난다. 첫 장면, 첫 번째 카피가 무엇인가로 15초를 온전히 다 볼 것인지 판단한다. 심지어 눈으로는 보아도, 기억에 남을지는 또 모를 일이다. 그래서 광고는 눈길 한번 받아보려고 애쓰는 짝사랑에 빠진 이 같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 주저리주저리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면 누가 가만히 앉아 그 사연을 들어주겠는가? 게다가 ‘작업’을 걸려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 사람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광고의 기본은 ‘단순함’(simplify)이다. 극단의 단순화. 그것이 카피든 비주얼이든 마찬가지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엑기스’만 남기고 다 없애는 것. 누군가가 창의성의 본질은 단순함이라고 했는데,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세련되면서도 좀더 정확하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글 잘쓰는 법&g
[CF 스토리] 짧고 단순할수록 강하다, 함축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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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버브다. 첫 싱글 <Love Is Noise>로 맛만 보여준 새 앨범은 촘촘하고 쟁글거리는 사운드로 나타났다. 밴드의 일원으로 돌아온 리처드 애시크로포트의 예의 자의식 가득한 보컬도, 닉 매케이브의 빈틈없는 기타 연주도 그대로다. 맙소사, 그때 그 버브 그대로다. 앨범을 여는 <Sit And Wonder>의 광활한 사운드 스케이프는 <Love Is Noise>의 뻐근한 두근거림을 지나 <Rather Be>와 <Judas>의 느긋한 풍경으로 이어지고, <Numbness>와 <I See Houses>를 거쳐 8분짜리 <Noise Epic>에서 정점을 친다. ≪Urban Hymns≫가 아닌 ≪A Northern Soul≫을 환기하는 정서는 <Noise Epic>을 기점으로 <Valium Skies>와 <Columbo>를 거쳐 <Appalachian Sprin
오해와 단절을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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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샤인 스테이트는 미국 플로리다주를 일컫는 애칭이다. 마이애미라는 컬러풀한 도시를 품은 밝은 그 땅의 이미지를 반영하듯, 캐나다의 혼성듀오 팝밴드 선샤인 스테이트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눈부신 햇살 아래 상쾌하고 청명한 어떤 풍경과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작곡과 프로듀싱, 기타 연주를 맡은 제임스 브라이언은 캐나다에서 플래티넘까지 기록했다는 펑크 팝밴드의 멤버 출신이고, 보컬을 맡은 알레자 콜데빈은 딱히 내세울 만한 솔로 커리어는 없다. 슈퍼스타급 프로듀서와 신인 보컬이 만난 셈인데, 이 두 사람의 궁합은 환상적이다. 보컬과 기타, 드럼, 베이스의 어쿠스틱 사운드로 채워진 ≪Sunshine State≫는 그야말로 대중적인 기타팝 앨범. 거의 모든 트랙에서 마음을 사로잡는 멜로디가 흐르고, 그것을 부르는 목소리는 1950~60년대 비밥/스윙재즈 보컬 블로섬 디어리를 연상시킬 만큼 아련하면서도 달콤하며, 그것을 감싸는 기타 연주는 뛰어난 그루브를 바탕으로 편안한 컨트리에서 보사노바까지
어쿠스틱 팝에 실어 보내는 싱그러운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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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길까, 말까, 그것이 문제로다. 전운이 드리운 일본 도쿄, 사람들의 입가에 웃음 따위를 흘리게 하는 일이라면 모조리 금지해야 한다고 믿는 검열관이 있다. 그러니, 그의 손에 들어간 희곡은 모두 ‘삭제’라는 글씨로 걸레가 되고, 때때로 ‘불허가’라는 매몰찬 도장이 찍히는 건 당연지사. 그의 앞에 코미디에 이 한몸 바치고자 하는, 심지어 ‘웃음의 대학’이라는 우습기 짝이 없는 극단에 소속된 작가가 나타나니, 둘 사이에 꽤 심각한 한판 대결이 벌어지지 않을까. 그러나 미타니 고키 원작의 연극 <웃음의 대학>은 희극작가의 대본을 검열관이 뜯어고치는 7일간의 사건을 가볍지만 신랄한 어투로 담아낸 코미디다. 미타니 고키라면, 라디오 방송국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훌륭하게 활용한 코미디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각본 겸 연출가로 낯익은 인물. 이번에도 책상만이 덩그러니 놓인 좁은 공간과 연극 대본이라는 소재, 말장난에서 비롯된 유머를 절묘하게 섞어 암울한 시대를 조소한다
웃지 않는 남자 vs 웃어야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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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황홀>은 눈에 보이는 것들의 탄생과 변주를 이야기하는, 시각문화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19세기 중반 철도의 발전으로 차창에 보이던 풍경이 달라진 것에 대해 빅토르 위고가 남긴 문장 때문이었다. “밭 언저리에 핀 꽃은 이미 꽃이 아니라 색채의 반점, 아니 오히려 빨갛고 하얀 띠일 뿐입니다. (중략) 마을도 교회의 탑도 나무들도 춤을 추면서 미친 듯이 곧장 지평선으로 녹아듭니다.” 그러니까 <눈의 황홀>의 출발점은 색이나 모양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분류와 측정, 구분과 같이 두뇌 학습을 거쳐 체화된 눈의 기능인 셈이다. 1장에서 말하는 ‘쌍’의 관념은, 선악과 미추를 나누는 종교에서의 이분법을 예로 들어 우리가 쉽게 짝으로 묶는 것들의 개념적 진화를 이야기한다. 죄수나 하인에게 입히던 복장의 줄무늬가 국기에까지 사용되는 것처럼 기존 이미지에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의미가 담겨져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하는 것을 흥미롭게
