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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함과 익숙함의 조화라는 키워드로 읽는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안에 007 있다

<기네마준보>를 비롯한 매체에 기고하는 일본의 영화평론가. 필자가 달아온 이 글의 영문 제목은 ‘You have No Time To Die in Squid Game’이다.

*이 글은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직후인 2021년 10월 초에 쓰였다.-편집자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을 시작한 후 2주도 안돼 세계는 녹색으로 물들었다. 지금까지는 SNS의 세계, 라고 말해야 할까. 아직 일본에서 그 녹색 체육복을 입은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분명 핼러윈 시기에는 현실에서도 넘쳐흐를 거라 생각한다. 핑크색 점프 슈트와 함께 말이다. 어째서 <오징어 게임>은 이렇게나 급속도로 온 세상에 퍼지게 된 것일까?

A. 스토리가 재밌는가? - YES. 두말할 것 없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만큼 재밌다. 다 보고 나니 수많은 복선이 깔려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다시 한번 보고 싶어졌다. ‘그 부분은 <최후의 만찬>의 예수와 유다를 말하는 게 아니었을까?’ 같은 다양한 고찰을 하고 싶게 만든다.

BUT 지금까지 인생을 역전시키고자 하는 데스게임은 수없이 많았다. <카이지> <배틀로얄> <아리스 인 보더랜드> 그리고 할리우드의 <헝거게임> 등. 이중 하나라도 본 적이 있다면 <오징어 게임>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대략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필자의 경우 프런트맨의 정체나 게임의 주최자가 누군지는 중반에 예상한 대로였다. 게다가 예수의 부활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는 한국 작품에도 많았고, 최근에 내가 빠져 있던 한국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도 그 모티브를 훌륭하게 다뤄냈다. 그 밖에도 넷플릭스에는 이미 참신한 재미를 주는 한국 드라마가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좀비와 시대극을 엮은 <킹덤> 역시 신선했고 <이태원 클라쓰>도 잘 만든 인생 역전 드라마였다. 작중 수많은 복선이 깔려 있었던 건 대히트를 친 <사랑의 불시착>도 마찬가지였다.

B. 캐스팅이 훌륭한가? - YES. 모든 배우가 배역에 딱 맞아떨어졌고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주인공 성기훈을 연기한 이정재가 이렇게나 너절한 남자 역에 잘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 깜짝 놀랐고, 상우 역의 박해수는 냉철한 듯하면서도 어떤 의미에서 가장 인간적이었다. 정호연이 연기한 새벽은 최후의 순간까지 멋들어졌고, 알리 역의 아누팜 트리파티는 이 드라마의 커다란 발견이었다. 카메오로 등장한 공유는 너무나도 섹시했는데 무엇보다 이병헌은 깜짝 놀랄 방식으로 등장해 최고로 멋졌다. 컴퓨터로 목소리를 변조했다지만 그 목소리의 매력을 다 지우기는 어려웠다.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잔”이라는 대사가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그가 나올 거라 예상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BUT <사랑의 불시착>에서 리정혁을 연기한 현빈 역시 인기 절정이면서 섹시하기까지 한 데다 순수하고 유머러스한 이상적인 히어로였다. 드라마를 봤다면 남자든 여자든 한번쯤은 그와 불시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캐스팅은 다른 한국 드라마들도 훌륭하다.

C. 드라마의 주제가 지금의 세계 정세를 잘 담아냈는가? - YES.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더 진행되고 있으며 지나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높아지고 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한 백신 역시 국력에 의해 좌우된다. 공평한 세상이 아닌 것이다.

BUT 이건 나중에 덧붙인 이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오징어 게임>을 제작하던 시점에 한국은 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황동혁 감독이 이 작품을 기획한 것은 10년도 더 전이라고 한다. <오징어 게임>의 대히트는 여러 가지로 타이밍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A, B, C 모두 대히트를 칠 수 있었던 이유이긴 하지만 어느 이유든 작품을 다 본 후에야 비로소 느껴지는 것들이다. 적어도 초반 3, 4화까지는 봐야 위와 같은 이유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발표되고 단 며칠 만에 전세계를 석권한 데에는 역시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SNS에 영화에 대한 평가가 퍼지기 전에도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의 창을 열었을 때 눈에 띄었다. 어째서일까? 내 눈에 띈 것은 두 가지였다.

X. 너무나도 선명하고 강렬한 비주얼 이미지

Y. 무지하게 강렬한 타이틀

아마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인상을 받지 않았을까? SNS 등지에서 눈에 띈 타이틀과 비주얼에 흥미를 가진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X=녹색의 다소 촌스러운 체육복을 입은 사람들과 기분 나쁜 마스크를 쓴 핑크색 무리. 이미 이것만으로도 무서운 게임이 시작될 거라 예상하게 된다. 또 스틸 사진에는 파스텔 컬러의 세트와 거대한 인형 같은 선명하고 강렬한 프로덕션 디자인이 돋보인다. ‘대체 이건 뭐지?’란 생각과 함께 눈을 떼기가 힘들다. Y=이쪽도 좀 촌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강렬한 인상이 남는다. ‘오징어 게임’이란 놀이는 일본에 없지만 옛날 어린 시절에 했던 놀이의 이미지를 환기시키기엔 충분하다. X와 Y에서 공통되는 건 설명이 거의 필요 없고 전세계 사람들이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사회 배경이나 배우의 얼굴을 몰라도 몰입할 수 있다. X+Y=디자인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단히 깊이 고민한 컨셉이면서도 심플하고 이해하기가 쉽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주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007 시리즈의 신작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보고 기함했다. 컨셉이 닮았기 때문이다. 다소 케케묵은 타이틀 로고, 이해하기 쉬운 비주얼 그리고 외딴섬에 자리한 요새에서 벌어지는 싸움. 생각해보면 전세계 누구나 아는 히어로 제임스 본드는 사건의 흑막을 파헤치기 위해 매회 데스게임에 도전하고 있었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박혀 있던 007이야말로 <오징어 게임>에 몰입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새로운 007 영화의 감독이 한국에서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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