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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의 한 은행이 정체불명의 조직에 수십억원을 탈취당한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최첨단 감시 시스템마저 무력화된 상황. 경찰은 은퇴한 베테랑 형사 황더중(성룡)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보안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해커들의 농간에 황더중은 자신의 모든 노하우가 녹아 있는 ‘올드스쿨’ 전략을 꺼내든다. <포풍추영>은 퇴역 형사와 거대 범죄 조직의 추격전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다. 성룡은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모든 액션을 직접 소화하며 건재함을 증명한다. 노쇠해가는 과거의 전설이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탑건: 매버릭>에 견줄 만한 감동을 자아낸다. 다만 감시 사회의 맹점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이 전형적인 액션 장르로 회귀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시네마 초청작.
[리뷰]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건재함을 뽐내는 백전노장, <포풍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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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하석진)은 육상선수다. 국내 남자 100m 최단기록 10.07초를 보유하고 있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려면 0.02초를 줄여야 한다. 은퇴 압박을 받는 데다 아내와는 이혼 직전이라 엄마 집에 얹혀사는 구영은, 매니저 준수(이순원)의 도움으로 기록 단축을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구영의 스포츠 드라마는 고등학생 승열(이신영)의 청춘 로맨스와 교차된다. 육상부 지은(다현)의 러닝 태도에 반한 승열은 유망주 근재(윤서빈)의 라이벌을 자처하며 무작정 훈련을 시작한다. <전력질주>는 김국영 선수가 세운 실제 기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영화로,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직선 트랙을 달린다. 기승전결과 목표가 뚜렷하며 의외의 한방도 있으나, 정해둔 결승선에 도달하기 위해 인물과 서사를 평평하게 다듬고 익숙한 허들을 배치한다. 낯익은 감각이 들 때 새어나오는 것이 웃음인가 한숨인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리뷰] 직선 트랙을 달리는 복고풍 드라마, <전력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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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정확한 붓 터치로 일상의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우리에게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에 관한 기록은 다른 거장들과 달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결국 페르메이르의 세계에 다가가는 길은 오직 그가 남긴 작품에 집중하는 방법뿐이다. <베르메르: 위대한 전시회>는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스크린으로 옮겨 담는다. 영화는 첨단 장비를 활용해 캔버스 표면 아래 숨은 밑그림과 수정의 흔적을 추적하며, 평범한 순간을 특별한 장면으로 만드는 화가의 재능에 주목한다. 빛의 반사와 공간의 결을 집요하게 탐구한 그의 화법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영화의 담백한 연출이 오히려 작품에 대한 자신감으로 느껴진다.
[리뷰] 기교 없이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을 투명하게 비춘다, <베르메르: 위대한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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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거래하는 시장이라는 강렬한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 결핍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귀시의 문을 두드린다. 인정욕구, 아름다운 외모, 성적과 실적, 유명세까지. 서로 다른 갈망은 귀신의 힘을 빌려 실현되지만 거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귀시>는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에 가까운 형식으로 풀어낸다. 한 인물의 일화가 끝나면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독립적인 서사들을 이어가지만 서사를 응집하는 힘은 다소 약해 각각의 욕망이 단순 나열되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귀신 시장이라는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어낸 발상이 낯설고 신선해 구조적 빈틈을 메운다. 다수의 K팝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탁월한 감각을 인정받아온 홍원기 감독은 <귀시>를 통해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이 어떻게 균열을 일으키고 파국을 불러오는지 적절히 포착해낸다.
