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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화가 사는 법 [1]
이영진 2005-11-22

독립영화부터 예술영화까지, 작은 영화 배급사들의 틈새시장 공략법

프린트 400벌은 우스운 시대다. 프린트 제작에만 1억원 넘게 들이는 영화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모든게 와이드 릴리즈 때문이다. 멀티플렉스가 주도한 스크린 확장 기세도 당분간 속도를 멈출 것 같지 않다. 2004년까지 파악된 전국 스크린 수는 무려 1451개다. 5년 전 6만5659명이었던 스크린당 인구 수가 지난해에는 3만3483명까지 줄어들었다. 1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대개의 상업영화들은 개봉을 앞두고 스크린을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 안간힘이다. 반면, 예술·저예산 등 이른바 작은 영화들은 단관 혹은 소규모 상영관에서 장기 상영 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이들 영화를 보기 위해선 눈 씻고, 극장을 찾아야 한다. 때론 중소 배급사에 맡겨 5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많게는 억대 광고비를 지출하기도 하지만, 결과는 대개 참패로 이어진다. 간혹 멀티플렉스에 입성하기도 하지만 좌석점유율 미달이라는 판정과 함께 일주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밀려난다. 현재로선 영진위가 마련한 전국 10개 아트플러스 체인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대개 입지가 취약한 극장들이 대부분이라 관객몰이가 용의치가 않다. 편식을 자극하는 환경 탓일까. 소비층은 과거보다 굉장히 얇아졌다. “1만명만 들었으면 좋겠다”는 한 작은 영화 배급업자의 기대는 실은 예술·저예산 영화를 찾는 관객이 전무하다는 한탄처럼 들린다. 10년 전 예술영화에 대한 높은 호응이 실은 거품이었다는 진단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모두가 작은 영화의 종언을 고할 때, 그러나 여전히 작은 영화에 희망을 건 사람들이 있다. 광고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몇 천만원이라는 헐값에 부가판권을 미리 팔아넘기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들로선 지난 한해 작은 영화를 살리기 위한 전쟁을 치렀다. 작은 영화의 부활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지난 1년 이들의 성적표와 앞으로의 포부를 들었다.

2002년부터 50편 가까운 영화를 수입한 스폰지는 동종 업계에선 적지 않은 질시를 받아왔다. 마켓에서 쓸 만한 영화들을 싹쓸이(?)하기 때문이다. 올해 칸영화제 상영작 중 국내 수입작은 대개 스폰지가 점찍어서 들여온 것들이다. 짐 자무시의 <브로큰 플라워>를 시작으로 이들 작품들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씨네휴(休)’ 2기 라인업에 포함된 상태다. 지난해 8월부터 스폰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씨네휴는 “지명도가 있는 감독들의 영화”를 패키지로 묶어 공동 마케팅을 추진하는 일종의 배급 브랜드. KTB와 함께 20억원의 예산을 조성한 1기 때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나쁜 교육> 등 6편의 영화들이 “예술영화는 단관 개봉”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국의 멀티플렉스와 복합관 진입을 시도했다. 12개 스크린을 확보한다는 목표에는 많게는 편당 1억원 이상의 광고비가 소요된다는 부담이 뒤따랐지만, 거점을 늘리면 “파이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와 공동 마케팅을 통해 “인력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판단이 이를 상쇄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다. 스폰지는 얼마 전 씨네휴 2기부터 스크린 수를 5개 정도로 줄이겠다고 입장을 다소 수정했다. 이는 30만달러를 들여 한국에 들여온 <에로스>의 참패와 무관하지 않다. 연출자 중 한명인 왕가위 감독의 지명도에 기대를 걸었지만(전작 <화양연화>와 <2046>이 15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인 것을 감안해서), 39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에로스>는 광고비를 회수하지도 못하는 3만289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데 그쳤다. 1억원 이상의 광고비를 집행한 미라 네어의 <베니티 페어>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 기대하지 않았던 폴 웨이츠의 <인 굿 컴퍼니>가 90개 스크린에서 22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면서 스폰지의 숨통을 틔웠지만, 좌판을 늘려 명품전을 선보이겠다는 전략은 축소됐다. 스폰지의 조은운 대표는 “예술영화 시장의 사이즈가 당장은 늘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비용을 감안하면 단관 개봉하는 예술영화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현재 개봉 중인 <토니 타키타니>의 경우, 불과 500여만원의 돈을 들여 포스터 등 기본 선재물만 뿌리고 시네코아 1개관에서만 개봉했지만 1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재개봉 중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또한 씨네큐브 2관에서 10일 동안 3천명 넘는 관객을 모았다. 앞으로 스폰지는 고가의 영화를 들여와 3배의 수익을 거둬들이기 위해 애쓰기보다 저가 예술영화를 늘려서 재생산 구조를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2005년 성적표/ <거칠마루>(2277명), <랜드 오브 플랜티>(2866명), <바이브레이터>(2180명), <베니티 페어>(2만6천명), <에로스>(3만289명), <에쥬케이터>(2509명), <텐미니츠 첼로>(3197명), <토니 타키타니>(1만460명), <피와 뼈>(1만341명), <69식스티나인>(1만4711명)

