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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돈, 은도 돈, 화도 돈을 뜻한다”는 은화의 이름처럼 그는 명예보다 부와 권력을 좇으며 살아왔다. 전직 검사 출신으로 현재는 아파트 입주민 대표직을 맡고 있는데, 가장 위층에 거주하면서도 우성(강하늘)이 제기한 층간소음 문제에 휘말린다. 주민간 갈등을 최소화하려던 은화에게서도 점점 아파트와 관련된 비리가 드러난다. <폭싹 속았수다>의 광례 이후 배우 염혜란이 다시 서늘한 얼굴로 돌아왔다. “감독님들이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내게 자주 맡겨주신다”며 참여한 배우의 시선으로, 때로는 은화의 시선으로 염혜란은 은화와 <84제곱미터>에 관해 들려주었다.
-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감상이 어땠나.
시의성, 현실성이 있는 소재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감독님의 전작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처럼 현실과 밀착된 공포 스릴러란 점도 매력적이었다. 처음엔 은화라는 인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난 속으로 생각하는 게 겉
[인터뷰] 우아한 기득권층의 단호함, <84제곱미터> 배우 염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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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는 치솟고 집값은 떨어져 고통받는 직장인 우성(강하늘). 빚 갚는 것만도 괴로운데 정체불명의 층간소음에 시달리자 신경쇠약까지 뒤따른다. 배우 강하늘은 무너져가는 인물의 위태로운 감정선을 사실적인 터치와 기이한 만화적 감수성을 오가는 연기로 구현해냈다. 의심 없이 요약하고 싶다. <84제곱미터>에서 강하늘의 연기는, 그 자체로 보는 재미가 있다고. 올해 영화 <야당> <스트리밍>, 드라마 <당신의 맛>,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까지 상반기 내내 신작으로 연이어 인사했고 개봉예정 영화 <퍼스트 라이드>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 부지런한 그에겐 요즘 ‘월간 강하늘’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84제곱미터>는 그 가운데 강하늘의 끓는점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숨 고르기의 미덕을 아는 이 배우는 이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집을 가리킨다. “아무도 들이지 않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잠깐이나마 온전히 집을 누
[인터뷰] 반듯한 얼굴로 극한을 향할 때, <84제곱미터> 배우 강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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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평형’이라 불리는 아파트 전용면적 84제곱미터. 누군가에겐 성공의 척도이자 안정의 상징, 그리고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의 구체적 형태다. 하지만 김태준 감독의 신작 <84제곱미터>는 이 익숙한 프레임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영끌’해 덜컥 아파트를 마련한 우성(강하늘)이 곧 빚과 층간소음이라는 이중 감옥에 내몰리는 과정은 한국의 주거 현실과 그 이면의 어두운 욕망을 섬뜩하게 해부한다. 영화의 중핵인 배우 강하늘은 평범한 직장인에서 점차 편집증 환자로 변해가는 남자의 심리적 균열을 탐사하며, 관객의 연민과 불안을 동시에 자극한다. 우성의 이웃이자 아파트 입주민 대표인 은화 역의 염혜란은 권위와 냉철함으로 무장한 채 집값에 얽힌 이해관계를 절묘하게 구현했다. 윗집 남자 진호를 연기한 서현우는 극에 생동감 어린 긴장을 불어넣고 층간소음 문제의 미스터리를 더했다. 하우스 호러의 문법을 빌려왔지만, <84제곱미터>의 진짜 공포는 초자연적 존재가 아닌 냉랭
[기획] 그냥 잘 살고 싶었을 뿐인데, 영화 <84제곱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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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마사오란 이름의 무게는 쉽사리 가늠할 수 없다. 눈썹까지 하얗게 센 1939년생 노인, 1960~70년대 일본 영화미학의 최전선을 이끌었던 전위 영화계의 기수, 1974년부터 1997년 국제 지명수배를 통해 체포되기까지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에 참여했던 행동가. 