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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말>은 지난 2월 내내 열도 전역에서 하루에도 수백번은 울려퍼졌을 일본의 대표적인 졸업 노래다. 발표 당시만 해도 이별을 소재로 한 연가에 불과했던 3인조 포크그룹 가이엔타이(海援隊)의 1979년도 싱글 <전하는 말>이 80년대 이후 졸업식장의 애창곡으로 널리 사랑받게 된 데는 석별의 정서를 따스하게 담아낸 곡 자체의 분위기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979년 첫 방영 뒤 2007년까지 총 8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진 일본의 학원드라마 <3학년 B반 긴파치 선생>(이하 <긴파치 선생>)의 주제가이기도 한 까닭이다.
역시 가이엔타이의 멤버인 다케다 데쓰야가 주인공 긴파치 선생 역을 맡은 이 장수 시리즈는 매 시리즈를 거치며 숱한 아이돌 스타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긴파치 선생>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졌던 것은 학생과 교육 정책의 문제에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그중 1980년에 방영된 제2기 &l
[song book] 졸업식 클리셰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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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사와 나오키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20세기 소년> 제2장이 일본에서 공개되자 한국에서도 그 흥행 돌풍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일본 쇼와 시대의 노스탤지어와 환상적인 분위기를 고루 갖춘 이 작품은 일본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팬이 많아 보인다. 그러잖아도 우라사와의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한·일 두 나라에서 큰 관심을 동시에 불러모은다.
우라사와의 대표작 중 하나가 <마스터 키튼>이다. 그런데 <마스터 키튼>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일본에서 1500만부란 히트 작품인데도 사실상 절판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마스터 키튼>을 발간하는 출판사 쇼가쿠칸(소학관)이 공식적인 발표를 한 적은 없다. 다만 2004년 일본에서 최대부수 주간지인 <주간문춘>에 흥미로운 기사가 나와 있다. 이 작품의 원작자로 돼 있는 가쓰시카 호쿠세이와 우라사와에게 인세가 절반씩 지불되고 있었으나 <주간문춘>의 취재에
[원작의 뒤안길] 만화대국, 편집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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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틸다 스윈튼이 60대 즈음의 벤자민과 키스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녀의 기분이 어땠을까 매우 궁금했다. 배우도 인간이라 키스장면을 찍으며 가슴 떨리지 않을 리 없을 텐데 그 상대가 늙은 브래드 피트라… 브래드 피트와 키스하는 느낌이었을까. 아님 노인과 키스하는 느낌이었을까.
늙은 브래드 피트는 어쩐지 먼 훗날 내가 요실금 팬티를 입는 것보다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나이 올해로 마흔일곱. 도대체 아저씨라고 불러 손색없는 나이임에도 그가 아저씨로 보이는 건 애들 업고 메고 안고 안젤리나 졸리에게 질질 끌려가는 파파라치 사진에서뿐이다. 그것도 직관적으로가 아니라 아, 그에게 저렇게 많은 아이가 있으니 아저씨가 맞지라는 지극히 설명적인 이해를 통해서다.
