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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노사가 역사적인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한 지 딱 1년 만에 다시 머리를 맞댄다. 영화산업의 임금협상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제작가협회(제협)와 한국영화산업노조(영화노조)는 4월18일 영화진흥위원회 회의실에서 2008년 임금교섭 첫 라운드를 열고 이번 협상의 쟁점을 확인했다.
올해 임금협상의 첫째 쟁점은 직급별 임금 가이드라인, 즉 최저임금액이다. 영화노조의 김현호 정책실장은 “지난해 협상 과정에서는 일주일 75시간 노동을 전제로 최저임금액을 산정했는데 실제로 적용해보니 예측했던 것보다 노동시간이 적었다.” 특히 <1724 기방난동사건>의 경우 일주일 노동시간은 50시간이었다. 결국 “촬영, 조명팀은 기존 임금보다 20∼30% 감소”(김현호 실장)하는 등 기존 작품당 계약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에 노조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현재의 3770원에서 약 20% 인상된 4520원으로 올리는 등 전체적으로 15∼20%의 인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두
[문석의 취재파일] 그때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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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지수 ★★★★★
명랑지수 ★★
희망지수 ★★★☆
<다섯은 너무 많아>로 독립영화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안슬기 감독이 두 번째 독립장편영화 <나의 노래는>으로 돌아왔다. 구질구질하고 청승맞은 청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인 이 영화는 질풍노도의 성장기를 다루지는 않는다. 영화는 가난하고 꿈도 없는 소년에서 무기력한 청년 사이를 사는 스무살 희철의 일상을 천천히 따라간다. 이 은근한 시선은 청년이 서서히 뿌리 깊게 삶에 안착하며 스스로의 품 속에 소박하나마 분명한 소망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 이어진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소년을 생활 청년으로 만들면서 영화는 이 나이 또래가 겪는 불투명한 미래에 실현 가능한 실천의 윤리를 제시한다.
할머니는 신앙에 빠져 있고, 아버지는 대책없이 무능한 철부지다. 가난한 살림에 고등학교 졸업 뒤 분식집에서 배달을 하는 스무살 희철(신현호)에겐 꿈이 없다. 목적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음식 배달을 하다 우
회색빛의 청춘들에 대한 관심 <나의 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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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친화력 지수 ★★★★★
멜로 지수 ☆
눈물 날 확률 지수 ★★★★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에서 단순한 공간적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해왔던 나라현의 유현한 숲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너를 보내는 숲>에 이르러서는 등장인물을 넘어서는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아내를 떠나보낸 한 남자와 아이를 잃은 한 여자와 그들을 품은 숲이라는 세 존재가 어우러진 1박2일의 기록이다. 그런데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 가족과 연인의 관계에 머물던 이전 영화들과 달리 이번에는 완전한 타인들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변화와 더불어 혈연과 애정으로 맺어진 관계에선 내장되었던 연민의 정서가 <너를 보내는 숲>에서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분출되고 있다. 감독은 이제 자신을 치유하는 데서 나아가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고자 한다.
아이를 잃고 남편과도 사이가 멀어진 마치코(오노 마치코)는 숲속에 자리잡은 요양원에서 노인
1박2일의 기록 <너를 보내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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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과 이연걸의 호흡 지수 ★★★★
유역비 매력 지수 ★★★★
이연걸의 1인2역 실력 ★★
감독이 백인이라고 섭섭해할 이유는 없다. 타란티노의 <킬 빌> 시리즈가 그해 동서양을 통틀어 최고의 쿵후영화였듯 롭 민코프 감독의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역시 ‘최고’라 할 순 없어도 그에 버금가도록 귀여운 안간힘을 쓰는 영화다. 무엇보다 성룡과 이연걸을 동시에 캐스팅했다는 사실이 영화에 투입된 자본의 국적을 가리고 다국적 스탭 구성을 따져 묻는 수고스러운 작업 자체를 무력화한다. 코믹 쿵후의 창시자나 다름없는 성룡과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이연걸은, 이소룡 사후 홍콩 무협영화를 떠받쳐온 이름들이다. 게다가 <킬 빌>이 과거 쇼브러더스 스튜디오의 로고를 오프닝에 삽입하며 존경을 표했듯, <포비든 킹덤…>도 의외로 성룡과 이연걸 그 이전의 쿵후영화 전통에 오마주를 바치는 장면들로 시작한다. 옛 무협영화 포스터들의 조합으로 경쾌하게
성룡과 이연걸의 ‘꿈의 대결’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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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차례 꼭 피하고 싶은 일주일이 있다. 바로 창간 기념호를 만드는 주간이다. 분량만 따져도 2주치 책을 한꺼번에 만드는 셈인데 지면 개편까지 하다보니 눈이 침침하고 손발이 떨린다. 심은하 편집팀장이 오픈칼럼에 “죽을 뻔했다”고 표현한 대로다. 올해는 특히 부분적인 손질 대신 기초부터 다시 점검하고 손을 보는 작업을 했다. 13년간 튼튼히 받춰준 대들보지만 그냥 놔두면 수년 안에 문제가 생기겠다 싶은 나무는 교체했고 벽지만 새로 바르는 대신 벽지를 뜯고 벽돌을 다시 쌓았다. 그러다보니 여태 버텨준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드는 자재도 있었고 그래도 처음 설계를 제대로 했네 싶어 고마운 것도 많다. 전통과 혁신, 둘 사이에 균형을 잡겠다고 생각해 나온 결과가 이번 창간 13주년 개편호다.
