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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다시 베니스 무대에 섰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20년 만이다.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전세계 영화 팬들의 시선을 모았다. 25년 몸담은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유만수(이병헌)가 재취업을 위해 세명의 경쟁자를 제거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번 영화는,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가장 유머러스하다. 그러나 웃음 뒤에 도사린 날카로운 연출의 칼날은 여전히 박찬욱답다.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진 프리미어 상영 다음날 아침, 감독은 한국 취재진과 마주 앉아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지난번 <헤어질 결심> 칸 시사회 때는 “눈치보느라 웃지 못했다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프레스 시사 때도 그렇고 프리미어 상영에서도 웃음이 많이 나왔는데.
언론시사회 때는 웬만해서는 웃지 않는데, 이번에는 많이 웃었다는 전언에 좋은 소식이라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대목은 유만
[인터뷰] 내가 만들어놓고도 볼 때마다 많이 웃는 장면이 있다,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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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회 베니스영화제의 흥행을 이끈 주인공에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 등 레드카펫을 밟은 할리우드 톱스타만 있는 건 아니다. 개막 3일째인 8월29일(현지 시간)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영화제 열기를 견인한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날 아침 8시30분에 상영하는 언론 시사를 보기 위해 메인 극장인 팔라초 델 시네마 건물의 ‘살라 그란데’ 앞에 선 줄은 7시30분부터 옆 광장까지 길게 이어졌다. 일반 상영에 비해 차분한 기자시사 현장에서 큰 웃음과 박수소리가 자주 나왔다. 상영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열린 기자회견장은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의 팬미팅을 방불케 했다. 진행자는 “손을 너무 많이 들었는데,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어쨌든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게 원래 영화제에 흐르는 분위기인가 했더니 이 기사를 쓰는 9월3일 낮까지 이 정도의 열기는 재현되지 않았다. 2023년 <헤어질 결심>이 초청된 칸영
[기획]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현지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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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이하 베니스영화제)가 지난 8월27일 베니스 리도섬에서 개막했다. 올해는 경쟁부문에 유럽과 미국, 중국, 대만, 한국 등에서 출품된 21개의 경쟁작들이 황금사자상을 두고 경합을 벌인다.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 에마 스톤, 드웨인 존슨, 어맨다 사이프리드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빛내며 열기를 높이고 있는 베니스영화제 현장을 아직 수상 결과가 나오지 않은 4일 오전(현지 시간) 시점으로 소개한다. 이병현 영화평론가가 박찬욱 감독, 배우 이병헌, 손예진과 나눈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현지 리포트와 영화 <어쩔수가없다> 감독 박찬욱과 배우 이병헌, 손예진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현실을 직시하는 영화의 목소리 -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현지 리포트…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현지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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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게스트 목록과 새로 신설된 경쟁부문까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확연한 변화는 정한석 신임 집행위원장의 집요한 행정 아래 굴러간다.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로 6년간 뚝심 있는 선정을 이어온 그는 올해 한국영화 프로그래밍 실무까지 겸업하며 사실상 최장수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에서 집행위원장으로 거듭났다. 30년 조직의 관성을 깨고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영화제 전반에 스민 가운데, 정 집행위원장은 관객과 축제를 위한 실용주의적 선택, 그리고 아시아 창작자들을 위한 대형 플랫폼으로서의 도약을 역설했다.
- 여느 때보다 풍성한 게스트 명단과 상영·행사 소식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마지막이 아니냐는 SNS 반응이 퍼질 정도였다. 내부에선 어떻게 감지하고 있나.
감사한 일이다. 영화제 일은 저절로 되는 게 없다. 프로그래머로 6년 일하다 집행위원장이 되면서 많은 것을 바꾸려 노력했다. 프로그래머들의 업무 체계, 태도와 철학의 문제까지 강도 높게 수정과 보완을 요청했다.
