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천원짜리 쿠폰과 경품 이벤트에 눈이 멀어 <처음처럼>을 샀다. 신영복이 쓰고 그린 <처음처럼>은 생각보다 크고 무거웠지만, 조그만 검은색 노트가 함께 들어 있어서 용서가 되었다. 책보다도 노트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매끄러운 미색 종이가 예뻐서 만지작거리다가 예전에 좋아했던 글을 발견했다. <함께 맞는 비>라는 제목만 보고도, 나는 그 글을 알아볼 수 있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慰勞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읽고 기억했던 글이 변형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함께 맞는 비>와 함께 한꺼번에 풀려나왔다.
대학 3학년이었던 1997년이었다. 나는 인문대 학생회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고, 총학생회와
[오픈칼럼] 함께 맞는 비
-
던킨 도너츠에 된장녀 스타일로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내 앞에 프라이팬을 내밀었다. 우아한 클래식 음악과 소곤거리는 사람들의 대화, 햇살이 비치는 창 등 조용한 카페의 미장센에 불협화음을 낸 그 소년. 사시였다. 눈동자가 제멋대로 춤추고 있어 나를 보는지 내 옆사람을 보는지 알 수 없게 했다. 난 메모를 끼적거리고 있었기에 갑자기 내 앞에 놓인 프라이팬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프라이팬은 기묘할 정도로 컸다. 소년은 약간 뚱뚱했고 시니컬한 말투의 소유자였다.
“동전이나 좀 주세요.”
그리고 소년은 프라이팬에 있던 동전 하나를 일부러 떨어뜨려 쨍그랑 소리를 냈다.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았다. 난 당황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소년은 금세 다른 테이블로 옮겨갔다.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누구나 당황하는 표정이었고 소년은 두 테이블에 한명 정도의 확률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소년은 거대한 프라이팬을 옆구리에 끼고 계단을 걸어내려가 유유히 사라졌다.
광인. 어떤 시대를 살고
[이창] 프라이팬 소년
-
<타인의 삶>(The Lives of Others)은 뛰어날 정도로 고립된 제목과 딱 20세기적인 전제를 가진 영화이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첫 번째 영화는 베를린 장벽이 지정학적 세계에서 움직일 수 없는 중심으로 여겨졌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때는 1984년. 조지 오웰의 소설 속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모범적인 스탈린주의 경찰국가였던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은 세계에서 인구당 가장 많은 미행자, 도청 전화기, 도청된 방을 갖고 있었다. 독일 국가안전기구(Stasi: State Security Apparatus)는 1만명의 요원들과 적어도 그보다 두배가 넘는 ‘비공식’ 정보통을 보유했다. 협박은 어디에서나 만연했다. 비밀첩보원들은 상대를 몰래 조사하기 위해 반대편에 침투해 들어갔다. 농담이나 소문과 마찬가지로 낙서조차 조사를 받았다. 국가안전기구는 미래의 단서로 사용하기 위해 용의자의 몸 냄새까지 신중하게 수집했다. <타인의 삶>은 바로
[영화읽기] 냉정과 열정의 눈으로 본 냉전시대
-
천재 피아니스트 이리스(프란카 포텐테)는 불치병을 선고받고 고민에 빠진다. 서서히 다가올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마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재능을 수혈하고 영구히 지속시킬 존재를 강구하던 이리스는 체세포 복제학 권위자인 피셔 박사와 공모하여 딸이자, 쌍둥이이자, 자신의 사본인 시리(프란카 포텐테 1인2역)를 낳기에 이른다. 두 사람은 어머니와 딸로서 즐거운 생활을 영위하지만 시리가 자신에 버금가는 피아니스트가 되길 바라는 이리스의 엄격한 양육은 종종 갈등을 빚어낸다. 설령 시리가 어떤 이에게 ‘괴물’로 비쳐질 수 있다면 그것마저도 이리스가 원하던 바일 정도. 하지만 피셔 박사의 야욕으로 시리의 존재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머니와 딸에서 원본과 사본의 관계로 순식간에 돌변한다. 본격적인 갈등은 시리가 피부의 주름과 머리 색깔만 다를 뿐 이리스와 똑같은 여성으로 성장하면서부터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존심과 한 남자의 애정을 놓고 경쟁하던 그들
인간복제 시대의 예의 고찰 <블루프린트>
-
-
인간의 죄의식은 사랑으로 치유되는가. 과거의 죄를 숨기고 사는 두 남자의 이야기 <뷰티풀 선데이>는 사랑과 얽힌 죄에 대한 이야기다. 고시생 민우(남궁민)는 우연히 본 여자 수연(민지혜)에게 한눈에 반한다. 사랑한단 말은 못하고, 뒤를 쫓아다니길 며칠. 그는 수연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룰 수 없는 자신의 사랑에 스스로를 자학한다. 그리고 강간. 비가 오는 어느 날 수연의 뒤를 밟던 민우는 우발적으로 성폭행을 저지른다. 집착이 사랑을 억누르고, 사랑이 파멸을 불러온 순간, 영화는 카메라를 몇년 뒤로 돌려 수연과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는 민우의 모습을 잡는다. 비, 강간, 죄, 아픔. 두 남녀의 연애 속에 과거의 기억은 잠시 생략된다.
