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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일종의 복수극이지만 피 한 방울, 가벼운 주먹 한번 날리는 일 없이 매우 조용하고 서정적으로 복수를 치러낸다. 복수란 단순히 대상을 없애버리거나 신체에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것처럼 그려진 작품을 수시로 접했던 관객에게는 이 영화 속의 복수는 다소 낯설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음악 학교에 입학해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던 멜라니(데보라 프랑수아)는 심사위원인 아리안(캐서린 프로트)이 팬에게 사인을 해주느라 주위를 분산시키는 바람에 실수를 하게 되어 시험에 떨어진다. 그 뒤로 피아노 치는 것을 그만둔 멜라니는 10년 뒤 아리안의 집에 보모로 들어가 그녀의 커리어와 가족 관계 그리고 아들의 장래까지 모두 망쳐놓고 홀연히 그 집을 떠난다. 파리콩세르바투아르 출신 음악가로, 파리 플레이엘과 뉴욕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기도 했던 드니 데르쿠르 감독은 음악가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일이 무엇인지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극복할 수 없는 무대 공포증,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할 기회 상
다소 밋밋한 스릴러 <페이지 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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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의 한 아파트에서 남성 포르노 스타의 시체가 발견된다. 저명한 정치가 아버지는 사실상 포르노 사이트의 단골 고객이다. 딸 나탈리는 몬트리올의 명문대에 다니는 집안의 자랑거리다. 이러한 무관해 보이는 사실들이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을까. 캐나다영화 <마이 걸, 마이 엔젤>은 겉으로 보기엔 모범적이고 평온한 중산층 가정이 서서히 포르노 산업에 관련되며 겪는 균열상에 미스터리를 섞어 만든 영화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자신이 은밀히 보던 포르노에 자신의 딸이 나오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다. 풍요롭고 화목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난 모범생 나탈리가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자마자 아무런 자의식없이 포르노 산업에 발을 담근 것. 그러나 그녀는 가난하지도 어리석지도 않다. 길티 플래저(guilty pleasure)로서 포르노를 즐기는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이러한 영상물이 나날의 일상이 되어버린 나탈리 세대에 죄책감이란 없다. 어릴 때부터 그러한 영상물들을 여과없이 보고 자란 세대가
음란물 노출로 인한 감각적 마비 <마이걸, 마이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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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맞은 스티븐(에이드리언 브로디)은 오랜 꿈이었던 복화술사가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다. 아직 독립하지 못했고 애인도 만나지 못한 그의 친구는 다혈질적인 성격의 친구 패니(밀라 요보비치)와 복화술 공연 파트너인 ‘나무왕자’ 인형뿐이다. 어느 날 구직상담소를 찾은 스티븐은 그곳에서 복화술사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이야기에 호감을 보이는 로레나(베라 파미가)를 만난다. 하지만 대책없이 나서기 좋아하는 패니의 작전지시는 스티븐을 스토커로 몰리게 하고 그는 가족에게 더욱 바보 같은 존재로 찍혀버린다.
<스위트 보이스>는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플라모델 조립에 빠져 있는 스티븐의 아버지나 언제나 자식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사는 어머니, 가수가 되고 싶지만 언제나 제 성격에 못 이겨 팀원들을 다그치기 바쁜 팬고라, 역시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한 누나 하이디, 그리고 죽은 애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로레나까지 등장인물들은
서른살 남녀의 성장담 <스위트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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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그대로 역시 재미있는 영화다. 시리즈 3편은 게임 원작 팬들이 좋아할만한 요소와 각색의 결과물이 두루두루 합쳐지면서 많은 볼거리를 쏟아낸다. 팬들은 <레지던트 이블>시리즈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화끈한 액션과 좀비들이 벌이는 피범벅 광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대부분 만족한다. 특수효과는 더 좋아졌고 유혈 낭자한 폭력의 수위도 한층 더 강화되면서 보다 세련되게 변화했다. 특히 1,2편이 총격전 위주의 싸움이었다면, 이번 3편에서는 밀라 요보비치의 섹시한 칼질이 큰 볼거리다. 전작을 흥미 있게 보았다면 지나칠 수 없는 속편이다.
