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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마을 영아유기사건은 한국 과학수사의 현재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에서는 DNA 증폭기로 영아들의 어머니가 집주인의 아내임을 밝혀냈고, 올 상반기에만 3500여건(실험 분석 건수로는 1만2천여건)을 다뤄 살인, 강간 등 강력사건을 해결해낸 과학수사의 힘을 증명해 보였다.
오랫동안 범죄수사의 ‘이미지’는 영감이 번뜩이는 뚝심있는 형사의 모험으로 인식돼왔다. <살인의 추억> 속 박두만(송강호)이 그랬듯, 심증이 가는 범인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추궁해, 때로는 폭력에 가까운 수사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진범을 찾아내는 식의 이야기. 하지만 그 박두만의 육감을 흐트린 것은 바로 유전자 감식 결과였다. 아무리 털이 없는 범인을 찾고 비가 오는 날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는 남자 용의자를 찾아도 법의학적 증거 앞에서는 싸울 수 없다. 부연설명 없이도, 관객 모두 알아듣는다. 1913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법의학적 증거가 최초로 인정받은 이래 100여년이 지
CSI의 매력, 책으로 만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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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이나영은 대체로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기성 사회에 발을 들여 놓지 않은 채, 호기심 반 의심 반의 눈으로 그 곳을 관찰하는 이처럼 보였다. 14일 개봉하는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이나영은 조금 다르다. 청바지 대신 정장을 입는다. 직업도 교수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에 제일 나이 든 캐릭터예요. 연기하면서 구두를 처음 신었어요. 정장도 처음이고. 청바지를 피해가자는 게 콘셉트였어요.” 그가 연기한 유정은, 기성 사회에서 교수라는 그럴 듯한 직함도 얻었지만 뭣 때문인지 대인관계나 생활이 온전치가 않다. 그 사연을 끝부분에서 밝히는 이 영화의 유정 캐릭터는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낼지언정 어디까지나 어른스러워 보여야 한다.
“평소 말투를 피해야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연기 지도를 받으러 갔어요. 조금이라도 애처럼 나오면, 귀엽거나 투정거리는 말투가 나오면 관객의 감정이입이 안 될 것 같았어요.” 이영애, 이정재 등의 연기 지도를 했던 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이나영, 청바지 벗고 ‘어른’ 되려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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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천하장사 마돈나〉의 감독, 프로듀서와 술 마실 기회가 있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언론시사회 때부터 호평이 줄을 이었고, 개봉한 뒤 영화를 ‘본’ 일반 관객들도 대부분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영화였다. 그래서 ‘잘 된’ 영화를 개봉한 영화 관계자들과 술자리가 으레 그렇듯, 흥분과 호기 가득한 술자리가 될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뜻밖에 이해영, 이해준 두 감독과 프로듀서, 홍보 담당자들에게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더 큰 듯했다.
역시, 문제는 흥행이었다. 제작비 41억여원을 들인 이 영화의 경우 150만명 정도의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10일까지 전국 관객이 48만3000명에 그친 것이다. 바로 다음 주부터 〈라디오 스타〉 〈타짜〉 〈가문의 부활〉 등 대박 예상작들이 줄줄이 개봉하는 추석 시즌이 닥치기 때문에, 〈천하장사 마돈나〉가 스크린을 오래 붙잡고 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왜 이 좋은 영화를 보지 않느냐”고 관객을 탓할 노릇은
[팝콘&콜라] ‘짧고 굵은’ 개봉에 힘못쓴 <천하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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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규모의 필름마켓(영화 시장)이 부산에서 출범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해 일부 도입한 필름마켓을 올해부터 본격화해, 제11회 부산영화제 기간인 10월15일부터 18일까지 부산 그랜드호텔에서 ‘아시안 필름마켓 2006’을 개최한다.