2006년 라인업/ 씨네휴 2기부터선 파트너를 늘린다. EBS가 방송판권을 구매하는 식으로 KTB와 함께 결합하는 형태다. 직접 제작한 김태용 감독의 윤도현밴드를 다룬 뮤직다큐멘터리 <온 더 로드, 투>가 내년 1월5일 개봉하는 것을 시작으로 프랑수아 오종의 <타임 투 리브>(2월 초)와 <5x2>, 레이프 파인즈, 레이첼 와이즈 주연의 <콘스탄트 가드너>(2월 말),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의 <바벨>, 라스 폰 트리에의 <만달레이> 등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라인업에는 <더 차일드> <쓰리 타임즈> <레밍> <히든> <클림트> <돈 컴 노킹> <다케시들> <잇츠 올 어바웃 러브> <메종 드 히미코> 등도 포함되어 있다.

위기는 언제나 맨머리 선두가 가장 빨리 느끼는 법이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한 백두대간은 그동안 광화문의 씨네큐브라는 안정적인 상영공간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예술영화 관객을 지켜왔다. 그러다 2003년 극장 운영을 포함해 약 2억5천만원의 적자가 났고, 이때부터 비상 경보가 켜졌다. <팻걸>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화씨 9/11> 등이 씨네큐브에서만 관객 1만명을 훌쩍 뛰어넘는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해 2004년 적자 폭은 1억원 선으로 줄어들었지만, 아직 청신호를 보낼 만한 상황은 아니다. 예술영화 소비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의 김은경 이사는 “올해 씨네큐브에서 1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말로 현실로 다가온 위기감을 토로한다. 1만5천명을 예상했던 <리컨스트럭션> <권태> 등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우디 앨런의 <헐리우드 엔딩>은 5천명의 관객을 간신히 모았을 뿐이다.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 아직 본격적으로 효과를 보진 못했지만 백두대간은 올해부터서 장기 홍보 전략을 택하고 있다.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해 짧게는 2주일 전부터 개봉 준비를 시작하는 것과 달리 3개월 전부터 개봉대기작 예고편을 틀고, 극장에 광고물을 배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충분한 광고 예산을 집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노출 방법을 찾아보려는 이들의 노력은 처음부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장기 홍보 전략을 택한 마이클 윈터보텀의 <인 디스 월드>는 8천여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김상아 팀장은 “단지 기간을 늘리는 방식은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면서 이후 관객몰이에 성공한 ‘오! 컬트영화제’의 예를 든다. 작은 예술영화들을 찾는 고객이라면 주변 공연장을 많이 찾는 이들이라고 생각했고, 6일 동안 진행됐던 오! 컬트영화제의 경우 <헤드윅> 공연과 때를 같이해 개봉일을 잡았다는 것이다. 4년 전,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공연에 맞춰 개봉해 적지 않은 관객을 끌어모았던 동명의 영화처럼, 오! 컬트영화제는 외부 문화행사와 연계(?)한 덕에 올해 허리를 졸라맨 백두대간의 효자가 됐다. 백두대간은 내년부터 업그레이드된 홈페이지를 선보여 충성도 높은 관객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2만3천명 수준의 회원도 5만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2005년 성적표/ <권태>(1만693명), <독일, 창백한 어머니>(1756명), <로렌조의 밤>(2156명), <리컨스트럭션>(7141명),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재개봉, 2709명), 오! 컬트영화제(3817명), <타임 마스터>(996명), <피오릴레>(2762명), <헐리우드 엔딩>(5209명)