이처럼 수많은 수식과 이력이 따라붙는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지만 그의 역사는 20세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00년 형기 만료 후 일본으로 강제송환된 그는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올해 일본에서 공개된 <도주>는 1970년대 일본의 반정부 조직이었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소속 기리시마 사토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49년 동안 도피의 삶을 살아온 그가 사망하기 며칠 전 자신의 정체를 세상에 공개했고, 아다치 마사오는 영화를 통해 그의 투쟁에 화답했다. 일본 정부의 출국금지 조치로 한국에 올 수 없는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 굉장한 애연가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하루에 얼마나 피우시길래. (본격
[인터뷰] 용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투쟁, <도주> 아다치 마사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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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의 총괄프로듀서를 맡은 고바야시 산시로는 2006년에 설립한 영화 제작·배급사 우즈마사(UZUMASA)를 통해 아다치 마사오 감독과 연을 이어오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일본 핑크영화의 대부 와카마쓰 고지 감독을 통해 시작됐다. 고바야시 프로듀서는 1970년대에 다수의 핑크영화에 출연했던 연극계 출신의 배우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 덕에 고바야시 프로듀서는 와카마쓰 고지 감독의 절친한 동네 술친구였다. “우즈마사 사무실과 와카마쓰 감독님의 사무실 중간에 있는 술집에서 자주 만났고, 내가 나타나면 감독님은 ‘우리 돈줄이 왔구나!’라며 반겨주시곤 했다.” 그러던 중 2012년 와카마쓰 고지 감독이 타계했다. 우즈마사는 장례식의 접수를 도맡았고 아다치 마사오 감독은 장례식의 위원장(한국의 상주와 같은 역할.편집자)을 맡았다. 이때부터 우즈마사는 아다치 감독의 <단식 광대> <레볼루션 +1>의 배급을 맡으며 협업했고, <도주>에 이르러선
[인터뷰] 역사의 풍화를 막기 위해, <도주> 고바야시 산시로 총괄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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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계의 가장 기이한 인물. 1939년생의 노장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만든 신작 <도주>(2025)가 7월19일과 20일 인디스페이스에서 관객을 만났다. <도주>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며 화제에 오르기도 했던 작품이다. 이번 상영회는 자주영화상영회와 <도주>의 제작·배급사 우즈마사가 공동주최한 ‘제3회 자주영화상영회 특별상영’으로 추진됐다. <도주>의 고바야시 산시로 총괄프로듀서가 내한하여 관객과 대화를 나눴고, 일본에 있는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화상 GV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직접 상영회에 오지 못한 이유부터가 그의 독특한 삶을 대변한다. 그는 현재 일본 정부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상황이다. 1974년부터 일본적군파(1970년대에 생겨난 반정부 게릴라 집단) 소속으로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 등에 참여한 그는 1997년 국제 범죄자로 체포되어 2000년 일본에 강제송환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묘함은
[기획] 투쟁으로서의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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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아랍영화제 개막작인 <아르제>는 거칠게 요약하자면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을 현대 레바논에 이식한 영화다. 싱글 맘 아르제(디아망 아부 아부드)는 광장공포증을 겪는 언니 라일라(베티 타우텔), 레바논을 벗어나고 싶은 아들 키난(빌랄 알 하므위)과 함께 파이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보다 많은 파이 주문과 신속한 배달을 위해 아르제는 키난에게 스쿠터를 사주지만 이내 도둑맞고 만다. 두 모자는 다양한 종교 종파가 존재하는 베이루트의 지역구를 다니며 스쿠터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아르제> 속 모자가 경유하는 도시의 일면은 곧 현대 레바논의 초상이다. 영화의 작가 겸 프로듀서인 루아이 크라이시를 만나 <아르제>와 레바논의 영화 이야기를 물었다.