13일 부산영화제 쪽에 따르면 올해 첫 아시안 필름마켓에는 전 세계 95개 영화사가 참가해 영화 수입수출, 사전 투자, 합작 등등의 영화 관련 거래를 벌이게 된다. 이 가운데는 일본 메이저 배급사 도호토와 컴퍼니, 쇼치쿠 코퍼레이션, 도시바 엔터테인먼트, 소니 픽처스와 중국의 베이징 폴리보나 필름 디스트리뷰션, 홍콩의 에드코필름, 포르티시모 필름, 유럽의 스튜디오 카날, 와일드번치, 타탄필름즈, 엠케이(MK)2, 미국의 라이온스게이트필름, 웨인스타인컴퍼니 등 할리우드 메이저를 제외한 세계 주요 구매 및 판매 회사들이 망라돼 있다. 또 마켓 전용 스크린을 아시아 마켓 중에서 가장 많은 10개를 마련한 이번 마켓에 필름 상영 신청이 이미 120
영화 사고 파는 ‘필름마켓’ 부산영화제서 문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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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다이어리] <일본침몰> ‘일본침몰’은 슬픈영화다
[헌즈다이어리] <일본침몰> ‘일본침몰’은 슬픈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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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소쿠로프는 20세기 말에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20세기의 가장 악명 높은 지도자 혹은 저주받은 권력자를 주인공으로 4부작을 연출하겠다고 밝혔다. <몰로흐>와 <더 선>은 그 첫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한다(두 번째는 레닌이 주인공인 <황소자리>). <몰로흐>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에바 브라운과 측근들에 둘러싸여 바이에른 알프스 산중의 음울한 요새에서 1942년의 하루를 보내고, <더 선>에서 천황 히로히토는 1945년 2차대전 패전의 날 지하 벙커와 실험실에서 나와 미국의 맥아더 장군과 만남을 가진다. “예술로서의 영화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불가해하다”는 소쿠로프의 말대로 <몰로흐>와 <더 선>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작품이며, 회화와 꿈과 시가 뭉친 전작들의 우울한 이미지 또한 여전하다. 먼저, 세 연작은 역사적 사실을 비평하거나 한 인간을 단죄하려는 작품이 아니다. 감독은 20세기의 비극적인 사건의
[해외 타이틀] 역사적 비극을 막는 인간의 자질에 대한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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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컬렉션>은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출시 중인 ‘1980·90년대 한국영화 시리즈’의 첫 결실이다. 임권택의 87번째 작품인 <아제아제 바라아제>부터 <서편제> <태백산맥> <축제>를 거쳐 97번째 작품 <춘향뎐>까지를 담은 박스 세트(그 사이 작품인 <장군의 아들> 시리즈는 별도 박스 세트로 출시되며, <창>은 감독의 청에 의해, <개벽>은 제작사가 달라 빠진 경우다)의 의미는 남다르다. 1990년을 전후해 한국영화와 산업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으나 임권택 영화는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아우른 그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당시 한국영화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박스 세트에서 임권택이 직접 음성해설을 맡았다는 것이 그 의미를 단적으로 말해주는데(평소 자신의 영화를 다시 보지 않는다는 그다), <서편제>의 조감독이었던 김홍준과 진행한 음성해설
정성일의 음성해설과 인터뷰로 본 임권택 연구, <임권택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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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비롯해서 한국 학교 시절을 묘사하는 영화들을 보면 한국 학교가 정말 이렇게 폭력적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많은 학교는 영화만큼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폭력이 가득 차 있는 모양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 즉 몸과 마음을 나라를 위해 바쳐야만 하는 강제는 학생이든 교사이든 피하기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군대에서 복종을 배운 교사들은 가끔은 학생들이 입원할 정도로 매를 주기도 한다. 주지하듯이 학교, 군대, 감옥, 공장 등은 공공(국가)의 이익을 위해 훈련을 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타율적 강제에 의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노예도덕’ 즉 언제든지 무너지기 쉬운 복종에 불과하지, 자율적 규제 즉 스스로의 이해와 동의에 의한 존경이 결코 아니다. 그 결과물은 ‘예의 바른 노예’ 혹은 자동기계(automat) 혹은 ‘자판기’(自販機)인데, 자율주체와는 멀다. 이러한 논리와 방식으로 사회화된 ‘바른 인간’은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왕자가 선물로 받은 흰 말 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노예와 사이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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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연애 중이었다. 29살이라 해도 이십대는 이십대였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십대거나 삼십대의 아주 초반이었다. 몇몇의 연애는 위태로웠고 몇몇의 연애는 뜨거웠고 몇몇의 연애는 안정적이고 포근했다. 나는 세 번째 연인들을 진심으로 동경했었는데, 내가 근본적으로 관계의 불안함을 쉽게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밀고 당기기”를 하느니 차라리 혼자 재미있게 지내자는 주의였고, 밀고 당기고를 세번 이상 하면 그때부터는 피곤해서 연락도 안 하는 인간이었다. 처음부터 안정적인 커플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안정적이라는 말 속에 사실은 권태나 귀찮음, 방관, 무관심 혹은 시간의 힘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들의 “현 상태”에만 주목했고 그 상태만을 바라보았다.
나는 공식적으로 삼십대가 되었고, 내 주변의 인간들 팔할이 빼도 박도 못하는 삼십대 초반 혹은 중반에 들어섰다. 커플인 사람보다 커플이 아닌 사람이
[오픈칼럼] 이별, 그 참을 수 없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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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에 처음 왔을 때 개가 되고 싶었다. 타이의 개들은 도로를 침대 삼아 잠을 잔다. 마치 앞으로 세 시간은 푹 잘 테니 깨우지 마시오, 하는 포즈로. 공항 버스는 개들을 멀찍이 피해 오염 가득한 방콕의 공기를 뚫고 달려서 마침내 카오산 로드에 날 내려주었다. 카오산 로드는 한마디로 미친 거리다. 그곳엔 낮과 밤의 개념이 없다. 사람들은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머리를 땋고 영화를 보고 거리 공연을 본다. 나는 젊은 여행자들이 그들의 차가운 열정을 방콕의 뜨거운 대기 위에 흩뿌리는 것을 보았다.
