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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희망의 싹마저 스러지는 날
KBS 독립영화관 1 <망종>
9월23(일) 밤12시30분 | KBS1 | 감독 장률 | 출연 류연희, 김 박, 주광현
보리를 베고 벼를 심어야 하는 계절, 씨뿌리기 좋은 시간. ‘망종’은 어쨌든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다. 지난 계절의 수확이 아무리 형편없을지라도, 다시 한번 생명을 간절히 기다리는 때, 그러니까 절망의 끝에서일지라도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그런 때. 하지만 장률 감독의 <망종>은 끝까지 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절망 끝에 희망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현실은 그렇게 무자비하다. 최순희는 중국의 작은 마을, 거리 한 모퉁이에서 김치를 파는 조선족 여인이다. 감옥에 있는 남편 때문에 고향을 떠난 뒤, 그녀는 타지에서 아들 창호와 가난한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그녀 주위를 맴돌던 조선족 김씨는 순희와의 관계가 아내에게 들키자, 그녀를 창녀라고 둘러댄다.
[추석연휴백서] 극장에서 놓친 영양만점 명품영화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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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버그의 1940년대 고전을 향한 오마주
<굿 저먼> The Good German
DVD를 넣고 영화가 나올 때 당황하지 말 것. <굿 저먼>은 60년 전에 찍혔음직한 스탠더드 화면비율의 흑백영상과 고풍스런 음악으로 시작한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신작이 개봉되지 못하고 DVD로 직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1940년대의 할리우드 드라마를 표방한 영화를 찍고 싶었던 소더버그는 옛날 장비들을 동원하고 세트에다 폐허가 된 베를린을 되살렸다. <굿 저먼>은 전후 분할 통치되던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배신과 사랑의 드라마다. 이렇게 유치한 표현을 동원해도 좋을 정도로 <굿 저먼>에는 온갖 클리셰가 가득하다. 포스터부터 제작과정, 엔딩장면에 이르기까지 <굿 저먼>은 <카사블랑카>와 <제3의 사나이>를 쏙 빼닮았으며, 분위기에선 심지어 <독일영년>의 영향까지 느껴진다. 그 결과, 예술적 독창성은커녕 고전시대
[추석연휴백서] 소더버그의 신작부터 케빈 스미스의 코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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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에 찾아온 아스라한 남자충동
<로맨스 킬러> 강도하 지음/ 애니북스 펴냄
<위대한 캣츠비> 강도하의 인터넷 만화를 책으로 엮었다. 인터넷에서의 올컬러를 살려, 스크롤하며 볼 때와는 또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게 편집했다. 이번의 주인공은 불혹의 나이 40을 앞둔 전직 킬러. 이야기의 시작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킬러인 주인공에게는 세 가지 룰이 있다. 첫째, 질문하지 마라. 둘째, 생각하지 마라. 셋째, 사랑하지 마라. 스스로 청소부를 자처하는 그는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과의 어떠한 교감도 거부한다. 하지만 프리지아 냄새가 풍기는 방에서 남편이 의뢰한 청부살인업자의 총에 죽을 운명인 여자는 그에게 자꾸 질문을 한다. 여자는 꽃 알레르기 때문에 총을 놓친 킬러의 총을 빼앗고, 그의 아내가 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현재. 성형중독인 아내에게는 이미 아무 관심도 없다. 아내가 어머니로 보일 때도 있다. 전직 킬러는 딸이 원조교제를 하고 있다는
[추석연휴백서] 칸칸이 그려진 만화, 컷컷이 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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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전염병이 도시를 뒤덮을 때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 펴냄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아주 작은 순간으로부터 거대한 이야기를 끌어내곤 한다. <리스본 쟁탈전>은 교정자가 고의적인 실수로 고친 단어 하나로부터 포르투갈 역사를 다시 서술하고, <돌뗏목>에선 대지에 조그만 균열이 생겨나면서 이베리아 반도가 유럽 대륙과 분리되어 바다를 떠돈다. <눈먼 자들의 도시>도 사소한 사고 혹은 질병으로 첫걸음을 떼는 소설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던 남자가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는. 그러나 개인적인 불운으로만 보였던 질병은 빠른 속도로 도시를 점령하여 눈먼 자들이 거리를 뒤덮기에 이른다. 격리도 도피도 소용없다. 남편을 지키고자 눈이 먼 것처럼 위장하여 함께 수용소로 들어간 ‘의사의 아내’는 자신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차츰 눈먼 자들의 무리를
[추석연휴백서] 문장의 상상력 스크린으로 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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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어떻게들 보내십니까. 여행도 귀찮고 그저 방바닥에 눌어붙어 쉬고 싶다고요? 고향 가서 밤깎고 전만 부치다 올 것 같다고요? 어르신들과 조카들의 등쌀이 귀찮으니 하루 종일 자는 척이나 하겠다고요? <씨네21>이 모처럼의 연휴를 알차게 보낼 즐길 거리들을 소개합니다.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강풀의 <26년> 등 영화화되어 찾아올 국내외 원작 소설과 만화를 미리 읽어보는 건 어떤가요? 국내 극장에선 개봉하지 않은 수작 영화 DVD를 이 기회에 섭렵해도 좋겠네요. 볼 만한 TV 특선영화도 미리 챙겨둡시다. 책, 영화 모두 즐긴 다음 한가위 퀴즈 풀고 선물 응모까지 마치면 올 추석도 ‘즐휴’는 문제없음!
