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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다니엘손 <세계 그 자체>
과학은 우리가 세계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 보여준다. 암튼 세계는 인간 중심적이지 않다는 것.
하마구치 류스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선명하게 기록돼 있다! 그런 것에 나는 큰 인상을 받고 호기심을 갖게 되며 훅 끌린다. 이 영화는 내겐 ‘그런 것’.
음악가 샘 겐델
나에겐 가장 새로운 음악가라고 느껴진다. 그가 참여한 모든 음악을 체크하며 즐긴다.
공연 <77쑈>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내가 알고 있는 공연 중, 이 공연에 항상 가장 큰 관심이 있다.
마포구
내가 거주하며 일하는 동네이자 내 최고의 여행지. 심지어 나는 마포구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LIST] 백현진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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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는 주크박스 뮤지컬, 이라고 첫 문장을 쓰려다 주크박스라는 비유 자체가 너무 옛날 표현은 아닌가 하며 잠시 주저했다. 뮤지컬을 위해 새로 넘버를 창작하지 않고 기존 뮤지션의 노래를 서사화해 재구성한 뮤지컬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일컫는다. 아바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올 슉 업> 등이 대표적이다. <광화문 연가>는 가수 이문세와의 협업으로 대중음악사에 족적을 남긴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광화문 연가>는 기성 뮤지션의 곡을 무대 서사로 재편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곡이 (좋은 의미로) 중장년 관객들을 공략하는 ‘옛날 감성’의 노래라는 점에서 흔쾌히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칭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둔 명우는 생을 떠나기 1분 전 신비의 존재 월하와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게 된다. 갓 스무살이 된 1980년대에 만난 첫사랑 수아와의
[culture stage] 광화문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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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부탁해>(JTBC)가 돌아왔다. 5년 만에 “원조 국민 쿡방”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예전 모습 그대로. 김성주와 안정환은 여전히 특유의 입담과 적절한 ‘깨방정’ 진행으로 게스트와 요리사들이 프로그램에 편안하게 스며들게 한다. 서로를 ‘디스’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절친’인 요리사들의 요리 대결도, 요리하는 장면을 보다보면 어느새 군침이 도는 것도 익숙하다. 에드워드 리, 최강록, 이미영, 박은영 등 2024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했던 요리사들이 새롭게 투입된 것 빼고는 변한 게 없다. 심지어 불균형한 성비까지 그대로다.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은 프로그램에 독일까, 약일까? 포맷이나 진행 방식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대중문화 생태계에서 게으른 기획이라 여겨지기 쉽다. ‘올드’한 것으로 취급되어 외면당할 수도 있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인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culture tview] 냉장고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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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이후 레나타 레인스베를 만날 일이 부쩍 늘었다. 몇주 전 레인스베의 주연작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가 개봉했고 <무죄추정>도 레인스베가 제 몫을 다한 Apple TV+의 시리즈였다. 레인스베의 새로운 얼굴은 <언데드 다루는 법>에서도 펼쳐질 예정이다. 안나(레나타 레인스베)는 어린 아들을, 데이빗(앤더스 다니엘슨 라이)은 아내 에바를 잃었다. 토라(벤테 보르숨) 또한 동성 연인 엘리자베트를 먼저 보냈다. 어느 날 원인불명의 정전이 벌어지고, 세상을 떠난 이들이 시체의 형상 그대로 오슬로에 돌아온다. <렛 미 인> <경계선> 등을 통해 북유럽 호러의 인장을 만든 욘 A. 린드크비스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기생충> <추락의 해부> <아노라> 등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북미에 배급한 네온(NEON)의 감각을 믿어봐도 좋을 영화다. <
[coming soon] <언데드 다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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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이고 실험적인 콘텐츠 전략을 선보이는 중이다. 미국내셔널풋볼리그(NFL)의 크리스마스 매치업과 같은 이색적 스포츠 콘텐츠, 어김없이 전세계적 열풍을 도모 중인 <오징어 게임> 시즌2,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의 대표 프로그램인 <WWE RAW>의 독점 스트리밍까지. 넷플릭스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NFL의 크리스마스 매치업은 스포츠 콘텐츠를 향한 넷플릭스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첫걸음이었다. 사고 없는 완벽한 생중계는 물론 비욘세의 하프타임 이벤트 공연까지, 슈퍼볼 경기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경기 중간 넷플릭스의 새로운 콘텐츠 광고를 배치하는 등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전략도 효과적이었다. <오징어 게임> 시즌2는 글자 그대로 난리가 났다. 3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이트 진로, 오뚜기 등 다양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2025년의 넷플릭스를 규정하는 네 가지 키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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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달력 교체하는 날이다. 매년 새해가 오면 이렇게 되뇌어왔다. 지난 1년의 후회와 다가올 새해에 대한 부담감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주문. 한해의 끝자락에 설 때마다 매번 우울감에 취한다. 1년 동안 해놓은 일을 정리하다 보면 살짝 초라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내년엔 뭔가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싫었다. 그래서 종종 냉소주의의 주문을 되뇐다. 1년의 끝과 시작이란 그저 숫자일 뿐, 괜한 의미 부여하지 말자. 자책도 부담도 내려놓자. 아무것도 아니다.
