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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았다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보았다. 찌라시를 보았다. 여기서의 찌라시란 당연히 증권가 사설 정보지다. 얼마 전 자살한 탤런트 장자연씨의 죽음을 둘러싼 내용을 담은 것들이다. 기업인과 언론사 고위간부, 연예계 인사들의 명단이 담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는 인터넷으로 빠르게 퍼지는 중이다. 장자연씨가 왜 이런 파국을 맞게 되었는지, 그 과정과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기술해놓은 것도 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음모와 배신의 드라마 같다. 대중을 혹하게 할 만하다. 물론 신뢰할 수는 없다. 출처는 불분명하다. 실명의 인물은 나와도, 실명의 코멘트는 없다. 억측과 소문투성이다. 가끔 적중하지만, 찌라시는 무책임하다.
인터넷 연예뉴스들도 좀 그렇다. 지지난주에 발행된 <씨네21> 694호는 결과적으로 그들이 벌이는 낚시질의 원재료를 공급했다. 30여개 연예뉴스 매체가 ‘박중훈 스토리’의 일부 내용을 자의적으로 인용해서 보도했기 때문이다(20쪽 참조). 그 뒤 모델
[에디토리얼] 찌라시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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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그렇게 말하면 어김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 “야구 언제부터 봤어(요)?”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도 아니고, 어느 선수를 좋아하느냐도 아니다. 내가 여자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백이면 백 “언제부터 봤어요?” 하고 묻는다. 그 답부터 하자면 장종훈이 빙그레에서 주전자 나르던 시절부터 봤다. 광주가 어딘지는 몰라도 광주일고 무서운 건 일찌감치 알았고, 짜파게티 먹는 일요일 낮이면 야구중계 보는 것 이상의 오락을 알지 못했다. 삼성 이재용 전무 이혼소식 듣고 가장 먼저 걱정한 게 (안 그래도 지난해 사건사고 많았던) 삼성 라이온즈에 타격갈까였고, 불경기라는 말에 떨었던 까닭 중 하나가 히어로즈의 한해살이였다. 그래서 뭐? 이런 걸 왜 ‘인증’해야 하나?
그런데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로 살다보면 가끔 황당한 일을 겪는다. 이를테면, 여자가 LG트윈스를 좋아하면 얼굴 반반한 남자 선수에 홀린 그루피 취급을 받는다(애들 잘난 게 내 잘못이냐?).
[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야구는 해치지 않아요,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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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으로 들어간다. 물잔이 보이네. 플라스틱 흰빛 컵. 최악이다.
일전에 홀로 지방 소도시 어느 식당엘 들어갔지. 사람이라곤 홀서빙 아주머니와 수염이 안 예쁘게 자라난 40대 남성뿐. 누런 플라스틱 컵이 내 앞에 놓인다. 원래 하얀색이었을 컵이 포도즙이라도 담아두고 하루 동안 물들인 뒤 대충 헹구어낸 것 같은 상태가 됐다. 나는 비분강개하지 않고 말한다. “아주머니 컵이 왜 이래요?” 그녀는 별로 급하지 않은 걸음걸이로 다가오더니 힐끔 내려다보고는 “응, 우린 락스 안 써.” 두둥. 욱하며 나와버리고 마는 말, “다른 식당에선 다 그걸 쓴단 말이에요?” 이성을 잃으면 안된다. 이 아주머니 상당히 순진해 보였고 나한테 불쾌한 비보를 전해준 것 말고는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았으니 혼자서만 뾰족해졌다가 사그라진다.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를 작업할 때의 일이다. 감독과 PD를 만나는 자리였고 청담동에 있는 꽤나 럭셔리한 빵가게였다. 새하얀 수건을 왼팔에 걸치고 나와 널찍
[나의 길티플레저] 먹는 걸로 장난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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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그린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럽고 화가 났다. 몇년 전 읽었던 한국 근대미술에 관한 책에 실린 도록을 보면서 그랬다는 말이다. 대부분이 초상화였고, 서양의 그것처럼 수세기 동안 단련된 예술가의 역사적 자의식이 배제된 채 기법과 묘사만 성급하게 따라한 그림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사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한국근대미술걸작전: 근대를 묻다> 전시회에도 딱히 관심이 없었다. 이중섭이나 박수근, 장욱진 같은 거장들의 작품은 다른 전시에서도 자주 접했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를 챙길 메리트가 되진 못했다. 광화문쪽을 걷다가 전시회 포스터로 사용된 이쾌대의 그림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조선의 산하를 배경으로 화가 자신이 중앙에 우뚝 배치된 자화상인데, 흔히 생각하는 ‘조선의 색깔’인 붉은색과 흰색(흠, 이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김동인의 <붉은산> 때문인가)이 아니라 놀랍게도 청색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
