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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 겐지는 구로사와 아키라와 더불어 1950년대 일본영화가 서구로 소개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감독이다. 시발점은 구로사와의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라쇼몽>(1950)이다. 그리고 미조구치가 뒤를 이어 <오하루의 일생>(1952), <우게츠 이야기>(1953), <산쇼다유>(1954)로 베니스에서 3년 연속 본상을 수상, 일본영화는 서구에서 큰 유행을 몰고 왔다. 구로사와와 미조구치는 여러 면에서 대조된다. 구로사와는 서구적이고 동적이고 남성적인 반면, 미조구치는 매우 일본적이고 정적이고 여성적이다. 미조구치는 특히 멜로드라마를 잘 만든다. 서구인이 구로사와의 작품에서 서구보다 더욱 서구화한 미학을 목격하고 놀랐다면, 미조구치의 작품에선 ‘일본적인 미학’의 현시를 목격했다. 영화로 표현할 수 있는 일본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우게츠 이야기>(1953)는 여기에 답하는 걸작이다.
아름다움의 분위기가 압도하는
[걸작 오디세이] 일본적인 아름다움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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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스 아일랜드>를 보고 조디 포스터와 애비게일 브레슬린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에 조금 놀랐습니다. 둘이 닮지 않았습니까? 제 말은 어린 시절의 조디 포스터와 지금의 애비게일 브레슬린 말입니다. 동그란 얼굴에 우뚝한 코, 그리고 그 커다란 눈을 보세요. 전 <패닉룸>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그렇게까지 조디 포스터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애비게일 브레슬린과 조디 포스터를 보면 뭔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님스 아일랜드>에서 애비게일 브레슬린이 연기한 캐릭터 때문이겠죠. 이 영화가 1970년대 초반에 나왔다면 당연히 그 역은 조디 포스터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험한 자연과 맞서 싸울 줄 알고 동물들과 친구로 지내는 용감하고 씩씩한 말괄량이잖아요. 조디 포스터는 정말 이런 역들을 많이 연기했습니다. 몇 십년 동안 포스터의 경력을 따라온 여성팬들도 다 그때부터 시작했지요. 포스터를 ‘지성파’ 배우로만 보면 이 사람 경력을 절반밖
[듀나의 배우스케치] 애비게일 브레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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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의 초반에 흥미로운 논쟁이 등장한다. 자신이 배트맨임을 감춘 갑부 브루스 웨인, 정의감에 불타는 지방 검사 하비 덴트, 그리고 두 여인이 동석했다.
여인1: 덴트씨, 당신이 진짜 영웅이에요. 영웅 놀이가 아닌 진짜 법의 수호자지요. 가면놀이를 하는 자경단(vigilante)을 영웅화하는 건 이제 그만두어도 되지 않나요?
하비 덴트: 시민이 불의에 맞서는 게 어때서요?
웨인: 누가 배트맨에게 그런 역할을 맡겼단 말이오?
덴트: 우리지요. 불의가 활개치도록 놓아둔 우리요.
여인1: 덴트씨, 여긴 민주주의 사회예요.
덴트: 위험에 처했을 때 로마는 민주주의를 뒤로하고 한 사람의 수호자를 임명했지요. 그건 명예가 아니라 봉사로 여겨졌죠.
여인2: 그 마지막 수호자는 시저였고, 그는 권력을 결코 양도하지 않았어요.
덴트: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 악당이 되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지금 브루스 웨인은 시치미 뚝 떼고 또 다른 자기를 비난하는 쪽에 가담해 있고,
[전영객잔] 백기사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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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간 발밑만 쳐다보며 살아온 남자가 있다. 반경 1미터 안에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만 없다면 그 너머에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는 존재가 있다고 한들, 그 반경 속에서만 안전하게 살아왔다. 혼자서 밤을 꼬박 새야 하는 고독한 야간 경비원 일도 그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직업이다. 그러다 보니 이 양반, 32살이 되도록 친구 하나 없다. 후루야 미노루의 신작 <심해어>는 32년간 깊은 바닷속의 심해어처럼 고독하게 살아온 한 ‘찌질’한 주인공 토미오카의 처절하도록 ‘찌질’한 친구 사귀기의 기록이다. <렛츠고! 이나중 탁구부>의 후루야 미노루는 엽기적인 캐릭터와 변태적인 배설개그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사회소외계층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더 돋보이는 작가다. <심해어> 역시 관찰의 대상이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바뀌었을뿐,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비주류에 대한 따뜻하고 세심한 묘사가 돋보인다. 개그적
특유의 엽기캐릭터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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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인간 수컷보다 반려동물이 백번 나을 때가 많다. 함께 사는 인간 수컷은 먹은 그릇을 개수대에 쌓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가버리기 일쑤인데, 흰 가슴털이 아름다운 동거묘 고랑은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곁을 지켜준다. 물론,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물방울 튀기는 가느다란 물줄기들이 신기해서다. 그래도 꿈보다 해몽이다. 모시고 사는 입장에선 골골골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릴 때까지 수도를 틀어 비위맞추기를 계속한다. <인간 수컷은 필요없어>는 러·일 동시통역사이며 번역가,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네 포유류 가족 이야기다. 가족 구성은 이렇다. 독신인 작가와 기억을 잊기 시작한 어머니, 어미 잃고 방황하다 구출된 고양이 남매 무리와 도리, 러시아에서 입양한 고양이 자매 쏘냐와 타냐. 여기에 붙임성 좋은 유기견 겐이 합류했다. 동물과 살아본 경험이 있다면 수명이 짧은 이들과의 만남이 언제고 통곡할 일을 만든다는 걸 알겠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슬픔이 곳곳에 숨겨져 있지만 그보
