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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미식(신미식). 그에게는 언젠가 아프리카로 날아가 사람들에게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있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꿈을 내려놓으려던 찰나, 주변의 응원에 힘입어 그는 마침내 사진관을 정리하고 무모한 도전에 나선다. 남몰래 그를 연모하던 수진(양수진)과 카바레에서 잘린 트로트 가수 태화(장태화)도 그의 여정에 함께한다. <꿈꾸는 사진관>은 실제로 오지를 누비며 현지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 1세대 여행사진가 신미식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의 연기 도전인 만큼 대사와 몸짓에 어색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나 조악한 만듦새에도 영화에 스며든 정직한 태도는 기분 좋은 미소를 자아낸다. 극영화의 형식을 취했지만, 아름다운 마다가스카르의 풍광은 픽션의 외피를 뚫고 나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제47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초청작.
[리뷰] 소박한 꿈과 무모한 도전, <꿈꾸는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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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이병헌)는 아서왕 전설에 푹 빠진 말썽꾸러기 아들 월터(최하리)와 고양이 윌라의 방해로 낭독 공연을 망쳐서 화가 나 있다. 아내 캐서린(이하늬)은 그에게 월터를 용서하고 그가 쓴 신작을 읽어주라고 말한다. 찰스는 아서왕보다 위대한 왕 중 왕의 이야기가 있다고 아들을 구슬린다. 그 왕 중의 왕은 바로 예수다. <킹 오브 킹스>는 찰스 디킨스의 동화 <우리 주님의 생애>를 각색한 애니메이션이다. 초호화 성우진과 미국에서 <기생충>의 흥행 기록을 넘어섰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영화는 <신약>을 거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 디킨스라는 화자를 설정해 구연동화의 톤을 가져간다. 예수의 기적을 설득력 있게 그린 비주얼도 눈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다만 <신약>을 10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하려다보니 각 에피소드 사이의 연속성이 희미해졌다는 단점이 두드러지며 감상을 방해하는 신파도 아쉬움을 남긴다.
[리뷰] 이젠 신약도 단기 속성 클래스로, <킹 오브 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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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구의 방에 반 토막이 난 그림 한점이 떨어진다. 노진구는 도라에몽의 ‘들어가는 라이트’를 써서 그림 속의 소녀 클레어를 만난다. 그녀는 13세기에 사라진 아트리아 공국 출신으로 길을 잃고 숲을 헤매던 중이었다. 도라에몽 일행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지만 그곳을 멸망으로 몰고 갈 악마 이젤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는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비밀도구 박물관>의 감독 데라모토 유키요가 12년 만에 연출한 작품이다. <도라에몽> 45주년을 기념한 기획에 알맞게 완성도가 탁월하다. 중세 영웅담을 보는 듯한 탄탄한 서사와 고흐, 뭉크, 알폰스 무하 등 고전 회화부터 낙서까지 여러 그림이 어우러진 작화는 애니메이션 장르 고유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구현한다. <도라에몽>의 본령인 창의적 도구와 그 활용도 흠잡을 데가 없다. <도라에몽>에 대한 애정을 담은 아이묭의 주제곡도 감동을 선사한다.
[리뷰] <도라에몽>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감동이 여기에,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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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침묵하지 않는다. 수면 아래 사는 모든 생명이 크고 작은 움직임으로 생동함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역동적인 해양생태계의 소리가 잦아든다면 이는 곧 바다가 다급히 구조 요청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큐멘터리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는 서서히 죽어가는 바다의 위기를 온몸으로 겪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난다. 스페인의 해양음향학자, 제주도의 해녀, 멕시코의 해양생태공원 관리자, 세이셸의 환경운동가, 호주의 수중 사진사와 인도네시아의 어부까지. 각자가 경험한 위기의 징후는 전부 다르지만 삶의 터전인 바다가 위협받고 있다는 감각만큼은 모두 동일하다. 해양생태계를 담은 수중촬영과 바다의 소리로 구성된 영화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를 눈과 귀로 체험하게 한다. 3천여명의 그린피스 회원의 후원으로 제작됐다.
