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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OTT 양대 산맥이 합쳐질 날이 머지않았다. 지난 6월 티빙과 웨이브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을 받으면서 수년 전부터 오르내리던 양사의 합병 소식이 현실로 다가왔다. 많은 OTT 사용자들, 그중에서도 티빙과 웨이브 구독료를 모두 부담하던 유저들이 이를 반기는 가운데 영상·콘텐츠 업계에서는 각자의 입장을 내세운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씨네21>은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가져올 변화는 무엇일지, 불린 몸집으로 넷플릭스에 대항할 수 있을지, 과연 OTT 너머의 플랫폼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할지 궁금해하는 독자들과 고민을 나누기 위한 특집을 마련했다. 국내 업계 종사자들의 반응을 통해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낳을 결과를 그려본 데 이어 해외 사례를 참고해 OTT 플랫폼들이 취할 다음 스텝을 예측해봤다.
OTT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의 대체재로 떠올랐지만, 팬데믹이 저물면서 성장세가 기울어진 게 사실이다. 플랫폼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주기도 점점
[특집] 누가 시청자의 시간을 지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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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4일 국회 본회의를 통해 2025년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이하 추경안)이 통과되면서 영화산업과 독립영화계에도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 올해 초 관련 예산이 폐지되며 논란이 일었던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에 대한 4억원의 지원 사업이 복원됐다. 지난 6월 공개된 271억원 규모의 영화 할인쿠폰 관련 추경안도 통과됐다. 올해 초 398억원의 정부 출자로 구성됐던 모태펀드 영화계정은 200억원 증액됐다. 다만 추경안 심의 과정에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사업 중 한국영화 기획개발지원사업 증액과 차기작 지원사업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태펀드 영화계정도 기존 안보다 감액되며 사업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쉴 틈 없이 휘몰아쳤던 영화계 관련 추경안 통과 과정과 결과를 상세하게 살펴봤다.
서독제 예산 복원, “창작자와 관객에게 환원하겠다”
영진위의 ‘독립영화제 개최지원’ 추경안이 통과되면서 서독제에 대한 4억원의 지원금 지급이 확정됐다. 올해 개최되는 서독제 예산
국회 추경안 통과, 영화계에도 수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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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룩>의 각본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처음에 구상했던 아이디어는 코미디에 가까웠다. 시골 가면 할머니들이 막걸리를 많이 드시지 않나. 근데 할머니들이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약이야 약. 몸에 좋아”라고 하신다. 한 양조장에서 코로나19를 종식시킬 수 있는 만병통치 막걸리가 개발되면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였다. 작업 여건상 스케일을 크게 갈 수가 없어서 지금 방향으로 바꾸었다. 예전에 시를 써서 그런지 상징적으로 글 쓰는 습성이 지금 영화에 좀 반영된 것 같다. 누룩을 소재로 이야기를 발전시키다 보니 한 사람의 상징적인 신념, 주변에서 믿어주지 않아도 끝까지 관철하는 그런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 단편 <내 귀가 되어줘>를 연출할 때에는 출연도 했다. 이번에는 출연하지 않았는데 이유가 있나.
