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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영 앤 뷰티풀> 개봉 당시, 어느 인터뷰에서 프랑수아 오종은 “성매매에 종사하고자 하는 많은 여성들의 판타즘을 건드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의 인터뷰어는 왜 하필 ‘욕망’과 연계되는지를 물었고, 이에 감독은 “섹스의 객체가 되는 것은 추정컨대 매우 분명한 무언가가 있는 경우다”라고 답했다. 한동안 나는 이 인터뷰 내용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두 가지로 그의 대답을 이해했다. 먼저 감독이 설명하듯 인물을 움직이게 만드는 감정의 속성 중에는 분명 ‘수동성의 부류’라 언급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다만 영화가 극단적으로 특정한 상황에 몰두하기에 이해가 난해할 따름이다.
둘째로 섹슈얼리티 자체가 간접적인 목적으로서 이를테면 추상적 ‘자본의 영역’에 귀속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두 번째가 더 흔한 추론일 것이다. 하지만 <영앤 뷰티풀>의 캐릭터는 두 번째 추정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마린 백트가 연기하는 17살
프랑수아 오종의 '썸머 85'가 절망에 빠진 세계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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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켄트 감독의 <나이팅게일>에는 두개의 장르가 공존한다. 하나는 강간복수극이고 다른 하나는 서부극이다. 강간복수극 이야기를 먼저 하자. 이름에 속한 두 단어로 쉽게 정의될 수 있는 장르다.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배우자 또는 연인이 강간당한다. 주인공은 강간범들을 한명씩 최대한 잔인하게 죽인다. 20세기 중후반 여성 주도 액션물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 장르를 피할 수가 없다. 주연이 팸 그리어건 라켈 웰치건 가지 메이코건 여자주인공이 남자들을 살육하는 액션을 시작하는 동기로 거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강간이 등장했다. 이 리스트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가이드를 따라 챙겨보다보면 한 없이 길어질 수 있고, 그 리스트의 총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킬 빌> 시리즈다. 현란한 액션과 재미에도 불구하고 <킬 빌> 시리즈가 갑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1960, 70년대 선정영화의 정서에 지나치게 충실해 발전 없이 그 안에 갇힌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강간복수극과 서부극이 공존하는 '나이팅게일'이 택한 최소한의 윤리적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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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부부 흥주(양흥주)와 은주(서영화)는 택시 안에 있다. 멀미가 날 것 같은 구불구불한 곡선의 도로 위를 달리며 택시 기사와 흥주는 30년 전 흥주가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 춘천을 방문했던 기억을 회고하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1988년, 서울에서는 올림픽이 열렸고 청평사 근처에서 소라를 팔았던 노점상들은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모두 철거를 당했노라고 택시 기사는 말한다. 택시 기사의 이 말은 부부를 인도하여 3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게 하는 발화점이다.
그때 은주는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뒤를 이어 정체불명의흰색 밴이 위협적으로 클랙슨을 울리더니 택시를 앞질러 간다. 외견상 피상적이고 우연한 이 도입부의 삽화는 회복할 수 없는 과거의 메아리를 되짚어가는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한 메타포이다. 소거당한 기억과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차를 돌려 되감기는 시간(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판본에는 택시가 중앙선을 넘어 유턴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개봉 버전에서는 삭제되었다), 사랑이
장우진이 '춘천, 춘천' '겨울밤에'에서 계절과 풍경을 관계의 우화로 조형하는 방식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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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으로 완벽한 구조 아래 차가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는 오슨 웰스의 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시민 케인>과 유사하다.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시민 케인>은 완전하게 반(反)장르적인 작품이다. 케인이 여느 누아르의 인물처럼 몰락하는 부분에서 감정을 이입하기란 쉽지 않다.
<맹크>에서 MGM의 수장인 루이스 B. 메이어는 훗날 거장으로 성장할 조셉 맹키위츠에게 스튜디오의 세 가지 룰을 말하며 첫 번째로 ‘눈물을 이끄는 감정’을 꼽는다. 그는 감정이란 머리와 가슴과 성기에서 나온다고 몸짓하는데, 어떤 감정을 가져오더라도 케인을 품기란 힘들다. 차가운 이성으로 대하더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극중 유일하게 타인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별 장면에서도 그는 그녀가 아니라 자신을 더 보호하려고 애쓴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사랑받기만을 원하는 인물은 누아르 남자주인공의 성격과 정확하게 배치(背馳)된다.