[오픈칼럼] 이쾌대와 <二人 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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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를 수련 중독자라 부르고, 에드거 드가를 발레리나 오타쿠라고 놀리는 무례가 관대하게 용인된다면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 화가 조르지오 모란디(1890~1964)는 다음과 같이 불릴 법하다. “그릇을 늘어놓는 100만 가지 방법을 고안한 화가.” 좁다란 테이블 위에 세심히 배치된 호리호리한 물병, 납작한 깡통, 입이 넓은 찻잔 등 갖은 생김새의 용기(容器)들은 모란디가 평생을 함께한 피사체였다. 화면 속 공간은 하나의 모서리에서 맞닿는 두 평면이 전부다. 흔한 식탁보 한장 없이 헐벗은 바닥에 놓인 그릇들은 언제나 텅 비어 있다. 요소는 단출하지만 반복은 결코 없다. 물체 하나를 더하거나 빼거나 옮김으로써 이 소우주의 중심은 우지끈 요동한다. 모란디는 제반조건을 통제하고 하나씩 변수를 바꾸어가며 물리(物理)를 밝히는 과학자처럼, 천칭의 두 접시에 번갈아 미량의 가루를 더하는 약제사처럼, 야금야금 실험했다.
정물화를 “시간을 초월하는 법”이라고 묘사했던 화가의 인생 또한 말 그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물병은 물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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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유의 집이 없으니 천하가 내 집이 되더라는 경험을, 도시를 떠나면서 하게 된다. 정해진 거처가 있는 것도,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 걱정이 없었다.
곳곳에 집이 있는데, 그동안 집이 있는 곳에 내가 가려 하지 않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 집을 끌어오려고 안달복달했던 어리석음을 되새기면서, 룰룰랄라 섬집도 기웃거려보고, 산속의 오두막도 기웃거리는 와중에 발닿은 곳이 지리산이었다. 그곳은 목적지가 아니었다. 삶에 목표란 있을 수 없듯이, 여정에도 목적지가 있을 리가. 지금 여기. 그 연속일 뿐.
여기까지 쓰다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계곡 매점에 맥주를 사러 나갔다 왔다. 1.5리터 페트병 하나가 5천원. 농협하나로보다 1200원이나 비싸지만 그곳까지 가는 기름값 계산하면 그게 그거다. 원고료로 맥주 두 박스를 준대서 택배를 기다렸는데, 통장에 숫자로 찍어주는 센스라니. 원고 대신에 모두에게 그 영상을 전송하고 싶은 봄의 계곡을 끼고, 매점 냉장고에서 목
[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지리산의 그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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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며 피터 브뤼겔의 <게으름뱅이의 천국>, 혹은 <장님들의 추락>을 떠올린 적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를 보면서도 그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 플롯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무척이나 골몰했고, 그 영화의 몇 장면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움직임을 멈추고 그림이 되어주기도 했다. 실상 영화와 회화의 관계는 운동(action)으로 인한 심상의 달아남을 제외하면 꽤나 닮았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감각을 통해 전이되는 체념, 혹은 동화를 경험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얻어지는 은유(metaphor)의 결과물은 판에 박힌 것, 즉 클리셰로 정리되겠지만 들뢰즈의 말마따나 인간의 지각이란 결코 전체를 한번에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이 체계화된 지각의 결과물을 마냥 평범함으로 치부할 순 없다. 오히려 이 영화 <킬러들의 도시>가 그렇듯 판에 박힌 은유를 변조하는
[영화읽기] 브뤼겔을 향한 강한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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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삶이라. 지난호 혁 옵바의 칼럼은 그런 절규로 끝났다. 뭔가 신신애스러운,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사아아안다를 연상시키는 장중한 내용이었다. 그러다보니까 봄비도 아닌 것이, 하지만 겨울비라고는 절대로 부르기 싫은 뭔가가 하늘에서 떨어지던 어느 저녁의 대화가 떠올랐다. 기자와 과학자와 시인과 소설가 등으로 이뤄진, 매우 통섭스러운 술자리였다. 주제는 가수 박상민과 그의 짝퉁. 자꾸만 전직 시인이라고 우기시는 그분과 나는 문화계에서 짝퉁의 원조는 시인이라고 주장했다. 소설가에게서는 짝퉁을 찾아보기 힘든데, 그건 아마도 소설가들은 워낙 사람이 진짜이기 때문이 아닐까. 대신에 입에서 나오는 말이 죄다 ‘구라’라서 그렇지(근데 김중식 형, 시 안 쓰고 자꾸 전직 시인이라고 우기시면 계속 가짜 김중식이라고 놀릴 거예욧!).
