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요즘 SF 작가들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두려워하는 걸까? 조지 루카스가 이 장르를 서부극처럼 만들어버린 게 마뜩잖아서? 프랭크 허버트의 <듄>을 능가하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창조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데 만약 SF의 하위장르인 스페이스 오페라를 ‘하드SF’(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을 과학적으로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장르)와 아름답고 견고하게 결합한다면? 세상에 그런 연금술이 어딨냐고 묻는다면, 버너 빈지의 <심연 위의 불길1>을 내밀리라.
<심연 위의 불길1>은 지구가 존재했다는 기억조차 거의 사라져버린 먼 미래가 배경이다. 은하계로 진출해 다른 외계 문명과 정쟁을 벌이던 인류는 적색왜성의 주변을 떠도는 행성에서 고대의 종족이 남긴 유적을 발견한다. 그런데 발굴 과정에서 몇 십억년 동안 지하에 묻혀 있던 사악한 정신 ‘신선’이 각성한다. 이 초월적인 정신적 존재는 인근 행성을 모조리 파괴하고, 겨우 탈출한 인류 탐험대의 우주선 한척이 2만광년 떨어진 원
[도서] 기막히게 창조된 이 우주
-
조성희 감독의 비전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형태의 동화다.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중편 <남매의 집>(2009)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던 어린 남매는 “물 한잔만 마시고 갈게요”라는 남자의 꾀임에 속아 문을 열었다가 최악의 상황에 처한다. 괴한은 ‘햇님 달님’ 전설에서처럼 엄마 옷을 입고 문 안쪽으로 털이 부숭부숭한 손을 내미는 호랑이 같은 존재다. 자기 몸 하나 지킬 수 없는 약한 존재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혹은 알더라도 속아넘어가며 절대 오지 않을 구원의 손길만을 기다린다. 지난 7년간 공석이었던 미쟝센영화제 대상을 수상했고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칸국제영화제, 두바이국제영화제 등을 차례로 휩쓸었던 <남매의 집> 이후, 조성희 감독은 장편 데뷔작 <짐승의 끝>으로 돌아왔다.
만삭의 순영(이민지)은 아이를 낳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허허벌판에서 야구모자를 쓴 남자(박해일)가 택시를 세우고 합승한다. 남자는 어딘지 이상
21세기 한국영화계의 등장한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다. <짐승의 끝>
-
지난 3년 동안 가장 용감한 데뷔작을 만들어온 집단이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제작연구과정’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2기 작품들(<나는 곤경에 처했다!> <너와 나의 21세기> <여자 없는 세상> <로망은 없다>)을 돌이켜보면 사적인 시공간을 통해 이른바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동세대의 분위기를 담아내는, 거칠게 말해 1인칭 시점의 경향이 두드러졌다. 올해 작품들은 가장 첨예한 사회적 이슈들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3인칭 시점에 가깝다. 게다가 공통적으로 이 작품들에는 ‘해피엔딩’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젊은 감독들의 시선이 절망과 모호한 비극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는 건 그만큼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박수민 감독의 <간증>은 맹목적인 도그마를 다룬다. 전직 고문기술자 박덕준(권혁풍)은 신앙을 가져보려 애쓰지만 고통스런 과거는 그에게 기도조차 허락지 않는다. 유일한 말벗 이 권사(이화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젊은 감독들의 시선 <간증, 집, 심도>
-
지방방송국 PD 베키 풀러(레이첼 맥애덤스)는 어렵게 메이저 방송국 IBS에 취직한다. 동시간대 시청률 최저의 모닝쇼 <데이 브레이크>에 투입된 베키는 의욕을 상실한 스탭들을 추스르며 맹렬하게 일을 추진한다. 베키 자신의 우상이자 에미상 16번 수상의 전설적 앵커 마이크 포메로이(해리슨 포드)를 가까스로 영입하며 기뻐한 것도 잠시. 애리조나 미인대회 출신 수다쟁이 앵커 콜린 팩(다이앤 키튼)은 마이크와 기싸움을 벌이고,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데이 브레이크> 앵커 자리에 앉은 마이크는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는 그 어떤 일도 할 생각이 없다.
