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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페어 레이디>를 떠올리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리타 길들이기>는 거칠긴 해도 생기발랄한 매력의 여자가 지적인 신사를 만나 교양있는 숙녀로 변해간다는, 익숙한 줄거리를 따른다 싶더니, 꽤 따끔하게 뒤통수를 치는 연극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식의 이야기에 진저리치던 관객에겐 작지만 환영할 만한 반전일 듯 보인다. 26살 주부 리타. 삶을 고뇌할라치면 새 옷이나 한벌 장만하고 얼른 잊곤 했던 그녀는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어 개방대학에 입학한다. 강의 첫날. 수업 따윈 대충 끝내고 술 한잔 걸치기를 고대하던 문학교수 프랭크는 리타의 열정에 감복하고, 그녀를 가르치는 일에서 보람마저 느낀다. <리타 길들이기>의 원제는 ‘Educating Rita’. 진정한 앎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는 이 연극은 리타의 미래를 결론짓기 주저한다. 외려 외길이던 그녀의 삶을, 자유분방하게 열어놓는 쪽을 택한다. 물론 그녀의 선택이 단순히 어떤 남자와 함께하느냐에서
숨돌릴 틈 없이 쏟아지는 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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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의 매그넘은 고유명사였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이 1947년 뉴욕에서 만나 도원결의를 맺었던 것도 단지 자신들의 서명이 새겨진 사진을 좀더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에이전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은 언제부턴가 보통명사로 쓰인다. 삶과 죽음의 최전선에서 자신을 온전히 노출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필름에 거둬들였던 매그넘은 치열한 정신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4월15일부터 5월12일까지 열리는 <매그넘 시네마 전주 특별전>은 이브 아놀드, 질 페레스, 필립 할스만, 유진 스미스, 엘리엇 어윗 등 전설의 이름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그렇다고 잔뜩 눈에 힘주고 마음 다잡을 필요는 없다. 전장을 수시로 넘나드는 매그넘이지만, 그들에게도 긴장을 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영화의 마술’이라는 주제로 묶인 이번 전시에 부제를 단다면, ‘매그넘의 휴식’이 적당할 것이다. 다만 휴식 중에도 그들은 카
사진의 전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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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스(The Kooks)의 새 앨범에 기대를 걸 이유는 애당초 없었다. 지난 몇년간 영국 록계를 휩쓸어온 뉴록(new rock) 열풍에서 진정으로 건져낼 만한 대어가 몇이나 있었던가. 리버틴스(The Libertines)의 뒤를 잇겠노라 튀어나온 젊은 영국 밴드 중 평자와 군중을 모두 함께 만족시킨 건 악틱 멍키스(Arctic Monkeys) 정도가 유일했다. 조금 더 삐딱해져보자. 사실 악틱 멍키스의 인기도 오랜만의 자국산 재능을 띄워보려는 영국 록 저널리즘의 광기어린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도 악틱 멍키스 정도면 그런 지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니 넘어가자. 살랑살랑한 쿡스의 데뷔앨범 <Inside In/Inside Out>은 그럴 자격까지는 별로 없었다. 쿡스의 멤버들 스스로 인정하지만 그건 솔직히 ‘소녀팬들을 위한 록’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뉴록도 좀 시들하다. 쿡스는 변했는가. 아니. 대신 그들은 더 스타일리시해졌다. 첫 싱글로
좀더 스타일리시해진 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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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교향곡1> 이경석, <속좁은 여학생1> 토마, <트레이스1> 고영훈 / 팝툰 펴냄
최근 창간 일주년을 맞이한 만화 격주간지 <팝툰>이 세편의 단행본 컬렉션을 선보였다. 인디만화계의 대부인 이경석의 <전원교향곡>, 신감각 순정작가 토마의 <속좁은 여학생>, 장편서사 웹툰계의 주목할 만한 신인 고영훈의 <트레이스>가 그 주인공들. <전원교향곡>과 <속좁은 여학생>은 <팝툰> 창간호부터 호평 속에 연재 중인 인기작이며, <트레이스>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네티즌의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인기폭발 웹툰이다. ‘팝툰 컬렉션’이란 이름을 달고 첫 탄생한 단행본 삼남매에는 저마다의 맛깔스러움이 가득하다. 이경석의 <전원교향곡>은 오지 마을에서 벌어지는 유쾌발랄한 농촌시트콤이다. <전원일기>적인 서정적 배경에 <이나중 탁구부>스러운 엽기
색다른 만화와의 만남, 팝툰 단행본 삼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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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오시이 마모루 / 황금가지 펴냄