- <아르제>가 지난해 베이징국제영화제, 트라이베카영화제 등 세계 각국에서 상영을 마치고 제14회 아랍영화제를 찾았다. 긴 여정이었을 텐데.
어딜 가
[인터뷰] 베이루트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르제> 작가 겸 프로듀서 루아이 크라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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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다큐멘터리가 개봉했다. <망국전쟁: 뉴라이트의 시작>(이하 <망국전쟁>)은 윤석열 정권에서 대거 기용된 뉴라이트 인사의 맥을 짚는다. 오래 추적할 것도 없이 이 다큐멘터리가 조명한 그 시작에 이승만 정권이 있다. 91분간의 짧은 다큐멘터리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변곡점을 가능한 한 많이 담고자 한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와 전국역사단체협의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망국전쟁>의 연출자 구진형 감독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 필모그래피는 다큐멘터리 <망국전쟁> 한편이다. 어떤 계기로 연출하게 되었나.
지금까지 여러 일을 했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이나 애니메이션 기획, 최근까지는 CG 관련 일을 했다. 대학원에서 영상을 공부했고 단편은 여러 편 작업했지만 장편을, 그것도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망국전쟁>은 지난해 여름 무렵부터 기획을 시작해 제작이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나는 지난해 1
[인터뷰] 진시의 맥을 짚기, <망국전쟁: 뉴라이트의 시작> 구진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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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바라보는 은진(김시은)의 표정이 오묘하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인 내가 과연 아이를 낳고 잘 기를 수 있을까.’ 복잡한 감정이 스친다.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비장애인 남편 호선(설정환)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불안정한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확신보다는 망설임이 크지만 부부는 그저 잘 모르겠는 상태로 한 생명을 품기로 결심한다. <우리 둘 사이에>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스크립터와 <최선의 삶> 조감독을 거친 성지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장애인의 일상과 임신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객을 그 삶의 안쪽으로 초대한다. 이야기의 중심은 장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임신이 불러오는 신체적 변화, 아이에 대한 불안과 책임감 등 여성들이 공유하는 경험과 감정을 담아내며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한다. 오는 7월30일 개봉을 앞두고 성지혜 감독을 만나 첫 장편을 완성하기까지 안고 있던 고민을 들었다.
[인터뷰] 불안해도 우리는 굴러간다, <우리 둘 사이에> 성지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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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일렉트로니카 밴드 캐스커는 지난 20년간 감정의 온도를 부드러운 질감의 전자음 속에 녹여내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캐스커의 리더인 이준오는 영화 <더 테러 라이브> <리틀 포레스트>와 드라마 <거래> 등의 음악을 담당한 음악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독보적인 음악적 색채를 자랑하는 그가 기묘한 분위기의 드라마를 만났다. 모든 사람의 성관계 이력을 붉은 선으로 보는 세계를 그린 안주영 감독의 <S라인>에 참여하며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장편 경쟁부문 음악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얻었다. 인터뷰장에서 트로피 실물을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던 이준오 음악감독과 함께 <S라인>의 작업기와 음악 세계 전반에 관해 나눈 대화를 전한다.
- <S라인>으로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장편 경쟁부문에서 국내 최초로 음악상을 받았다.