그런
데이비드 핀처가 '맹크'에서 할리우드의 비극을 재연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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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스페셜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아니시 차간티 감독이 전작인 <서치>, 그리고 앨프리드 히치콕과 싸운 것 같다고 평했다. <런>이 구축하는 서스펜스를 고려해보면 스릴러 장르의 권위자인 히치콕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여기서 시간을 좀더 앞당겨서 하나의 영화를 추가하여 말하고 싶다. 그 영화는 90년대 클래식인 <미져리>(1990)다. <미져리>는 이미 <런> 안에 작게나마 이스터 에그로 각인되어 있다. 감독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치>보다 <미져리>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런>은 <미져리>의 21세기 리메이크작이라고 거칠게 말해도 무리가 없다. 왜 감독은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썼을까? 그 이유를 히치콕에게서 찾아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영화 <히치콕 트뤼포>를 보면 히치콕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정공법 '런'의 중요한 세번의 클로즈업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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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올해 초 미국 실리콘밸리에 다녀왔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대를 앞장서서 주도하고 있는 그곳의 양극화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서(필자는 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KBS 기자다.-편집자). 아마존, 구글, 애플 등 현재 전세계 시가총액 톱10 기업은 모두 이용자 데이터를 원료 삼은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끌어모으는 회사들이다. 세계 부자 1위인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의 자산 규모는 공개된 것만 1130억 달러(약 125조원)에 이른다. 기업들이 천문학적 부를 쌓아가는 동안 실리콘밸리 지역의 부동산 시세는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 됐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가장 작은 원룸 월세는 3천달러(약 330만원) 아래를 찾기 어렵다. 지은 지 50년 된, 방 2칸에 욕실 1개짜리 허름한 주택이 매물로 나와 찾아가봤는데 적어도 200만달러(약 22억원)는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다수의 직장인들이 차에서 먹고 잔다.
'힐빌리의 노래'가 고백하는 백인 하층민의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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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를 맞은 무주산골영화제는 지난해 상영작에 대한 비평적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처음으로 영화평론가상을 신설했다. 올해 영화평론가상은 김덕중 감독의 <에듀케이션>이 수상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보년, 김소희, 손시내 평론가는 영화제 이후 수상작을 포함해 오민욱 감독의 <해협>과 오정석 감독의 <여름날>에 대한 비평을 작성했다. <씨네21>은 젊은 평론가들이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펼치길 바라며 무주산골영화제가 보내온 평문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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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할 ‘재미’의 뜻에 관해 짧게 설명하고 싶다. 사전은 재미를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으로 정의하지만, 이 글에서는 ‘흥미진진한 전개’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하려 한다. 더 자세히는 ‘어떤 이야기 속 상황에 저절로 몰입하게 되고 다음 전개를 빨리 보고 싶어지는 마음의 상태’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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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석 감독의 <여름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수상작 비평 전문] 김보년 평론가의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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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를 맞은 무주산골영화제는 지난해 상영작에 대한 비평적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처음으로 영화평론가상을 신설했다. 올해 영화평론가상은 김덕중 감독의 <에듀케이션>이 수상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보년, 김소희, 손시내 평론가는 영화제 이후 수상작을 포함해 오민욱 감독의 <해협>과 오정석 감독의 <여름날>에 대한 비평을 작성했다. <씨네21>은 젊은 평론가들이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펼치길 바라며 무주산골영화제가 보내온 평문을 공개한다.
오민욱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관통하는 주된 형식은 이미지의 중첩이다. <1987061020080610>(2008)은 87년 6.10 항쟁을 담은 스틸 이미지와 2008년 한미 FTA 반대 촛불시위 영상을 한 화면 위에 디졸브한다. 이때 이미지의 중첩은 떨어진 시간을 잇는 행위였다. 부산시민공원 조성 행사와 재개발의 현장, 황령산 기슭의 바위 이미지를 교차하는 <재>(201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수상작 비평 전문] 김소희 평론가의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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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를 맞은 무주산골영화제는 지난해 상영작에 대한 비평적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처음으로 영화평론가상을 신설했다. 올해 영화평론가상은 김덕중 감독의 <에듀케이션>이 수상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보년, 김소희, 손시내 평론가는 영화제 이후 수상작을 포함해 오민욱 감독의 <해협>과 오정석 감독의 <여름날>에 대한 비평을 작성했다. <씨네21>은 젊은 평론가들이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펼치길 바라며 무주산골영화제가 보내온 평문을 공개한다.
김덕중 감독의 <에듀케이션>
<에듀케이션>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는 마주 서 있는 두 사람을 그들의 옆모습이 나오도록 찍은 투 쇼트이다. 영화제 홈페이지나 포털 사이트에서 이 영화를 검색했을 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스틸 컷에도 그러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해당 스틸 컷에서 영화의 두 주인공인 성희(문혜인)와 현목(김준형)은 어질러진 집 안에서 마주 서 있고 카메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수상작 비평 전문] 손시내 평론가의 <에듀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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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저예산인 독립영화에 (구)SM 아이돌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면 감독이 덕후였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영화 중반, 배우가 싫어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오이를 김밥에서 빼주는 장면이 무심하게 나오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 시간을 빼앗기는 건 의미없는 일이다. 그럴싸하다고 다 그렇다는 법도 없고 맞다고 해서 별 의미는 없다. 어차피 우리에겐 당시 상황과 관련된 정보가 다 있지도 않다.