김종철/ 익스트림무비(extmovie.com) 편집장
[전문가 100자평] <레지던트 이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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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하고 육감적인 영화 <영 아담>을 만든 데이빗 맥킨지 감독의 차기작 <어사일럼>은 1950년대 영국의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불륜'영화이다. 1990년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클로저>의 작가 패트릭 마버와 유명한 작가 스티븐 킹의 손길이 닿은 시나리오는 과연 밀도 높은 플롯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치우침이 없다는 점이다. 어느 캐릭터나 적당한 이상성과 정상성을 가지고 있다. 즉 에드가는 멀쩡한데 갇혀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미친 악당도 아니다. 피터 역시 부성적인 의사도 아니고, 모든 것을 조정한 사악한 자도 아니다. 스텔라도 그저 사랑에 빠진 순진한 유부녀라고 보기도 어렵고, '미친년'이라 보기도 어렵다. 에드가는 어느 정도 '위험한' 남자였고, 피터도 조정의 욕구가 있었지만 그의 음모가 시종 먹혀든 것은 아니며, 그녀는 불안하고 우울한 정서 속에서 순간순간 나쁜 선택을 하는 여자였다(인생이 다 그렇다). 따
[전문가 100자평] <어사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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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10월 2일 오후 2시
장소 서울극장
이 영화
서까래에 목을 맨 채 죽은 한 궁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녀의 이름은 월령(서영희)이다. 여러 정황상 자살로 보이는 죽음이지만, 시체를 검시한 내의녀 천령(박진희)은 그녀가 살해됐다는 증거와 함께 궁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칫 궁궐이 소란스러워 질 것을 예감한 감찰상궁은 월령의 죽음을 자살로 은폐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자신도 한때 궁녀였고, 몰래 아이를 낳아 버릴 수밖에 없던 상처를 겪었던 천령은 독자적으로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사건의 배후에는 궁녀들만의 음모, 질투와 함께 여러 인물들이 엮여있다. 죽은 월령과 한방을 썼던 말 못하는 궁녀 옥진(임정은)과 원자를 낳아 왕의 총애를 받은 후궁 희빈(윤세아), 월령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정렬(전혜진) 그리고 천령과 아이를 배신한 한 남자. 하지만 조금씩 진범에게 다가가는 천령에게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위기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준익 감독
왕의 여자들이 벌이는 아귀다툼, <궁녀>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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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최대의 축제'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는 10월 4일부터 12일까지 개최된다.
펑샤오강의 전쟁영화 <집결호>로 문을 열고 안노 히데아키의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으로 문을 닫는 이번 영화제의 특징은 한마디로 '싱싱함'이다.
그 싱싱하고 많은 상영작 가운데 씨네21 추천작 중 7편의 필름 클립과 2편의 부산 최초 공개 한국영화를 영상에 담았다.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양한 만찬을 미리 만나보길 바란다.
[PIFF2007]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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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의 박진표 감독이 허진호 감독을 만났다. 박진표 감독은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1998년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다. 이 영화를 “스무번도 넘게” 보면서 영화감독이 되기를 희망했던 박진표 감독은 데뷔작 <죽어도 좋아!>를 갖고 2002년 부산영화제를 찾았고, 이때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허진호 감독과 대면했다. 서로의 영화에 대한 호감에서 출발한 이 세살 터울 두 남자의 관계는 이내 형-동생이 됐고, 짬이 날 때마다 영화와 삶, 그리고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소곤거리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렇게 마음이 통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수백명과 인터뷰를 했던 박진표 감독의 경력 덕인지, 좀처럼 자신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않던 허진호 감독은 한 장면을 만든 배경에서부터 깊은 고민까지 이야기해줬다.
박진표 어제 형 영화 잘 봤어요.
[박진표-허진호 대담] 도대체 왜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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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혼란이 왔다. 너무 쉽다. 너무 단순하다. 천사표 여자가 아픈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고 병을 고친 그 남자는 결국 그 여자를 배신하고 떠난다.
사랑은 그렇게 씁쓸하고 경박하며 부질없는 것이다.
그게 다인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단순히 그게 다인가?
비현실적이다 싶을 만큼 착한 여자의 캐릭터에 극단적인 선악구도에 약초 캐는 날 하필이면 비가 오는 손쉬운 설정하며…. 전형적이며 통속적인 멜로의 문법을 당혹스러울 만큼 노골적으로 차용한 이유가 뭘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허진호 감독이. 감독 자신의 최고 장점인 탁월한 심리묘사와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대사의 힘만으로 황정민과 임수정이라는 두 거목의 발군의 연기력만으로 그 당혹스러움이, 그 진부함이 커버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뭔가 더 있을 것 같았다. 감독조차도 ‘통속적인 멜로’를 하고 싶었다고 배수의 진을 쳤지만, 관객이 찾아내주길 바라는 뭔가가 분명히 더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선 엔딩 크레
<행복> 에세이 3. 은희만의 소박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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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허진호 감독은 줄곧 남녀간의 사랑을 탐구해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전작들과는 좀 결이 다르다. 간이 굳어가는 남자와 폐에 고름이 잡히는 여자가 요양원에서 만나 빈집에서 함께 산다. 거기에 대고 ‘행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잃을 게 목숨밖에 없는 삶의 막장에서 동병상련의 연대로 만난 두 남녀의 사랑은 투명한 단순성 때문에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생활 속에서 행복을 유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물론 아닐 게다. 이 영화의 전언이 ‘소박한 일상 속에 행복이 있다’는 따위의 김빠진 설교는.