<공각기동대> <인랑>을 연출한 오시이 마모루가 쓴 장편소설. 이연걸 주연의 <키스 오브 드래곤>의 크리스 나혼이 감독하고 전지현이 주연 사야를 맡은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은 미와 레이(이 이름은 오시이 마모루의 대학 시절 필명이기도 하다). 전공투 활동이 극에 달했던 1969년 4월28일, 고등학생 활동가 레이는 시위 대열을 이탈했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된다. 전형적인 여고생의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커다란 일본도를 들고, 형형한 눈빛을 빛내고 서 있었던 것. 외국인 남자 두명이 사야라고 불린 여고생과 같이 있었는데, 레이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구급차에서 깨어난다. 그날 이후, 레이는 피를 빨린 채 죽음을 맞는 학생들의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린다.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는 전공투 세대였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젊은 날을 배경으로 하는
오시이 마모루의 살아 있는 시체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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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민음사 펴냄
죽음 앞에서 크게 한번 웃어보시라. <더티 잡>은 한 전형적인 소시민이 우연찮게 죽음의 사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유머로 조리해낸 작품이다. 찰리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중고품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 하지만 아내가 딸 소피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숨을 거둔 뒤, 그의 삶은 불길한 방향으로 꼬이기 시작한다. 노트에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 저절로 나타나는가 하면,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며칠 뒤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 찰리는 자신이 죽어가는 이들의 영혼을 수거해 원활한 윤회를 돕는 “더티 잡”에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식료품 점원이 뱀파이어에게 반하는가 하면, 예수의 어릴 적 친구가 부활해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그간 허무맹랑해 보이는 설정을 솜씨있는 유머로 가공해냈던 크리스토퍼 무어는 <더티 잡>에서도 특유의 장기를 발휘한다. 하수구에서 은밀히 지상 진출을 도모하는 죽음
윤회를 돕는 유쾌한 데스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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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 이레 펴냄
이런 상자가 정말 있다면 좋겠다.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는 일본의 유명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가 인터넷 신문 <호보일간 이토이 신문>에 연재한 코너를 묶은 책으로 아이, 주부, 학생, 소설가, 연예인,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보낸 질문에 대한 다니카와의 대답으로 구성됐다. “모든 나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고 싶은 시인의 소망으로 시작하는 책 속 다채로운 질문들은 걸작 대답들과 짝을 이뤘다. 사람은 왜 죽냐는 어린 딸의 질문에 막막했던 엄마에게는 의미심장한 질문에는 말과 몸으로 함께 답해주라며 안아주기를 권하고, 부담없는 대화가 어렵다는 고민에 그 또한 개성이라고 위로한다. 남편 아닌 다른 남자로 걱정인 아내에게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라는 충고를 건넨다. 질문자와 독자를 모두 고려한 현답은 지혜롭고, 사인회 때 다른 사람 생
척척선생 다니카와씨에게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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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에 ‘도배질 금지’ 경고가 나붙을 정도로 욕을 먹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이 남자, 맷집 좋다. “시청자의 안티, 네티즌의 안티”를 자처한 KBS <개그콘서트> ‘2008 봉숭아학당’의 왕비호(윤형빈). 슈퍼주니어, 빅뱅 등 주로 아이돌 그룹을 골라 막말을 일삼던 왕비호는 “어이, 소녀시대! 노래도 좋고 연기도 좋은데… 니들 학교는 제대로 나가냐?”며 소녀시대 팬들을 자극하더니 “SS501은 무슨 청바지 이름이냐?”고 연타를 날렸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 1위에 등극한 한편 실시간으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기록도 세웠다. 급등하는 게시판 악플에 대해선 “험한 말 한 것들, 다 초딩이지?”라고 이죽거렸다.