남편 따윈 필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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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 제 삶, 제가 이룰 가족. 모두 이 부족 안에서 온전히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제가 용의 비늘을 찾아 돌아왔을 때, 그때부터 저는 이 부족의 온전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최지혜, <용의 비늘>) 사람과 용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식. 한국에서 환상문학이 처한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환상문학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PC통신이라는 태생적 배경으로 인해 문단과 인터넷 사이에서 표류하는 존재였다. <한국환상문학단편선>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해온 한국 환상문학의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색깔과 성격이 다른 아홉편의 수록작을 하나의 범주로 묶기는 불가능하지만, 공통적으로 환상문학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를 교묘하게 비틀고, 새로운 이야기 방식을 고민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뱀파이어를 사회적 약자로 묘사한 <사육>과 동양 설화의 형식을 빌려 뱀의 혀를 가진 남자의 원한을 얘기하는 <목소리
신묘하도다! 한국의 환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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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헬렌은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낀다.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었다. 헬렌의 호스트인 브라운 씨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하나가 그녀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소년 빌리의 몸 안에 제임스라는 남자의 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헬렌은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두려움과 설렘이 그녀에게 찾아온다. 제임스를 좋아하게 된 헬렌은 인간으로 함께 있기 위해 영혼이 떠나버린 소녀의 몸으로 들어간다.
죽음 이후에 영혼은 어디로 갈까. 그런 호기심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고스트 인 러브>의 이야기에 솔깃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옛날 <사랑과 영혼>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죽은지 오래 지나 이 인간 저 인간을 떠돌며 지내는 유령들의 사연을 보여주는데 신인인 로라 위트콤은 헬렌과 제임스를 슬프고 아련한 이야기로 끌어들인다. 이 책에서는 퀵과 라이트라는 용어를 써 인간과 이계의 존재 방식을 나누는데,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존재
유령들의 서늘한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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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게 되는 것이 있다. 5년 동안 청취자에게 세계 음악을 소개해온 EBS FM <세계음악기행>의 소중한 첫 앨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주말밴드>>. 영국과 미국을 제외하고 ‘월드’라고 규정된 그 세계에서 우리는 아름답고도 풍부한 음악과 조우하게 된다. 총 15트랙이 수록된 이 앨범은 베냉공화국, 푸에르토리코 등 올림픽 아니면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를 포함해 총 9개국의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다. 쇼루(Choro: 브라질의 대중음악)에서부터 일렉트로클래시, 아프로팝 등 선율을 따라 세계로 흘러간다. 라디오 주파수를 찾는 듯한 중독성 강한 비트의, 스웨덴의 예이-예이 요한슨의, <On the Radio>, 역경에도 꿋꿋이 사랑을 지킨 이탈리아 가수 지지 달레시오와 안나 타탄젤로 커플의 러브스토리 <Un Nuovo Bacio>(새로운 입맞춤)는 아는 사람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그간 영미팝에만 길들여
진정한 월드뮤직을 들을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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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은 아이돌 그룹이다.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화제다. 빅뱅은 성공했다. 이들의 인기는 연령이나 성별, 직업이나 계층과도 무관한 광범위한 팬덤이 증명한다. 바야흐로 성공한 아이돌 그룹인 빅뱅의 스타일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스타일만 그런 게 아니다. 음악적으로도 빅뱅은 다양한 관점에서 주목받는다. 사운드는 화려하고 깔끔하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비트는 직관적이다. 6곡이 수록된 새 EP도 마찬가지다. 전작에서 불거진 표절 시비로 인연이 닿은 다이시 댄스를 비롯해 엄정화의 <DISCO>를 만든 프로듀서 테디와 쿠시, 그리고 노브레인이 가세했다. 노브레인의 <Oh My Friend>가 뜬금없긴 하지만 다이시 댄스와 작업한 <하루하루>와 <천국>은 여전히 상큼한 빅뱅 스타일의 연장이니 태양의 솔로 앨범이나 대성의 트로트 싱글로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게다가 수준 이상에 다다른 YG엔터테인먼
성공한 아이들 그룹의 신보,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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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 역사는 곧 사랑의 역사와 같다. 대중가요가 사람들의 일상적인 감정을 가장 쉽게 표현하는 도구라면 사랑만큼 진부하고 유치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 그만큼 소중한 가치가 사랑 아닌가. 어느 누구나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은 사실 그렇게 가장 일상적이고 가까운 단어일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사랑이다. 다행스럽게도 전시가 다루는 사랑은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를 일깨우는 거창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 작가는 사랑을 하고, 사랑 때문에 싸우고, 사랑 때문에 우는 사람들의 감정을 글이 감추어져 있는 캘리그래피와 회화로 풀어냈다. <줄다리기>라는 제목의 작품에서는 선으로 그려낸 전화기 모양 속에 ‘전화먼저할까말까’라는 글이 숨어 있기도 하고, 입을 맞추고 있는 두 남녀를 그린 <사랑 노래1> 속에는 ‘음… 앙… 쪽… 쪽… 쪽… 사랑해… 사랑해’ 등의 말들이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마치 글씨가 춤을 추는 것과 같은 가볍디가벼운
캘리그래피와 회화로 풀어낸 일상 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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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의 리얼 액션을 표방하는 영화 <스페어>의 언론시사회가 지난 14일 오후 2시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열렸다. 이날 현장 분위기는 <스페어>가 저예산 액션 장르라는 비주류 영화임을 감안해도 많은 취재진의 관심을 받아 관계자들이 흡족해 했다는 후문.