[리뷰] 납득할 수 있어야 무서울 수 있다, <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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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두산중공업의 석탄발전소 수출을 저지하기 위해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강은빈, 이은호는 게릴라 시위에 나선다. 기후 위기의 절박함을 드러내기 위한 활동으로 인해 두 사람은 법적 분쟁에 휘말린다. 활동가 은빈은 재판이 진행되며 자신이 기후 위기 문제에 관심을 품게 된 여러 이유를 설명한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영화는 폭염에 취약한 쪽방촌, 석탄발전소 가동을 재개한 삼척, 폭우와 가뭄으로 한해 농사를 망친 농부들까지 기후 재난의 현장으로 뻗어간다. 다큐멘터리 <바로 지금 여기>는 두산중공업 시위라는 재판에서 시작하여 작금의 세대가 직면한 기후 재난의 현실을 폭넓게 살핀다. 다만 각 담론들이 유기적인 호흡을 구축하며 새로운 의제를 던지기보다는 단편적인 나열에 그친다. 사회 각 계층에서 겪고 있는 기후 불평등의 사례집보다 4년에 걸친 법적 투쟁에 더 마음이 가는 이유다.
[리뷰] 사례집보단 투쟁의 지난한 시간에 마음이 간다, <바로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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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사진전을 연 쑤밍이(정여희)는 필름 카메라 셔터와 함께 2013년 여름으로 돌아간다. 등굣길 아침마다 동선이 겹치는 옌리야오(시백우)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쑤밍이는 멀찍이 그의 사진을 찍으며 마음을 키워온다. 다소 왈가닥 구석이 있는 그는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 바지를 입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보수적인 학교는 그를 두고 복장불량이라 지적하고, 이를 지켜본 옌리야오만이 그에 대항하는 시위를 연다. 빠르게 가까워진 둘. 옌리야오는 제안 섞인 고백을 한다. “이유는 묻지 말고 졸업 때까지 사귀자”고. 푸른 잎사귀, 길어진 오후 그림자, 느슨한 바람 등 여름 풍경을 가지런히 배열한 <썸머 블루 아워>는 간질거리는 풋사랑의 맛을 아름답게 펼쳐낸다. 쑤밍이의 묵중한 가족사나 청옌(임자굉)과의 우정 등 한데 뒤섞이기 어려운 주제들이 한꺼번에 나열되기도 하지만, <상견니>의 애절함을 통과한 배우 시백우의 소년미가 무척 인상적이다.
[리뷰] 그림자 지는 오후, 교실 풍경은 그리운 여름 소다맛, <썸머 블루 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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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 로즈(올리비아 콜먼)와 테오 로즈(베네딕트 컴버배치). 금실 좋은 이 영국인 부부는 미국에 정착한 지 10년째다. 테오는 미국에서도 스타 건축가로 이름을 떨치는 반면, 아이비는 파인다이닝 주방을 수놓던 영국에서와 달리 자신의 요리 실력을 집 부엌에서만 사용한다. 테오는 그런 아이비를 위해 마을의 빈 건물을 매입하고, 아이비는 게 요리 전문점을 열며 소소한 사업을 시작한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 전례 없는 태풍이 몰아친다. 이윽고 모든 관계가 일시에 뒤집힌다. 테오가 하루아침에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잃은 반면 아이비는 눈떠보니 스타 셰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로즈 부부의 가계 부양은 아이비가, 살림은 테오가 도맡는다. 관계의 변화는 수면 아래 도사리던 부부 사이의 갈등을 조금씩 증폭하기 시작한다.
<더 로즈: 완벽한 이혼>의 장르는 코미디다. 또한 이 영화는 80년대 할리우드 흥행작인 <장미의 전쟁>을 리메이크했다. 따라서 이 작품으로부터 혼인 제도
[리뷰] ‘타이밍’을 정확히 인지한 할리우드 블랙코미디, <더 로즈: 완벽한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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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초현실적 설정도 없고, 종교도 등장하지 않는다. 딱히 폐쇄적인 집단으로 배경을 좁히는 것도 아니다. 연상호의 어느 작품과 가장 비슷하냐고 묻는다면 꼽을 수는 있으나 말을 얹기 조심스럽다. 선입견이나 기대를 제하고 관람하는 편이 나으리란 판단이 들어서다. <얼굴>은 2018년 그래픽노블 형태로 먼저 세상에 공개됐다. 영화화하며 일부 캐릭터를 압축하는 등 각색이 이루어졌으나 큰 줄기와 틀은 같다. 동시에 단지 원작에 충실한 영화라고 뭉뚱그리기엔 할 말이 많은 작품이다.