단편 찍을 때 느낀 고충 때문에 출연을 안 하게 됐다. 직접 출연하면서 연출을 하면 모니터링이 안되니 같은 과정을 두번 거쳐야 하더라. 온전하게
[인터뷰] 견고하고 고집 있는, <누룩> 감독 장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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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윤에게 주말극 남자주인공 같은 그 데뷔담을 또 물으려다가 말았다. 아마도 지난 9년간 수천번은 답했을 얘기 같아서. 무해하고 말간 외모 때문인지 ‘상처받았으나 잘 자란 아들’ 역할을 도맡았던 장동윤은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에서도 고현정 배우가 맡은 사연 많은 인물의 아들로 출연한다. 새삼 장동윤의 출연작을 둘러보니 갈피가 안 잡힌다. 80년대 배경의 시대극(<오아시스>)에서는 불운한 깡패 역을, 조선 시대 가상의 과부촌을 배경으로 한 <조선로코-녹두전>(이하 <녹두전>)에서는 여장으로 미색을 뽐내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는 주변의 과한 기대를 받다가 공황장애로 고통받는 역을, 최근작 <모래에도 꽃이 핀다>(이하 <모래꽃>)에서는 14kg이나 살을 찌우고 씨름판에서 샅바를 잡기도 했다. 영화 <악마들>에서는 형사와 영혼이 바뀐 사이코패스 살인자를, <늑대사냥>에서는 이능력
[기획] 당신도 좋아했음 해, 장동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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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과 공감 사이 놓인 디테일의 다리,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가능성의 씨앗은 언제나 뜻밖의 순간,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피어난다. <오징어 게임>이 성공할 요건들로 가득한, 보장된 프로젝트였다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성공하기 힘든 요소들만 모아둔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는 기획물이다. K팝 아이돌이 몬스터를 퇴마한다는, 상상하기 힘든 조합이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줄은 아무도, 심지어 배급한 넷플릭스조차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스토리라인이 대단히 참신하거나 기발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외려 적당히 뭉개는 부분도 적지 않고 과하거나 유치한 지점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인 비결은 <오징어 게임>과 정반대로 캐릭터를 향해 쌓아올린 디테일에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애초에 문화적 요소를 찬양하거나 널리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기획된 상품이 아
[기획] 실감과 공감 사이 놓인 디테일의 다리, <케이팝 데몬 헌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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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사람.” 결국 이 대사가 하고 싶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정확히는 기훈(이정재)의 입을 통해 이 도덕적 딜레마의 명제를 내뱉는 그림을 만드는 게 최종 목적지였던 것처럼 보인다. 이 대사는 무엇을 증명했는가.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자살하는 기훈의 행동은 저 말의 의미를 뒷받침할 수 있는가. 어쩌면 말은 입 밖으로 발화되는 순간부터 일정 부분 거짓에 물들 운명을 타고난다.
<오징어 게임> 시즌3에서 개연성이 휘발된 이유
기훈은 ‘오징어 게임’에 다시 돌아온 순간부터 시스템과 대결을 벌인다. 비슷한 길을 이미 걸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프론트맨(이병헌)은 기훈을 시험했던 시즌1의 오일남처럼 그가 양심을 버리고 시스템의 길을 걷기를 끊임없이 종용한다(동시에 자신이 걷지 못했던 길을 걷는 기훈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시스템은 이들의 인간성을 완전히 집어삼키지는 못했고, 몇몇 참가자는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하며 시청자의 답답
[기획] 미련을 남길 바엔, 그리워 아픈 게 나아, <오징어 게임> 시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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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시즌3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사이 좋게 넷플릭스 글로벌 스트리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시즌1이 전세계의 유례없는 성공을 기록한 <오징어 게임>의 시즌3는 이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림을 예고하고 있었기에 공개일에 당연히 1위를 차지할 거라는 예상을 받아왔다. 온 도시를 시리즈의 상징물이 점령하다시피 한 대대적인 마케팅과 함께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장을 열어젖힌 <오징어 게임> 시즌3는 역시나 공개 당일 전세계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나 시리즈의 주요 서사를 배반하는 듯한 실망스러운 결말에 시청자들의 반발과 엄청난 비판, 하향세로 꺾인 로튼토마토 비평 지수 등은 일단 차치하고 성적만 본다면 시리즈의 마침표로 나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거기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했으니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인데, K팝 스타가 히어로로 등장하는 이 애니메이션이 입소문을 타고 심