안주영 감독이 전한 출품 소식에 잘됐다는 축하의 문자와 농담 몇 마디를 보냈다. 출품 자체
[인터뷰] 특정될 순 없는 매력적 모호함, 이준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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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란 맘다니는 다가오는 뉴욕시장 선거를 앞두고 33살에 민주당의 후보로 지명된 자칭 ‘사회주의자’이다. 뚜껑을 열어보아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당선이 가장 유력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 대해 전세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지만, 내가 가장 주목해서 보고 있는 것은 그의 무료 버스 공약이다. 뉴욕시의 교통체증은 악명이 높고, 버스요금은 계속 인상되어 왔으며, 이것이 다시 자가용의 증가를 부추겨 교통체증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는 오래된 일이다. 이러한 대중교통의 미비함이 땀 흘려 일하며 도시를 지탱해주는 서민층에게 부담을 증가시키고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조란 맘다니 후보는 이에 버스 전용 노선의 확충뿐만 아니라 무료 버스의 실현을 공약으로 내걸고 나섰으며, 이는 많은 이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기후 및 환경 악화의 문제와 맞물려서 대중교통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높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버스전용차선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은 꽤 오래전부터
[홍기빈의 클로징] 조란 맘다니의 무료 버스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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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3일, 윤석열의 불법 계엄 선포 이후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춰 섰다. 격동의 현대사를 견뎌온 한국인에게 역사를 거스르는 권력의 폭주는 결코 낯선 광경이 아니다. 단죄받지 못한 친일과 독재의 잔재 위에서 이승만과 윤석열은 절묘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망국전쟁: 뉴라이트의 시작>은 제목이 암시하듯 김덕영 감독의 문제작 <건국전쟁>의 거울상을 자처한다. 백악관 만찬에서 한가롭게 노래를 부르는 윤석열의 모습과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는 긴박한 순간을 교차한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가 지닌 서늘한 유머 감각을 단박에 드러낸다. 그러나 아쉬운 지점도 분명하다. 자막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보 전달 방식은 영화적 리듬을 해친다. 또한 AI 기술을 활용하여 현대사의 괴물들을 조롱하는 데 그치는 이미지 전략이 과연 광장의 뜨거운 열망을 온전히 계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이 제작 총괄과 내레이션을 맡았다.
[리뷰] When they go low, We (have to) go high.(미셸 오바마), <망국전쟁: 뉴라이트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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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샘 록웰), 스네이크(마크 마런), 샤크(크레이그 로빈슨), 피라냐(앤서니 라모스), 타란툴라(아콰피나)로 구성된 ‘배드 가이즈’. 이들은 도둑 생활 을 청산하려 고군분투하지만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어느 날 의문의 금속 맥거피나이트가 도난당하고, 배드 가이즈는 이 기회를 틈타 개과천선을 증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들은 범인이 파둔 함정에 빠져 누명을 쓴 채 또 한번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인 <배드 가이즈>가 속편으로 돌아왔다. 전작을 연출한 피에르 페리펠도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캐릭터의 수와 규모가 1편에 비해 늘었지만 첩보물의 서스펜스와 스턴트의 쾌감은 전작 못지않다. 3D 효과를 충실히 살린 그래픽노블풍의 2D 작화가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화려한 연출과 어우러지는데, 여기에 쉴 틈 없는 액션까지 등장하며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동명의 동화가 원작이다.
[리뷰] 배우 걱정 안 해도 되는 <미션 임파서블>. 안전바 꽉 조인 롤러코스터 재미, <배드 가이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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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평생에 걸쳐 사랑할 수 있을까. 헬레네 크뢸러 뮐러는 누구보다 먼저 반 고흐의 재능을 알아본 인물이다. 고흐의 죽음 이후 30년에 걸쳐 작품을 수집한 그녀는 1938년 마침내 그를 기리기 위한 미술관을 설립한다. 그녀가 이토록 고흐의 예술 세계에 감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작품에 깃든 삶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사회로부터 멸시받는 약자들에게서 신의 현존을 느꼈고, 그들을 통해 무한한 세계로 도약하고자 했다. 영화 <반 고흐. 밀밭과 구름 낀 하늘>은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역사를 따라가며 예술가와 관객의 삶이 공명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비주얼이펙츠 없이 붓 터치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훑는 정공법은 고흐의 시선을 재현하는 연출 못지않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숭고한 평행 이론은 헬레네가 끝내 자신의 컬렉션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으며 완성된다.
[리뷰] 우리가 계속해서 고흐를 돌아보는 이유, <반 고흐. 밀밭과 구름 낀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