[리뷰] 두 귀로 절실히 느껴야 할 공동의 위기,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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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를 형제로 둔 범재는 괴롭다. 유명 웹툰 작가 주경(김용지)을 언니로 둔 만년 지망생 단경(김현수)의 처지가 그렇다. 함께 일하던 미술 강사 동료도 데뷔에 성공하는 현실에 불만을 가진 그는 의뢰를 받고 그림을 그리는 커미션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이후 낮에는 언니의 도움으로 거장 만화가 진필(남명렬)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밤에는 다크웹에서 커미션을 받는 이중생활을 이어간다. 어느 날 단경은 자신이 그린 고어물과 닮은 살인사건을 발견한다. 신재민 감독의 <커미션>은 동인 문화에서 만연한 거래 방식인 커미션을 소재로 한 스릴러물이다. 만화계의 문하생 구조와 커미션의 자유도를 대비시키며 재능을 둘러싼 비뚤어진 욕망을 표현한다. 다만 서브컬처를 소재로 삼을 때 자주 겪는 얕은 표현 수위가 실제 문화와 거리감을 조성하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제29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상영작이다.
[리뷰] 천재 앞에 선 범재처럼 소재에 비해 밋밋하다,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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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마을로 돌아온 남자 제레미(펠릭스 키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알랭 기로디의 신작은 표면적으론 실종 사건을 다루는 범죄스릴러지만, 실상은 정체된 공동체에 감돌기 시작한 성적 충동이 우스꽝스럽게 재연된 한편의 꿈 같다. 영화는 동네 빵집을 운영하던 남자의 장례식으로 시작해 예기치 못한 또 다른 죽음과 그 이면에 얽힌 욕망을 들춘다. 제레미는 남편의 죽음 이후 혼자 남은 마르틴(카트린 프로)의 집에 머무는데, 그의 아들 뱅상(장바티스트 뒤랑)은 이를 못마땅해하고 이웃 친구 왈테르와의 관계도 경계의 대상이 된다. <미세리코르디아>는 포괄적 의미의 ‘퀴어’ 시네마다운 에너지로 가득하다. 기로디는 폭력과 성적 긴장 사이를 기괴한 유머로 잇고, 돌출적인 사건과 정서를 이보다 더 태연할 수 없는 무표정으로 제시한다. 도덕의 제약을 비껴선 인간의 정동이 자비를 뜻하는 제목과 함께 은밀한 자취를 남기는 영화다.
[리뷰] 욕망과 도덕의 야생에서 솟이난 고귀한 독버섯처럼, <미세리코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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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다른 모리 코고로 탐정의 활약이 극장판을 장악한다. 지금으로부터 10개월 전, 눈 덮인 숲속에서 한 남자를 좇던 나가노현 야마토 칸스케 경부는 갑작스러운 총상과 함께 눈사태를 맞닥뜨린다. 한편 평온한 저녁을 보내던 모리 코고로는 형사 시절 절친했던 동료 와니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10개월 전 눈사태에 관해 묻던 그는 코고로 가족과 만나기로 하지만, 약속 장소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고 만다. 두 갈래로 나뉘어 질주하는 플롯은 나가노현 형사 3인방과 코난의 두뇌 싸움을 통해 단 하나의 결말을 집요하게 찾아내고 만다. 무엇보다 <명탐정 코난> 특유의 코믹함과 경쾌함을 책임졌던 모리 코고로는 이번 극장판에서 진중하고 냉철한 면모를 쏟아낸다. 그간 본 적 없는 모리 코고로의 진가를 발견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세계관 내 최고 사격수로서의 한끗이 실려 있다.