[기획]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했고 <오징어 게임> 시즌3는 안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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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2회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 대상작 <아내의 비밀>이 <가족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새 단장을 마치고 올가을 드디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소중한 가족 승현을 세월호 참사로 잃은 뒤 또 다른 위기에 접어든 한 가족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엄마 연정(김혜은)의 이유 모를 외출이 잦아지면서 남편 진수(김법래)와 딸 미나(김보윤)는 그의 외도를 의심하고, 삭막해진 집안 곳곳에서는 각자가 억눌러왔던 아픔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슬픈 가족드라마로 예측되기 쉬우나 이 영화의 장르는 엄연히 코미디다. 유쾌함을 잃지 않으며 확장성을 갖춘 작품은 당시 심사위원들도 “희망과 위로를 전하는 작품”(심재명 전 4·16재단 이사)이자 “살아가며 겪게 되는 다양한 시련을 이겨내는 이야기”(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라고 평한 바 있다. 세월호 11주기를 맞은 올해의 공모전 접수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이상훈 감독을 만나 사회적 참사를 창작으로 풀어낼 때
[인터뷰] 잊지 않으면서, 잘 살아가는 것, <가족의 비밀> 이상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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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이재준)은 원치 않는 전학을 오게 된다. 정 붙일 곳 없는 동네와 학교에서 축구와 게임이 전부였던 기준에게 영문(최현진)과 영준(최우록) 형제는 묘하게 눈에 띄는 존재다. 기준은 어딘지 자신과 다른 영문을 처음엔 두려워하다 친구가 된다. 첫 장편 <여름이 지나가면>을 연출한 장병기 감독은 어린 남자아이들 사이에 조성되는 긴장과 흠모를 사건과 대사, 감정으로 세심하게 조율하여 풀어낸다. 인터뷰 내내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에게 고른 지지와 감사를 전한 감독에게 이 영화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는지 차례로 물었다.
- 10대를 갓 넘긴 남자아이들의 영화는 그간 참 드물었다. 왜 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싶었나.
시나리오 단계나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주변과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던 근거는 이 나이대 아이들은 교우 관계에 있어 아직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부모가 금기를 주면 초등학교 저학년은 이유도 모른 채 부모 말을 따르고, 고등학생은 분별력이 생
[인터뷰] 부모에게 말하지 않은 소년들의 세계를, <여름이 지나가면> 장병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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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이 좋다. <약한영웅> 시리즈는 최애작이고, <피라미드 게임>을 모티브로 이 지면에 칼럼도 썼다. 학생 정치는 어떤가. 주애령의 장편 동화 <승리의 비밀>과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는 갓띵작이다. 최근에는 드라마 <러닝메이트>에 빠졌다. 주인공이 러닝메이트를 제의받는 초반에, ‘러닝메이트’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순간이 기억났다. 전교 회장에 막 당선된 6학년 형이 5학년 부회장 선거에서 낙선한 내게 다가왔다. “너를 찍었다. 러닝메이트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는 않았다. 낙선 직후 정말 아까웠던 선거는 중2 때 실장 선거다. 1학년 실장 출신 넷이 붙었다. 투표마다 최하위를 떨어트리는 규칙이었다(다차 투표 형식의 선호투표제?). 이거 무슨 콘클라베도 아니고 5차까지 갔다. 나는 1차에서 2위, 2차와 3차에서 공동 2위였고(1학년 때도 담임이셨던 교사의 한마디, “누군가는 생각을 바꿔야 끝나”), 4차에서 한표가 줄어
