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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필름 위에 빛으로 새겨낸 역사의 한 페이지. <동주>의 성공 공식을 <자산어보>에서 다시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동주>를 시작으로 <박열> <변산>까지 이준익 감독의 연이은 작품들은 ‘청춘 3부작’이란 카테고리로 묶인다. <자산어보>도 그 명맥을 잇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준익 감독은 왜 청춘을 재현하는 데 집중하는가? 특히 역사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말이다. 이준익 감독이 역사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바라본 청춘들이 스크린에 맺힐 때, 그것이 동시대 청춘들과 조우할 가능성이 열릴까?
이러한 질문은 <동주>부터 차곡차곡 쌓여 의문의 형태로 <자산어보>에 이른다. <동주>와 <박열>은 색상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방식을 추구한다. 정확히는 <박열>이 <동주>의 성공 공식을 답습한다. <동주>는 나머지 작품들에 비해 가장 탁월하다. 암흑 같은
<자산어보>와 이준익의 ‘청춘 3부작’이 청춘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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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브랜던 크로넨버그의 <안티바이럴>(2012)은 조작된 혈액과 세포로 다른 인간과 연결되려는 시도에 관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소재였으나 이야기가 겉도는 끝에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 느낌을 줬는데,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포제서>는 주제와 연출 면에서 훨씬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 아버지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1983)이나 <엑지스턴스>(1999)를 연상시키는 작품으로서, 기계와 인간의 결합은 단계를 더 나아갔고, ‘왜 인간은 기계와 결합되기를 원하는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또는 ‘인간과 기계는 어디까지 결합하는 게 가능한가’ 등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질문 속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현실이라는 단어는 아버지 크로넨버그와 아들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연결함과 동시에 갈라놓는다.
<비디오드롬>과 <엑지스턴스>에서 인간과 기계가 결합해 진입하는
브랜던 크로넨버그의 '포제서'를 그의 아버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와 나란히 놓고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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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복수극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제니퍼 켄트의 <나이팅게일>에 관한 글에서 한번 이야기했으니 이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는 두 가지만 추가하기로 하자. 하나, 일단 장르가 형성되면 작품이 이 틀에서 벗어나기가 극도로 힘들다는 것. 둘, 관객은 이 소재를 다룬 모든 영화를 장르의 틀 안에 넣어보게 된다는 것.
에메랄드 페넬의 <프라미싱 영 우먼>의 이야기를 맺는 후반부도 이 영화가 강간복수극이고 관객이 이 장르의 규칙 안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장르가 고정된 상태에서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겨우 셋이다. 하나, 주인공은 앞에 선언한 복수에 성공한다. 둘, 주인공은 복수에 실패한다. 셋, 주인공은 복수에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성공했다.
영화 후반의 서스펜스는 영화가 이들 중 어느 것을 선택했을지 관객이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관객은 1번의 가능성이 사라진 뒤로는 3번이길 바라지만 2번일 가능성은 의외로 높다. 수많
'프라미싱 영 우먼'이 강간복수극 장르의 규칙 안에서 택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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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하고 유려하다. 영화 <미나리>는 삶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선 이민자 가족의 역경을 다룬다. 대부분 한국어로 진행되지만 감성적으로는 만국어로 통역 가능할 보편적인 정서를 펼쳐낸다. 미국 제작 영화임에도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비영어권 언어가 준 이질감 탓이 크다. 이 영화가 폭넓은 감응을 일으키는 지점은 고립된 인간들의 관계성에 주목한 점에 있는 듯하다. 교회와 병원과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아칸소 시골의 이동식 주택에 한인 가족이 이주해 온다. 주위엔 마을이라 할 만한 공동체가 없다. 가족은 온전히 그들끼리 삶을 감당해야 한다. 물과 불은 자연이 주는 운명적 고난이며, 병약함과 노쇠는 인간적 가냘픔을 드러낸다.