2006년 라인업/ 1월에는 알랭 레네의 <내 미국 삼촌> 개봉과 함께 특별상영으로 ‘프렌치 뉴웨이브의 매혹’이 열린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투 잉글리시 걸스>와 <쥴 앤 짐>, 그리고 장 뤽 고다르의 <비브르 사비> 3편이 함께 상영될 예정이다. <증오>의 사이드 타그마위와 줄리엣 루이스가 출연하는 코미디영화 <룸 투 렌트>, 올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리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이 내년 1, 2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2003년, 인디스토리는 먹을 양식이 떨어졌다. <우렁각시> <사자성어> <이소룡을 찾아랏!> 등을 상영했던 2002년과 달리 배급할 만한 장편영화가 없어서였다. 단편영화 배급에서 장편영화까지 라인업을 확대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1년 만에 콘텐츠 부족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일단 해외쪽의 독립영화들을 수급, 배급하면서 인디스토리는 2004년 라인업 확보를 위해 직접 영화제작에 나섰다. 문화학교 서울 시절부터 장편 독립영화 제작을 염두에 뒀던 터라 결심은 어렵지 않았지만, 실행과정에서 난관이 적지 않았다. 올해 완성된 민동현, 김성호, 김종관 세 감독의 옴니버스영화 <눈부신 하루>가 대표적인 예다. ‘광복 60주년 기념 프로젝트’라는 타이틀로 기획된 <눈부신 하루>는 애초 방송쪽의 관심을 끌었고, 1천만원 정도의 제작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논의를 나누던 방송사쪽이 자체 예산 삭감을 이유로 중도에 빠지게 되고, 지원을 약속했던 유니코리아 또한 약속했던 제작비를 반 수준으로 낮추는 바람에 처음부터 진행이 원만치 않았다.

감독들이 자비를 들이고, 인디스토리가 일부 빚을 내고, 충무로 몇개 영화사가 거들면서, <눈부신 하루>는 일단 제작을 마쳤지만 HD로 만들어진 영화라 극장 상영을 위해선 중간에 키네코 작업이 필요해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에 지원 신청을 한 상태다. 광복 60주년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12월15일에 다급히 개봉해야 하는 탓에 홍보·마케팅 기간도 충분하지 않다. 인디스토리가 제작한 또 한편의 장편영화 <팔월의 일요일들>도 제작을 마쳤지만, 상영을 위해선 영사기를 임대해야 하는 등 추가 비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인디스토리의 곽용수 대표는 “현재 만들어지는 독립영화의 경우, 다른 작은 영화들과 달리 제작 단계에서부터 특정한 관객을 염두에 두고 만들기가 쉽지 않다”면서 “관객층 또한 <송환>이 기록한 5만명(비상영관 상영 포함) 정도가 최대치가 아닐까 하는 추정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독립영화계가 아트플러스 등과 같은 상영관 확보보다 커뮤니티 형성이 가능한 독립영화 전용관을 바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해 인디스토리는 영진위로부터 마케팅 지원을 받아 <동백꽃>과 <빛나는 거짓>을 단관, 3개관에서 개봉했지만, 두편 모두 1천명 미만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

2005년 성적표/ <동백꽃>(917명), <미안해>(1695명), <빛나는 거짓>(192명)

2006년 라인업/ 상반기에 <팔월의 일요일들>을 개봉하고, 지난해 광주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이탈리아영화 <애프터 미드나잇>과 일본의 시오타 아키코 감독의 <달빛 속삭임>을 배급한다. 아직 밝힐 수 없지만 자체적으로 2편 정도의 독립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