단지 잘생겨서는 아니다. 사실 잘생기고 섹시하기로 따지면 피트 저리 가라인 조지 클루니나 원조 꽃남이시며 ‘킹 오브 더 월드’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조차 이제는 완연한 아저씨 필
[김은형의 아저씨의 맛] 좀 더 기름지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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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겉보기에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며 사는 신체 건강한 남성입니다. 오늘 이렇게 펜을 들게 된 것은 제가 미용실에 갈 때마다 느끼는 쾌감이 너무 추한 것은 아닌지, 중년의 주책이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미용실, 그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세계. 어려서 엄마를 따라 미용실에 가보면 정말 별천지 같았습니다. 가운을 입고 머리에 이상한 걸 쓴 여자들이 여성지를 보면서 한없이 시간을 보내는 곳. 가슴을 두근거리며 몰래 그 잡지를 훔쳐보다가 엄마가 파마 끝났다고 가자고 부르면 화들짝 놀라곤 했지요. 어쩌다보니 이제 남자들도 미용실에 다니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곳에 가면 어딘지 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미용실에 계신 분들은 쓰는 말부터 우리와는 다릅니다. 저 같으면 그냥 “머리 깎으러 오셨나요?” 할 텐데 그분들은 “커트 진행하실 건가요?”라고 합니다. 다 깎고 난 뒤에도 “머리 감겨드리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샴푸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나의 길티플레저] 샴푸의 요정이 짜릿짜릿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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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무서운 세상이다. 올해 초 공영방송 KBS의 멋진 장수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가 아무런 공지도 없이 폐지되는 것을 보면서도 섬뜩했다. 지난해 말인가, 이 프로그램에서 시골의사 박경철과 우석훈 교수가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를 얘기하며 현 정부 경제정책을 마구 씹는 것을 보고 불안하긴 했는데(물론 그것 역시 실제보다는 엄청 편집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올해가 되자마자 폐지돼버린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건 EBS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한문페) 폐지 소식이다. 대신 무슨 외국어/처세 프로그램이 하나 더 신설된다고 하니 여기도 영어 저기도 영어, 이거 원 장기하가 조만간 싸구려 커피 대신 캐러멜 마키아로를 노래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청소년 교양 프로그램이 대신 들어설 수 있다고는 하나 현재로서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도 힘들다. 더불어 같은 EBS의 <책으로 만나는 세상>도 폐지된다는데 위 두 프로그램은 홈페이지상에서
[오픈칼럼] 국영방송 성질 뻗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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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라지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다 떠내보내거나 그들이 스스로 떠나간 뒤에도, 나는 전혀 외롭지 않았다. 평생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냈던 마음의 눈을 뜨자 모든 것이 살아 일어났고, 닫혀 있던 귀가 열리자 말의 기계적인 개념을 넘은 진실의 소리들이 들렸다.
당시 나는 장사가 안돼 몇년째 비어 있던 친척 소유의 한 선술집에서 생활했는데, 하루하루가 경이로운 기적의 연속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주로 담배나 술) 어떤 형태로든 즉시 주어졌고, 주변의 모든 것이 나의 말벗이 되어주었다. 그것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가 진실이었으므로, 이해관계에 얽매어 마음에 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인데다 자기기만 타인기만에 능한 사람들과의 대화보다 훨씬 더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아침이 되어 선술집의 작은 셔터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면, 나는 그 햇살 복판에 서서 눈을 감고, 이곳을 원형 그대로 복원해보곤 했다(파괴전문가들이 청계천을 위조해놓고 ‘복원’했다고 주장할 때의 그 ‘복원’이 아닌 것은 아시져?
[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선술집 한줌 햇살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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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이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와 <내 사랑 동키호테> 사이에 출연한 <칠수와 만수>는 한국영화의 뉴웨이브를 힘차게 열어젖힌 작품이다. 동두천에 사는 칠수(박중훈)는 미국으로 떠난 누나를 그리워하고, 매일 술잔을 기울이는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면서 만수(안성기)의 조수로 극장 간판과 광고탑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한편으로 여대생 지나(배종옥) 앞에서는 농담과 거짓말을 잊지 않는 넉살 좋은 젊은이이기도 했다. 그렇게 밝은 표정 뒤로 슬픈 가족사를 숨긴 칠수의 얼굴로부터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로카르노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도 초청됐던 <칠수와 만수>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세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로써 박중훈은 유쾌한 청춘스타의 이미지 그 이상으로 새로운 면모를 각인시키게 된다. 20대 초반에 영평상 남자연기상을 수상하며 ‘신인’이라는 표현과 작별을 고했다고나 할까. 더불어 <칠수와 만수>는 이후 <
[박중훈 스토리 4] 칠수, A매치 데뷔골의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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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째 이 지면이 두 다큐멘터리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최초의 영화들이 기록 필름이었으며 카메라와 피사체의 관계가 텍스트 내적인 문제로 새겨진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는, 이야기에의 집중을 요청하는 극영화보다, 영화라는 매체의 기원 혹은 본성과 관계된 쟁점을 종종 더 명료하게 드러낸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24시티>와 <워낭소리>로부터 배우고 생각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24시티>는 두 차례 다뤄졌으므로 여기서는 <워낭소리>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려 한다.