실제로 두 남녀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지 못한다. 병세가 호전된 남자는 떠나고 여자는 병이 악화돼 죽음을 맞는다. 남자는 다시 그들이 만났던 ‘희망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조강지처 버린 자는 벌 받는다’는 신파극 같다. 혹자는 70년대 호스티스영화를 요양원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것 같다고 한다. 설마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것이 이건 아닐 테지.
<행복> 에세이 2. 은희는 사랑을 알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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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을 갖고 감정을 발전시켜나가는 부분이다. 농담과 배려, 시치미, 오해 등 앙증맞은 톱니들이 돌아가는 소리와, 정념의 낙차가 만들어내는 그래프 곡선만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까 싶다. 연애 이야기에서 더 흥미로운 지점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합일된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공간이 최초로 찢어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연애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을 통해 사랑의 충만감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찢어짐의 순간을 매번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두 사람의 연애를 지지하는 만큼 두 사람의 이별을 갈망한다.
나는 영수(황정민)가 은희(임수정)에게 “너 밥 천천히 먹는 거 안 지겹니? 난 지겨운데”라고 묻는 순간이 좋았다. 둘 중 한 사람만의 건강이 호전되자, 다른 한 사람이 보여준 이중적인 태도가 좋았다. 그것은 내가 어느 소설의 문장, ‘아름다우면서 진실한 것
<행복> 에세이 1. 진실을 견디려는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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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이 네 번째 사랑영화 <행복>을 들고 다시 가을로 찾아왔다. <행복>은 그의 전작들처럼, 살포시 만난 남자와 여자가 조곤조곤 사랑을 나누다가 이내 뒤돌아서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고 치밀한 사실주의 화법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행복>은 허진호 감독의 말마따나 “좀더 다가가려 했고, 친절해지려 했다”는 점에서 앞의 세편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전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가을날의 싸한 새벽 공기를 녹이는 손난로만큼의 열기가 가슴속으로 치미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평소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즐겨왔던 영화계 바깥의 세명의 필자가 <행복>에 대한 감상을 전해왔다. 그리고 <행복>에서 미묘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감지한 박진표 감독이 허진호 감독을 만나 영화 안과 바깥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스포일러 경고: <행복>에 관한 세 사람의 에세이에는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애타게,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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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동안 나온 수백편 중에서 필청 음반이나 베스트 음반, 혹은 대표 음반을 한정된 지면에 꼽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게다가 너무도 많은 수작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더. 용서를 빈다.
<황야의 무법자> Per un Pugno di Dollari: A Fistful of Dollars (1964)
매끈하고 풍성한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 대신, 독특한 악기를 선택하고 일상의 소리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킨 첫 음반. 이때부터 지금까지 엔니오 모리코네는 사람의 (목)소리를 길어올리는 재능과 기억을 사로잡는 멜로디 감각을 지속시켜왔다. 첫곡 <Titoli>는 그 유명한 휘파람 소리로 시작하여 알레산드로니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전기기타와 휘파람 협연, “We can fight”라고 내뱉는 원시적이고 조야한 남성 보컬, 그리고 채찍소리, 종소리, 말 달리는 듯한 사운드, 고음역의 피콜로 음향 등이 어우러진다. <Them
[엔니오 모리코네]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부터 낭만적인 휘파람 소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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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취소된 엔니오 모리코네의 한국 공연이 재성사되었다. 그의 대표곡들이 대형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과 함게 공연되고, 그의 오랜 음악 동료 피아니스트 길다 부타와 소프라노 수잔나 리가치가 함께할 예정이다. 그를 서면상으로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많은 감독과 작업을 했지만,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한 초창기부터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짝을 이루어 활동했다. (이전부터 동창생이던) 레오네 감독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가.
=레오네 감독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질은 감독으로서 어떤 것이 자신의 영화를 위해 맞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었다. 내 음악이 그의 영화에 잘 어우러졌기 때문에 그와 단짝을 이루어 활동했던 것이다.
-‘무법자 3부작’ 이후에는, 촬영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 나중에 사운드트랙을 녹음하는 대신, 미리 많은 음악을 만들어 촬영 중에도 사용했다고 들었다. 누구의 의도인가? 원래부터 기존의 할리우드식 영화음악 작업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일단 영화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음악이 좋은 영화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