창간 13주년 특집으로 마련한 1995~2008 영화 베스트10은 그야말로 총력을 다한 기사다. 담당자였던 정한석 기자를 중심으로 취재팀 전원이 설문에 매달렸고 편집팀, 교열팀, 디자인팀 모두
[편집장이 독자에게] 창간 13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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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기간 동안 진보신당의 임시 당직자가 되어야 했던 어느 분의 얘기다. “할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절대로 그 당에 얽혀들지 마라. 그 당에는 희망이 없어요, 희망이. 할머니 말 허투루 듣지 말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분은 정규직 회사원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다. 무급으로 일하는 동안 손해가 없진 않겠지만, 잠깐 선거운동에 참여했다고 미래에 일감이 줄어들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도 ‘희망이 없는 당’에 얽혀들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희망이 없는 당에 얽혀들면, 내 인생도 희망이 없어지나?
시절이 좋아져서 무슨 운동에 잘못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갈 상황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운동을 두려워한다. 하긴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될 사람’을 찍는 쪽이 마음에 편하다는 사람도 많은 나라이니 오죽할까. 다양성에 대한 정치적인 억압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문화적인 억압은 여전하다. 문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운동 망해도, 나 안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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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휴스턴 영화제에서 <야생마>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미스피츠>(The Misfits, 1961)를 봤다. 마릴린 먼로의 유작으로 막 이혼한 로즐린(마릴린 먼로)이 늙수그레한 카우보이 게이(클라크 게이블)와 네바다주 리노의 황야에서 지내는 얼마간의 날들을 그리고 있다. 예전부터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는 바로 베네딕도 미디어의 임인덕 신부님이 떠올라서다. 본명 하인리히 세바스찬 로틀러. 1935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임세바스찬 혹은 임인덕 신부라 불린다. 국내 시네필에게는 <십계> 연작, 리베트의 <잔다르크> 비디오를 출시한 분으로 유명하다. 이후 DVD로 매체를 바꾼 뒤로도 지금까지 안제이 바이다와 프레데릭 벡의 작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계신다.
매번 출시작들이 있을 때마다 수고스럽게 직접 보도 자료와 테이프를 들고 서울 나들이를 하시는데, 2005년 여름에는 경북 왜관에 있는 수도원으로 취재차 직접 찾아뵌 적이 있다.
[오픈칼럼] 신부님의 강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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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일수록 다시 보고픈 영화가 있다는 것은 순수성을 잃은 세태의 저항 심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영화의 기술과 새로운 도전에서 이룬 성취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잃어버린 필름 속에서 빛나는 보석 같은 배우들과 작품들이 있었기에 다시 꺼내 기억하고픈 것이다. 그것들은 대중 속에 있었으며 그 대중은 그들을 만들어냈다. <마부>의 김승호, <오발탄>의 김진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최은희, <남과 북>의 최무룡, <연산군>의 신영균, <성난 능금>의 신성일 등이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던 작가주의, 감독주의, 배우 중심의 작품들이 오늘날 거대한 자본 시대에 인간 중심적 영화가 되기를 고대한다.
1930년대 <임자 없는 나룻배>를 감독한 이규환 감독과의 대화를 잊지 못한다. 일제 말기에 잃어버린 민족정기를 영화 속에 숨쉬게 한 감독으로, 영화의 거장 유현목 감독이 그의 문하생이다. 50년
[내 인생의 영화] 1950년대 한국영화를 추억하며 -권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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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의료보험제도를 소재로 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가 지난 4월3일 전국에서 동시 개봉했다. 이미 <화씨 9/11>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무어 감독은 심각한 사회적 이슈를 그만의 독특한 풍자와 직설화법을 이용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영화의 사회적 역할과 다큐멘터리의 상업적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그의 독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로부터 비판의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상황설정이 작위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개봉된 지 1주일이 됐지만 국내에서 <식코>의 흥행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영화의 상업적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영화를 본 관객의 반응은 뜨겁다. 바로 영화의 소재가 된 미국의 의료현실이 관객 자신의 의료경험과 맞물리면서 <식코>가 단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현실적 위기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감이 의료정책을 입안하는 정치가들이나 보험회
[영화읽기] <식코> 논쟁 ② 늑대가 무서워 호랑이를 불러들일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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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647호에는 <식코>에 관한 기획기사가 실렸다. 나는 이 글에서 김은형과 오창익의 글에 대한 몇 가지 반론과 더불어 <식코>의 문제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1. 김은형은 <식코>에 등장한 사례들을 조롱하다가 영국 의사의 처우와 한국 개원의 수입을 언급하고, 건강보험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각종 약과 건강보조제에 의지한다며 글을 맺는다. 여기엔 의료소비자의 몰이해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순환 고리가 담겨 있다. 한국 의사들이 ‘의료자본주의’를 원하는 건 정부의 파행적인 의료관리에 염증을 느껴서이지 영국 의사보다 부유하길 원해서가 아니며, 의사들의 반대로 영국식 시스템이 도입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영국식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91%에 달하는 민간의료기관을 정부가 사들여야 함에도 (개원의는 개원 자금을 투자한 소자본가로, 봉급생활자와 수입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 재원 마련에 대한 논의없이 의사의 탐욕을 질타하는 손쉬운 비판이 행해진다.