방콕은 여러모로 바쁜 도시다. 마치 서울의 혼잡한 도로 사이사이에 뚝뚝(삼륜차)과 오토바이 폭주족들을 심어놓은 듯하다. 도시에 비해 방콕 사람들의 속도는 더딘 편이다. 나는 MBK라는 멀티플렉스의 퓨전 샤브샤브 집에서 방콕인의 특성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특성은 음식을 제때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물을 달라고 10분 간격으로 3번이나 얘기했지만, 식당에 들어간 지 50여분
[이창] 트래블 안의 트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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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과 이명세 감독이 다시 만났다. 강동원은 프로덕션 M이 제작하는 이명세 감독의 차기작 <M>에 주인공 한민우로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강동원은 이명세 감독의 전작 <형사 : Duelist>에 출연한 바 있다. 강동원이 맡은 캐릭터 한민우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베스트셀러 소설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명세 감독의 신작 <M>은 여배우 캐스팅을 마치는대로 10월부터 촬영에 돌입할 계획이다. 강동원은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사형수 윤수 역을, 한창 촬영중인 박진표 감독의 유괴극 소재의 <그놈 목소리>에서는 목소리 역을 맡고 있다.
강동원, 이명세 신작 의 주인공으로 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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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01년, 늦가을의 화창한 오후였다. 일 때문에 지방에 갔던 필자는 중간에 시간이 떠버려 영화라도 보면서 시간을 때워야 했는데, 그 ‘영화라도’에 선정된 영화가 다름 아닌 <조폭 마누라>였다. 당시 지리적 사정권 내에 있던 유일한 극장은 재래식 시장의 한가운데서 용케 철거를 면하고 있던 낡은 재개봉관뿐이었는데, <조폭 마누라>는 그곳에 걸려 있던 유일한 프로였다. 게다가 당시 <조폭 마누라>는 행복과 웃음이 만발하며 아름다운 인정이 팔당댐 수문 개방시처럼 넘쳐나는 화목한 가정 즐거운 직장 건전한 사회의 수호를 위해 불철주야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 마지않는 각종 언론에 집약적 십자포화를 맞고 있었던지라 개인적으로는 그 열화와 같은 반응의 비결을 연구해보고 싶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구려터졌기에.
그리하여 남들 다 본 뒤늦은 타이밍에 관람하게 된 <조폭 마누라>. 두 마리의 황금빛 쌍봉황 사이에 적힌 ‘축 발전’ 세 글자가 금빛으로
투덜군, 대표적 추석 코미디영화 <조폭 마누라>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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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반바지를 입고 다니다 아침저녁 차가운 공기에 깜짝 놀랐다. 어느새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 바람이 서늘하다. 에어컨에 익숙해졌던 몸은 자연이 실어온 바람에 새살이 돋는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서울에서 요즘처럼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는 때는 많지 않다. 나는 가을이 걷기 좋은 계절이라 좋다. 어딘가 여행을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냥 가까운 곳에서 산책만 하더라도 좋은 때다. 9월이나 10월에 서울 성곽길이나 삼청동, 가회동 골목 같은 곳을 걷다보면 가을이 몸에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 그런 거리가 주말마다 사람들로 꽉 차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아서일 것이다.
강남에도 옛 정취가 남아 있는 동네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강북에도 그런 동네가 많지는 않다. 시대 배경이 현재가 아닌 영화를 만드는 경우에 더욱 절실히 느끼는 문제지만 서울은 시간이 쌓인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운 도시이다. 그래서 불편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어딘가 에어컨 바람을 닮
[편집장이 독자에게] 가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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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조승우의 얼굴은 유난히 낯익게 느껴진다. 연초부터 여자친구와의 결별설이 나돌면서 쑥덕방아에 오르내리던 그는 4월 바로 그 구설의 주인공 강혜정과 함께 출연한 <도마뱀>을 통해 관객과 만났고, 3월에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과 함께 일본으로 가서 한류의 물결을 다시금 출렁이게 했으며, 8월에는 국립극장 무대에서 다시 지킬과 하이드의 열정적인 변신극을 보여줬다. 그리고 9월 하순에는 영화 <타짜>를 통해 영화 관객 앞에 등장하게 되니, 그는 데뷔 이래 가장 숨찬 한해를 달리고 있다.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타짜>에서 조승우는 주인공 고니를 연기한다. 고니는 한때 순박한 청년이었으나 노름의 세계에 탐닉하게 된 뒤 도박판의 선수요, 화투판의 전사인 ‘타짜’로 변신하고, 이후 평경장(백윤식), 정 마담(김혜수), 고광렬(유해진) 등 ‘돈 놓고 돈 먹는’ 이 세계의 총총한 별들과 만나면서 서서히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배우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타짜>의 조승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