눈을 현혹하는 황홀경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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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그야말로 커피가 대세다. 하지만 멜라민 파동이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를 뒤흔드는 상황이니, 제아무리 자판기 커피를 사모하는 이라도 일회용잔에 담긴 따끈한 다갈색 액체와는 안녕을 고할 수밖에 없을 터. <커피홀릭’s 노트>는 커피의 세계에 막 입문하려는 초보자에게 어울리는 서적이다. ‘커피홀릭’보다는 ‘노트’에 더 힘이 실린, 커피, 특히 원두커피로 잡다하게 놀아본 이의 체험기랄까. 호기심 만점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munge가 글을 쓰고 삽입된 일러스트까지 직접 완성했다. 시작부터 70여 페이지까지는 ‘커피홀릭’s diary’라는 제목 아래 커피와 관련된 가벼운 읽을거리가, 나머지 페이지에는 조금 더 실용적인 정보를 담은 ‘커피홀릭’s manual’이 핸드드립편, 모카포트편으로 나뉘어 실렸다.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만큼 드리퍼며, 필터며, 모카포트며 원두커피 만들기에 필요한 도구들을 소개하면서 그 이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드리퍼 없이 커피 내리는
커피의 세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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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석의 <좀비의 시간>은 좀비만화다. 좀비영화와 비교해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새벽의 저주>보다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쪽에 가깝다. 좀비는 인간을 공격하니 필연적으로 공포물의 분위기를 짙게 풍기지만 그럼에도 수없이 낄낄대게 된다는 뜻이다.
2007년 5월17일. 가족여행을 떠난 준수는 좀비에게 물린다. 바로 좀비가 되는 것은 아니고 잠복기를 거치게 되어 있으므로, 준수는 아직까지 인간의 모습 그대로지만 가족은 물론 세상은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정부에서는 감염자 전원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경찰인 준수의 아버지는 아들을 잡아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다. 준수는 그 와중에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게 되고,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도주를 시작한다. <좀비의 시간>은 소중한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서야 삶에 눈을 뜨는 사람들의 모험담이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시큰둥한 삶에도 사실은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절실한 그 무엇이 존재
엽기 좀비의 좌충우돌 모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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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크랭크인에 누나의 캐스팅이니, 가문의 영광이다. 지난 9월29일 엄태웅이 주연으로 활약하는 스릴러 <핸드폰>이 서울 압구정 인근에서 촬영을 시작한 데 이어 바로 다음날인 30일 가수 엄정화도 10월 말 크랭크인하는 <인사동 스캔들>(가제)에 출연을 확정지었다. 엄태웅의 첫 스릴러영화 <핸드폰>은 <극락도 살인사건>을 만든 김한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사업가 승민 역을 맡은 엄태웅은 이 영화에서 사업 정보가 담긴 휴대폰을 두고 익명의 남자인 박용우와 경쟁을 펼친다. 한편 <인사동 스캔들>에서 엄정화가 맡은 역은 팜므파탈이다. 그녀가 연기하는 미술계의 거물 배태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냉혹한 여자. 엄정화는 복원 전문가 이강준으로 분한 김래원과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벽안도>를 둘러싸고 한판 대결을 벌인다.
가족 출신 연기자 중에서 엄정화와 엄태웅만큼 성공적으로 연예활동을 해온 이들도
[엄태웅, 엄정화] 가을 충무로에 패밀리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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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파라마운트픽처스의 지니 한 수석 부사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지난 9월26일 카이스트 서울 캠퍼스에서 열린 2008 카이스트 정보미디어 글로벌 포럼에 참석해서 ‘디지털 시대의 영화산업’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7월에는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2주 동안 여름학기 강의를 하기도 했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USC에서 비즈니스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컨설팅 업체 KMPG컨설팅에서 드림웍스와 워너브러더스 등 엔터테인먼트 업체를 고객으로 둔 채 일하다 드림웍스에 스카우트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파라마운트픽처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나.
=배급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개봉일을 잡는 것부터 배급방식이라든가 전략 같은 것을 수립하고 마케팅 방향 또한 설정한다. 또 아시아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영화를 비롯한 아시아영화를 미국에 소개하는 일도 돕고 있다.