<굿모닝 에브리원>의 전체 틀거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방송국 버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다. 젊고 패기만만하지만 다소 어수룩한 신입사원이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악마 상사를 상대하고 일과 사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법을 배워나가며 사회인으로 성숙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예능 프로 버전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굿모닝 에브리원>
-
-
장장 6500km다. <웨이 백>은 1940년 역사상 최악의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라 불리는 ‘캠프 105’를 걸어서 탈출한 7명의 수감자들의 실화를 그린다. 오로지 자유를 얻기 위해 이들은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바이칼 호수와 몽골의 고비사막을 거쳐, 인도에 이르는 긴 여정을 감행한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추위, 목이 타들어가는 사막의 폭염, 배고픔 등 그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당연히 생명의 위협이 따르겠지만 영화 속 도망자 중 한명인 야누스(짐 스터지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도 그들은 자유인으로 죽을 것이다!’라고. 바로 <웨이 백>의 믿기지 않는 여정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영화는 1956년 발행된 슬라보미르 라비치의 베스트셀러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다. 고문을 참지 못한 아내의 밀고로 정치범으로 수감된 야누스는 고된 노동과 배고픔, 추위로 죽어나가는 수용소의 현실에 경악한다. 자유를 위해 그는 미국인 스미스(에드 해리스), 러시아 폭력배 발카(
거대하고 압도적인 풍광의 6500km. <웨이 백>
-
2011년 8월12일, 외계인 군대가 LA를 습격한다. 도시에 주둔하던 미국 해병들은 재빨리 전쟁 준비에 돌입하지만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그들은 민간인 구출 임무를 수행하기 이전에 자기 한몸 챙기기도 버겁다. 전역을 앞두고 군대에 소집된 해병대 상사 마이클(아론 에크하트)은 이라크전 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소속된 오합지졸 부대를 지켜내기 위해 애쓴다. 여기에 전멸한 부대에서 홀로 살아남은 공군 상사 엘레나(미셸 로드리게즈)와 마이클의 부대가 구조한 수의사 미셸(브리지트 모나한) 일행이 합류한다. <월드 인베이젼>의 관심은 외계인 우주선의 위용이나 외계인의 소름끼치는 겉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 영화는 갑자기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진 인간이 어떠한 선택을 해나가는지에 관심이 있는 듯하다. 마이클의 부대원들은 농을 주고받으며 훈련나가는 기분으로 전쟁에 임했다가 쑥대밭이 된 LA 도심을 보고 하얗게 얼어붙는다. 근처의 다른 부대원들이 전멸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쑥대밭이 된 LA도심을 담은 조너선 리브스먼 <월드 인베이젼>
-
보천보 인민학교 4학년인 종수(김환영)는 ‘겉보기가 안 좋다’는 교장 선생의 생트집 때문에 손꼽아 기다렸던 평양 견학을 하지 못한다. 종수는 혼자서라도 평양에 가겠다고 트럭을 잡아세우는 등 고집을 부리지만 어른들에게 쥐어박히기만 한다. 평양 가는 길을 찾으러 산과 들로 쏘다니던 종수는 우연히 서울에서 날려 보낸 선물꾸러미를 발견한다. 로봇장난감과 빨간 산타 옷을 손에 넣은 외톨이 종수는 친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
<량강도 아이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종수와 그의 친구들에게 로봇 장난감과 빨간 산타 옷은 금은보화를 쏟아내는 도깨비방망이나 다름없다. 로봇 장난감 덕분에 종수는 병상에서 죽어가는 동생에게 ‘닭알지짐’을 매일 가져다줄 수 있다. 큰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아야 하는 동생을 위해 종수와 친구들은 빨간 산타 옷을 입고 위문공연을 하고 자동차 기름을 얻기도 한다. 한편, 군 보위부장의 아들로 부족함 없이 사는 도식(신민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로봇 장난감 <량강도 아이들>
-
7급 공무원인 필용(박중훈)은 ‘전망있는’ 한지과에 배치된다. 시장이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100억원 예산의 <조선왕조실록> 복본 사업을 맡게 되면서 그는 승진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기대만큼 일이 순탄하지는 않다.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예산은 고작해야 2억5천만원. 전통적인 외발뜨기 방식의 복본 사업인지라 한지업자들의 반응 또한 냉랭하다. 게다가 한지 제작 과정을 찍고 싶어 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지원(강수연)의 촬영 섭외 일까지 맡게 되면서 필용의 짜증은 점점 늘어간다. 한편 뇌경색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필용의 아내 효경(예지원)은 필용과 지원과의 관계를 의심한다.