병아리 감별이라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하고 물길을 내어 농장을 일구는 일상 속 곤란은 대부분 좁은 이동식 주택 내부 가족 사이의 미묘한 갈등으로 드러난다. 과장하지 않고 덤덤히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으나 냉소적이지 않으며 그윽하고 깊다. 어
'미나리'의 탈국경적 영화 경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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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철>은 두 남자의 차 사고를 둘러싼 진실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주변인들의 비밀도 들춰보는 서스펜스영화다. 그러나 마치 봉준호 감독의 영화처럼, 진실의 실체보다는 거기에 도착하는 과정에 도사리고 있는 전경들이 빛을 발한다. 봉준호의 서스펜스 뒤편에는 한국 사회의 뒤틀린 구조도가 펼쳐져 있다면, <빛과 철>의 후면에는 진실을 얻으려는 자가 관통해야 하는 엄중한 법칙이 버티고 있다. 진실에 다가서는 자와 그 주변인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배종대 감독은 자신이 축조한 영화적 세계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영화는 묘한 영상으로 시작된다. 도로를 따라가던 카메라는 이미 두대의 차가 파손된 사고 현장에 도착한다. 막 사고가 난 듯 열기가 가득한 현장. 여기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도로의 질료마저 감각할 수 있는, 현장의 생생한 현실감이다. 이 장면의 생생함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돋보
'빛과 철'의 냉혹한 성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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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화면 안에 두 소녀가 밤길을 달리고 있다. 조그만 아이의 손을 꼭 붙든 조금 더 큰 소녀의 몸짓은 불안하며, <세자매>를 열고 있는 이 밤은 불길하다. 겉옷 하나 걸치지 않은 내의 차림의 아이들이 차가운 겨울밤을 달려야 하는 상황적 배경이 밝을 리는 없다. 하지만 더 암담한 사실은 두 소녀가 언젠가 이 밤을 다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장면을 설명하는 장면이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게다가 플래시백의 한 부분이라면, 이 밤 속으로 영화의 감정들이 고여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자매>의 서사를 복기한 결과가 아니다.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전개다. 영화의 시작부에 등장하는 플래시백 장면이 인물들의 현재와 동떨어져 기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 상태의 징후로서 기능하든 기원으로서 작동하든, 그것은 대개 현재와 과거 사이의 인력을 형성한다.
인물들의 온갖 기행을 나열하며 세상의 보편적인 감정에 기어코 다다르려 하는 이승원 감독 역시 인물들의
'세자매'가 감정을 분출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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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옥 월드는 기본적으로 ‘집’을 빼앗는 자와 되찾으려는 자의 싸움이다.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인물들이 지닌 욕망의 궁극으로 그려진다. 이 세계의 입문작인 <아내의 유혹>(SBS)과 최근작인 <펜트하우스>(SBS)가 모두 부동산 투기로 부를 축적한 상류층 집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금 김순옥 월드를 향한 뜨거운 반응의 핵심에는, 갈 데까지 간 막장의 재미보다 부동산공화국 한국의 욕망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순옥 월드의 3단 진화
김순옥 월드의 역사는 크게 3기로 구분된다.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MBC), <황후의 품격>(SBS)이 각 시기의 출발점이다. <아내의 유혹>으로 시작된 김순옥 월드 1기가 복수 위주의 이야기라면, <왔다! 장보리> 이후는 기존 복수에 성공의 욕망이 더해지고, <황후의 품격>부터는 그 욕망의 서사가 블록버스
김순옥 월드의 종합판 '펜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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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영 앤 뷰티풀> 개봉 당시, 어느 인터뷰에서 프랑수아 오종은 “성매매에 종사하고자 하는 많은 여성들의 판타즘을 건드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의 인터뷰어는 왜 하필 ‘욕망’과 연계되는지를 물었고, 이에 감독은 “섹스의 객체가 되는 것은 추정컨대 매우 분명한 무언가가 있는 경우다”라고 답했다. 한동안 나는 이 인터뷰 내용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두 가지로 그의 대답을 이해했다. 먼저 감독이 설명하듯 인물을 움직이게 만드는 감정의 속성 중에는 분명 ‘수동성의 부류’라 언급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다만 영화가 극단적으로 특정한 상황에 몰두하기에 이해가 난해할 따름이다.
둘째로 섹슈얼리티 자체가 간접적인 목적으로서 이를테면 추상적 ‘자본의 영역’에 귀속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두 번째가 더 흔한 추론일 것이다. 하지만 <영앤 뷰티풀>의 캐릭터는 두 번째 추정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마린 백트가 연기하는 17살
프랑수아 오종의 '썸머 85'가 절망에 빠진 세계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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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켄트 감독의 <나이팅게일>에는 두개의 장르가 공존한다. 하나는 강간복수극이고 다른 하나는 서부극이다. 강간복수극 이야기를 먼저 하자. 이름에 속한 두 단어로 쉽게 정의될 수 있는 장르다.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배우자 또는 연인이 강간당한다. 주인공은 강간범들을 한명씩 최대한 잔인하게 죽인다. 20세기 중후반 여성 주도 액션물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 장르를 피할 수가 없다. 주연이 팸 그리어건 라켈 웰치건 가지 메이코건 여자주인공이 남자들을 살육하는 액션을 시작하는 동기로 거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강간이 등장했다. 이 리스트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가이드를 따라 챙겨보다보면 한 없이 길어질 수 있고, 그 리스트의 총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킬 빌> 시리즈다. 현란한 액션과 재미에도 불구하고 <킬 빌> 시리즈가 갑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1960, 70년대 선정영화의 정서에 지나치게 충실해 발전 없이 그 안에 갇힌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강간복수극과 서부극이 공존하는 '나이팅게일'이 택한 최소한의 윤리적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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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부부 흥주(양흥주)와 은주(서영화)는 택시 안에 있다. 멀미가 날 것 같은 구불구불한 곡선의 도로 위를 달리며 택시 기사와 흥주는 30년 전 흥주가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 춘천을 방문했던 기억을 회고하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1988년, 서울에서는 올림픽이 열렸고 청평사 근처에서 소라를 팔았던 노점상들은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모두 철거를 당했노라고 택시 기사는 말한다. 택시 기사의 이 말은 부부를 인도하여 3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게 하는 발화점이다.