또 한명의 남자 강 형사(박용우)의 과거는 병상에 누워 있는 아내다. 얼마 전 강도 사건으로 아내가 식물인간이 된 강 형사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아내의 병원비를 위해 뛰어다니던 발걸음은 어느새 마
인간의 원죄와 속죄 <뷰티풀 선데이>
-
2차대전의 막바지, 네덜란드의 유대인 여성 레이첼(캐리스 반 허슨)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족과 함께 국경을 탈출하려 하지만 독일군에 발각된다. 무차별적인 총탄 공세 속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레이첼은 레지스탕스에 가입하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의사 출신의 레지스탕스 리더 한스(톰 호프먼) 등과 다양한 저항활동을 펼치던 레이첼은 나치 장교 문츠(세바스티안 코흐)를 유혹해 네덜란드 안에 차려진 독일군 사령부로 잠입하게 된다. 문츠의 비서가 된 레이첼은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다양한 정보를 빼내는 등 혁혁한 수훈을 세우지만, 문츠는 그녀가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레이첼과 문츠는 이미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렸으니, 그건 사랑에 빠진 것이다. 평화주의자 성향이 강했던 문츠는 레이첼의 행동을 눈감아주고 레이첼 또한 문츠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독일군 감옥에 갇힌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탈출시키는 계획이 정보 누설로 실패하게 되자 레이첼은 의심
전쟁 속 인간의 추악한 내면 <블랙북>
-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그 길목에서 영화보다 극적인 이야기들과 마주한다. <우리학교>의 시간은 2000년대지만, 거기에는 해방 직후부터 이어져온 ‘조선학교’의 굴곡진 역사가 여전히 부유하고 있다. 그리고 김명준 감독으로 하여금 그 역사와 인연을 맺게 해준 고 조은령 감독의 흔적이 살아 있다. 말하자면 <우리학교>는 지상을 떠나지 못한 그 두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애도하기 위해 시작된 영화다. 고 조은령 감독은 재일조선인을 다룬 극영화 <하나>를 준비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촬영감독이자 그녀의 남편인 김명준은 살아남은 자가 되어 아내의 미완성된 시선을 <하나를 위하여>로 채워넣었다. <하나를 위하여>를 완성한 뒤 2004년 말, 그는 다시 일본 홋카이도의 ‘우리학교’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아마도 자신의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다시 카메라를 잡았을 것이다. 더이상 아내는
우리의 무기력한 태도 <우리학교>
-
<필로 디자인> 김민수 지음/ 그린비 펴냄
9·11 발생 8일 뒤, 뉴욕 <데일리 뉴스>와 함께 밀턴 글레이저의 포스터 수백만부가 배포되었다. 글레이저가 자신의 1975년판 원형을 재해석해 9·11 테러 되새김용 캠페인으로 유포한 이 포스터는 곧 지하철 벽면과 우체통 등 공공장소와 시설물 곳곳에 붙여져 포스터로서 공공성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I ♥ NY MORE THAN EVER’, 즉 ‘어느 때보다 더 뉴욕을 사랑한다’는 문구 때문만이 아니라 맨해튼에서 세계무역센터가 있었던 위치에 해당하는 하트 안에 혈흔을 그려넣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처난 심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치유를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그곳의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다.” <필로 디자인>은 글레이저와 같은 여러 디자이너들의 사례를 통해 자본과 기술이 알파와 오메가가 되어버린 21세기의 화두로 ‘인간’을 제시한다. 낭만적이거나 복고적인 정서의 발로는 아니다. 디자
살아 숨쉬는 디자인 읽기
-
<51번째주> 3월30일(금) MBC 새벽 1시
51이 의미하는 것은? 지정학적인 관점에서는 미국의 50개 주에 이은 다른 장소, 영국을 지칭하며 약물에 대입한다면 그것은 일반 환각제보다 51배 강력한 신종 마약을 의미한다. 마약 거래를 둘러싼 소동극을 담은 <51번째주>에서 마약 제조업자 새뮤얼 L. 잭슨을 쫓는 여자 킬러는 에밀리 모티머다. 영국의 저명한 극작가 존 모티머를 아버지로 둔 그녀는 영문학을 전공한 뒤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았다.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나쁜 피> 등 시나리오 각색가로도 활동하던 그녀가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TV드라마 단역으로 출연하면서부터. 이후 꾸준히 브라운관을 두드리던 그녀는 96년 <고스트 앤 다크니스>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 휴 그랜트(<노팅힐>), 브루스 윌리스(<키드>)의 ‘그녀’로 등장하던 모티머는 니콜 홀로프세너의 독립영화 <러브리
[앗! 당신] 한 손엔 대본, 한 손엔 펜, 에밀리 모티머
-
구스 반 산트라는 이름이 세인의 기억에 각인된 계기는 <드럭스토어 카우보이>(1989)와 <아이다호>(1991)였다. 특히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는 그의 데뷔작처럼 오해되기도 하지만, 그의 실제 장편 데뷔작은 <말라노체>(1985)이다. LA 비평가협회 독립영화상을 수상하며 퀴어영화의 숨은 걸작으로 꽤 명성이 자자했음에도 지금까지 <말라노체>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실질적인 개봉마저도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의 성공 이후 소규모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렇게 제목으로만 전해지던 <말라노체>가 2006년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특별 상영되고 프랑스와 국내까지 정식 개봉하는 등 부활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은, 그 작품 자체보다는 <게리>(2002)와 <엘리펀트>(2003) 그리고 <라스트 데이즈>(2005)로 이어지며 영화 이미지를 끊임없이 혁신해나가는 구