[인터뷰] 평론가의 눈, 행정가의 손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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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화면이 열리자 두개의 뉴욕 닉스 모자가 화면 아래쪽 끄트머리에 간신히 걸쳐져 있다. 스파이크와 덴절 듀오는 연신 고개를 흔들거리며 수다를 떨기 바빴는데, 아마도 카메라 각도 조절에는 실패한 듯하다. 홍보 담당자가 겨우 만담을 제지하자 초면인 기자에게 10년 지기에게나 할 법한 격의 없는 인사가 날아온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1963년작 <천국과 지옥>을 현대 뉴욕 힙합 신으로 옮겨온 Apple TV+ 신작 <천국부터 지옥까지>에서 호흡한 스파이크 리 감독, 그리고 배우 덴절 워싱턴과의 첫 만남은 이랬다. <천국부터 지옥까지>는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명망 있는 음악 프로듀서 데이비드 킹(덴절 워싱턴)이 아들의 몸값을 납치범과 협상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거리의 젊은 예술가 집단과 얽히는 범죄스릴러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계급·유산·사회 불평등의 문제를 가로지르며 흥청거리는 음악산업의 굴곡을 지극히 그다운 뉴욕 소동극 속에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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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뉴욕의 돈과 심장 사이, <천국부터 지옥까지> 스파이크 리 감독 배우 덴절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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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는 대학가요제를 향한 열망으로 요동쳤다.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학교가 어딘지도 알아뒀다. 기어코 그곳에 입학해 록 그룹 보컬 오디션에 합격했는데, 며칠 전 친해진 연극부 선배들이 눈에 밟힐 줄이야. 가창력을 평가받던 순간보다 편안한 분위기에 홀린 새내기는 마이크 없이 맨몸으로 무대에 서길 택했다. 학생 신분으로 시작한 연기에 빠져 배우이자 기획자로서 극단 한강을 거친 다음 <웰컴 투 동막골> 현장까지 경험했다. 카메라 곁에서 집중이 더 잘된다는 걸 통감한 나날이었다. 그러다 “동네 공원에서 재미난 걸 하고 있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밴드가 공연 중이었다. 결연한 표정으로 어설피 연주하는 사내들은 “마치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의 주인공들 같았다”. 그들에게 반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만든 데뷔작 <휴가>에 이어 특성화고 학생들의 첫 사회생활을 그린 신작 <3학년 2학기> 개봉을 앞둔 이란희 감독이
[인터뷰] 첫 노동, 첫사랑만큼 고생스러웠던 -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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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에서 본 것>(What I Sense in the Matter)은 안무가 김보라의 작품이다. 현대무용을 잘 알지도 못하고 평소 자주 보는 편도 아니지만 이 공연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몸에 관한 의심과 질문.” “수차례 난임 시술을 받은 안무가의 경험을 통한 포스트휴먼적 몸의 형상화.” “의료 현장에서 몸은 단 한 가지의 모델로 환원되지 않는 다중적 유형의 장.” 나 역시 연구자로서 성형외과 현장에서 다중적 몸을 목격했고 수술을 받으면서 몸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기에 작품을 소개하는 이 문구들만으로 확신이 들었다. 이건 봐야 한다! 그리고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나는 무대 위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세 가지가 궁금했다. 과연 ‘몸 그 자체’를 어떻게 표현할까? 난임 시술이라는 ‘기술’을 어떻게 보여줄까? 보조생식기술에 대한 ‘여성’의 관점을 어떻게 드러낼까? 현대무용의 문외한답게 처음에는 무용수들이 난자와
[임소연의 클로징] 내가 달걀에서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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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취업으로 1년 전 먼저 부다페스트로 떠난 아내를 만나기 위해 송진욱 감독은 두 아들과 아버지까지, 총 삼대가 함께하는 유라시아 횡단을 계획한다. 육로상 17000km에 달하는 광주광역시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의 긴 여정에서 이들이 택한 교통수단은 다름 아닌 전기자동차.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는 여행답게 송가네 삼대는 갖은 난관과 마주하게 된다. 러시아에선 전쟁의 위험을 피해야 했고, 중앙아시아에서는 전기차 충전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송송송 가족여행: 전기차 지구횡단>은 국내 최초 전기차 유라시아 횡단에 도전한 삼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계획처럼 이뤄지지 않는 돌발 상황의 연속에도 끈끈한 가족애가 돋보인다. 드론 카메라를 이용한 각국의 광활한 풍경과 낯선 이방인들이 베푼 온정을 바라보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여행기다.
[리뷰] 가족애는 전기차를 타고, <송송송 가족여행: 전기차 지구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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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엔 ‘뭐라도 하고 싶으나 뭘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뒹굴뒹굴, 별다른 목적 없이 사는 유미(구보 시오리)가 그렇다. 반대로 유미의 룸메이트 루카(유나 다이라)는 뮤지션의 길을 묵묵히 가는,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잠자는 바보>는 이 두 사람을 주축으로 하여 일어나는 일상을 그린다. 때론 연애 문제로, 꿈의 이야기로, 생계의 부박함으로 엮이며 사는 룸메이트의 하루하루를 꽤 타율 높은 개그 만화처럼 유유자적하게 그리다가 음악 시퀀스를 통한 홈런도 때린다. 느린 듯 빠른 듯 묘하게 엇박자를 치는 영화의 템포는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천국대마경>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 원작자 이시구로 마사카즈 특유의 여유로운 진중함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리뷰] 뭐라도 하고 싶은데 뭘 할진 모르겠는 여러분께, <잠자는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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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윤세아)는 불륜한 남편과 이혼한 후 8살 딸 지우(윤별하)와 살기를 택한다. 아침마다 보험사로 출근해야 하는 그녀는 몸이 약한 지우를 위해 베트남인 가정부 수진(리마 탄 비)을 고용한다. 대신 집 안 곳곳에 홈캠을 설치하고 손님을 들이지 말라는 조건을 내건다. 성희는 직장에서 홈캠으로 지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던 중 수진과 지우의 이상 행동을 보게 된다. 그즈음 수상쩍은 아랫집 남자(권혁)가 성희의 집을 서성거린다. <홈캠>은 <자기만의 방>을 연출한 오세호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2000년대 유행한 J호러와 <파라노말 액티비티> 등 파운드 푸티지 호러의 컨벤션에다 최근 유행하는 무속 소재를 더했다. 여러 익숙한 요소가 잘 어우러지나 기시감을 만든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헐거운 서사와 과잉보호와 무한경쟁 등 주제를 퇴색하게 하는 반전도 마찬가지다.