동환(박정민)은 공방 ‘청풍전각’의 장인 임영규(권해효)의 아들이다. 선천적 시각장애가 있는 영규는 손의 감각을 바탕으로 도장을 파는 시각 예술가다. 기적적인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칭송받는 그에 관한 TV다큐멘터리가 한창 촬영되고 있다. 와중 동환은 40년 전 집을 나간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 정영희(신현빈)가 당시 이미 사망했고 어쩌면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는 소식
[리뷰] 시대가 파낸 음각을 조명하는 미스터리극,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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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에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일찍이 대두되고 적극적으로 활용된 곳은 단연 시각효과(Visual effect) 부문일 것이다. 2025 경북 국제 AI·메타버스 영상제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이주원 덱스터 스튜디오 시각효과 감독과 김준형 M83 스튜디오 부사장이 단상에 올라 AI가 접목된 VFX의 현황을 현실적으로 정리했다. 각 강연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덱스터 스튜디오 이주원 감독은 ' AI 기술 발전에 따른 VFX 산업의 변화'를, M83스튜디오 김준형 부사장은 'VFX에 적용되는 AI 기술'의 사례를 설명했다. 두 강연은 공통적으로 현재 영화가 제작되는 모든 단계에 AI가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VFX가 적용되는 단계는 총 11개에 달한다. 컨셉 아트, 매치무브, 로토스코프, 모델링, 리깅, 애니메이션, 텍스처링, 라이팅, 렌더링, 마테 페인팅, 컴포지팅이 여기에 해당한다.
먼저 컨셉 아트는 작품 무드를 미리 확인하는 이미지를 가리키지만
[특집] VFX는 AI를 만나 어떻게 성장했나 - AI 영상제작 마스터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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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묶여있다니." 여느 모험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우연히 율도국에 떨어진 걸리버 이야기를 담는다. 그곳에서 걸리버는 모든 이를 평등하게 대하는 이상적인 지도자 홍길동을 만난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인물들의 운명적 만남이라는 신선한 소재는 어떻게 출발했을까. <걸리버 율도국 이야기>의 원작과 각본을 맡은 박진호 문화유산디지털복원가는 오랜 리서치를 기반으로 그간 AI 영화에 보완되어야 할 것들을 분석했다. "글로벌 AI 영화를 모두 보면서 치명적인 문제를 두 가지 발견했다. 먼저 구체적인 스토리가 없다는 점. 그리고 화려한 기술한 현란하게 보여줄 뿐,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명확한 철학이 없다는 점. 그렇게 인간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스토리를 가장 먼저 찾아 나섰다." 이 과정에서 박진호 문화유산디지털복원가는 AI의 유연함처럼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기로 했고, 그렇게 걸리버와 홍길동이 만나는 개성 넘치는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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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헤리티지 AI 영화, 시공간을 뛰어넘으며 - 대상 <걸리버 율도국 이야기> 박진호 연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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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고 화려한 국악 사운드와 신나는 힙합 비트의 유려한 결합. 신라 화랑을 연상시키는 굳건한 남성과 경주를 둘러싼 노랫말까지. 2025 경북 국제 AI·메타버스 영상제의 종합대상을 수상한 <꽹>은 3분가량의 뮤직비디오다. 올해 대상을 수상한 <걸리버 율도국 이야기>의 공동 연출자이기도 한 에임즈 미디어 소휘수 대표는 주우성 실장과 APEC 특별 부문으로 참가했다. 메인 키워드는 '경주, APEC, 신라'. 역사와 전통이 지닌 고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역동적이고 젊은 무드를 불어넣었다. "에이펙과 경주. 두 키워드를 고려할 때 한국 색깔을 선명하게 입힐 수록 기획 의도가 명확해질 거라 생각했다. 다만 정체된 과거의 느낌이 아니라 글로벌하고 유연한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콘셉트가 중요했다." (소휘수 대표)
