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22일 작가 송길한이 영면에 들었다. 청년기의 긴 방황을 딛고 30대에 들어서야 시나리오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작가의식과 현실 영화계 사이에서 고심하며 1970년대를 버틴 후, <짝코>(1980)를 시작으로 임권택 감독과 협업하며 1980년대 한국영화가 품위를 유지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그가 각본을 쓴 <길소뜸> <씨받이>를 위시하여 80년대 중반의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적 원경험
일제 말기인 1940년에 태어난 송길한은 대학에 진학해 서울에 갈 때까지 전주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녔다. 학창 시절 그는 미래의 직업이 될 영화와 조우하는 몇번의 기회가 있었다. 해방 이후 일본인이 버리고 간 소형 영사기에 사무라이영화 필름을 돌려보다 동네 아이들에게 빵이나 만두를 상영료 대신 받고 흥행했다는 일화가 그중 하나다. 포스터까지 만들어 붙인 그는 그때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한국전쟁 휴전 후
[obituary] 시나리오의 대가가 된 반골 소년, 송길한 작가(1940~2024)
-
12월24일 개봉한 <하얼빈>이 크리스마스에만 85만 관객을 모으며 개봉 이틀차에 누적 관객수 125만명(12월25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돌파했다.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의 신작 <하얼빈>은 1909년 하얼빈에서 일어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배우 현빈이 안중근 의사 역을 맡았다. 크리스마스 특수를 고려하더라도 <하얼빈>의 흥행 추이는 긍정적이다. 올해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범죄도시4>가 개봉 이틀차에 누적 관객수 133만명, <파묘>가 71만명을 기록한 바 있다. 다만 <범죄도시4>의 개봉 2일차 스크린 점유율이 54.5%, 상영 점유율이 81.3%였던 반면 <하얼빈>의 스크린 점유율은 26.5%, 상영 점유율은 48.1%였다. 극장 점유율 대비 실관람객 수와 좌석 판매율이 높은 점이 흥행의 청신호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이틀 만에 125만 관객, <하얼빈>의 흥행 추이는? 2024 연말 극장가 현황 분석
-
2024년 극장가는 ‘기후 위기’다. 금방 지나갈 줄 알았던 겨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2023년 말 <서울의 봄>에 이어 2024년 <파묘>와 <범죄도시4>가 연이어 천만 관객을 달성했을 때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싹텄다. 하지만 여름 시장의 침체 등 기존의 공식과 패턴을 벗어난 흐름이 보였고 결국 2024년 연말을 정리해보니 코로나 직전인 2019년 같은 기간보다 9400만명이나 감소한 수치에 그쳤다. 요컨대 코로나 이후 마주했던 비상한 위기가 이제 극장가의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유럽, 일본, 동남아시아는 진즉 코로나 이전 수치를 회복했고, 북미의 경우에도 어렵다곤 하지만 80%가량 회복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한국 영화시장만 아직 한겨울이다. 경고가 반복됐지만 무시당했고,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가 현실이 되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높아진 티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얼어붙은 극장가에 부치는 편지
-
<괴기열차>가 제다에 도착했습니다
<식스 센스>를 보고 영화인의 꿈을 키운 감독과 어린 시절 어머니의 걱정을 살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에 빠져 있었던 배우가 <괴기열차>에 동승했다. 10월 부산에 이어 12월 레드씨에 도착한 <괴기열차>는 공공장소 괴담을 소개하는 유튜버 다경(주현영)이 기이한 지하철역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엮은 작품이다. “점프 스케어보다 무드로 밀고 나가는 호러를 선호”한다는 탁세웅 감독은 “공포영화 강국인 한국의 선배 감독들 이름에 누가 안되게끔” 자신만의 색깔로 이국의 관객을 설득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주현영 배우의 디테일한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을 거라 확신한다”고도 강조했다. “다경이 변화하는 과정을 잘 표현하기 위해 유튜버들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주현영 배우는 “한국영화라는 이유로 새롭게 받아들여지기보다 또 한편의 공포영화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침범>
중동에 부는 한류 - 제4회 레드씨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한국 영화인들
-
-
난쟁이(dwarf)가 아닌 왜소인(little person)이라 불려 마땅하기에, 스스로가 공주 옆의 일곱 친구가 아닌 백설공주 그 자체에 가깝다고 믿는 이만(마리암 셰리프)은 운명의 짝을 기다린다. 동생의 결혼을 부러워할 수만은 없던 그는 데이팅 앱의 프로필을 보정한 사진으로 교체한다. 발랄한 퍼포먼스로 좌중을 미소 짓게 한 올해의 여우주연상 수상자를 만났다.