그래도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돌 활동 중에 생성된 팬덤에 속한 사람들이 영화감독을 시작해 이들을 캐스팅한다면 그 아이돌의 배우 경력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그 아이돌이 얼마 전까지 배우들에게 아주 최선의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회사 소속이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익숙한 갈등과 소동을 벗어나
어디로건 빠질 수 있는 일반론은 멀리 치우고 최하나 감독의 <애비규환>과 주연배우 정수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
'애비규환'은 어떻게 악역과 갈등 없이 이야기를 봉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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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근래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 여성 캐릭터를 비교적 다채롭게 구축하고 있는 편에 속한다. 수학 천재와 오지랖, 까칠한 현실주의자의 조합은 익숙하지만 여성의 몸으로 구현된 캐릭터를 스크린에서 만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아가, 세간의 평처럼 이 영화를 ‘여성 승리의 서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평하기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지점이 있다. 굳이 여성영화에 관한 해묵은 정의를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나는 이 작품이 여성들을 통해 쾌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묘하게 기만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영화를 두고 여성의 승리를 언급해도 좋은가. 그 점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지탱하는 서사의 축은 상업 고등학교 출신의 말단 직원들이 삼진그룹 경영진의 흑막을 밝혀 회사를 지키는 과정이다. 그러나 중심 서사와는 별개로 이 영화의 지배적인 쾌감은 얼핏 약하게 보이는 여직원들이 ‘센 상대’인 남성 경영진을 상대로 승리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보여준 놀이의 쾌감에서 부족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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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태인(유아인)을 바라보던 영화가 블랙아웃된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이 잠깐 떠올랐다가 태인과 등장인물들의 한때 행복했던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에필로그로 이어진다. ‘블랙아웃-에필로그’ 방식은 여러 영화들이 영화를 마무리하며 활용하는 익숙한 방식이다. 그러나 <소리도 없이>에서만큼은 이 방식이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영화의 중반쯤 등장하는 즉석카메라로부터 비롯된다. 초희(문승아)의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창복(유재명)은 즉석카메라를 준비해온다. 그런데 창복과 태인이 카메라 작동법을 알지 못하자 초희가 직접 나서서 즉석카메라의 작동 원리를 알려준다. “원래 처음엔 까매요. 좀 있으면 사진 보이거든요.”
<소리도 없이>의 엔딩 방식은 즉석카메라의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홍의정 감독이 태인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을 찍었더니, 잠깐 까매졌다, 한때의 행복했던 추억이 현상(現像)된다. 그러나 이 추억이 행복한 것
'소리도 없이'가 유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적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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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홍의정 감독이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를 의도적으로 인용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다리를 저는 창복(유재명)과 어수룩하고 무기력한 태인(유아인)을 보자마자 이청준이 내가 태어날 무렵에 쓴 소설을 떠올렸다. 이청준이 은유적으로 쓴 제목을 그들은 육체에 그대로 뒤집어쓴 채로 스크린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청준의 인물이 지식인으로서 과거의 정신적 상처를 고도의 지적인 행위를 빌려 드러내고 치유하려고 애쓰는 것과 비교해, 과거의 역사를 육체 위로 새겨둔 창복과 태인은 현실의 굴레 아래 사는 노동자다. 홍의정이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은 데뷔작에서 눈길을 준 대상은 수십 년 전, 혹은 현재의 지식인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 매일 매일 살려고 버티는 하층민이다.
창복과 태인은 범죄자이면서 노동자다. <소리도 없이>에서 범죄는 분업화돼 실행된다. 머리를 짜 기획하는 자가 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가 있으며, 성과의
'소리도 없이'의 선택 없는 결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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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노우즈 왓>은 할리(아리엘 홈스)와 일리야(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서로를 보듬고 입을 맞추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곧바로 그 위에 할리의 울음소리를 얹으며 상황을 전복시킨다. 이어지는 신에서 일리야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할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할리는 그런 일리야 곁을 맴돌며 용서를 구한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벌써 죽었겠다!” 자신이 죽으면 용서하겠냐는 할리의 말을 무기 삼아 일리야는 결국 할리가 손목을 긋게 만든다. 여기서 작은 균열이 생긴다. 영화가 처음 보여준 둘의 애틋함은 환상이었나? 할리는 왜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사랑을 증명하려 하나? 손목을 치료하고 나온 할리는 옷을 꿰매야 한다는 일리야의 말에 아둔한 손짓으로 바늘에 실을 꿰려 애쓴다. 저렇게까지 헌신하는 이유가 뭘까.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그 답을 이야기하고,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의문을 품은 채 할리를 따라가게 된다.
질주보다 방랑에 가까운
사프디 형제의 2014년작 <
사프디 형제의 '헤븐 노우즈 왓'이 결핍과 욕망을 다루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