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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의 미국. 한 랍비가 유대인 여성 사라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읊는다. 관 속에 누운 사라는 미국에 망명해 유대교의 뿌리를 내린 이민 1세대 여성이다. 그의 손자 루이스는 동성 연인 프라이어와 함께 장례식에 참여하고, 프라이어는 이날 자신의 에이즈 감염 소식을 연인에게 전한다.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 조는 바륨에 중독돼 환각 속에 사는 아내 하퍼와 크고 작은 갈등을 빚는다. 거물 변호사 로이 콘이 그에게 워싱턴 법무부의 요직을 제안하지만 조는 아내를 떠날 수 없는 현실과 신앙에 위배되는 성정체성 속에서 괴롭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는 <링컨> <파벨만스> 등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의 각본가로도 유명한 토니 쿠슈너의 1991년 초연작이다. 작중 배경인 1985년 미국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 ‘강력한 미국’을 주장하며 보수·반공 정책을 집행했던 레이건 정권기고,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도구 삼아 성소수자를 혐오스러운
[CULTURE 스테이지]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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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매 에피소드의 시작을 알리는 이 문장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지만 전혀 다른 선택으로 향하는 두 남성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0년을 살아가는 상준(윤계상)과 2021년의 영하(김윤석)는 20여년의 시차를 두고 있다. 강변에서 각각 모텔과 펜션을 운영하는 둘은 서로 다른 살인사건을 맞닥뜨린다. 한순간 연쇄살인범 지향철(홍기준)의 범죄 현장으로 추락한 상준의 레이크뷰 모텔은 고객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고, 묵은 소문처럼 이 이야기를 접한 영하는 유성아(고민시)의 아동 살인을 알고도 조용히 묻어버린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이들의 2세들이다. 아버지 세대가 채 정리하지 못한 분노와 억울함의 근원을 상준의 아들 기호(박찬열)와 영하의 딸 의선(노윤서)이 긴밀하게 이어받는다. 어떤 죽음도 숲속에선 다음 생명을 위한 양분이 되듯, 두 가장의 울분은 다음 세대가
[이자연의 TVIEW]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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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시즌2 Pachinko
Apple TV+ / 8부작 / 연출 리안 웰햄, 진준림, 이상일 / 각본 수 휴 / 출연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진하, 정은채, 안나 사웨이, 한준우, 아라이 소지, 김성규 / 공개 8월23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한층 중후해진 동시대의 마스터피스를 마주하는 기쁨
제2차 세계대전은 선자(김민하)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았을까. 오사카에서 김치를 팔기 시작한 여성 가장을 담은 크레인숏으로 마무리한 시즌1의 풍경을 시즌2(제9장)도 그대로 이어받는다. 7년의 세월이 흐른 1945년. 식량과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사이 선자의 의연하고 담담한 얼굴에도 근심이 깃들었다. 남편인 목사 이삭(노상현)을 기다리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선자는 시장에 밀주를 팔다 붙잡히고, 곧 한수(이민호)와도 재회하게 된다. 한수는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일로 자금을 불리는 한편 창호(김성규)를 고용해 선자를 오랫동안 미행해왔다. 버블경제의 붕괴를 코앞에 둔 1
[OTT 리뷰] ‘파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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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한 지 몇분이 지났을까. 허남준이 지닌 독특한 호흡과 말의 리듬을 따라 ‘제2의 지문’이라는 성문, 음성의 무늬를 그려보고 싶어졌다. 드라마 <유어 아너>의 캐스팅 카드를 손에 쥔 유종선 감독이 다른 마음을 품었을 리 없다. “호흡을 자기 마음대로 쓴다. 좋은 쪽으로 이상하다”는 평가와 함께 역할을 제안받은 허남준은 “벌벌 떨면서” 피 칠갑의 범죄극을 첫 주연작으로 만나게 됐다. 보고 자란 것이 아버지(김명민)의 폭력 성향인 데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부재로 고통받은 한 소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인 김상혁은 그간 치외법권적 삶을 살아온 대가로 인간 허남준을 만나 철저하게 해부됐다. “상혁이는 공허했고 고립되어 있었지만 죽고 싶거나 살아갈 의지가 없는 건 아니었다. 살아서 할 게 너무 많았을 것이다. 순간순간 필요한 자극을 좇고 그것이 채워지면 삶은 그냥 살아졌던 것. 생각 없음에서 오는 악, 그것이 김상혁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꾼이 창조한 가상의 발명품 악인
[WHO ARE YOU] <유어 아너>,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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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
현재 가장 미쳐 있는 시리즈는 <폭군>이지만 근래 <기묘한 이야기>를 몰아 본 후 이 작품에 푹 빠졌다. 일주일 동안 네 시즌을 정주행했을 정도다. <폭군>에서 내가 연기한 자경과 일레븐(밀리 보비 브라운)이 유사한 속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자경을 만나기 전에 보았다면 내 연기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도 해보았다. 시리즈를 통틀어 나의 ‘최애’ 캐릭터는 짐 호퍼(데이비드 하버) 아저씨다.
