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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듈레인(안토니오 반데라스)은 개인교습소를 차리고 그곳에서 백인 상류층 자녀들에게 고급 볼룸댄스를 가르치는 강사다. 아주 우연히, 그는 밤길에 흑인 남자아이가 차를 부수는 장면을 목격한다. 알고 보니 그것은 인근 고등학교 교장의 차. 듈레인은 다음날 학교를 찾아가 교장에게 “아이들에게 볼룸댄스를 가르치겠다”고 말한다. 듈레인은 방과 뒤 학교에 남도록 조치된 문제아들의 수업을 맡는다. 대부분 가난한 집안 출신의 흑인인 그들을 데리고 듈레인은 상류층의 고급 춤문화를 가르친다.
실제 이야기에 바탕했다는 <테이크 더 리드>는 지금까지 익숙하게 봐온 춤을 소재로 한 영화 중 하나다. 환경에 의해 꿈이 꺾였거나 꿈을 발견치 못한 억눌린 아이들이 있고, 그걸 키워주려는 멘터 혹은 연인이 있고, 아이는 춤 자체가 주는 희열 그리고 사랑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간다는 것이 이 영화의 테마다. 볼룸댄스가 단지 부와 교양을 과시하는 상류층 문화가 아니라 예의와 바른 소통을 가르치
춤을 소재로 한 영화 중 하나 <테이크 더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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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윤성호의 영화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연애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는 인용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고로 존재한다. 윤성호의 장편 데뷔작인 <은하해방전선>은 감독 윤성호가 말하는 ‘윤성호의 영화 혹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과 겹친다. 자신의 단편들에서 외부 텍스트를 끊임없이 인용하고 조립해왔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단편들을 인용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영화들은 무언가를 내뱉는 순간, 내뱉어진 담론, 문장, 가치를 끊임없이 지운다. 말하자면 지움으로써 다른 차원으로 가볍게 이행한다. 그러니 이 의미심장해 보이는 제목은 사실, 말 그대로 사랑하는 ‘은하’에게서 해방되고자 하는 어느 어수룩한 감독의 슬픔을 지칭하는 것이다.
자신의 어수룩함을 화려한 말발로 감추는 영재(임지규)는 장편 데뷔를 준비 중이다. 그는 바로 그 말발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 은하(서영주)에게 실연당한다. 설
영화의 진심을 믿습니까? <은하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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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에고(고바야시 사토미)가 도착한 남쪽 바닷가의 조그만 마을은 모든 게 심심한 곳이다. “저쪽은 바다고 이쪽은 마을”인 그곳은 코발트빛 바다와 하얀 모래밭을 제외하곤 무어라 경계지을 건물이 없다. 길을 찾아갈 땐 “불안해질 무렵 20m쯤 더 가서 우회전을” 하는 식이고, 강아지와 새, 염소 등 동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곳의 사는 방식은 모든 게 최소화되어 있는데 타에고가 머물기로 한 민박집 하마다는 손님이 많이 올까 두려워 명찰 크기만한 간판을 달고 있고, 민박집 주인 유지(미쓰이시 겐)는 밥을 짓고 먹는 것 외에는 딱히 하는 일이 없다. 영화는 타에고와 유지, 섬마을의 생물 선생님인 하루나(이치카와 미카코)와 주기적으로 마을을 찾는 빙수 아줌마 사쿠라(모타이 마사코), 마음이 동하면 여행으로 이곳을 찾는 요모기(가세 료)를 등장시켜 별것없는 삶의 심심한 일상을 빈칸 많은 리듬으로 담는다.
<카모메 식당>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카모메 식당
<카모메 식당>의 후기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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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판 <아메리칸 파이>라고 해야 할까. 혈기왕성한 고등학생의 세계를 그린 <스쿨 아웃>은 음담패설과 화장실 유머로 무장한 하이틴 섹스코미디다. 1999년 미국과 2005년 포르투갈 사이의 간극만큼 성을 다루는 태도가 한결 대담해지긴 했지만.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고등학교. 대학 입학을 앞둔 학생들은 졸업 여행지를 정하느라 분주하다. 값비싼 차를 끌고 다니는 부잣집 아이들은 프랑스 파리를 추천하지만, 클럽 입장료 10유로가 아쉬워 거리에서 맥주를 마시는 아이들은 스페인의 휴양도시 베니돔에 가자고 맞선다. 이전까지 친구가 거의 없던 전학생 하이메(호르디 빌체스)는 경쟁하는 두 무리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한다. 짝사랑하던 여학생 마르타는 파리행을 원하지만 베니돔파 친구들이 어쩐지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 게다가 베니돔파의 노아(요하나 코보)가 은근히 관심을 표하면서 하이메의 마음은 더욱 흔들리기 시작한다.