“명품 좋아하시네. 이젠 (명품) 못 만들어." 오랫동안 옛 방식으로 한지를 만들어온 덕순은 공무원들 앞에서 세상이 오염됐고 사람이 오염됐는데 세상을 뛰어넘는 명품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따져묻는다. 이는 임권택 감독의 오랜 화두이자, 그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에서도 계속
"명품 좋아하시네.이젠 (명품) 못 만들어." <달빛 길어올리기>
-
옌볜 조선족 자치주와 북한 함경도를 사이에 둔 두만강변의 한 마을에 탈북자들이 수시로 넘나든다. 할아버지, 누이 순희와 함께 사는 창호는 식량을 구하려고 강을 넘어온 또래의 북한 소년 정진과 축구를 매개로 친구가 된다. 하지만 한 탈북 청년이 커다란 사고를 치게 되면서 창호는 정진을 매몰차게 내치고, 마을에서도 탈북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하게 된다. 그럼에도 정진은 아랫마을 아이들과의 축구시합을 함께하자는 창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마을에 나타난다.
<두만강>은 탈북자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장률 감독이 <경계>(2007) 이전부터 만들고자 했던 영화다. 순희와 창호라는 이름은 <망종>(2005)에 등장한 엄마와 아들 이름에서 그대로 왔다. 국내에서는 최근에야 불거진 문제지만 실제로 그곳에서는 예전부터 그런 일들이 너무나 비일비재했던 가깝고도 먼 경계의 땅이었다. 그 경계가 이어지는 것은 한겨울 두만강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다. 영화가
소년 앞에 닥친 험난한 고통을 관객의 몫으로 남기다. <두만강>
-
<환상극장>은 공포와 판타지 장르의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영화다. 2010년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단편영화 프로젝트 ‘숏!숏!숏!’에 상영되었던 이규만 감독의 <허기>, 한지혜 감독의 <소고기를 좋아하세요?>, 김태훈 감독의 <1000만>으로 구성했다.