[김수민의 클로징] 러닝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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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1979), <블레이드 러너>(1982) 등을 거쳐 대표적 비주얼리스트로 자리 잡은 리들리 스콧과 두 여성 무법자의 이야기를 들고 나타난 신인 작가 캘리 쿠리. 이들의 만남이 이토록 오랫동안 영화사에서 회자될 것임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1993년 국내에 첫 개봉했던 <델마와 루이스>가 그로부터 30여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는다. 이제는 여성 서사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델마와 루이스>는 여전히 세심하고도 풍성한 독해를 요청한다. 영화는 델마(지나 데이비스)의 집, 루이스(수전 서랜던)가 일하는 식당에서 시작해 창공을 가르는 선더버드 위의 두 여자로 마무리된다. <델마와 루이스> 는 이토록 상반된 시작과 끝 사이를 채우는 여정에 관한 로드무비다. 두 인물이 자리를 바꿔가며 단독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비틀린 서부극이자 관찰과 애정이 뒤섞인 실패한 추격전이다. 델마와 루이스는 친구, 연인, 모녀, 사제 등 다양한
[리뷰] 재개봉 영화 <델마와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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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한 여름날, 소설가 니콜(산다 코드레아누)과 캠걸 루비(수헤일라 야쿠브)가 사는 아파트에 친구 엘리즈(노에미 메를랑)가 찾아온다. 화목한 저녁 식사 후 발코니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던 세 친구는 전부터 유심히 보던 맞은편 이웃집 남자의 초대로 흥겨운 밤을 보낸다. 아침이 밝고 그의 집을 다시 찾은 세 친구는 그곳에서 참혹한 시체로 변한 남자를 발견한다. <발코니의 여자들>은 배우 노에미 메를랑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으로 호흡을 맞춘 감독 셀린 시아마가 각본에 공동 참여했다. 푹푹 찌는 폭염을 배경으로 그려낸 세 여성의 시체 은닉기는 살갗이 끈적이는 습도를 형상화한다. 이 꿉꿉함의 원천은 공기처럼 떠도는 가부장제와 강간 문화에서 비롯된다. 코믹과 호러를 넘나들며 경쾌하게 질주하는 영화의 직선적인 전개는 미묘한 불쾌감을 겪고 있던 여성들에게 통렬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리뷰] 살갗이 끈적이는 꿉꿉함, <발코니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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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경(한예리)과 수환(김설진)은 각자 파혼한 이후 깊은 슬픔을 견디고 있다. 중증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영경은 결국 국어 교사 일을 그만둔 상태이며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는 수환은 오랫동안 류머티즘을 앓아온 탓에 점점 움직이는 게 힘들어진다. 우연히 지인의 결혼식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에 의지한 채 다가오는 죽음을 견딘다. <푸른 강은 흘러라>에 이어 강미자 감독이 17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권여선 작가의 단편 <봄밤>이 바탕이 됐다. 원작에 비해 간결하고 절제된 연출을 보여주되 인물들의 감정은 더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영경과 수환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 자신의 죽음이 아닌 서로의 부재다. 술에 취해 바닥에 쓰러진 영경과 병으로 인해 걸을 수 없는 수환의 처절한 몸부림은 대사 없이도 상대에게 닿고자 하는 둘의 간절함을 대변한다. 시를 반복해 읊듯 표현된 영경의 대사 또한 행간에 담긴 그의 감정들이 절절히 전해진다.
[리뷰] 오직 당신만이 이해할 나의 공백,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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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아이(진연비)는 대만 명문 제일여고에 입학했지만 학교 얘기가 나오면 움츠러든다. ‘짝퉁’ 소리를 듣는 야간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낮에 자신의 책상을 쓰는 주간반 학생 민(항첩여)과 친해지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해나간다. 공고하던 둘만의 세계는 머지않아 주야간반 사이의 신경전, 동급생 루커(구이태)를 향한 미묘한 감정이 겹치면서 균열이 생긴다.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10대 남녀가 등장하지만 익숙한 대만 로맨스영화의 길을 걷지 않는다. 삼각관계의 낭만 대신 치열한 입시제도와 수험생의 극심한 스트레스, 가난과 계급 문제, 재난 상황에 이르기까지 현실을 진지하게 다룬다. 무엇보다 영화는 한 사람의 성장에 주목한다. 엄마의 기대나 사회적 압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잘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때 얼마나 빠르게,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공들여 묘사한다.
[리뷰] 어여쁜 청춘 연가가 아닌, 날것의 성장통, <우리들의 교복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