[리뷰] 00년대 유행한 호러를 양껏 쏟아부은 부대찌개 호러, <홈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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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86년, 초자연현상 조사관 에드(패트릭 윌슨)와 로레인(베라 파미가) 워렌 부부는 은퇴 후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딸 주디(미아 톰린슨)와 토니(벤 하디)의 결혼식이 임박한 시점에 워렌 부부에게 원한을 품은 악령이 등장한다. 악령은 워렌 부부의 친구인 고든 신부를 죽이며 워렌 부부를 뒤흔든다. 악령을 볼 수 있는 로레인의 초능력을 이어받은 주디는 악령이 빙의한 스멀 가족의 집으로 간다. <컨저링: 마지막 의식>은 <컨저링>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패트릭 윌슨과 베라 파미가는 이 영화를 끝으로 워렌 부부 역에서 은퇴한다.<컨저링> 시리즈의 공식을 되풀이하지만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만큼 팬 서비스를 삽입했으며 스펙터클을 대폭 늘렸다. <죠스>를 보는 듯한 후반부 거울 시퀀스는 컨저링 유니버스를 총괄하는 제작자 제임스 완이 추구하는 블록버스터 호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리뷰] 할리우드 고전 블록버스터의 향수를 배부를 때까지 묵직하게, <컨저링: 마지막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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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진수(김법래)는 최근 들어 아내 연정(김혜은)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목적이 불분명한 외출이 잦아지고 집안일에도 빈틈이 생기자 진수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진수가 아내의 불륜 증거를 찾느라 바쁜 와중에 가족은 한층 복잡한 상황에 놓인다. 연정은 건축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재취업을 준비하겠다고 하고, 고등학생 딸 미나(김보윤)는 그동안 해오던 피아노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갈등은 깊어지고 함께할 시간은 줄어들면서 진수의 가족은 진심을 나눌 기회에서 멀어진다.
제2회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 대상작인 <가족의 비밀>은 슬픔으로 묶인 감정을 하나씩 풀어내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들이자 오빠인 승현(박현우)을 사회적 참사로 잃은 가족을 단순히 슬픈 유가족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직업을 고민하고 뜻밖의 사건을 겪으며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인물들의 일상을 통해 유가족 서사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코미디 장르를 선택하면서도 상처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세
[리뷰] 슬픔과 그리움에서 빠져나와 희노애락의 일상으로, <가족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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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말하지 못한 비밀을 품고 산다. 그 비밀이 언제,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관계가 무너질 수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비밀일 수밖에>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적인 풍경 속에 숨겨진 균열과 묻어둔 진실을 포착한 작품으로,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여러 인물이 머물게 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표면적으로는 결혼을 앞둔 두 집안의 만남이지만 이면에는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상처와 감정이 켜켜이 자리한다. 김대환 감독은 가족이 가진 복잡한 감정을 탐색함과 동시에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건 무엇이고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심각하거나 어둡지 않은 분위기로 웃음 포인트도 곳곳에 마련돼 있다. 휴직 중인 교사 정하(장영남)의 집에 예비 사돈 하영(박지아)과 문철(박지일)이 갑작스럽게 방문하면서 숨겨왔던 정하의 비밀이 폭로되는 이야기다. 비밀은 다름 아닌 정하의 성정체성이며, 정하는 애인 지선(옥지영)과 동거 중이다. 서사의 중심에 있는
[리뷰] 말 못 하게 만드는 실체에 대하여, <비밀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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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되었을 때 영화는 몸을 감각하며 20세기 영화의 질문을 연장했다. 20세기에 영화는 기억을 생산하고, 기억을 보관하는 창고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스크린 위로 우리가 기억하는 얼굴이 투사되었고, 스크린의 얼굴이 우리의 기억을 만들었다. 우리가 보았던 얼굴, 우리를 바라보는 얼굴의 예술.
21세기를 여는 영화가 기억을 잃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은 영화가 여전히 기억의 예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근교 자동차도로에서 교통사고를 겪은 여성이 있다. 여성은 자기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여성은 낯선 가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데, 이름을 묻는 주인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이때 여성은 집 안 욕실 벽에 붙은 고전 할리우드 시기 영화 <길다>(1946) 포스터에서 리타라는 이름을 훔친다. <길다>는 이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에 리타 헤이워스의 이름, 매혹하는 여성의 이미지, 정체성과 속임수, 죽은 자의 회귀라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또 다른 응답 - 21세기 영화의 감각 불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