그때 은주는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뒤를 이어 정체불명의흰색 밴이 위협적으로 클랙슨을 울리더니 택시를 앞질러 간다. 외견상 피상적이고 우연한 이 도입부의 삽화는 회복할 수 없는 과거의 메아리를 되짚어가는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한 메타포이다. 소거당한 기억과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차를 돌려 되감기는 시간(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판본에는 택시가 중앙선을 넘어 유턴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개봉 버전에서는 삭제되었다), 사랑이
장우진이 '춘천, 춘천' '겨울밤에'에서 계절과 풍경을 관계의 우화로 조형하는 방식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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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으로 완벽한 구조 아래 차가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는 오슨 웰스의 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시민 케인>과 유사하다.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시민 케인>은 완전하게 반(反)장르적인 작품이다. 케인이 여느 누아르의 인물처럼 몰락하는 부분에서 감정을 이입하기란 쉽지 않다.
<맹크>에서 MGM의 수장인 루이스 B. 메이어는 훗날 거장으로 성장할 조셉 맹키위츠에게 스튜디오의 세 가지 룰을 말하며 첫 번째로 ‘눈물을 이끄는 감정’을 꼽는다. 그는 감정이란 머리와 가슴과 성기에서 나온다고 몸짓하는데, 어떤 감정을 가져오더라도 케인을 품기란 힘들다. 차가운 이성으로 대하더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극중 유일하게 타인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별 장면에서도 그는 그녀가 아니라 자신을 더 보호하려고 애쓴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사랑받기만을 원하는 인물은 누아르 남자주인공의 성격과 정확하게 배치(背馳)된다.
그런
데이비드 핀처가 '맹크'에서 할리우드의 비극을 재연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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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스페셜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아니시 차간티 감독이 전작인 <서치>, 그리고 앨프리드 히치콕과 싸운 것 같다고 평했다. <런>이 구축하는 서스펜스를 고려해보면 스릴러 장르의 권위자인 히치콕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여기서 시간을 좀더 앞당겨서 하나의 영화를 추가하여 말하고 싶다. 그 영화는 90년대 클래식인 <미져리>(1990)다. <미져리>는 이미 <런> 안에 작게나마 이스터 에그로 각인되어 있다. 감독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치>보다 <미져리>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런>은 <미져리>의 21세기 리메이크작이라고 거칠게 말해도 무리가 없다. 왜 감독은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썼을까? 그 이유를 히치콕에게서 찾아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영화 <히치콕 트뤼포>를 보면 히치콕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정공법 '런'의 중요한 세번의 클로즈업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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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올해 초 미국 실리콘밸리에 다녀왔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대를 앞장서서 주도하고 있는 그곳의 양극화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서(필자는 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KBS 기자다.-편집자). 아마존, 구글, 애플 등 현재 전세계 시가총액 톱10 기업은 모두 이용자 데이터를 원료 삼은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끌어모으는 회사들이다. 세계 부자 1위인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의 자산 규모는 공개된 것만 1130억 달러(약 125조원)에 이른다. 기업들이 천문학적 부를 쌓아가는 동안 실리콘밸리 지역의 부동산 시세는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 됐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가장 작은 원룸 월세는 3천달러(약 330만원) 아래를 찾기 어렵다. 지은 지 50년 된, 방 2칸에 욕실 1개짜리 허름한 주택이 매물로 나와 찾아가봤는데 적어도 200만달러(약 22억원)는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다수의 직장인들이 차에서 먹고 잔다.
'힐빌리의 노래'가 고백하는 백인 하층민의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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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를 맞은 무주산골영화제는 지난해 상영작에 대한 비평적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처음으로 영화평론가상을 신설했다. 올해 영화평론가상은 김덕중 감독의 <에듀케이션>이 수상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보년, 김소희, 손시내 평론가는 영화제 이후 수상작을 포함해 오민욱 감독의 <해협>과 오정석 감독의 <여름날>에 대한 비평을 작성했다. <씨네21>은 젊은 평론가들이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펼치길 바라며 무주산골영화제가 보내온 평문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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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할 ‘재미’의 뜻에 관해 짧게 설명하고 싶다. 사전은 재미를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으로 정의하지만, 이 글에서는 ‘흥미진진한 전개’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하려 한다. 더 자세히는 ‘어떤 이야기 속 상황에 저절로 몰입하게 되고 다음 전개를 빨리 보고 싶어지는 마음의 상태’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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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석 감독의 <여름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수상작 비평 전문] 김보년 평론가의 <여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