- 첫 장편영화 출연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타그리드 아부엘하산 감독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을 뿐이다. 그녀와 함께한 모든 연기 워크숍과 리허설 덕분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결과가 전세계 왜소인들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 장애인을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아부엘하산 감독과 내가 처음부터 합의한 지점이다. 주인공 이만을 연약하거나 소외당하는 캐릭터가 아닌 강인한 여성으로 표현하는 게 목표였다. 다른 여성들, 특히 왜소증을 가진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관객
[인터뷰] 119cm의 백설공주를 위하여, <스노 화이트> 배우 마리암 셰리프
-
구상부터 완성까지 11년이 걸린 역작 <투 어 랜드 언노운>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은 후 레드씨국제영화제의 2등상인 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무하마드 바크리)을 품에 안았다. 아테네에 정박 중인 팔레스타인 형제는 베를린에서 식당을 차리고 싶지만 어디로도 가기 힘든 처지다. 영화는 교착상태에 빠진 두 남자에게 현미경을 들이댄다.
- 존엄을 지키기 힘든 팔레스타인 난민의 현실을 묘사했다.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했나.
영화 속 인물들은 나의 전작 다큐멘터리 출연진에게서 따왔다. 아테네를 비롯한 난민캠프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유럽으로의 이주를 바라고 있었다. 약물에 중독된다거나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의 실종 등 많은 소재를 그들의 삶에서 착안했다.
- 팔레스타인계 작가들에 대한 존경이 느껴진다. 오프닝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를 인용했고, 한 인물은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를 암송한다.
이 영화는 이제 덴마크에서 유러피언으로 사는 특권을 누리고 있
[인터뷰] 팔레스타인 난민은 어디로 가는가, <투 어 랜드 언노운>마디 플레이펠 감독
-
어떤 영화는 규율을 깨부순다. 12년 전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장편영화이자 첫 여성감독의 탄생을 알린 <와즈다>가 그랬다.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를 필두로 유수 영화제에서 20개 넘는 트로피를 수집한 이 작품은 영화 개봉도, 여성의 자전거 탑승도 금지한 조국에 일격을 가했다. 페달을 밟고 싶었던 소녀 와즈다가 떨친 파급력 덕에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2013년부터 공공장소에서도 안장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5년 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마침내 자동차 핸들까지 손에 넣었다.
<마이 드라이버 앤 아이>는 <와즈다>의 교장선생님 역으로 역사에 동행한 배우 아흐드 카말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출산이 임박한 감독을 대신해 영화 홍보에 앞장선 영국인 프로듀서 조지 패짓은 “여성이 절대로 운전할 수 없던 시대”를 자전적으로 회고한 감독의 뜻을 전했다. “아흐드는 4살 때부터 기사 아저씨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아흐드가 집 밖에서
[인터뷰] 무궁무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 서사, <마이 드라이버 앤 아이> 조지 패짓 프로듀서
-
<다이 가족 이야기>는 애초 2025년 공개를 점쳤으나 푸티지에 반한 프로그래머가 개막작으로 월드프리미어를 권해 레드씨국제영화제의 첫 번째 밤을 수놓게 됐다. “제작 국가 중 한곳의 영화제이자 중동을 대표하는 영화제가 이런 기회를 줘서 뿌듯하다.” 카림 엘 슈나위 감독의 말대로 이 작품은 MENA의 영화 강국 이집트와 신성 사우디아라비아가 공동제작했다. 앞서 쿠웨이트, 레바논 등에서도 시리즈 연출 경력을 쌓은 슈나위 감독은 “이 지역의 여러 재능을 만나는 일에 익숙”하다. 영화의 주제도 이와 닿아 있다. “이집트가 배경인 <다이 가족 이야기>는 다양성에 관한 영화로, 서로 다른 피부색, 방언, 음악, 풍경을 아우른다.”
주인공 다이(바드 무함마드)는 감독의 의도를 대변하는 존재다. 백색증으로 유독 흰 피부를 가진 그는 급우들의 놀림을 받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자유롭다. 방송국 오디션 참가를 결심하고 헌신적인 선생님, 엄격한 어머니, 티격태격하는 누나와 함께 카
[인터뷰] 중동영화의 허브로부터, <다이 가족 이야기> 카림 엘 슈나위 감독
-
지난해 이맘때 <씨네21>은 국내 언론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레드씨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이제 막 꿈틀거리기 시작한 시장의 태동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상업적인 영화 상영을 금지한 35년의 세월을 지나 2018년에야 비로소 극장 문을 다시 열었다. 엔터테인먼트 개발로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영화산업”이라는, 한국에선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문구를 현실화하는 중이다. 그 역동의 한가운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문화부 장관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레드씨영화재단이 있다. 재단은 자국 영화 제작·배급·교육에 앞장설 뿐 아니라 제다에서 중동 지역 최대 규모로 영화제를 주최해 세계 영화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씨네21>도 2년 연속 제다를 찾았다. 한국의 부산에 비견되는 이 도시는 12월이라는 날짜가 무색하도록 햇볕이 강하다가도 저녁마다 해안가의 순풍
[기획] 풍요로운 홍해의 무비 로드, 제4회 레드씨국제영화제 리포트
-
“<한겨레> 민주주의 수호 에디션 드디어 구했다! 민첩한 하루 되세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105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을 1면에 박제해버린 <한겨레>가 일종의 굿즈가 되어버린 2024년의 시위 풍경. 누군가는 이를 두고 “집회 특전(팬덤 사은품) 받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과거 시위를 이끌어온 OB세대를 ‘경력직’이라 일컬으며 존중하거나 핫팩·초콜릿 등을 ‘무나’(무료나눔)하는 풍경은 팬덤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례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2017년 9월, KBS가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현직 연출자 대부분이 공석에 이르자 부장급 연출자들이 실무를 도맡아야만 했다. 이때 <뮤직뱅크>는 의도치 않게 고연차 ‘짬바’가 드러나는 완벽한 카메라앵글을 구현했고 아이돌 팬덤은 이를 ‘부장뱅크’라 부르며 역사처럼 회고한다. 경력과 연륜이 묻어나는 결과물을 팬들이 기꺼이 반기고 존중하는 것이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2024년 탄핵 시위 풍경의 변화
-
그야말로 혼란스러웠던 11일이었다. 12월3일 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12월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까지 온 국민은 잔뜩 긴장하며 정국을 살펴야 했다. 우선 <씨네21>은 2차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것인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12월11일 수요일, 국회 내부로 들어가 긴장감이 감도는 정계의 기운을 포착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14일 거리의 온 시민이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던 그때의 현장에도 함께했다.