[영화읽기] <식코> 논쟁 ① 건강보험료 더 내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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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한 낱말 카드. 충분히 자주 쓰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들어본 양 심드렁해져버린 말들을 생각한다. 바르고 온당하지만 핼쑥해져버린 단어들. ‘인권’ 또는 ‘독립’이란 지붕 아래서 만들어진 이야기를 떠올린다. 잘못 쓰고, 잘못 들었으므로, 오해하고 실망했던 말들. 그 수북한 단어장 위에 내가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고유명사를 고유명사로만 아는 것. 추상명사를 추상명사로만 아는 것. 생명을 생명이라 읽고, 권리를 권리라고 읽는 것. 그러고 마는 것. 그런데도 얼마간 그것에 대해 늘 안다고 생각해온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무언가를 알고 이해한다는 건 결코 추상적인 행위가 아닐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걱정할 때, 추상적으로 좋아하고 추상적으로 걱정하는 게 아닌 것처럼. 원망하고 미워할 때조차 그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그 단어는 그 단어가 아니었다고. 상식과 사실은 다르다고. 많은 독립영화들의 가치는
[냉정과 열정 사이] 그 길에서 만난 동물들을 애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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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의 장르적 공간과 김동현의 길
같은 질문을 한국 신진 감독들의 영화로 옮겨보자.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나홍진의 장소는 망원동이다. 그곳은 장르적 미끼다. 그곳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인물들은 벗어나도 다시 그곳으로 모인다. 나홍진 스스로 걸어둔 장르적 제약의 공간이 망원동이며 술래잡기는 거기에서 일어난다. 조창호의 공간은 아직까지 김기덕처럼 개념이다. 그는 공간이나 장소의 설정에 구애받지 않고 판타지를 진전시킨다. 김기덕처럼 그게 조창호가 차지할 힘이기도 하다. 그리고 같은 비중의 판타지를 갖고 있지만 신재인의 관심은 ‘그들’에 집중된다. 그녀는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 예민하다.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가 고문하는 집단을 상대하는 피해자의 환상적 서커스였다면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과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그들 사이에서 삐져나온 한 괴인의 차력술이다. 그녀에게는 장소가 아니라 그들, 즉 괴력의 성자와 맹목적인
[전영객잔] 떠나거나 혹은 정착하거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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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주인의 여식과 가난한 하숙생 사이의 사랑은 오래된 소재다. 그들의 관계는 조그만 앞마당에서 은밀한 눈인사로 꽃피며 결과는 대체로 둘 중 하나다. 둘의 사랑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지속적일 때 그들은 죽어서도 잊지 않는 사랑의 전범으로 남으며 행복한 결말에 도착한다. 슬픈 결말에 이르러야 할 때는 하숙생이 하숙집 딸을 배반한다. 남자가 그 집을 떠나고 여자가 홀로 남는다. 하지만 여자는 홀로 남지 않고 그가 남긴 혈연의 징표를 갖고 남는다. 여자는 임신한 채 남는다. 집 바깥을 벗어나며 다시 돌아오겠다고 맹세한 남자가 돌아오지 않을 때 여자는 기약없는 기다림의 인생을 시작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드라마의 소재 혹은 허름한 동네 어딘가에서 들어본 풍문 혹은 철지난 농담 속의 하숙집 딸과 하숙생의 이야기는 상투적이지만 그렇게 둘 중 하나다.
시작이라면 오점균의 <경축! 우리사랑>도 다를 바가 없다. 하숙생은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고아로 자란 청년 구상
[전영객잔] 떠나거나 혹은 정착하거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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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계상의 <씨네21> 표지 촬영현장과 영화 <비스티 보이즈>에 관한 인터뷰 영상입니다.
영상 중간에 배우가 직접 내는 돌발퀴즈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퀴즈도 풀고 배우가 주는 선물도 받아가세요.
정답은 2008년 5월 11일까지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당첨자는 커뮤니티 '씨네21 소식'에서 확인해 주세요.
[윤계상]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