빼빼로
과자,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 다디단 디저트를 엄청 좋아한다. 지금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과자는 빼빼로다. 그중 아몬드 맛이 최고다. 새벽에도 침대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빼빼로가 당기면 편의점으로 달려간다. 매니저님이 몰라야 할 텐데…. (웃음) 빼빼로는 옹졸하게 먹어야 가장 맛있다. 크게 베어 물지 말고 오물오물 씹으면서 똑똑 끊어 먹어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속초
타고난 집순이라 집 밖으로 잘 안
[LIST] 조윤수가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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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야마(야쿠쇼 고지)의 차 안에 올드팝이 흐르는 순간, 그의 단순한 일상은 어엿한 영화가 된다. 평범한 금요일 저녁을 <퍼펙트 데이즈>의 한 장면처럼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준 것 또한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익숙한 선율이었다. 지난 8월23일 저녁 강북문화예술회관 강북소나무홀에서 <강석우의 시네마콘서트>가 개최되었다. 영화 속 친근한 음악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으며 그에 담긴 추억과 정서를 공유하고자 <씨네21>과 강북문화재단이 공동 기획한 공연이다. 아직 후덥지근한 평일 저녁이지만 객석은 가득 찼다. 리모델링을 거쳐 8월 재개관한 강북소나무홀의 깔끔한 로비가 모처럼 북적였다.
이날 공연의 진행을 맡은 중견배우 강석우는 연예계 대표 클래식 음악 애호가다. 지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CBS 음악FM <아름다운 당신에게>의 DJ로 나른한 오전을 채울 클래식 음악을 큐레이팅했고, 지난해부터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의
[씨네스코프] 영화와 음악의 랑데부, <씨네21>×강북문화재단 <강석우의 시네마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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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규모의 영화 제작·배급사 네온이 라이언 레이놀즈와 블레이크 라이블리 부부를 상대로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선전 중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시작으로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아노라>까지, 5년 연속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북미에 배급하며 화제를 낳은 네온이 호러 스릴러 <롱레그스>와 <뻐꾹!> 등의 배급작을 통해 늦여름 미국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다. 2억달러의 제작비가 든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작 <데드풀과 울버린>은 지난 3주간 미국 내에서만 4억93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가십걸>의 세레나로 우리에게 익숙한 블레이크 라이블리 주연의 <우리가 끝이야>는 2천만500달러로 제작돼 5천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두 영화는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이에 맞서는 네온의 성과 또한 주목할 만하다. <롱레그스>는 지난 7월12
[뉴욕] 데드풀과 세레나와 맞붙다, 중소 배급사 네온 배급작 <롱레그스> <뻐꾹!>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선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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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 개막을 앞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5편과 ‘온 스크린’ 6편의 선정작을 공개했다.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는 대중적이고 매력적인 동시대 한국의 상업영화를 엄선해 프리미어로 상영하는 섹션이다. 올해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에선 월드 프리미어 상영작 4편, 한국 프리미어 상영작 1편이 상영된다. 월드 프리미어 상영작 목록엔 <폭로: 눈을 감은 아이> <보고타>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청설>이 올랐다. 전선영 감독의 <폭로: 눈을 감은 아이>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살인사건을 계기로 재회하게 된 범인과 형사의 복잡하고 긴장감 넘치는 사건을 그린 스릴러다. <보고타>는 <소수의견>을 연출한 김성제 감독의 신작으로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밀수업에 뛰어든 한국인들의 이야기다. 이외에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의
올해 부산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한국영화와 시리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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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현역 시절 일어난 일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김연아 선수의 한마디를 처음 들었을 때 ‘우문현답’이란 고사성어를 재연드라마로 시청하는 기분이었다. 격언 탄생의 순간을 실시간으로 마주하며 실력을 갈고닦아 경지에 오른 자가 바라보는 풍경은 저런 걸까 하는 경탄과 다른 사람도 아닌 ‘김연아’의 말이니까 가치를 지니는 거 아니겠냐는 배배 꼬인 심보가 동시에 교차했다. 더위에 지친 탓인지 요즘 부쩍 ‘이걸 꼭 해야 하는 걸까’라는 잡념 속에 피곤한 나날이 이어지는 중이다. 더 편한 길이 있는데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것 같고,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는 바보짓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는다. 그럴 때 문득 ‘그냥 하는 거지’란 말이 떠오르면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할 일을 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마감에 허덕이는 목요일, 유튜브 쇼츠로 잠시 도망쳐 이런저런 영상을 뒤적이다가 오래전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법정 스님을 봤다. ‘우리는 왜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잃어버린 의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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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시간대에 사는 두 남자 전영하(김윤석), 구상준(윤계상)의 삶에 살인사건이 무심코 내던져진다. 