어쨌거나 망각의 삶이라니요, 소설가 혁 옵바. 우리가 모두 구라로 먹고사는데 기억이 안 나면 만들어서라도 써야죠. 그렇긴 해도 우리가 함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우리 다같이 신나게 헤드뱅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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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기업의 기업PR TV CF를 촬영하기 위해 서울의 여기저기를 헌팅했다. 컨셉은 ‘발전된 대한민국’의 한컷을 찾는 것이었다. 1천만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수도 서울. 어머어마한 인구를 수용할 만큼 넓은 땅을 가지진 않았지만 63빌딩만큼이나 하늘 높이 쌓아올린 집들 덕분에 아직 400만, 500만명은 족히 수용이 가능한 거대도시 서울의 랜드마크를 찾던 중 뜻하지 않은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남산타워는 서울에 10살짜리 생일 초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 ‘서울의 대푯값’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남산타워 다음에는 또 뭐가 있는가. 스스로 되뇌었지만, 고민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물론 발전한 대한민국의 한컷에 63빌딩을 포함시킬 수도 있다. 1985년에 준공했으니 올해로 24살이 되는 ‘청년’ 63빌딩은 20여년 전에는 정말 최첨단의 빌딩이었다. 그렇지만 강산도 두번이나 발칵 뒤집어지듯이 바뀐 탓에 이제는 최첨단의 빌딩이라고 말하기가 무색
[기어코 찾아낸 풍경] 그곳에 올라 서울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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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다시 봄인가 싶을 때 생각나는 영화가 <호텔 슈발리에>다. 봄의 감정은 누가 뭐래도 ‘두근두근’이고 웨스 앤더슨이 쓴 우편엽서 같은 이 영화야말로 ‘두근두근’의 결정체다. 부분이 예뻐야 전체가 예쁘다는 걸 아는 스타일리스트답게 12분55초의 필름 안에는 앤더슨풍의 어여쁜 디테일이 즐비하다.