쓸쓸했지만 소중한 기억의 이미지 <말라노체>
-
EBS 3월31일(토) 밤 11시
바흐만 고바디의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통해 이미 우리는 쿠르드인들의 고단한 삶을 목격한 바 있다. 술에 취한 노새를 끌고 국경을 넘나드는 소년의 삶에서 희망을 말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치였다.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뿌리를 상실당한 채 부유하는 쿠르드인의 삶은 일마즈 귀니의 <벽>에서도 잘 드러난다. 터키 태생이자 쿠르드인 부모를 둔 감독은 터키 내의 수용소로 시선을 돌린다. 그 안에는 성별, 연령을 불문하고 수감된 쿠르드인들이 있다. 특히 감독은 이들 중에서도 격한 노동과 간수들의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는 이들을 둘러싼 물리적인 벽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편견과 억압의 벽을 형상화하며, 궁극에는 그 벽을 죽음의 벽으로 그린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처럼 이곳에도 희망은 없다. <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망없는 소년들을 위하여, <벽>
-
이장이 죽었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도 희미한 권력의 향내는 어김없이 나게 마련이어서 비탈길 비포장도로를 자전거 타고 가다 미끄러져 죽은 전임 이장 대신 새 이장을 누구로 할 것인지로 마을은 잠시 술렁인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없던 조춘삼(차승원)이 이장이 된다. 유망한 후보자들 그러니까 나이 지긋한 40, 50대 형님들 몇몇이서 머리를 맞대고 자기들 중 한명이 이장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숙덕거리던 그때 옆에 있던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이번에는 좀 젊은 놈을 뽑아”라고 불호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그럴 만한 젊은 놈은 서른일곱 조춘삼뿐이다.
이장 노릇 중 하나가 선거철 벽보 붙이기다. 선거에 출마한 군수 후보들의 포스터를 붙이다가 조춘삼은 거기서 낯익은 얼굴 하나를 본다. 노대규(유해진).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동창생, 이라기보다는 어느 모로 보나 나보다 못할 것 같은 녀석. 이 녀석은 초등학교 내내 반장이던 내 밑에서 부반장이나 하던 놈이 아닌
농촌 훈남들의 우정에 관한 영화 <이장과 군수>
-
<300>을 보다 속으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얼마 만에 보는 노골적 백인 우월주의인가’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씨네21>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를 뒤져보니 역시나 활발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입장과 영화에 숨은 이데올로기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고 별 반개부터 별 다섯개까지 영화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으로 갈렸다. 이번호 독자면을 찬반논쟁에 할애한 것은 그래서다. 나로 말하면 영화를 볼 때 정치적 함의에만 매몰되면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300>을 보면서 정치적 의미를 지우고 즐기는 일은 불가능했다. 정치적 의미를 따져보는 흥미를 빼고 <300>을 보라는 건 피 한 방울 흘리지 말고 살만 1파운드를 떼어가라는 <베니스의 상인>식 판결과 다를 바 없다. 나의 뇌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일까? 주변부 아시아인의 콤플렉스나 피해의식이 작동한 것이라고
[편집장이 독자에게] <300> 논쟁
-
3월 어느 날 서울종합운동장 광장에 느닷없이 대형 천막이 들어섰다. 그리고 노랑과 파랑으로 알록달록하게 장식된 이 천막은 요정의 손길이라도 빌린 듯 천천히 솟아올랐다. 이곳의 주인은 캐나다에 뿌리를 둔 세계적인 공연단체 ‘태양의 서커스’. 두바이를 환호하게 만든 데 이어 서울을 방문한 이들은 3월29일 처음으로 한국 손님을 불러모아 정성껏 준비한 공연 <퀴담>을 선보일 예정이다. 탄성은 달궈지지 않았고 감격의 눈물도 채 맺히지 않았지만 어떤 공연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공연의 시작을 고대하는 사람들, 포스터를 훔쳐보며 궁금해한 사람들 혹은 삭막한 도시를 잊고 잠시나마 백일몽에 젖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여기 태양의 서커스와 <퀴담>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서커스에는 기묘한 구석이 있다. 난쟁이 혹은 키다리의 등장, 야생성을 잃은 듯한 동물들의 묘기, 중력의 법칙을 위반하는 곡예적인 동작, 지나치게 기교적인 아이들의 춤과 표정까지. 서커스가 지배하는 밤은 정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서커스, 태양의 서커스 <퀴담>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