좋은 가짜인가 나쁜 가짜인가의 문제
<워낭소리>의 극영화적인 장치들에 대해선 이미 정한석이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정교하게 분석한 바 있다(688호). 그리고 나는 그 다음에 <24시티>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적 성격에 대해서 썼다(689호). 둘을 모두 유사 다큐멘터리 혹은 조작적 다큐멘터리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
[전영객잔] 심금 울리지만, 껴안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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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의 감동적인 장면으로는 이런 것들이 포함될 것이다. 할아버지의 몸과 소의 몸을 보여주는 장면이 자주 교차한다. 마흔살의 소를 팔기로 한 날 밤 할머니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는데, 그때 소의 눈에도 물이 맺혀 있다. 그리고 때로 늙은 소는 젊은 소를 하염없이 쳐다본다. 이때 감동적인 건 우리가 이런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는 저렇게 친밀한 것이구나, 할머니가 슬피 우니 소도 따라 우는구나, 저 늙은 소가 젊은 소를 볼 때의 심정이란 참으로 처량 맞고 구슬픈 것이구나. 마흔살을 먹은 동물이다 보니 인간과 교감하는 영물이구나, 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럴까? 이 감동의 순간에는 영화의 작동방식이 개입해 있다. 그러니까 소가 감정을 드러낸 것일까, 소가 감정을 드러냈다고 영화적으로 믿게 된 것일까.
1920년대 소비에트의 영화감독 중 레프 쿨레쇼프는 당대의 유명한 모주힌이라는 배우를 등장시켜 실험을 한 가지 했다. 그것이 저
[정한석의 블랙박스] 소가 정말 슬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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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극장가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후 <벤자민 버튼>)는 주연배우에 대한 호감도, 스토리에 대한 공감도에서 꽤나 호의적인 반응을 얻는다. 이 영화는 잘 알려졌듯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주인공의 이름이 벤자민 버튼이고 늙은 몸으로 태어나 아이로 죽는다는 것, 친부가 버튼 공장 사장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이나 전개방식에서 원작과 영화는 매우 상이하다. 원작 자체는 벤자민 버튼이라는 인물을 통해 역사의 시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음을 냉소하는 짧은 비유에 가깝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서늘한 단편처럼 기이한 상상력을 보이며 냉담과 염인(厭人)의 감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원작에선 단지 ‘비유’일 뿐이었던 발상이 영화에선 그대로 현실이 되어 시계는 거꾸로 돌아간다. 짦은 단편은 2시간40분이 넘는 인생 드라마로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냉소와 염인은 사라지며 이해와 공감이
[영화읽기] 결국 매끄러운 감동 멜로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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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라 할 수 있을지도)
2주 전, 국내 영화 칼럼으로는 최초로 전회 칼럼의 줄거리를 요약한 뒤 그 뒤를 이어 쓰는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하였으나- 국내 최초 참 좋아한다- 독자는 줄거리 요약을 내가 한 게 아니라 편집부가 한 줄 알고, (나는 그냥 원고 적게 쓰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고) 함께 칼럼 쓰는 Y(나도 이렇게 불러야 하나)에게는 ‘요약하지 마라, 그러면 칼럼이 판타지가 된다’라는 쓴소리까지 들었으니, 이번엔 국내 영화 칼럼 최초로 ‘다음주 칼럼 예고편’을- 이건 진작에 누가 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시도해볼까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할 일이 없었던 1995년 무렵, 그토록 무섭던 청년실업의 시대에 (지난주 칼럼 참조) Y와 나는 영화 잡지사에 원서를 낸 적이 있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지금은 사라진) <키노>에, 21세기에 관심이 많았던 Y는 <씨네21>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Y는 과연 최종합격을 하였을까. 새로
[나의 친구 그의 영화] 농담은 빠지고 시간만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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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황인뢰 감독의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에서 반가운 얼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일지매(정일우)와 대마도에서 우연한 만남을 갖는 미야모토 무사시 역할로 황정리가 출연한 것. 오직 7회에만 카메오 출연했을 뿐이었지만 그 날카로운 눈빛만큼은 예전 그대로였다. 황정리는 홍콩 무술영화 팬들에게는 전설적인 존재다. <사형도수>(1978)와 <취권>(1978)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성룡을 끝까지 괴롭혔던 악당이 바로 그다. 화려한 발차기로 우리의 착한 성룡을 쉴새없이 공격하던 악당이 한국 사람임을 알았을 때의 그 황당함과 놀라움이란.