[리뷰] 당연하게 여겼던 인물이 주인공이 된 순간, 말 못 할 벅차오름,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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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유튜버 레인맨(마미야 쇼타로)은 직장 동료 야나오카(DJ 마쓰나가)에게 2층짜리 주택의 설계도를 건네받는다. 미스터리 마니아 괴짜 건축설계사 쿠리하라(사토 지로)는 그 설계도를 보자마자 집의 구조가 누군가를 납치하고 살인하는 데 적합하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공교롭게도 그 인근에서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된 적이 있다. 다음날 레인맨에게 그 집에서 남편이 살해당했다는 의문의 여성(가와에이 리나)이 다가온다. <이상한 집>은 괴담 유튜버 우케쓰가 유튜브에서 2470만뷰를 달성한 괴담을 바탕으로 쓴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의 완성도는 미흡하다. 모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원작의 스산함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전형적 J호러의 연출을 되풀이한다. 미스터리 장르의 전반부와 <이누가미 일족>풍 스릴러의 후반부 사이의 이음매도 희미하며 비주얼과 설정도 독창적이지 않다.
[리뷰] 그저 ‘무서운 집’을 보고 싶었다, <이상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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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제작자, 양조장 직원, 염부, 재활용 공장노동자, 전파사 주인, 프리랜서, 식당 주인, 사무직 종사자, 육아휴직 중인 여성 등 <일과 날>은 9명의 출연자들의 일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 혹은 실험적인 작업을 꾸준히 해온 박민수, 안건형 감독이 협업한 영화로 수년간의 취재 기록이 담겼다. 유사한 주제의 다큐멘터리가 그러하듯 화면 밖의 연출자와 출연자가 대화하는 구도를 취하는 대신 <일과 날>은 출연자의 일터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이들의 업무를 지켜본다. 이 과정은 원테이크로 촬영됐으며 하나의 숏 안엔 한명의 출연자가 담겼다. 개개인의 내레이션을 통해 업무에 부여된 노고와 일을 대하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지만 카메라는 필요 이상으로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진 않는다. 이들의 일터를 바라만 볼 뿐 함부로 판단하진 않겠다는 의도가 읽히는 거리감이다. 대상과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내밀한 고민부터 사회문제까지 아우르는 다큐멘터리다.
[리뷰] 반복된 일과, 어쩌면 인간다움을 느낄 마지막 보루, <일과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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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대륙 한복판에 누군가 빠른 속도로 추락한다. 그는 생애 처음 패배를 맛본 슈퍼맨(데이비드 코렌스웨트)이다. 메타 휴먼의 최강자인 그는 무고한 사람들을 살리고자 보라비아와 자한푸르간의 전쟁에 개입해 참패를 맞이한 것이었다. 그의 행동은 본의 아니게 미국을 대표하는 꼴이 된다. 국제관계에 휘말린 슈퍼맨을 눈엣가시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그는 메트로폴리스의 최대 기업인 루터코프를 운영하는 렉스 루터(니컬러스 홀트)다. 그는 슈퍼맨을 악으로 규정하고 미 국방부를 동원하여 그를 통제하려고 나선다. 이에 합당한 명분이 필요했던 그는 자신의 용병들과 함께 남극에 위치한 슈퍼맨의 비밀 기지에 침투한다. 그곳에서 이들은 슈퍼맨의 부모가 남긴 영상 메시지를 보게 된다. 이들은 이 메시지의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고 충격에 빠진다. 메시지의 내용이 슈퍼맨에게 인간을 도우라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렉스는 방송을 통해 이를 폭로한다. 엄청난 크기의 괴물을 무찌른 후에 이 소식을 접한
[리뷰] 비상과 추락의 몸짓,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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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박보영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까. 앞으로 박보영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을까. 12명의 <씨네21> 기자, 객원기자가 각자의 기억과 기대감을 기반으로 10개의 질문에 답했다.
박보영과 가장 케미가 좋았던 배우는?
