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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클럽’이라고 하니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해두지만, 20세기 초 조선 청춘 남녀들이 한날한시 한데 모여 생을 저주하고 죽음을 결행했다는 보고서가 아니다. 지은이가 들춰낸 “근대 조선을 울린 충격적 자살사건”들은 제각각이다. 상하이의 무희 이상산의 죽음과 청상과부 윤영애의 죽음은 다르다. 평양 명기 강명화의 자살과 이화여전 문창숙의 자살은 다르다. 그래선지 처음에는 좀 심심하다. 무미건조한 사회면 1단 기사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개별적 죽음이 근대의 삶을 진술하는 가장 극적인 풍경임을 이내 깨닫게 된다. <경성자살클럽>은 근대 조선 남녀의 연이은 자살이 실은 전근대의 쇠사슬로 말미암은 은밀한 사회적 타살이었음을 차례대로 증명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 타살의 가장 큰 피해자가 여성이었음을 수차례 강조한다. 엘리트 소리 듣던 신여성, 모던 걸들도 구습 앞에서는 스스로 스러진다. “사연 하나하나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은이가 털어놓듯이, <
사회가 부추긴 근대 조선의 자살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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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속에> <노말 시티> <두 사람이다> 등의 작품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순정만화가 강경옥의 신작이다. 강경옥은 황미나, 신일숙, 김혜린, 원수연 등과 함께 1980, 90년대 한국 순정만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1세대 작가로 그림체보다는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는 특유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가. 심리묘사도 탁월해 미스터리 순정물 <두 사람이다>(1999)는 2007년 동명의 공포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설희>는 그런 ‘강경옥식’ 미덕이 오랜만에 발휘된 작품으로 순정만화 팬이 아니더라도 책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끈적한 마력이 가득한 만화다. 주인공인 설희는 출생의 비밀을 가진 채 섬에서 살다 무려 21억달러라는 거금을 상속받게 되는 행운의 아가씨다. 이야기는 상속받기 위해 뉴욕에 온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시작된다. 평소에는 물정 모르는 철부지 소녀 같다가도 위기의 순간에는 서늘한 얼음같이 냉정한 그녀의
환영할 만한 순정 대가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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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신작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이하 <다찌마와 리>)의 임원희, 박시연이 8월 14일 개봉을 앞두고 씨네21 스튜디오를 찾았다.
지난 3일에 있었던 씨네21 표지 촬영 현장에서 임원희와 박시연은 영화 속 캐릭터 못지않은 개성있는 스타일의 '옷빨'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박시연의 섹시 컨셉 의상 덕에 뭇 남성의 시선이 집중됐다고. 또, 임원희는 사진 촬영 내내 풍부한 표정으로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어 현장을 즐겁게 했다.
사진 촬영 후 벌어진 인터뷰에서는 새로운 <다찌마와 리>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생생한 동영상을 통해 직접 들어보시길.
영상 중간에 돌발퀴즈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퀴즈도 풀고 배우가 주는 선물도 받아가세요. 정답은 8월 25일까지 아래 댓글로 달아주세요.
[임원희, 박시연] 지옥행 급행열차에 빨리 탑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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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티가 갤러리에 전시된다. 이름부터 발랄한 명랑콘티작가 강숙의 작업들이다. 작가의 필모그래피에는 영화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 <음란서생> <장화, 홍련> 등과 드라마 <식객> <이산> <내 남자의 여자> <메리 대구 공방전> 등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이 빼곡하다. <너는 내 운명>의 포주 강씨, <어깨너머의 연인>의 잡지사 기자 등 간간이 단역의 영화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보를 표현하는 하나의 매체로서, 그림으로서 작가는 콘티의 매력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림으로 그려진 이 촬영대본에는 각각의 인물표정부터 움직임, 그리고 장소의 구성까지 영화 촬영에 필요한 요소들이 모두 들어 있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이전, 영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시각화하는 이 콘티 속의 그림들은 몇 만개씩 되는 프레임 속에서 마치 숨을 불어넣어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느
영상이 숨쉬기 전, 그림옷을 입은 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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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 멜로디와 반복되는 기타 프레이즈, 여기에 나긋나긋한 보컬과 매력적인 코러스는 데스 캡 포 큐티라는 섬뜩한 이름의 밴드를 기타 팝의 숲에 사는 성깔있는 요정 정도로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이들을 들어보면 예상외로 달콤(씁쓰름)하다. 97년 첫 앨범을 발표하고 2005년 앨범 <<Plans>>로 메이저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킨 이 밴드는 8월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열리는 ETP페스티벌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얼마 전 빌보드 100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한 새 앨범 <<Narrow Stairs>>는 헤비메탈과 신스팝, 펑크 등의 스타일이 골고루 뒤섞인 앨범이다. 방심하고 듣고 있으면 뜻밖의 장소에 숨어 있던 훅에 휙 낚인 채로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간다. 거기서 요정들과 뒤엉켜 놀 때 흐를 배경음악들로 가득하다. 물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숲속 깊은 곳에 묻히게 될지도 모르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으면 무사