올해는 그런 주문을 되뇔 필요가 없었다. 일상이 무너진 탓에 연말연시 준비된 여러 순간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매년 소소한 우울감에 시달렸는데 막상 자책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보니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2024년 12월 이후 이어진 거대한 상실 앞에서 한국 사회는 일제히 얼어붙었다. 숨쉬기가 어렵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몸이 아프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최선의 최선, 30주년을 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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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마키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 <멘> 등 독특한 비주얼과 공상과학적 상상력으로 만드는 작품마다 평단의 주목을 받은 앨릭스 갈런드가 잠정적인 감독 은퇴를 선언했다. 다시 각본가로 돌아가 다른 감독이 자신의 텍스트를 시각화할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본래 <28일후…> <선샤인> 등 영화의 각본을 써 이름을 날린 갈런드는 자신이 쓰고 연출한 모든 영화에서 일관된 인장을 새겨왔다. 그의 신작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또한 흔한 전쟁영화가 아니다. 갈런드만이 건넬 수 있는 질문과 사유가 영화 곳곳에서 산탄하는 갈런드식 전쟁물이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의 개봉을 맞아 앨릭스 갈런드의 세계를 돌아보았다.
“제목에 ‘워’ (War)가 들어가는 바람에 기대했단 말이야. 이럴 거였으면 ‘프레스’(Press)라고 제목을 짓든가.” 한 관객이 <시빌 워: 분열의
[기획] 윤리, 분열, 그리고 전쟁, <시빌 워: 분열의 시대>로 읽는 앨릭스 갈런드 작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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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억압과 핍박, 부자유로 점철된 1908년, 일제강점기. 사계절 내내 겨울 같았던 엄혹한 시절을 생생히 담기 위해 홍경표 촬영감독은 카메라 아리 알렉사 65(ARRI ALEXA 65)를 들어올렸다. 광활한 아이맥스 스크린에 펼쳐지는 독립운동은 음울하고 서글픈 시대상과 결연한 독립투사의 전의가 뒤섞여 처연하게 그려진다. 꽁꽁 얼다 못해 부서질 것만 같은 두만강 오프닝 시퀀스부터 역사가 기억하는 절규 섞인 처단의 장면까지 홍경표 촬영감독이 목격하고 기록한 이미지를 함께 나누었다.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 장면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수한 인파 속에서 안중근의 활약을 따라가는 동시에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등 다른 인물까지 한꺼번에 잡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위해 홍경표 촬영감독은 한대의 카메라만 쓸 것을 선택했다. “한칸 한칸 앞으로 나아가면서 촬영했다. 패닝 기법을 쓰면서 카메라 자체는 많이 안 움직였다. 다소 옛날에 사용하던 촬영 방식이다. 물론 인물을
어둠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얼빈> 홍경표 촬영감독의 포토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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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국과 어울리는 영화라는 반응이 많더라.
<남산의 부장들> 때는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터졌는데 <하얼빈>은 비상계엄 이후에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 <남산의 부장들>의 시대 배경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 비상계엄을 겪은 뒤 살면서 다시 경험하지 못할 줄 알았다. 우리가 역사를 잊는 순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비극의 역사일수록 되짚어봐야 한다. 그래야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월14일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에서 “1980년 5월 광주는 2024년 12월의 우리를 이끌었다. (중략)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다”고 했다. <하얼빈>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인터뷰]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걷다, <하얼빈> 우민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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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만강을 건너 연추로 오려 했지만 살아 돌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죽은 동지들의 참담한 비명이 귓가를 맴돌고,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처참한 형상의 시신들이 눈앞을 떠돌았습니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들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대한제국을 유린하는 일본 늑대 우두머리, 늙은 늑대를 반드시 죽여 없애자고.”(<하얼빈>의 안중근 대사 중)
<하얼빈>은 영웅 안중근(현빈)의 실패로 시작한다. 그가 이끄는 독립군은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무찌르지만 카메라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전쟁의 참상을 잔혹하게 담는 데 집중한다.