첫 경험을 치르고자 분투하는 <아메리칸 파이>
별 고민없는 하이틴 섹스코미디 <스쿨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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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도쿄와 가와사키시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마강에서 시작해 남한과 북한 사이에 흐르는 임진강에서 끝나는 다큐멘터리다. 가와사키시는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이 일하던 군수공장이 있던 곳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재일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결국 이 영화가 다루는 두개의 ‘강’은 예전 조선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던 남·북한, 그리고 일본 사이에 흐르는 강과 남한-북한 사이에 흐르는 강이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어디선가 합수(合水)하는 두강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제목 그대로 이곳을 건너려는 네 사람을 포착해낸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유족회 회장이었던 고(故) 김경석 옹이다. 그는 40년대 초반 강제 징용돼 노역을 했던 가와사키시를 찾는다. 당시 이곳에 자리한 군수공장에서 일하다 파업에 주도했던 그는 조선으로 강제 송환되지만, 1992년 이 군수공장의 후신인 일본강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
남, 북, 일의 바람직한 미래상 <강을 건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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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을 샀다가 영업에 실패해 빚을 떠안았다. 당장 7만5천달러를 갚지 못하면 봉변을 당한다. 이혼 뒤 외롭다. 어린 아들과는 이따금씩 학교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만 토막 대화를 한다. 17년간 재직했는데도 대형 로펌의 임원이 되지 못했다. 그저 다른 변호사들이 맡기 싫어하는 지저분한 사건만 처리할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회사의 절친한 동료 변호사가 죽는다. 죽음 주변을 떠돌던 그는 동료가 뭔가를 폭로하려다 변을 당했음을 직감한다. 스스로의 하루하루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데,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일에 뛰어들어야 할까.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 그러나 곤궁과 권태에 찌든 마이클 클레이튼의 삶은 이제 총체적 난국에 부딪혔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변호사가 주인공인 스릴러의 전형적 스토리 라인을 가졌다. 우연한 계기로 거대 집단의 음모와 악행을 알게 된 개인이 정의를 위해 외로이 맞서는 이야기. 그러나 이 영화를 전형적인 법정스릴
올 최고의 라스트신 <마이클 클레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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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늘 배용균 감독이 떠오른다. 1989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은 그는 한국영화에 전무후무한 1인 제작시스템의 감독이었다. 촬영, 조명, 편집, 미술 등을 직접 했던 배용균 감독과 그의 두 번째 영화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을> 개봉 때 서면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인 얘기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후반작업을 하던 때를 술회한 대목이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배용균이라는 감독이 장편영화를 찍어왔는데 코닥 매뉴얼을 줄줄 외면서 현상과정 하나하나에 간섭했고 색보정실에선 연일 고성이 오고 갔다는 이야기가 영화진흥공사에서 전설처럼 떠돌던 차였다. 그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시절 색보정실에서 우리는 주먹이 오고 가지는 않았지만 연일 비명이 새어나왔기 때문에 흡사 난투극이라도 벌였던 느낌이 든다”며 “최초의 35mm프린트를 밤늦게 떠