-정보미디어 글로벌 포럼
[지니 한] 한국도 한 영화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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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한 남자가 있다. 세헤라자데의 운명을 타고난 이 남자는 72살의 노작가 오거스트 브릴이며, 그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자 역시 오거스트 브릴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여러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이름을 떨친 인생이었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이혼한 딸과 남자친구를 이라크 전쟁으로 잃은 손녀딸, 그리고 자동차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어 온전치 못한 육신뿐이다. 매일 밤 죽음의 충동을 이겨내며 노작가는 자기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오늘의 주인공은 오언 브릭이라는 스물아홉살의 젊은이로, 작가에 의해 미국 내전의 한복판으로 내몰린 그는 전쟁의 주범인 한 남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그 남자가 누구냐고? 오거스트 브릴이다. 결국 <어둠 속의 남자>는 한 남자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과정이며, 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쏟아지는 생각 속에서 남자가 감추어놓은 진짜 트라우마를 발견하는 데에 있다. 현실과 비현실을 자
삶에 눈뜬 노장의 마술 같은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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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금주하기 시작한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얼굴은 더 밝아 보였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조깅으로 아침을 맞는 생활습관도 여전하다. 하지만 개막식날 비가 오지는 않을지, 스크린이 제대로 올라갈지 노심초사하는 것도 매년 반복되는 긴장이다. 특히 지난해 열린 제12회 부산영화제를 놓고 불거진 이례적인 논란들 때문인지 13회 행사를 앞둔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긴장은 더한 듯했다. ‘D-1’이었던 10월1일, 김동호 집행위원장에게 열세 번째 영화제에 대한 포부를 들었다.
-부산영상센터 두레라움이 내일(10월2일) 착공한다. 이제 숙원 하나를 푸는 것 아닌가.
=우리로서는 새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추진해온 사업이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르다. 부산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랜드마크가 되길 바란다. 2011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16회 행사는 두레라움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예산은 다 마련된 것인가.
=총예산이 1600억원이다. 우선은 중앙정부에서 350억원, 부산시에서 3
[김동호] “저예산 독립영화들을 적극적으로 발견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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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6일 개봉하는 <하우투 루즈 프렌즈>는 제2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꿈꾸는 작품이다. 원작자 토비 영이 미국 잡지 <베니티 페어>에서 5년간 일한 경험을 토대로 쓴 작품이라니 아주 일리없는 꿈은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삼류 연예잡지를 펴내는 런던의 삼류기자 시드니 영(사이먼 페그)이다. 그는 더러운 가십 기사들만 쓰다가 우연히 미국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잡지에 스카우트 당한다. 게다가 세 명의 아름다운 여자가 시드니의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하나는 직장동료 앨리슨(커스틴 던스트). 다른 하나는 시드니가 취재해야 하는 섹시스타 소피 메이즈(메간 폭스). 그리고 메이즈의 매니저(질리언 앤더슨)다. 그중에서 소피 메이즈를 연기하는 메간 폭스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트랜스포머2>를 찍으며 작성한 답변지라고 한다. 모래바람을 씹으며 작성한 답변이 충실할 리 없겠으나 그녀의 멍한 눈동자와 도톰한 입술을 떠올리며 읽으니
[메간 폭스] 나는 나의 검은 머리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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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시리즈의 원작자이자 감독인 도미노 요시유키는 일본 로봇애니메이션의 산증인이다. 그는 1979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리얼리즘을 추구한 <기동전사 건담>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후 이 작품이 수많은 시리즈를 낳으면서 ‘건담 월드’의 아버지가 되었다. 대한민국 콘텐츠페어 참석차 방한한 도미노 요시유키를 만났다. 그는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생 경험이 필요하며, 노련한 애니메이터의 조건으로 애니메이션 자체를 좋아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건담>은 이전까지의 로봇애니메이션과 다른 사실적인 로봇물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건담>을 연출하게 된 과정, 그리고 작품에서 내세우고 싶었던 의도는.
=단순히 SF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작품의 의도라면 ‘퍼스트 건담’을 등장시켜 ‘인류의 혁신’을 보여주고자 했었다. 이후 <건담>의 그런 컨셉은 세월이 흐르면서 시리즈로 발전했
[도미노 요시유키] 애니메이션만 파고든다면 오타쿠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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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하는 건 아닌 듯했다. 데블스 밴드를 맡은 배우들은 크랭크인하기 전에 서울에서 공연도 했을 만큼 연습이야 충분히 해왔으니까. 다만 악기를 다루다보니 개인적인 욕심들이 생긴 것 같다. 다른 파트의 악기를 연주해보고 싶다거나 더 잘하고 싶은 욕심. 조승우의 경우 기타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다섯대까지 모았다고 들었다. 영화 찍을 때는 밴드 출신 차승우가 곁에 있으니 쉬는 시간마다 짬짬이 영화 외적인 기타 주법을 물어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크랭크업하기 전에 그가 기타 몇대를 처분했다고 하더라. ‘기타, 이제 쳐다보기도 싫다’는 말을 남긴 채…. (웃음)”
[숨은 스틸 찾기] <고고70> 기타의 유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