영화의 도입부(랄 것도 없지만 어쨌든 초반부), 노란 목욕 가운을 입고 호텔룸에서 뒹굴거리던 잭(제이슨 슈워츠먼)은 전화 한통을 받고 얼어붙는다. 수화기 너머의 헤어진 애인은 잭의 기분 따위는 관심도 없다. 용건은 지금 당장 들이닥치겠다는 건데 약간 건방지고 은근히 제멋대로다. 잭은 딱딱하게 구는 척했지만 들뜬 나머지 조명을 낮추고 슈트를 차려입는 건 물론이고 극적인 상봉을 위한 맞춤 음악까지 골라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둔다. 둘 사이의 주도권이 그동안 어느 쪽에 있었는지 이만하면 충분하다. 벨이 울리고 여자(내털리 포트먼)가 들어온다. 포옹을 한다. 그럼 그렇지. 여자의 키가
[그 액세서리] 두근두근, 하이힐 롱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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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상반기 영화계 최대 이슈는 아무래도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돌풍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독립다큐멘터리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질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워낭소리>가 내용과 형식 면에서 독립다큐멘터리의 가장 ‘효율적인’ 모델이라고 보는 일부의 획일적인 견해도 우려스럽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열리는 인디다큐페스티발 2009는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독립다큐멘터리의 다양한 목소리를 목도할 소중한 기회다(3월26일~4월1일,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자세한 사항은 참조). 총 35편이 상영될 이번 영화제에는 국내 신작전과 대만 다큐멘터리 특별전뿐만 아니라 신진 작가 지원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시장을 다시 생각하는 포럼, 감독, 프로그래머, 관객이 참여하는 토론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됐다. 무엇보다 올해는 이미 몇몇 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감독들 외에도 새로운 이름들의 등장을 눈여겨볼 만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과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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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무릎팍 도사>였다.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개봉을 앞두고 주연배우 권상우와 감독 원태연이 연달아 출연했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나. 배우와 감독이 함께 출연한 것도 아니다. 감독이 출연했는데 배우가 전화 통화로 출연한 것도 아니다. 한 영화의 대표 관계자들이 2주 연속 각각의 고민거리를 들고 강호동을 찾아간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제작자 크레딧에서 김광수란 이름을 보고난 뒤였다.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와 헷갈리지 말자. 지난해 <고死: 피의 중간고사>를 제작한 데 이어 올해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내놓은 코어컨텐츠미디어의 김광수 제작이사는 엠넷미디어의 컨텐츠 제작사업 본부장인 김광수고, 과거 GM기획의 대표였던 김광수다. 가수 인순이의 로드매니저로 시작해 김완선, 김민우, 윤상 등의 앨범을 제작했고 조성모를 발굴했고 드라마타이즈의 대작 뮤직비디오 시대를 열었던 장본인인 그는 현재도
[김광수] “나를 권력자로만 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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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2년 여름. <한겨레> 증권 기자로 끗발을 날리던 그 시절, 거래소 시장에서는 섬유·의복 업종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주들이 떼지어 상한가 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서 ‘섬유·의복’이라 함은 옷감을 잘라 붙여 옷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파는 심심하고 재미없는 업종이란 뜻이고, ‘구조조정’이라 함은 그나마 그 회사가 망할 위기에 빠져 살아보려고 지푸라기 잡으며 발버둥친다는 의미 되겠다.
심히 ‘섬유·의복’스러우면서도 ‘구조조정’틱했던 그해 봄, 이익을 좇아 하이에나처럼 시세판을 노려보던 선수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종목은 단연 옷감 제조업체 ‘갑을’이었다. 박민규의 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드러나듯, 어느 곳에 가져다 붙여도 심히 ‘헝그리’한 느낌이 드는 그 이름 갑을! 아무튼 갑을과 얽힌 아름답던 그해 봄의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보잘것없는 인생에서 벗어나 독학으로 주식을 공부한 ‘슈퍼 개미’ 강현수는 우연히 안산 출신
[뒤집는 시나리오]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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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신데렐라 맨>(극본 조윤영, 연출 유정준)에서 1인 2역에 도전하는 권상우가 봄 향기 가득한 제주를 찾았다.
<신데렐라 맨> 제주 촬영은 제주국제공항, 중문관광단지, 우도 등지에서 지난 18일(수)부터 3박 4일간 진행됐으며, 극중 준희(권상우)가 생모의 흔적을 찾아 우도를 찾는 내용 등을 담았다.
권상우는 "그동안 여러 드라마와 영화, CF 촬영으로 제주를 방문했지만, 우도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디서든 바다가 보이고 공기도 상쾌해 기분 좋다. 촬영 때 바람 부니 절벽 위에 서 있기가 힘들긴 했지만 좋은 영상이 담긴 것 같아 다행이다. 생모의 유골이 뿌려진 곳에서 다짐하는 준희의 강한 의지가 드러나는 중요한 장면인데, 방송이 기대된다."고 전했다.
한편, 제주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은 권상우의 촬영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의 힘을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이들은 이미 권상우의 새 작품인 <신데렐라 맨>에 대해서 알고 있으
우도 첫 방문 권상우, 절벽 위 촬영 감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