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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보고 또 보고
송경원 2026-04-24

뒤늦게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봤다. 이자연 기자가 무려 14번 관람한 끝에 이벤트로 서프라이즈 박스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이 일어 부랴부랴 극장을 찾았다. 영화 보는 일이 업이지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같은 영화를 두번 이상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거의 없다. 두 번째 볼 때부터는 진짜 ‘일’처럼 느껴지는 탓에 아무리 좋은 영화도 왠지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 같은 영화를 저렇게 여러 번 볼 수 있도록 이끄는 걸까.

요즘은 대체로 글을 통해 영화를 먼저 접하다 보니, 보지 않았음에도 이미 여러 번 봤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그중 하나였다. 이미 원작 소설까지 읽었을 뿐 아니라 장면 하나하나까지 구체적으로 스포일러를 당한 상태라 어쩐지 심드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극장에서 직접 확인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확실히 달랐다. 아마도 온도 때문인 것 같다. 올해 본 영화 중 감성 수치가 최대일 것이 분명할 이 영화는 바위의 탈을 쓴 곰 인형 같은 이야기다. 디테일한 수학적 묘사로 쌓아 올린 원작 소설의 정교함은 영화로 각색되며 딱딱한 껍질을 벗은 대신 10도쯤 따뜻해졌다. T로 입장해서 F로 출력되는, 세상 해맑은 상상력은 완벽한 선의를 기반으로 한다. 요즘처럼 엄혹한 시기라 그런지 그게 더 좋았다.

사실 말은 안된다. 과학 교사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의 우주 모험은 수많은 우연과 기적에 기반한다. 하지만 마치 스페이스오페라 같은 이 영화의 ‘그렇다치고’의 진행은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스며든다. 몸이 닿지도 않은 두 존재의 포옹이 왜 이다지도 포근한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우주의 중심에는 유머가 있다. <레고무비>를 연출했던 필 로드크리스토퍼 밀러 콤비는 어떤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주 최고의 발명품일지도 모를 유머를 매개로 두 존재 사이 그어진 선이 황량한 우주를 가득 채운다. 점에서 선으로, 이 방향성이야말로 삶의 압축이자 우주의 전부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우주여행을 인생에 빗댄 영화다. 돌아오지 못하는 임무를 띠고 편도 여행을 떠나는 우주선의 궤적은 마치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과도 같다. 그 불가역적인 진행은 때론 고통스럽고 두렵다. 심지어 영화 초반 그레이스는 기억상실 상태로 깨어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인생처럼, 그레이스도 자신이 우주로 내던져진 이유를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 애쓴다. 영화의 말미, 그 비밀이 풀리지만 이미 그건 중요치 않다. 그레이스는 로키라는 지향을 이미 발견했으니까.

영화 초반 상하좌우 방향이 없는 우주공간을 헤매며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의 더치 앵글은 두 존재의 만남을 기점으로 점차 안정화된다. 너라는 중력이 발생한 덕분이다. ‘나’라는 점이 ‘너’라는 점과 연결되는 여정. 그게 인생이다. 어차피 불가역적인 편도 여행이라면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를 고민할 시간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향할 것인가를 찾는 편이 이롭다. 막막한 우주에 지향을 부여하는 영화를 통해, 의미는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닳고 닳은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또 금방 잊어버리고 불안에 빠지겠지만. 상관없다. 그럴 때마다 다시 영화를 꺼내 보면 되니까. 그러고 보니 (까맣게 까먹고 있었지만) 내게도 반복해서 보는 영화들이 제법 있었다. 이래서 같은 영화를 계속 보는 거였구나. 불안과 망설임으로 가득한 불면의 밤에 꺼내 볼 영화 리스트에 한줄이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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