[추석연휴백서] 한가위 즐휴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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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형이었는데 검사해보니까 A형이래요.” <행복>의 임수정은 말한다. “원래는 활발했는데 그거 알고 나니까 소심해졌다”고. 물론 극중 은희의 대사다. 하지만 <행복>은 은연중에 임수정을 의식한다. “이래 보여도 나이가 많”고, “봐줄 사람이 없단”다. 임수정은 영화 <장화, 홍련> <…ing>,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으로 빚어놓은 다소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행복>의 은희를 빌려 부정한다. 몸빼를 입고, 건강 체조를 하며, 끝없이 주는 사랑에 눈물을 쏟는다. 보이지 않았던 은희의 얼굴이 임수정의 혈액형을 부정하는 순간이다. 특히 은희는 현실에서 한발 떨어져 신나게 놀다온 영군(<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직후다. 그녀는 자신을 포장해온 고독과 상처, 두려움의 끝에서 무엇을 본 걸까. <행복>을 보는 내내 임수정이 흥미진진해졌다.
-기술시사 때 영화를 보러 왔던데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임수정] “<행복>은 내가 가진 걸 벗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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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영수에게선 황정민의 몇 가지 얼굴이 겹쳐오른다. 영수는 <너는 내 운명>의 석중처럼 사랑에 기뻐하고, <바람난 가족>의 주영작만큼이나 여자에게 비겁하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나두철만큼 소심한 한편, <사생결단>의 도경장처럼 거칠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잔인한 러브스토리의 악역인 영수는 그 누구보다도 <달콤한 인생>의 백 사장처럼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라고 묻는 남자다. 그것은 영원한 사랑의 행복을 꿈꾸는 은희에게 묻는 말이자, 사랑이 아름답다고 믿는 관객에게 일갈하는 질문이다. 아마도 황정민은 <행복>에 빠져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행복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 너 사랑해도 되냐?”고 묻는 <로드무비>의 대식처럼.
-<행복>의 개봉이 예정보다 많이 늦어졌다. 어제 있었던 기술시사까지 영화를 볼 수도 없었을 텐데, 초조한 기분은 없었나.
=전
[황정민] “<행복>은 솔직히 까놓고 가는 이야기라 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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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가 나란히 앉아 있다. 그들은 서로를 보는 듯하면서 외면하고, 모르는 척하면서 의식한다. 허진호 감독은 언제나 그렇게 두 남녀를 나란히 앉혀놓곤 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다림과 정원은 무더운 여름날 사진관에 앉아 더위를 식혔고, <봄날은 간다>의 은수와 상우는 새벽녘 절간에 앉아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실의에 빠진 <외출>의 서영과 인수도 병원 의자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아픔을 알아봤다. 허진호 감독은 신작인 <행복>에서도 두 남녀를 나란히 앉혀놓는다. 이번에는 어느 시골의 버스터미널에 자리한 구멍가게의 평상이다. 폭음과 방종으로 간이 굳어버린 영수와 중증 폐질환을 앓고 있는 은희는 서로를 경계하는 듯, 무심한 듯, 궁금한 듯 쳐다본다. 그들 역시 다른 두 남녀들처럼 이 짧은 만남이 어떤 행복을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파국의 전조를 그리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심지어 처음 만나 서로를 흘깃거리는 지금 이
[황정민, 임수정] 우린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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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혜는 예쁨보다 젊음이 먼저 보이는 배우다. 또래의 배우들이 CF에서 진한 쌍꺼풀을 깜박이며 앙증맞게 웃거나,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이국의 해변을 자전거로 내달릴 때도 그녀는 달동네 할머니의 빨래를 밟으며 춤을 추었다. 서지혜를 만났던 지난 9월4일은, 마침 그녀가 출연한 2부작 드라마 <향단전>이 방영한 직후였다. 여기서도 그녀는 새침한 춘향이 아닌 수더분한 향단을 연기한다. 눈이 먼 아버지를 봉양하며 춘향의 몸종으로서 맡은 임무에 충실한 향단에게서도 꾸밈없는 젊음이 먼저 보였다. 누구나 그녀를 연예인치고는 평범한 외모라고 평가하지만, 대신 그녀는 털털함과 억척스러움을 자신의 매력으로 가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20대 초반의 여배우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물어봤다. 예쁜 척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못하는 건지. “당연히 예뻐 보이고 싶죠. 그런데 그런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다른 화보나 CF에서 보여줄 수 있잖아요. 연기하면서 예쁜 척하고 싶지는
[서지혜] 꽃보다 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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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9월11일(화) 오후2시
장소 서울극장
이 영화
연인(공효진)과 헤어지고, 그간의 방탕한 생활의 댓가로 얻은 간경변이 악화된 영수(황정민)는 지친 심신을 버려두는 심정으로 '희망의 집'이라는 요양원에 들어선다. 폐질환을 앓으며 9년간 그곳에 머물러 온 은희(임수정)는 아낌없는 사랑으로 영수에게 다가서고,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두 사람은 둘만의 행복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라는 상투적인 반전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들어맞는 경우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1년이 지나 영수의 병은 은희의 정성으로 완쾌되고, 영수를 그곳에 머물게했던 마법도 다한다. 은희는 버려지고, 영수는 그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10년만에 완성된 허진호 감독의 네번째 장편.