헤비메탈, 펑크의 매력적인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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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언니네이발관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10년 전의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4집 <<순간을 믿어요>>가 발표된 지 벌써 4년이다. 그전, 그러니까 20세기였던 1990년대에 언니네이발관은 인디신의 기대주였고, 2002년 3집 <<꿈의 팝송>>을 발표한 21세기에는 인기 밴드가 되었다. 언니네이발관 같은 밴드가 시장을 돌파하는 과정을 관전하는 건 주류 음악가가 신선한 음반을 내놓는 걸 보는 것처럼 상쾌한 일이다. 게다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컨셉 앨범이다.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통과 정체성에 대한 주제가 앨범을 관통한다. 멤버들은 이 노래들을 순서대로, 되도록 좋은 음향기기로 들어달라고 당부한다. mp3로 듣지 말라는 얘기다. 사운드는 물론 북클릿의 디자인까지 앨범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여기에 언제나 언니네이발관의 화두였던 소통에 대해 좀더 사려 깊은 단상들이 흐른다. 전작에서 한 걸음
사랑 이야기에 실은 소통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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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이 있을 때는 옷장 안에서, 식구들이 없을 때는 제 방 침대와 욕실에서였어요.” 어느 한국인 이민자 여성의 고백은 미국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온다. 여자가 상습 성폭행범으로 고발한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 그는 미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목사였기에 충격은 더 크다. 법원은 그에게 84년형을 선고하고, 목사는 이러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진실을 얘기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진실은 딸의 고백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배심원들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재판장과 변호사는 관객의 이성과 감성을 쥐락펴락하며 설전을 펼친다. 하지만 성폭행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한국인 부녀의 갈등 속에는 미국사회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민자 가족의 애환이 담겨 있다. 연극 <미친 심판>의 원작은 조원석 작가의 <아버지가 사라졌다>다. 충격적인 결말과 더불어 무대와 객석을 넘나드는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박명규의 연출과
충격적 사건에 담긴 미국 이민자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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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를 맞았으나 딱히 할 일은 없는 그들, 크크섬으로 가는 비밀 원정대를 결성했다. 크크섬의 비밀을 풀기 위해, 혹은 조난당한 일일홈쇼핑 구매직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나선 길은 결코 아니다. 그런 짓을 왜 하겠는가? “매일 ‘칼퇴근’하고 숨차게 달려 <크크섬의 비밀> 보는 게 낙”(이민주)이고, “베이징올림픽 중계 때문에 <크크섬…>을 한주 쉬는 것은 5공 시절에나 어울리는 발상”(이은경)이라고 성토하는 그들이다. 그렇다면 원정대의 진정한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크크섬행 배 안에서 주인공들처럼 소주잔을 기울이던 원정대는 목놓아 부르짖었다. “정말 그 섬에 가고 싶다”(이성한)고. “화투패라면 나도 꽤 돌렸다. 불곰 신 과장, 람세스 김 과장, 촐싹 윤 대리 트리오를 제압할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올인씨와 “신 과장-김 과장이 빚어내는 환장의 춤판에 끼고 싶다”는 ㅋㅋkig씨는 넘치는 끼를 주체하기 힘들었나 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유
[댓글로 보는 TV] 여름휴가 특집! ‘크크섬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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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인간을 지배한다.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사람들을 한방에 모아놓고 하얀 연기가 점차 스며들도록 했다. 방이 연기로 가득해졌지만 모두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들이 가만히 있기에 나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1969년 달리와 라타네가 했던 ‘연기실험’을 재현한 것이다. 제작진은 이 밖에도 인간이 상황에 얼마나 쉽게 휩쓸리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심리실험 15가지를 국내 최초로 재현했다. 횡단보도를 걷던 사람들은 그중 세명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일제히 하늘을 쳐다봤고 다른 이가 오답을 말하자 정답을 알면서도 오답을 골랐으며 치과의사가 혀를 코에 대보라고 하거나 경찰관이 팔굽혀펴기를 시키는데도 ‘권위’에 스스럼없이 복종했다.
그러나 이처럼 허약하고 형편없는 우리는, 또한 상황을 지배할 수 있다. 목격자가 많을수록 남을 도울 확률이 적다는 ‘제노비스 신드롬’은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평범한 청년에겐 예외다. 제작진은 같은 상황을 다
[이주의 추천프로] 상황에 반응하는 인간의 심리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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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사부일체>가 9월께 케이블 채널 OCN을 통해 TV시리즈로 거듭난다. 조직폭력배가 학교에 간다는 기본 설정은 살린 채 성별만 뒤바꿔 재탄생한 <여사부일체>로, 중간 보스 심상군(박예진)과 그의 부하 김효영(정시아), 강유미(김미려)는 보스인 김만진(박상면)의 말썽꾸러기 딸 은보(유설아)를 무사히 졸업시키라는 명령을 받들어 여고에 들어간다.