<남권북퇴>(1976)를 시작으로 <남북취권>(1979), <사망탑>(1980), <용지닌자>(1980), <부귀열차>(1986) 등에 출연하며 홍콩영화계를 뒤흔든 최고 용병이자 테크니션이었다. 직접 감독과 주연을 겸했던 <광동살무사>(1983) 외에 <해결사
[황정리] “더 늙기 전에 멋진 연기 보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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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이 느껴진다. 하얀 피부에 곱게 내려간 턱선, 부드러움을 해치지 않는 콧날과 작게 앙다문 입술. 모든 게 재앙으로 뒤덮이는 영화 <블레임: 인류멸망 2011>에서 단 레이는 혼자 돋보인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수천만명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그녀는 평정을 잃지 않는다. 용기와 망설임, 실패와 후회 사이에서 주저하는 쓰마부키 사토시를 감싸는 것도 그녀다. 부드럽고 동시에 당찬 인상. 단 레이는 다카라쓰가란 이름의 일본 여성 전용극단에서 10년 넘게 활동해온 배우다. 1990년 20살에 입단해 대배우 마코토 쓰바사의 상대역을 꿰차기까지 극단 안에서만 20편 넘는 가극을 완수했다. 그리고 2005년. 그녀는 ‘활동의 폭을 넓히겠다’는 마음으로 극단을 나왔다. 갑작스러운 탈퇴로 보였지만 야마다 요지 감독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무사의 체통>에 캐스팅했다.
절도와 기품이 배어 있는 단 레이는 야마다 감독의 시대극 속 헌신적인 여성으로 적합했다. 그녀는
[단 레이] 혼자 돋보이는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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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월 26일 목요일 오후 2시
장소 왕십리CGV
이 영화
크리스탈 호수 캠프장에는 전해지는 전설이 있다. 20년 전 호수에 한 아이가 익사했는데, 그 뒤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돌보지 못한 캠프의 조교들을 하나씩 죽여버렸다. 하지만 사실 아이는 죽지 않았고, 그런 엄마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오싹한 괴담이다. 그뒤 캠프장은 문을 닫았다. 20년 뒤, 크리스털 호수로 캠프족이 찾아온다. 그들은 캠프장의 전설은 믿지 않고 밤을 즐기지만, 그날 밤 복면을 쓴 괴물에게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6주 뒤, 실종된 동생을 찾으러 온 클레이는, 근처 별장에 놀러온 한 무리의 대학생들을 만난다.
100자평
<13일의 금요일> 리메이크는 오랜 시간 이 시리즈에 애정을 쏟아온 팬들을 위한 영화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특징적인 부분들을 섞으면서 제이슨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살려냈다. 가장 큰 매력은 80년대 유행했던 난도질 영화들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살려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제이슨이 돌아왔다 <13일의 금요일> 언론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