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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일찍 누워 태블릿을 접으려는 순간 한줄 속보가 떴다. CBS 라디오 손명회 PD가 긴급 출연을 요청했다. 근래 정권에 더 깊이 찍힌 CBS에서 나는 그날 오후 6시30분경 일정을 마쳤었다. 귀갓길에 마주친 기자들에게 “혹시 윤석열, 도청을 피해 군인들 만나려고 골프장에 갔던 거 아니냐”라고 했다. 도로 한강을 건너면서 김용현이 떠올랐다. 대선 직후 그가 게스트로 나온 프로그램에서 나는 “대통령실 이전에 예비비 쓰지 말고 국회 심의를 받으라”며 친윤 논객 모씨와 언쟁을 벌였었다. ‘용산 국방부로 옮긴 것도, 대통령실 이전의 지휘자가 대통령 경호처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에 임명된 것도, 다 계엄이나 전쟁을 준비한 것이었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마이크 앞에 앉자마자 박재홍 앵커의 제의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경찰의 국회 봉쇄 소식에 불법 판정부터 내렸다. “닫혀 있는 국회도 열도록 되어 있는 게 계엄법입니다.” 이준규 기자가 있었고, 권영철 대기자가 합류했다. 5·1
[김수민의 클로징] 굿나잇 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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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서키스의 연기는 오롯이 디지털 캐릭터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반지의 제왕> 삼부작(2001~2003)의 골룸, <킹콩>(2005)의 킹콩,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2014~17)의 시저를 연기한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도전한 모션 캡처 연기는 기존의 영화 연기와 현격히 다르다. 모션 캡처는 배우의 움직임과 연기를 포착하고, 전송하고, 전환하여 최종적으로 다른 신체에 코드화하는 것을 뜻한다. 배우는 특수 제작된 슈트를 입고 신체 곳곳에 마커를 부착한 상태로 연기를 해야 하기에 사실상 그 과정은 기계장치를 활용해 선보이는 일종의 묘기에 가깝다. 서키스는 디지털 캐릭터의 생성을 위하여 자신의 존재가 화면 바깥으로 사라지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그가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여 하나의 범례를 남겼다는 이유로 그를 ‘모션 캡처 연기의 왕’이라고 부른다.
서키스는 한 인터뷰에서 모션 캡처는 “하나의 도구이다. 그
[이도훈의 영화의 검은 구멍] 시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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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물었다.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요?”
달마 대사가 답했다. “알지 못합니다(不識).”(<벽암록> 제1칙)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요한복음> 14:9)
<알레고리>가 레오스 카락스를 ‘동굴의 비유’ 속 철인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내세워 짐짓 멋들어지게 예술가의 존재론을 설파하는 것과 달리 <잇츠 낫 미>는 상당히 정의 내리기 힘든 사적인 작품이다. 일단 이 영화의 제목부터가 엉뚱하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잇츠 낫 미>는 파리 퐁피두센터 요청에 따라 제작된 현대 미술작품으로, 본래 퐁피두센터가 ‘자화상’을 주제로 작품을 의뢰하며 던진 질문은 영화 초반에 나오다시피 “레오스 카락스, 어디 계신가요?”였다고 한다. 레오스 카락스는 이에 대해 “그건 내가 아니다”(It’s not me)라고 답하고 있는데, 보통 어디 있냐고 물으면 ‘여기 있다’고
[비평] 휘갈겨 쓴 작가 노트, 이병현 평론가의 <잇츠 낫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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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X됐다.”(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의 첫 문장) <마션>은 유인 화성 탐사 임무 중 혼자 화성에 낙오된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549화성일간의 ‘로빈슨 크루소’식 생존기를 다룬다. 2013년 <그래비티>, 2014년 <인터스텔라>에 이어 개봉한 이 작품은 앞선 우주 배경 영화와 달리 낙관적이고 유쾌한 분위기를 살려 차별화됐다. 캘리포니아 공학대학 출신 작가 앤디 위어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과 비교할 때 화성의 중력 묘사(지구의 3분의 1 정도이기 때문에 지구에서처럼 돌아다닐 수 없다), 소리 전달(소리를 전달한 매질, 즉 대기가 지구보다 훨씬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래비티>를 생각하면 된다) 등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영화적 허용을 한 일부 대목을 제외하면 과학적 논리도 잘 살아 있다. (다만 화성의 대기압이 지구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모래 폭풍 때문에 화성상승선
[임수연의 이과 감성] 화성에서 정말 감자를 키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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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3일, 밤새도록 뉴스를 보다가 지쳐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너희 아빠 무서워서 우셨다.” 부모님이 계엄령을 경험한 세대였다는 것이 덜컥 실감이 나서, 우리 세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무서워서 저도 울컥했습니다. 이후 며칠간은 일상이라는 것이 박살 난 상태로 뉴스를 봤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12월7, 8일에 있을 연말 단독 공연을 기다리며 그걸 준비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이제 7일은 탄핵소추안을 표결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삶이 심각하게 침범당하는 이때에 우리는 준비해온 공연을 약속대로 해야 합니다. 공연팀에게도 관객들에게도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공연 당일, 대기실에서 곱게 화장을 하고 무대의상을 입고 있는데 뉴스 소리가 들렸습니다. 막이 오르기 전 암전 속에서 기도를 했는데 무대팀 스태프가 기도하는 제 두손을 아프도록 꼭 잡아주었습니다. 오프닝곡이 끝나고 인사를 하니 관