12월11일 국회 본회의는 국무위원 현안 질문 등으로 본격적인 탄핵 정국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었다. 본회의가 끝나고 의원들이 퇴장하자 국회 본관 로텐터홀은 수많은 취재진의 열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특별한 입장 발표 없이 묵묵하게 국회를 나섰다.
<씨네21>은 영화 <나의 촛불>을 연출하기도 한 주진우 기자와 함께 국회 곳곳을 누볐다. 주진우 기자는 국회를 오가는 국회의원들을 붙잡으
불안, 초조 그리고 환호 - 탄핵 정국의 국회 풍경부터 탄핵안 가결 순간의 여의도 거리까지
-
이란 팔라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자 이란 역사상 마지막 군주,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1941년 제위에 올랐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급진적인 근대화와 산업화를 통해 이란을 강대국으로 이끌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백색혁명’이다. 196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 개혁은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농촌 개발, 여성 참정권 확립과 아동결혼 금지, 토지개혁 및 문맹 문제 해결 등을 바탕으로 친미노선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팔라비 왕조는 이를 경계하는 반체제 운동을 탄압하며 독재체제를 구축했고, 1978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반팔라비 시위가 시작되자 계엄령을 선포하며 무력 진압을 시도했다. 끝내 시민의 승리로 돌아간 이란 이슬람 혁명은 민중의 투쟁으로 왕정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갖지만 혁명 직후 수립된 신정부에서 또 다른 독재체제를 이어오며 이슬람 근본주의로 퇴보했다는 평이 따른다.
벤 애플렉 감독의 <아르고>(2012)는 이란 이슬람 혁명
새로운 물결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란 이슬람 혁명의 영화들 - <아르고> <옥수수밭의 아이들> <페르세폴리스> 등
-
1960년대 칠레는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칠레 전역에서만 1970년 한해 동안 5295건의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으며, 우파 정부의 토지 개혁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무토지 농민운동이 벌어졌다. 같은 해 좌파 정당 연합인 인민연합이 추대한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아옌데의 당선 이후에도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은 이어졌고 아옌데는 1973년 8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피노체트는 그해 9월11일,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킨 후 17년간 군부독재를 이어갔다. 피노체트는 쿠데타와 취임식 사이 최소 3만여명의 칠레 국민을 살해했고 자신에게 맞선 노동자들을 색출해 고문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정부가 사라져야 한다는 명목하에 쿠데타 전후로 미국의 배후 지원을 받았다. 1989년 야권 후보인 파트리시오 아일윈에게 패배한 피노체트는 대통령직을 넘기는 대신 총사령관 직책은 유지했다. 하지만 1998년부터 이어진 끝없는 형사소송과 국제사법재판으로
칠레의 영화는 지지 않는다, 피노체트 쿠데타와 칠레의 영화들 - <세 마리의 슬픈 호랑이> <칠레 전투> <공작> 등
-
1960년대 우상향하던 유럽의 경제성장은 산업 주류를 이루던 제조업이 쇠퇴하며 침체를 겪는다. 정부는 날로 극심해지는 지역간 불균형과 청년실업 문제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유럽의 청춘들은 염세주의와 모순이 팽배한 전후 국가에서 새로운 것을 열렬히 희망했다. 무엇보다 유럽 대륙 밖에선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제리나 쿠바의 내전 소식이 연일 매스컴을 통해 보도됐다. 그리고 미국은 베트남전을 벌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전후세대는 기성세대가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과거의 역사를 없던 일로 치부하며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한 채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1968년의 봄
1967년 파리 낭테르대학교의 학생들은 권위주의에 매몰돼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학교에 분노하며 등교를 거부했다. 이 움직임은 프랑스전국학생연합의 수업 거부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파리, 베를린, 로마에서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반전시위가 연이어 일어났고 1968년 3월,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68혁명과 프랑스, 독일의 영화들 -<만사형통>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