이 과정에서 챗GPT, 미드저널, 클링, 구글 VEO3, 수노 등 다양한 AI 툴을 활용했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기간은 단 3.5일. 짧은 기간에도 종합
[인터뷰] 모두가 상상하고 창작하는 세상 - 종합대상 <꽹> 소휘수, 주우성 연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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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북 국제 AI·메타버스 영상제에서 많은 이의 주목을 이끈 것은 바로 서양화가 소피 오 작가의 체험형 미디어아트 전시다. 사실주의에 근거한 서양화에서 출발한 소피 오 작가는 사실성과 추상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돌가루, 점토, 아교, 먹물, 모래, 유화 등 물성이 다른 여러 재료를 활용한다. 은은한 색감이 한데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특히 비밀스러운 사슴 형상은 순수한 생명의 신비한 느낌을 더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체험형 미디어아트 전시로 응용하기에 적합하다. 미스터리하고 장엄한 기운을 북돋는 분위기,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시각적 자극, 따뜻한 색상에 담긴 메타포까지, AI를 통해 새로운 체험으로 재탄생한 그림은 사람들의 경험과 감정을 내밀하게 연결한다.
전시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작은 방 하나가 나온다. 그리고 눈을 사로잡는 안내 문구 하나. '빛과 움직임으로 다시 태어난 작품을 만나보세요
[특집] 빛과 움직임으로 다시 태어날 때 - 서양화가 소피 오의 체험형 미디어아트 전시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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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인공지능의 발전 앞에서 많은 이들이 무력감을 느낀다. 인공지능은 정말 인간의 존재가치를 위협하는 대상일까. 기술적으로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무너뜨리고 모든 의미를 대체하고 말까. GAMFF 국제컨퍼런스 'AI, 산업 창조의 엔진이 되다'에서는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다스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공지능과 예술의 융합 가능성, 창작 사례, 최신 트렌드, 윤리적 이슈까지 폭넓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날에는 미국, 중국 등 다국적 패널의 참여로 실시간 AI 통역 기능이라는 독특한 풍경이 눈에 띄었다. 연사가 모국어로 연설하면 양쪽에 설치된 화면에 자동으로 자막이 나타났다.
먼저 인텔렉추얼 벤처스 CTO 에드워드 정의 기조 강연이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지금, 더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는가? 수치들을 보면 그렇다. 더 건강해지고 더 많은
[특집] 창의적인 인공지능 르네상스를 꿈꾸며 - GAMFF 국제컨퍼런스 'AI, 산업 창조의 엔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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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지음 창비 펴냄
나는 리더가 안 맞나봐, 한창 팀장 생활의 고독을 주변에 토로할 때마다 했던 말이다. 리더라기엔 팀원 둘뿐인 팀이지만 거기서도 후배들과의 세대 차이, 소통 불화를 느끼며 ‘내가 부족해서 팀 결과물이 이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당시 리더십 책을 한두권 읽었는데 겨우 그 정도밖에 읽지 않은 이유는 “난 이건 못하겠다” 싶은 카리스마 리더십에 대한 조언들이 대부분이라서였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을 지냈으며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재천 작가의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는 많은 자기계발서류의 리더십 책과는 다른 제안을 한다. 흔히 떠올리는 ‘강력하고 확고한 리더십’과 달리 그가 제안하는 리더십은 조용히 입은 다물고 숙론하며 잘 듣는 리더에 가깝다. 여러 협회의 대표와 회장직을 맡았던 그이지만 그 역시 ‘리더’는 하기 싫었고 더구나 학교에서 리더십 강의를 맡았을 때 안 하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생태학자답
씨네21 추천도서 -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