[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우리가 살아 있다는 무시무시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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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가 <파친코>의 정직하고 신실한 목사 이삭으로 배우 노상현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했을 것이다. 차분한 호흡을 지닌 연기자라는 인상을 남겼던 노상현은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사운드트랙#2>를 거치며 리드미컬한 로맨스코미디 장르에도 매끄럽게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2024년, <대도시의 사랑법>의 흥수는 그에게 새로운 분기점이 됐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흥수는 대학 동기 재희(김고은)와 가까워지면서 숨통이 트이는 인물이다. 오롯이 자신을 내보이는 경험 이후로 흥수의 삶도 조금씩 변화한다. “분석보다는 직관을 따”르고, “촬영할 때는 맡은 캐릭터로서 살아 있으려 하는” 노력 덕에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노상현 배우는 청룡영화상,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에서 연이어 신인배우상을 수상했고 <씨네21>의 ‘2024 올해의 영화’ 설문에서도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로 호명됐다.
[커버] 감당할 수 있는 성공을 향하여, <대도시의 사랑법> <파친코> 시즌2 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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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의 양철홍,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최영민, <정숙한 세일즈>의 엄대근까지. 배우 김정진은 올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대중을 만났다. 그는 <씨네21>에서 진행한 ‘2024 올해의 영화 결산’ 신인 남자배우 2위를 차지했다. “김정진은 신인임에도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고(박현주), “올해 출연한 세 작품 모두 장르와 분위기가 달랐지만 자신이 맡은 배역에 무거운 추를 달 줄 아는”(복길) 힘을 지녔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오디션장에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1시간 남짓한 동안 4화의 대본을 읽었다. 15분에 한권씩. 영민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는 날렵한 상상력으로 영민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송연화 감독으로부터 작품을 함께하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민이를 직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두 가지 포인트가 보였다. 먼저 어머니에게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좋아하는 사
[WHO ARE YOU]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김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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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넥스트 도어>의 틸다 스윈턴을 보다가 2013년 8월 <설국열차>로 한국을 찾았던 틸다 스윈턴의 모습이 떠올랐다. 촬영하는 사진기자까지 압도하는 분위기에 빨려 들어간 기억은 살짝 부끄럽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배우는 더 짙은 자신만의 색깔로 관객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ARCHIVE] 틸다 스윈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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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권, 백태현, 성진수, 정민아, 홍진혁 지음 | 한국문화사 펴냄
“<그때 그사람들>은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과 딸 박근혜가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과 상영금지 소송을 내기도 했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자식들의 행동은 일견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이 소송은 훗날 극영화에 실제 기록화면을 삽입하거나 실명을 사용하는 데 재갈을 물리는 표현의 자유 침해로 다가왔다.” <서울의 봄>의 등장인물 이름은 왜 전두환이 아니라 전두광이었을까?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 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불교영화의 숲> <포스트시네마가 사유하는 인공지능>에 이은 한국영화학회 총서. ‘한국 현대사 영화는 어떻게 관객을 사로잡았나’라는 부제처럼 한국 현대사 영화를 영화연구자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기획이다. 한국 현대사는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흥행 면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런 작품들을 이야기할