말말말
"태풍이 다행히도 잘 지나가서, 좋은 날에 <행복>을 보여드립니다. 감기조심하세요. (목쉰 소리) 정말 죽을 것
허진호 감독의 변함없는 멜로 <행복> 첫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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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순위가 그대로 박스오피스 순위다. <본 얼티메이텀>,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두 얼굴의 여친>, <즐거운 인생>등 추석전쟁의 4강 영화들이 1위부터 4위까지 차례로 포진됐다. 1위는 서울 77개, 전국 298개 스크린에서 상영된 <본 얼티메이텀> 개봉 첫 주 전국에서 약 52만9천명(배급사 집계)을 불러 모아 전통적으로 한국영화가 우세했던 추석시즌에 이변을 가져왔다.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은 서울 85개, 전국 420개에서 상영되어 4강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스크린을 점유했지만, 전국 약 41만 명(배급사 집계)을 동원하여 2위에 그쳤다. 전국 37만6천명(배급사 집계)을 기록한 <두 얼굴의 여친>과 25만9천명(배급사집계)이 찾은 <즐거운 인생>은 각 3,4위를 차지했다.
한 편, 지난 주 박스오피스 1위로 개봉 첫 주를 장식했던 <마이 파더>는 5위로 내려왔으며, 하명중 감독
추석전쟁의 승리 예고, <본 얼티메이텀> 박스오피스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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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전주국제영화제가 세명의 감독을 선정하여 지원한 ‘숏숏숏’은 디지털 단편제작지원 프로젝트다. 영화제 동안 첫 상영의 기회를 가졌던 세편의 단편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낙원> 등으로 알려진 김종관 감독, <장마>의 함경록 감독,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의 손원평 감독이 참여했다. 섬세한 화법으로 긴장을 쌓아올려서 단편만의 리듬과 집중력을 선보이던 김종관 감독은 <기다린다>에서도 어김없이 그 실력을 발휘한다. 그는 언뜻 보면 매우 평범한 상황에서 매우 낯선 순간들을 발견해내며 그 순간에 맞닥뜨린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 심리를 면밀히 관찰한다. 우연한 만남에서 유머러스한 순간으로, 갑작스러운 긴장과 폭력과 공포의 순간으로 예기치 않게 변해가는 상황은 인물들에게 밀착하여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스크린 밖으로 전달된다. 배경음악과 인물들의 반복되는 대사, 누군가의 충동적인 반응과 누군가의 머뭇거리
세 가지 색깔, 세개의 세계 <숏숏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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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멜로드라마에는 늘 그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부모의 반대, 불치병, 출생의 비밀 같은 다소 드라마틱한 요인부터 성격 차이라는 알쏭달쏭하지만 가장 흔한 문제까지 남녀관계를 훼방놓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타이영화 <미… 마이셀프>는 좀 색다른 장애물을 설치해두고 주인공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이별통보를 받은 여자(차야난 마노마이산티팹)는 울며 운전을 하다 길에 서 있던 한 남자(아난다 에버링험)를 치는 사고를 낸다.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여자는 할 수 없이 당분간 남자를 책임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다. 여자는 남자의 목걸이에 매달린 글자에서 따서 그에게 ‘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집으로 데려온다. 혹시 몰라 전기충격기까지 준비해두고 출근할 땐 방문을 꼭 걸어 잠그던 여자는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탄에 대한 마음의 빗장을 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탄이 최면요
타이적인 멜로드라마 <미... 마이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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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의 시골 농장. 농사일밖에 모르는 무심한 남편에게 아내는 그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궁상맞은 여자일 뿐이다. 둘 사이에는 부부로서의 최소한의 애정어린 소통은커녕 서로에 대한 지겨움만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다! 남자는 당연히 슬퍼하지 않고 걱정한다. 누가, 이 집안일을 대신해줄 것인가? 그는 죽은 아내를 대신할 여자, 정확히 말하자면 하녀를 물색하고, 결혼상담소를 통해 새로운 여자를 찾아 루마니아로 향한다.
<미남이시네요!>는 언뜻 <나의 결혼원정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똑같은 결혼원정기라도 후자가 국내에서는 결혼의 기회조차 봉쇄된 농촌 총각들의 절실한 원정기라면, <미남이시네요!>의 주인공 에매(미셸 블랑)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축에 속한다. 일꾼처럼 부리던 아내는 결혼생활에 진력이 날 때쯤 조용히 사라져주고, 새로운 일꾼을 구한다는 핑계로 더 젊고 예쁜 여인을 얻었으니 말이다. 물론 영화는 이 남자
나의 결혼원정기 <미남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