영웅보단 인간으로, <하얼빈>이 안중근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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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4일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이 공개됐다. 개봉 이틀 만에 관객수 125만명을 돌파하며 연말 극장가의 승자가 됐다.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뮤지컬 <영웅>부터 김훈의 소설 <하얼빈>까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를 다룬 작품은 많지만 영화 <하얼빈>은 고집스러운 실제 로케이션과 첩보물의 문법으로 익숙한 소재를 다르게 풀어낸다. 실제 역사에서 <하얼빈>이 취한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본 긴 리뷰와 함께 우민호 감독의 인터뷰, 홍경표 촬영감독의 포토 코멘터리를 실었다. 올해 한국영화 중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하얼빈>을 좀더 내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하얼빈> 리뷰와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산 자여 따르라’,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 우민호 감독 인터뷰와 홍경표 촬영감독의 포토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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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엔 식구들끼리 더 자주 다퉜다. 한국영화 속에서 말이다. 동서고금의 서사 예술에서 가족이 한 사회의 숨은 풍경을 전경화하는 역할을 맡아왔다는 점을 상술할 필요는 없겠다. 최근 몇해 사이 한국영화에서 가족은, 완성형으로 치닫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본격화하는 개인의 곤경을 집약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기생충>(2019)은 몹시 발빠른 출발이었다. 올해 <장손>을 비롯해 <딸에 대하여>, <은빛살구>(2025년 1월 개봉예정), <부모 바보>, <해야 할 일>에 이르는 작품들이 위의 풍경을 앞세웠거나 갈등의 동기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한국 근현대사에 흘러온 ‘가족의 역사’를 우선 개괄할 필요가 있겠다.
전후(戰後) 산업화를 이루기까지 한국의 가장 주요한 자원은 고품질 저비용의 노동력이었다. 가족은 근면한 노동력 공급원으로서 사회간접자본이었다. 이를 ‘사회인프라 가족주의’로 명료하게 개념화한 연
‘키워드 - 유산(遺産)들’, 2024년 한국영화는 보통(?)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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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경향을 묻는 질문 앞에서 뜬금없이 떠오른 키워드는 ‘사이버 레커’였다. 사이버 레커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된 작품은, 이들 존재를 직접적으로 서사 안으로 끌어들인 <베테랑2>나 <지옥2>가 아니라 <살인자ㅇ난감>과 <노 웨이 아웃: 더 룰렛> 등이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이 대중에게 정의를 어필하는 방식이 사이버 레커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몇번을 망설였지만, 그럼에도 내 머릿속에는 사이버 레커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사이버 레커 영화 (드라마)에 대한 단상
사적 처벌(또는 사적제재)이 최근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트렌드라는 사실을 굳이 길게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사법제도 등의 공적영역에 대한 불신이 이러한 경향을 낳은 원인이라는 일반적 견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러한 입장을 부정하지 않지만,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어지럽게 뒤섞인 지금의 상황을 가장
‘키워드 - 사이버 레커’, 2024년 한국영화는 사이버 레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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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체를 숨기고 다른 사람의 몸에 깃드는 외설적인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2024년의 한국영화가 거듭해서 스크린에 불러낸 것은 불특정한 신체에 소란스럽게 덧씌워지는 귀신들의 목소리다. 올해 최대의 흥행작이자 화제작인 <파묘>의 악령과 요괴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가 불러낸 ‘귀신’이란 인간의 주변에서 인간을 잠식하고 흉내 내는 비인간 존재(혼령, 외계인, 디지털 프로그램 이미지)는 물론이고 특정한 목적으로 다른 인격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가상의 정체성을 모두 통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김태용의 <원더랜드>에서 죽거나 혼수상태에 빠진 인간은 디지털로 생성되는 이미지를 매개로 가상의 프로그램 ‘원더랜드’에서 되살아난다. 스크린과 모니터 위에서 이미지로 다시 살아난 태주의 다정하고 이상적인 목소리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낯선 회복기를 겪는 태주의 건조한 목소리와 나란히 놓인다. 류승완의 <베테랑2>에
‘키워드 – 복화술’, 2024년 한국영화는 떨쳐낼 수 없는 목소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