[편집장이 독자에게] 촬영감독 뉴 제너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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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월시와 앤서니 만이 찾아온다. 시네마테크 부산의 ‘라울 월시&앤서니 만 특별전’(11월28일∼12월16일)과 필름포럼의 ‘라울 월시 특별전’(12월4∼12일)은 웨스턴, 갱스터, 필름누아르 등의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기회이다. 앤서니 만의 작품은 7편, 라울 월시의 작품은 9편(부산에서는 <추적>을 제외한 8편이 상영된다)이 소개되는 이번 특별전에서 더 반가운 쪽은 라울 월시이다. 이는 누구를 더 선호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누가 더 만날 기회가 없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적어도 앤서니 만은 지난해 열렸던 ‘웨스턴 특별전’에서 그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는 기회가 있었지만, 라울 월시는 몇몇 특별전에서 산발적으로 두세 작품이 소개되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영화학자 앤드루 새리스가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 앨프리드 히치콕 등에게 작가의 칭호를 부여하며 ‘만신전’에 추대할 때, 라울 월시와 앤서니 만은 그 명단에서 빠져야 했다
낙원의 저쪽에서 라울 월시와 앤서니 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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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광고 대행사를 잠시 다닌 적이 있다.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첫 기초의회 의원선거였는데, 사업을 하다 정치무대에 나서려는 한 클라이언트를 유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방 정치에 대한 뚜렷한 소신은 거의 없어 보였다. 도드라진 지역 활동 경력이 있지도 않았다. 인상이나 말솜씨도 별로였다. 그는 그저 “알아서 잘해달라”고만 했다. 과연 이길까? 선거운동 과정을 함께하면서 승리를 예감했다. 달랑 포스터 한장만으로도 그 근거는 충분했다. 돈을 꽤 들여 멋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에서 세련된 각도와 포즈로 찍은 인물사진 밑엔 친근함이 물씬 풍기는 카피가 눈길을 잡았다. “사촌보다 좋은 이웃.” 정말 사촌보다 좋은 이웃으로 어필할 것만 같았다. 얼마 뒤 그 후보가 당선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거 승리의 결정적 요인은 ‘이미지 메이킹’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이미지 조작!
아기 다다시의 원작만화 <신의 물방울> 초반부엔 두 남자가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헤드라인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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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다섯살이 좀 넘은 우리집 개 ‘남이’는 언제나 아픈 상태다. 2004년 여름엔가, 그러니까 2년 반쯤 전에 ‘페디그리’라고 하는 유명한 제조사에서 나온 사료를 먹고나서 그렇게 됐다. 당시 같은 종류의 사료를 먹고 죽은 개가 엄청 많았다. 타이에 있는 페디그리 생산공장에서 공정의 위생상 실수로 곰팡이가 섞인 사료를 제조해 내보냈고 그걸 먹은 개들이 집단으로 신장 결석이 생긴 것이었다. 남이도 그때 죽을 운명이었다. 처음에 이유없이 사료를 거부하기에 우리집 식구들은 얘가 밥 투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가벼운 구토와 설사 증세가 심해지더니 어느 날 쓰러졌다. 동네에서 제법 큰 병원을 찾아가니 의사선생님 왈, “이렇게 해서 온 개들이 다 죽어나갔다”고 했다.
남이는 그 와중에 기적적으로 살아서 집에 돌아왔다(한달 정도 입원해 있으면서 800만원 가까운 돈이 들어갔는데, 물론 페디그리사에서 보상해줬다. 덕분에 당시 동물병원마다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적어도 남이가 입원해 있던 그 병원은
[오픈칼럼] 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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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가까운 늦은 밤, 알딸딸한 상태로 현관문을 열고 비틀 들어와 불을 켠다. 불을 켠 거실은 밝지 않다. 불을 켜지 않은 곳곳이 검게 남아 있어 거실에 스며들어서이다. 외롭지도 않은데 외롭다고 느낀다. 그냥 자도 되는데 조금만 응석을 받아주면 더 행복하게 잠들 것 같다. 담요를 두르고 누워 DVD플레이어에 파워를 넣는다. <빨강머리 앤>을 집어든다.
‘빛나는 호수’ 옆엔 병아리색으로 칠해진 다이애나의 집이 있다. 그 집 뒤로 작은 숲이 뻗어 있고 그 끝엔 개울이 흐른다. 개울 위엔 한쪽 난간만 있는 통나무 다리가 있다. 앤과 다이애나가 서로를 바래다주다 헤어지기 싫어 난간에 기대 얘기하는 곳이다. 그 다리 앞으로 앤이 초록색 지붕 집까지 뛰어가는 언덕이 있고 집 앞엔 눈의 여왕이란 벚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앤이 현관문을 활짝 열고 뛰어든다. 마릴라는 난로 겸 오븐 위에 얹힌 스튜냄비를 저으며 엄격하게 말한다. “앤, 오기로 한 시간을 잊었니? 넌 저 앞에 서서 다이
[내 인생의 영화] <빨강머리 앤> -이윤정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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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매. 요즘 김씨 봤수?”