[culture book] 영화는 역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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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발표회’는 2023년부터 1020세대 사이에 유행한 활동으로 친구들 혹은 덕질 메이트에게 자신의 최애를 소개하는 PPT 발표식을 가리킨다(이때 PPT 퀄리티가 엉망진창이어야 재미가 커진다). 이 최애 발표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020세대 전반에 보편화된 관계 맺음 방식을 알아야 한다. 요아정, 마라탕, 버블티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커스터마이징하는 데 익숙한 어린 세대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부터 먼저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이 곧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애의 최애>는 이러한 세대상을 투영한 웹예능으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 수빈의 진행 아래 에피소드마다 게스트가 출연해 자신의 최애를 소개한다. 최애의 정체도 장르도 각양각색이다. 걸그룹 카라, 빅뱅 지드래곤, <해리 포터>, 라면, 롯데 자이언츠, 연애 프로, 심지어 야채 곱창까지. 덕질 연대기를 통해 게스트의 일생과 좋아하는 것의 교집
[culture tview] 유튜브 <최애의 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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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시즌2 에피소드1~7 전체를 포괄하는 묘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역대 최고 히트작의 귀환이 드디어 이뤄졌다. 2021년 콘텐츠 시장을 강타했던 <오징어 게임>의 속편은 첫 시즌의 성공을 뛰어넘으려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데 주력한다. 시즌2에선 홀로 살아남은 성기훈(이정재)이 다시 게임의 무대로 향한다. 456억원이라는 엄청난 상금을 움켜쥐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화폐의 가치는 무의미해졌다. 밤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남자는 을씨년스러운 모텔을 개조해 작전의 근거지로 삼고, 대부업 용역들을 풀어 리크루터(공유) 찾기에 나선다. 시즌1에서 형의 존재를 확인한 경찰 황준호(위하준)도 합류했다. 시즌2의 이야기는 리크루터가 성기훈을 찾아와 새로운 게임 초대장을 건네면서 급격한 전환점을 맞는다. 게임의 수뇌부를 처단해 더이상의 살육을 막고자 하는 기훈은 위치추적기를 달고 게임에 참가하지만 곧 외부와 차단되고 만다. 동시에 준
[OTT 리뷰] <오징어 게임>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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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의 폭발적 인기, 한국 개봉 당시 역대 대만영화 중 최고 흥행작 등극, 주걸륜과 계륜미라는 대만 청춘영화의 스타 탄생까지. 숱한 기록을 남긴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한국판 리메이크로 돌아온다. 천재 피아니스트 유준(도경수)은 유학 도중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고, 처음 방문한 날 캠퍼스 연습실에서 신비로운 피아노 소리에 몸과 마음이 이끌린다. 유준의 눈과 귀를 틔운 소리의 주인공은 정아(원진아). 유준과 정아는 금세 가까워지지만 늘 만남이 엇갈려 애를 태우고 급기야 두 남녀 사이에 인희(신예은)가 등장하자 정아는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음악과 로맨스, 판타지적 설정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영화가 한국을 배경으로 했을 때 어떻게 새로운 감흥을 선사할지 기대를 모은다. <외출> <행복> 등 정통 멜로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스릴러 <내일의 기억>을 연출한 서유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coming soon] 말할 수 없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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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인도 극장가에 속편 열풍이 불고 있다. 발리우드와 지역영화 모두 인기를 얻은 영화의 굵직한 속편을 내놓은 것이다. 로히트 셰티 감독, 어제이 데븐 주연의 <싱감 어게인>은 발리우드 경찰 액션 프랜차이즈 <싱감>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다. 경찰 싱감이 어둠의 세력에 맞서는 <모범경찰 싱감>(2011)과 <싱감 리턴즈>(2014)에 이어 10년 만에 돌아온 속편이다. 전작과 비슷한 공식대로 흘러가는 영화는 카리나 카푸르, 악샤이 쿠마르, 란비르 싱 등 화려한 발리우드 스타들이 조연과 카메오로 출연했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싱감 어게인>은 독창적인 속편은 아니다. 액션의 구성이 다소 전형적이고 내러티브 구성 또한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신선함이 떨어진다. 훈계조의 대사와 혼란을 가중시키는 카메오 군단 또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전작을 뛰어넘는 속편은 드물고, 소문난 잔치
[델리] 인도 액션영화는 프랜차이즈의 꿈을 꾸는가, <싱감 어게인> <푸쉬파: 더 룰 - 파트2> 등 잇달아 속편 공개… 평은 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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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인생 녹음 중>
평온한 가족의 일상을 짧은 쇼츠로 보여주는 채널. 항상 녹음기를 켜두어 인상 깊은 순간의 대화를 다시금 돌아보고 곱씹는다. 너무 귀엽고 너무 웃기고 너무 사랑스러운 콘텐츠.
자이언티 <불 꺼진 방 안에서>
최근에 가장 많이 듣는 노래. 나도 모르게 가사를 곱씹게 된다. 하릴없이 계속 듣게 되는 노래.
이랑 <가족을 찾아서>
나의 차기작 <서울 이야기>에 가수 이랑님이 출연해주시기로 했다. 일면 <미망>에서 확장된 <서울 이야기>는 이혼하기 싫어 도망간 아들을 잡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시어머니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이랑님의 <가족을 찾아서>와 자이언티의 <불 꺼진 방 안에서>를 가장 많이 들었다. 시나리오는 모두 다 마친 상태!
시리즈 <체르노빌>
<체르노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운드다. 사운드디자인이 너
[LIST] 김태양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