사건의 주변부에 있던 두 남자는 살인사건이 남긴 파장에 우연히 빨려 들어가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무참한 비극을 마주한다. <미스티> <부부의 세계> 등을 흥행시킨 모완일 드라마 PD는 2021년 ‘JTBC X SLL 신인작가 극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대본을 읽고 “재밌으나 시리즈로 만들기엔 위험한 작품”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이 작품에 매료된 자신을 발견했다. 작품을 쓴 신인 손호영 작가 또한 모완일 PD와의 첫 미팅 자리에서 “영상화가 용이하지 않은 대본이라 제작은 어려울 것 같다”라고 답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영상매체로 구현하기 까다로운 작품이라 단정했던 두 창작자는, 어느새 의기투합해 올해 가장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함께 지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인터뷰] 감정이 옮아가는 서스펜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완일 연출, 손호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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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작가는 원래 시나리오 각본·각색 작업을 오랫동안 해온 영화인이다. 10년 전 <씨네21>이 ‘시나리오작가 뉴웨이브’를 호명했던 특집에 등장해 <고령화 가족>의 시나리오작가로 인터뷰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 김재환 작가는 새롭게 떠오르는 드라마작가의 대표적인 이름이 됐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의 성공 이후 KT 스튜디오지니 오리지널 드라마 <유어 아너> 역시 가파른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며 호평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어 아너>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는 두 아버지의 추적 스릴러극이다. 판사로서 올곧은 신념과 정의를 증명하던 송판호 판사(손현주)는 아들 송호영(김도훈)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다 점점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게 된다. 둘째 아들의 살인범을 쫓는 우원시의 최고 권력자, 우원그룹 대표 김강헌(김명민)은 남은 첫째 아들 김상혁(허남준)을
[인터뷰] ‘법칙이 법칙이 없다는 게 법칙’, <유어 아너> 김재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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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태풍이 연일 불쾌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2024년 8월의 대한민국, 두편의 시리즈가 시청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중이다. 지난 8월12일 지니TV와 ENA를 통해 매주 2화씩 공개 중인 시리즈 <유어 아너>, 8월2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8부작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그 주인공이다. 두 작품은 모두 스릴러의 장르 관습을 까뒤집으며 이전에 본 적 없는 이야기를 파죽지세로 선보이고, 각 작품의 배우들은 장력 넘치는 플롯 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섬뜩한 얼굴을 꺼내 보인다. 학원 코미디물이었던 전작 <소년시대>와 180도 다른 이야기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의 이목을 끄는 <유어 아너>의 김재환 작가, 2021년 ‘JTBC X SLL 신인작가 극본 공모전’에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우수상을 받은 이후 ‘엄청난 데뷔작이 나왔다’는 소문을 업계에 무성하게 만든 손호영 작가와 <미스티> <부부의
[기획] 내 시간 어느새 '순식간에 삭제!', <유어 아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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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리 대표와 장건재 감독이 영화제작사 ‘모쿠슈라’로 박자를 함께 맞춰나가기 시작한 건 2009년부터다. 고등학생의 흔들리는 첫사랑을 그린 <회오리 바람>을 제작하며 극장 배급을 위해 직접 영화시장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누군가 작품과 관객을 연결해주길 마냥 기다리기보다 직접 마침표를 찍어나가는 모험가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잠 못 드는 밤>의 영문 번역을 맡은 윤희영 PD와 인연을 맺고 2016년부터 <한국이 싫어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최초의 기억> 등 소재와 주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모쿠슈라는 장강명 원작 소설을 빌려 살아 있는 계나(고아성)를 완성했다. <한국이 싫어서>의 힘을 그려낸 장건재 감독, 현실적인 지반을 다진 김우리 대표, 뉴질랜드 생활을 한 경험으로 로케이션을 통
[인터뷰] 참을 수 없이 좋으니까!, <한국이 싫어서> 제작사 모쿠슈라 장건재 감독, 김우리 대표, 윤희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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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는 여자의 손에는 리볼버가 들려 있다. 이 리볼버는 2년 전 하수영(전도연)이 연인을 대신해 비리를 덮어쓸 때 7억원의 보상을 약속하는 구두계약이 녹음되어 있던 핸드폰과 맞바꾼 것이다(두 사물이 직접 교환된 건 아니지만 리볼버는 여자가 데이터 복구에 실패한 핸드폰을 버리고 빈손이 되었을 때 찾아온다. 리볼버는 과거를 냉담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자만이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일을 쉽게 해결해줄 힌트 대신 일을 더 어렵게만 만들게 될 무기다. 앞으로 그녀와 대면하게 되는 모두가 그녀를 골치 아파할 것이다. 수영은 스치는 인연마다 사사롭게 얽혀 있고, 정윤선(임지연)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 적대감을 비친다. 실연, 원망, 동경, 동질감 그게 무엇이든 총구 앞에서는 평등해지는 것처럼. 그러나 이들이 사나워지는 것은 반대로 수영의 반응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영은 자신의 요구를 순진하게 관철하면서 탑을 오르는 사람이다
누아르의 재현과 불발된 멜로, <리볼버>의 과도한 경직이 감추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