게시판이 후끈 달아올랐다. 맹렬한 비난이 쏟아지고, “봉숭아학당에서 왕비호 빼라”, “봉숭아학당 문 닫아라” 요구가 빗발친다. 왕비호 물만났다. 기하급수적 안티팬 확산의 꿈이 이토록 빨리 이루어질 줄이야. 아이돌 그룹 팬들의 유별난 스타 사랑을 자신에
[댓글로 보는 TV] 욕먹든 칭친받든, 반응이 있어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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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했어요~. ♡” 결혼식장에서의 경건한 맹세는 물론 아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3월부터 선보인 코너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알렉스-신애, 앤디-솔비, 크라운 제이-서인영, 정형돈-사오리는 마치 초등학교 시절 짝을 배정받듯, “부부가 되어라”라는 제작진의 지령을 받아들였다. 일상의 영화화를 추구하는 알렉스와 ‘귀차니즘’의 진수 정형돈,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끌려다니는 크라운 제이 사이에서 앤디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신혼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이기에 충분한 캐릭터로 입지를 굳혔다. 앤디는 업어달라는 아내 솔비의 요구에 “몸무게 많이 나가지 않느냐”고 짓궂게 답하는 한편 얼굴 한가득 팩을 묻힌 채 귀여운 ‘하트춤’을 선보인다. 아이돌 그룹 ‘신화’의 막내 앤디는 더하고 덜할 것 없는 실제 모습 그대로 여심을 얻었다. “처음에 ‘가상결혼’이란 컨셉을 들었을 때 황당하기도 했고 어떤 식으로 이끌어가야 하나 걱정도 많이 했어요. 막상 촬영에 들어가보니 제작진은
[TV] 짓궂지만 귀여운 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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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4월 22일(화) 오후 2시
장소 코엑스 메가박스
개봉 4월 30일
이 영화
기센 아낙네들이 주도권을 잡은 한 마을, 떡장수를 하는 청년 강쇠(봉태규)는 밤일 제대로 못 하는 부실한 남자로 낙인찍혀있다. 동네 할멈(윤여정)과의 첫 관계에서 그 ‘정체’가 들통 난 뒤 주모(전수경), 봄이(서영)를 비롯한 온 마을 아낙네들의 놀림거리로 살아간다. 그런 그를 끝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은, 과거 그를 ‘부실남’으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형 강목(오달수)밖에 없다. 그런 한편으로 강쇠는 마을에 흘러들어온 한 여자 달갱(김신아)을 흠모하게 된다. 하지만 또 다시 형과 달갱이 혼인을 올리면서 좌절하게 된다. 그러다 한 도사(송재호)를 구해준 강쇠는 최강의 양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전해 듣고 실행에 옮긴다. 이후 소변으로 산불을 끄는 등 천지를 뒤흔드는 정력을 얻은 그는 동네 아낙들의 열렬한 구애에 시달리게 된다. 그럼에도 형수를 사랑하는 처지라 그의 마음은 늘 쓸쓸하다.
말말말
부실남 변강쇠 <가루지기>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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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아기사슴 밤비>의 애니메이터 올리 존스턴이 4월14일 95살을 일기로 잠들었다. 초창기 디즈니의 전설적인 9인의 애니메이터 “나인 올드 멘”의 일원으로 꼽히는 존스턴은 43년간 활동하며 숱한 고전들을 창조했다. 피노키오의 코가 늘어나는 모습처럼 잊지 못할 장면들은 물론 <정글북>의 모글리, 아기사슴 밤비 등은 모두 그가 남긴 유산. <토이 스토리> <카>의 존 래세터 감독은 “나는 그에게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을 배웠다. 존스턴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애니메이터였다”고 추모했다.
[올리 존스턴] 디즈니의 장인, 숨을 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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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여, 부디 오해하지 말아다오.” 신작 <스트리트 킹>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키아누 리브스가 영화를 그저 영화로 봐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4월17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트리트 킹>의 초반부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폭력을 가하는 장면에 대해 “굉장히 느낌이 세고 터프한 장면인데, 한국인들이 이 내용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저녁 CGV용산에서 열린 레드 카펫 행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키아누 리브스] 영화는 그저 영화로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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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의 미공개 섹스 비디오가 150만달러에 팔렸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1950년대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흑백 16mm 릴테이프에는 먼로와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의 구강성교 장면이 찍혀 있다. 기념품 수집가 키야 모건이 소장하고 있던 15분짜리 영상은 뉴욕의 한 사업가가 비밀리에 사들였는데, 판매된 비디오는 복사본으로 원본은 FBI에서 기밀서류로 분류해 보관 중이다. 구매자는 비디오의 유통을 막기 위해 구입했으며 세간에 공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마릴린 먼로] 섹스 비디오, 150만달러에 낙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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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은 영화는 바로 <웰컴 투 슈티>다. 슈티란 프랑스 북부 지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제 슈티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귀여움을 받는 지방 사람들이 됐다. 코미디 영화감독 대니 분이 만든 이 작품은 몇주 사이 프랑스영화계에서 가장 큰 흥행작이 됐고, 빙산처럼 떠서 <타이타닉>의 2천만 관객동원 기록 돌파를 향해 둥실둥실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계속 뜨다가는 <타이타닉>의 역사적 기록을 문제없이 깰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시대와 작품을 잘 연결해주고 있는, 그야말로 한눈에 반할 정도의 그런 작품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웰컴 투 슈티>는 프랑스 남부에 살다가 정반대에 위치한 전혀 매력없는 지역 노르 파드 칼레로 전임해온 한 우체국장의 모험을 그린다. 그는 북부 지역에 관해 온갖 선입견을 안고 부임해온다. 그는 북부 지방이 날씨가 엄청나게 추운 건 물론이고, 알코올 중독자가 많은데다가 탄광에서
[외신기자클럽] 한편의 코미디, 프랑스를 덥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