시사회에 앞서 열린 임준일, 정우, 코가 미츠키가 참석한 씨네21 영상 인터뷰에서 세 배우는 시종일관 진중한 태도로 영화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스페어>의 고난도 액션을 책임지고 있는 임준일과 코가 미츠키는 수개월간 서울 액션스쿨에서 훈련을 하며 몸 만들기에 매달렸다고 전했다. 오랜 시간동안 고생했기 때문인지 액션 연기에 대한 자신감만큼은 남달랐다.
반면 난투극보다는 '구강 액션'에 열을 올리는 캐릭터를 맡은 정우는 이번 작품에서 약삭빠르고 얄미운 캐릭터를 균형감 있게 소화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이성한 감독 역시 영화 시사 후 계속되는 액션 난타전 속에서 정우가 징검다리 역할
순도100% 리얼액션의 쾌감 <스페어> 주연배우 三人三色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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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발머리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인상적이었던 전도연 주연의 영화 <내 마음의 풍금>(1998)을 기억할는지.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영화 버전과 제목은 같지만, “영화보다는 원작에 가까운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는 조광화 연출가의 말에서 짐작건대, 영화의 바탕이 된 하근찬의 소설 <여제자>의 담백하고 소박한 향취를 한결 짙게 품고 있다. 무엇보다 스크린에서나 가능할 섬세한 감정 묘사를 접어두는 대신 주인공 홍연의 급우들을 비롯해 주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리고 소풍, 운동회 등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점이 영화 버전과 가장 큰 차이. 순수한 이들의 풋풋한 사랑을 다룬 공연인 만큼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은근히 매력적인 열여덟곡의 노래가 김문정, 최주영 작곡가와 이희준 작사가의 호흡 아래 완성됐다. 강동수 선생에게 “아가씨”라는 호칭을 듣고 환호하는 홍연의 귀여운 심리는 <아가씨>라는 곡으로 발랄하게 제
뮤지컬로 만나는 시골 소녀 홍연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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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제부터 수영에, 펜싱에, 사격에, 유도에 이토록 관심이 많았을까. 주요 경기 일정을 챙기고 시간 맞춰 TV를 켜고 DMB를 들여다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요즘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림픽 주요 경기 중계 앞뒤에 붙는 광고는 광고주들의 ‘금밭’이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이벤트를 잘 활용한다면 1년 내내 광고를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림픽 주요 경기 앞뒤에 붙는 TV광고는 기존 광고비의 30%에서 높게는 2배까지 더 지불해야 한다. 물론 올림픽이라는 특정한 이슈에만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기 때문에 이 시기에 광고를 해봤자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광고를 자제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번 2008 베이징올림픽에도 몇몇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올림픽을 소재로 한 광고들을 내놓았다. 올림픽 공식 스폰서인 삼성을 비롯해서 SK텔레콤, KTF쇼, 국민은행, 박카스, 아디다스 등이다. 이들 중 올림픽 광고의 승자는 누구일까?
일단 박태환을 모델로 한 광고의 승리로
[CF 스토리] 2008 베이징올림픽 광고의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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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지식채널e> 김진혁 PD가 이번주 방송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에서 물러난다. <지식채널e>는 3년 전 그가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2005년 9월5일 방영된 ‘1초’를 시작으로 매주 두편씩, 무려 450편이 전파를 탔다. 애초 두명의 PD가 배정된 프로그램이었지만 6개월 전부터는 김 PD가 홀로 연출을 도맡아왔다. 5분짜리 SB(Station Break) 프로그램인 <지식채널e>를 EBS 간판 스타로, 탄탄하고 폭넓은 시청층을 자랑하는 방송으로 일궈낸 그가 프로그램을 떠나는 것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지난 5월12일 방영한 ‘17년 후(광우병을 다룬 방송)’ 때문에 경영진이 청와대의 눈치를 살펴 ‘보복성 인사’를 했다는 비난이 EBS 안팎에서 거세다. EBS 경영진은 김 PD에 대한 이번 인사 조치가 “가을철 정기인사를 단행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본인은 이번 인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게
“경영진은 정기인사를 핑계로 노조와의 약속을 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