지난 8월1일 찾은 일산 촬영현장에는 섭씨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 춘추복 차림인 배우들이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었다. 짧게 접어올린 치마에 밝은 갈색 샤기커트 헤어스타일을 한 박예진은 까칠한 조폭 여고생으로 변신한 모습이 아직 어색한 듯 수줍게 웃는다. 박예진은 영화 속 계두식(정준호) 역인 셈인데, 진지함 한켠에 감춰진 우스꽝스러움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야 한다. 최근 SBS <패밀리가 떴다>에서 예상치 못한 엉뚱함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 만큼 주변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극중 박예진은
조직폭력배, 이번엔 여고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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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는 단양, 서쪽으로는 충주, 남쪽으로는 문경, 북쪽으로는 원주와 이웃하고 있는 인구 14만명의 중소도시 제천. 매년 여름이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로 도시가 들썩인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제천은 낯선 도시다. 그래서 준비했다. 제천 시민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가이드북. 일정에 따라 형편에 따라 옵션을 선택하고 영화제를 디자인한다면 제천에서의 하루하루가 알찰 것이다.
1. 교통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당일치기 혹은 1박2일로도 볼 것 다 보고, 즐길 것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기차와 버스 모두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차가 있다.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거나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로 두 시간, 기차로 두 시간 반이면 제천에 가닿는다. 버스를 타면 시간이 단축되고, 기차를 타면 훌륭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여행의 기분을 살리고 싶다면 기차를 추천한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이들은 버스나 기차로 대구에 간 다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알고 가면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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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영화의 범주는 한없이 넓다. 실존하는 뮤지션의 이야기라면 그것이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음악영화다. 뮤지컬? 당연히 음악영화다. 실존하는 뮤지션도,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과 사람이 음악으로 교감하는 이야기라면 그때도 음악영화는 기꺼이 팔을 벌릴 것이다. 이번 제천영화제 상영작 가운데에는 음악에 관한 직접적인 소묘는 아니지만, 음악과 필연을 맺은 작품들이 더러 있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 출연한 가호의 신작 <노래 혼: 연어 합창단의 멜로디>(이하 <노래 혼>)와 톰 매카시 감독의 <비지터>가 음악을 통한 사람들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라면, 일본만의 독특한 음악 장르인 ‘가요곡’을 주제로 11명의 감독들이 11개의 단편을 연출해 구성한 <도쿄 랩소디>는 또 다른 하모니를 들려주는 영화다.
<노래 혼>은 한 소녀의 청아한 목소리로 시작한다. 해변을 무대삼아 맑고 고운 노래를 부르는 카스미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마음은 선율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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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는 데 큰 뜻이 있을 리 없다. <스윙걸즈>의 소녀들이 여름방학 내내 색소폰을 불었던 이유는 방학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린다 린다 린다>의 소녀들은 함께 음악을 하며 서로 토닥거리는 순간들을 사랑했다. 지금 소개할 3편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들 또한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음악을 향한 야망과 열정보다는 삶에 대한 의지가 더 큰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을 알릴 다큐멘터리 <영앳하트: 로큰롤 인생>은 주책맞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열창을 담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노스햄튼에 사는 합창단 영앳하트 단원들의 평균 나이는 대략 80살. 그런데 고희를 지나 팔순을 넘긴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찬송가가 아니라 아웃캐스트, 라디오 헤드, 지미핸드릭스, 소닉유스 등의 노래들이다. 영화는 이들이 7주 뒤의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는 과정을 담는 데,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나이를 잊어도 어쩔 수 없이 노인들인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인생의 묘미 알려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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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음악과 관련한 하나의 테마를 선정해, 음악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려 도모하는 ‘주제와 변주’ 섹션에서는 올해의 주제를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영화로 선정했다. 최초의 유성영화이자 뮤지컬영화인 <재즈싱어>를 비롯해 <브로드웨이 멜로디> <42번가> 등 총 7편의 작품이다.
영화사적인 의미에서 볼 때 <재즈싱어>는 일종의 혁명이었다. <재즈싱어>가 나오기 이전까지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했던 배우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고, 극장 앞 무대에서 연주되던 생음악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유성영화의 시작이 뮤지컬영화의 시작과 궤를 같이하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로 <재즈싱어>에서 대부분의 대사는 자막으로 처리되지만 재키(알 존슨)의 노래는 스크린에서 흘러나온다. ‘쇼는 계속되어야만 한다’는 <재즈싱어>의 대사 한 대목은 이후 할리우드 뮤지컬영화의 명제가 되기도 했다.
화려한 쇼를 연출하기 위한 장소로 뉴욕 브로드웨이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쇼, 쇼, 쇼! 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