<과속스캔들>의 차태현은 “박보영과 청량함의 시너지를 내 작품의 공기를 만들”(남선우)었으며 “탁구를 치듯 감정과 유머가 오가는”(최현수) 상황의 재미를 보장한다. 박보영과 차태현은 그야말로 “코미디의 말맛과 타이밍을 정확히 아는 고수와의 찰떡 호흡!”(이유채)인 것이다. 한편 드라마에선 <오 나의 귀신님> 조정석과 <힘쎈여자 도봉순>의 박형식이 고른 지지를 받았다. “누군가의 귀여움은 그 자체의 절대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 해”(남지우)줄 만큼 조정석의 리액션은 남달랐고, 박형식은 “민민과 봉봉이 진짜로 제발 사귀길 염원”(이자연)할 만큼 과몰입하게 만든 점에서 둘의 케미
[특집] 박보영에 의한, 박보영을 위한, 박보영이라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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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밭 주인은 미지로 분한 미래의 이름을 자꾸만 다르게 부른다. 미희, 미영, 민지…. 입술을 붙였다 떼며 발음하는 글자를 전부 내뱉을 기세로 실수를 거듭하다 마침내 미래를 미래라 부를 수 있게 된 남자처럼, 우리는 박보영이 지나온 배역들을 하나씩 되새기면서 비로소 ‘박보영’이라는 이름이 가진 밀도를 알아차린다. 그가 배우로서 쌓아온 지층들이 모두 한 사람의 몫이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감탄하면서. 2006년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 속 2학년 5반 학생 중 한명으로 등장한 순간부터 2025년 <미지의 서울>을 1인2역으로 채운 최근까지, 배우 박보영의 필모그래피를 형성해온 핵심 이미지들을 여기에 펼쳐본다.
도시와 먼 곳으로부터
색조 화장이라고는 한톨도 올리지 않은 듯한 이목구비. 길게 늘어뜨리거나 질끈 묶어버리기를
택한 머리칼. 나름대로 멋을 부려봤지만 묘하게 예스러운 옷차림. 영화 <과속스캔들> <늑대소년> <피끓는
[특집] 과속스캔들>부터 <미지의 서울>까지, 박보영이 통과한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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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보영 배우의 눈물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과속스캔들> 정남이가 아빠 현수(차태현)를 원망할 때에도, <늑대소년>에서 철수(송중기)를 억지로 보낼 때에도 박보영 배우가 울기 시작하면 관객은 하릴없이 백기를 들게 돼요. 왜 우리는 박보영이 울면 스르륵 함께 울게 될까요.
제가 많은 슬픔을 경험해봐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저를 두고 “너 생각보다 많은 일을 겪었구나”라고 해요. 인생의 굴곡도 많고 살면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도 많이 겪었어요. 울다가 숨을 못 쉴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요. 그런데 제 성향상 슬픔이 찾아오면 그것을 외면하거나 좋은 것으로 빨리 덮으려 하기보다 오롯이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슬픔을 받아들이는 데 저항력이 별로 없어요. 바닥을 치고 마음을 비운 상태가 되면 다시 올라갈 수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제가 하는 일에도 은연중에 묻어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미지의 서울> 속 인물들은 모두가 엄마
[인터뷰] 우리의 오늘은 무수한 어제로 이뤄져 있다, <미지의 서울> 박보영 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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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의 서울>이 공개된 첫주, 1인2역의 차이를 미세하게 드러내는 배우 박보영의 연기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어요. 팬덤 소통 플랫폼 ‘버블’에서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전하기도 했죠.
<미지의 서울>이 두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에너지가 두배 들긴 했지만 늘 작품에 임하던 대로 최선을 쏟아낸 건 변함이 없어요. 제가 늘 해오던 방식대로 한 거죠. 그런데 드라마가 공개되자 주변 반응이나 온도가 평소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정말 얼떨떨했어요. 첫 방영 이후 <미지의 서울>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내심 다행이었지만 아직 첫주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라 이 분위기가 앞으로도 이어질지 계속 걱정이 됐어요.
알 수 없어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
-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하고도 여전히 불안해했군요.
워낙 걱정이 많은 편이에요. 앞으로 미지와 미래가 서로의 삶을 바꾸는 큰 이야기가 남아 있는데 혹시 이들이 구별되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했어요.
[인터뷰] 두발로 일어설 때 비로소 보이는 것, <미지의 서울> 박보영 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