<아이들…>의 이규만 감독은 <허기>에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기억을 먹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탈을 쓴 배우들의 연극과 단 한명의 관객이 풀어내는 사연이 서로 엮인다. 이들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묘한 긴장감을 연출한다. <소고기를 좋아하세요?>를 연출한 한지혜 감독은 그리스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를 모티브로 삼았다. 미노타우로스는 소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지닌 반우반인(半牛半人) 괴물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연약한 정육점집 아들 태식(이현우)이 연쇄살인 현장에 계속 출몰하는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할 테세우스가 된다는 내용이다. 채식주의에 대한
단편 영화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가진 옴니버스 영화 <환상극장>
-
<비스틀리>는 <미녀와 야수>의 현대판이자 10대 버전이다. 알렉스 플린의 동명 소설이 원작. 유명 앵커의 아들 카일(알렉스 페티퍼)은 재수없는 외모지상주의자 킹카다. 학생회장에 당선된 카일을 못마땅하게 여긴 ‘마녀’ 켄드라(메리 케이트 올슨)는 그에게 저주의 마법을 건다. 카일을 문신과 상처투성이 얼굴의 괴물로 만든 것이다. 카일이 다시 잘생긴 외모로 돌아가려면 진실한 사랑의 한마디 “아이 러브 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괴물로 살아야 한다. 한줄기 희망은 있다. 학생회장 선거 때 3년 만에 처음으로 말을 건넸던 착한 모범생 린디(바네사 허진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비스틀리>는 미녀와 야수라는 캐릭터의 묘미를 살리지 못했다. 린디는 뉴욕의 10대라고 보기 힘들 만큼 착하고 고전적인 사랑을 원한다. 그녀는 순수함을 상징하는 하얀 장미를 좋아하고 명품백보다는 손편지에 혹한다. 카일은 야수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초인적인 능력도
10대 버전의 현대판 '미녀와 야수' <비스틀리>
-
'위험한 상견례' 기자 간담회에서 배우 송새벽이 출연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송새벽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가벼운 코믹 영화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다가 보니 내가 울고 있더라. 이건 코믹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애정도 많이 생겨 출연 결정하게 됐다" 고 설명했다.
1989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위험한 상견례'는 순정만화가인 전라도 순수 청년과 외모, 집안 모든 걸 갖춘 경상도 여인이 다섯 명의 방해꾼들로부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로 3월 31일 개봉한다.
[위험한 상견례]송새벽,"코미디 영화인데 대본 읽다가 눈물 났다"
-
카무이는 도망자다. 17세기 일본에서 천민으로 태어난 카무이(마쓰야마 겐이치)는 먹고살기 위해 닌자가 됐다. 그러나 오로지 살육만이 계속되는 닌자의 세계에 질린 그는 도망길에 오른다. 카무이의 운명은 영주가 아끼는 말의 다리를 자르고 달아나던 어부 한베이(고바야시 가오루)를 만나면서 바뀐다. 한베이의 고향섬으로 따라간 카무이는 탈주 닌자 스가루(고유키) 역시 한베이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카무이와 스가루는 영주에게 잡혀간 한베이를 구해낸 뒤 상어잡이 해적 후도(이토 히데아키) 일행에게 구조되어 평화로운 섬에 정착하지만, 그건 사실 무시무시한 함정이다.
시라토 산페이의 동명 원작은 1969년과 1971년에 각각 TV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60년대 고전 망가 중 하나다. 최양일 감독이 원작의 영화화에 뛰어든 이유? 원작은 전공투 세대가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함께 읽었을 만큼 사회주의적인 함의가 가득한 망가다. 낙오된 천민들이 권력에 맞서는
시라토 산페이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하다. <카무이 외전>
-
1939년, 조지 5세의 아들 앨버트 왕자(콜린 퍼스)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는다. 그때는 막 라디오가 보급된 시기, 왕실의 권위는 방송 전파를 타고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시기였다. 앨버트는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시)의 도움을 받지만 전진과 좌절을 되풀이한다. 게다가 아버지 조지 5세가 숨을 거두자 형 에드워드 8세(가이 피어스)는 심슨 부인과의 사랑 때문에 왕위를 포기하고, 앨버트는 원치 않게 ‘조지 6세’의 자리에 오른다.
왕을 개인으로 들여다보기. <킹스 스피치>는 말더듬증이 억압된 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후천적으로 생기는 증후일 수 있음을 일깨우는 성장기이기도 하다. 로열 패밀리였기 때문에 앨버트는 왼손잡이였다가 강제로 오른손잡이로 전향했다. 안짱다리에는 보철을 댔고, 부모의 품에 안겨 따뜻한 사랑을 받는 일상은 어려서부터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형이 포기한 자리, 더할 나위 없이 무거운 의무인 왕위
조지6세의 내면 깊숙한 연기와 배우 '콜린퍼스'<킹스 스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