“요즘 통 들르질 않네.”
“전화 연락도 없고?”
“나도 몰라. 다들 철수하는 마당에 떼돈 벌겠다고 월남에 갔을 리는 없고.”
충무로 단역배우 오칠성씨. 아침부터 충무로 일대를 뒤졌는데, 당최 김씨를 찾을 수가 없다. 충무로가 불황이라 엑스트라 모집도 드문드문. 동갑내기지만 평소 형처럼 의지하던 김씨와 신세한탄하며 소일할까 했는데 그의 짱구머리를 못 본 지 벌써 1주일째다. 항아리다방에도 없고, 국제다방에도 없고, 그럼 어디에 있담. 단역배우들의 집합소인 국제다방, 불국사다방, 영산다방까지 모조리 뒤졌고, 오늘은 스타부터 단역배우들까지 가리지 않고 ‘비상연락소’로 사용하던 청맥다방까지 들렀는데, “충무로의 개인비서”라는 별명이 나붙은 청맥 아줌마마저 도리도리니, 정말이지 별 도리없다. “오형, 요즘 밥은 먹고 살아?” 돌아보니, 세기상사 작품을 도맡아 한다고 언제나 뻐기던 이씨. 평소엔 그의 넉살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는데, 짝도 없으니 꼼짝없이 그의
[한국영화 후면비사] 극장표, 연수표가 출연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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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율, 리듬, 음조, 배음. 에이젠슈테인이 사용한 몽타주 종류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내 관심은 그가 어느 헝가리 영화이론가와 주고받은 논쟁에 가 있다. 갑자기 이 논쟁이 다시 생각난 것은, 피터 그리너웨이가 남기고 떠난 말 때문일 게다. “미래의 영화는 텍스트, 프레임, 배우, 카메라의 4대 폭군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무슨 뜻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요즘 치르고 다니는 영화의 장례식이 디지털에 맞는 새로운 영상미학의 요청과 관계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느낌은 있다.
배우에서 카메라로
다시 에이젠슈테인과 벨라 발라스의 논쟁으로 돌아가보자. 1925/26년에 발라스는 카메라맨에 관해 두편의 논문을 쓴다. 그가 카메라맨에 주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뉴미디어는 등장 초기엔 올드미디어를 따라가는 전략을 취한다. 그리하여 초기 사진이 회화를 닮으려 했던 것처럼, 영화 역시 초기에는 연극을 흉내내려 했다. 영화란 카메라로 연극을 촬영하는 행위라 믿었
[진중권의 이매진] 영화의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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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구경을 했다. 파프리카라는 이름의 여자가 나오는, 2006년 일본산 꿈이었다. 나는 대낮의 상영관에 앉아 남의 꿈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등장인물들이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속도로. 술회를 통한 공감이 아닌, 그가 본 것을 나도 본다는 경험. 그 순간 꿈은 보는 꿈이 아니라 겪는 꿈이 된다. 등장인물들도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자기 꿈을 관람한다. 스크린과 모니터, 액자와 광고판. 창(窓)과 창(窓)은 겹겹이 포개져, 평일 오후, 영화관 의자에 상체를 묻은 나 역시 누군가 꾸고 있는 꿈의 일부가 아닐까 질문하게 만든다. 스크린 위로는 재패니메이션이 공유하는 질문 중 하나, ‘이 세계는 어떻게 프로그래밍돼 있나’ 식의 고민이 얼비친다. 개인과 네트워크, 과학과 윤리, 침략과 구원의 문제도. 나는 이 만화영화가 뭔가 과잉된 채 끝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감독은 작은 가지들은 가지들대로 가만 흔들리게 놔둔다. 대신 나무를 흔들리게 하는 힘, 장자의 날갯짓에 주목한다. 나비는
[냉정과 열정 사이] 죽여주는 꿈 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