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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꿈을 자주 꾼다. 깨고 나서 이게 뭐야 싶을 만큼 엉망진창 뒤죽박죽 개꿈들. 그래도 재미있는 건 대개 아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입사 초기. 그날의 주인공은 당시엔 번뜩이는 안경조차 무서웠던 N 선배였다. 꿈속에서 그는 교사였다. 회초리, 출석부 등을 끼고 들어와서 교탁에 탁, 얹은 다음 약간 언짢은 얼굴로 수업을 진행했던 듯싶다. 그러다 긴장한 학생들을 노려보면서 질문을 던지는 순간, 나는 체통을 잃고 재빨리 손을 들면서 “저요! 저요!” 하고 말았다. 실수 연발 문제아 처지를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었을까, 라는 생각은 몇달이 지난 다음 벼락같이 찾아들었다.
평소 몇 마디 이상을 나눈 적이 없는 L 선배는 집들이에 반드시 와야 한다는 전언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모험을 감행하게 만들었고, P 선배는 퇴사 뒤에야 뜬금없이 아파트의 방 하나를 오갈 데 없는 나를 위해 비워주는 친절한 임대인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근래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은 이런 것이다. 햇볕이 잘
[오픈칼럼] 꿈과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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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곡의 <고갈>을 보고 이 영화가 과연 혁신적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영화의 보도자료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고갈>을 보고 영화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갈>은 영화가 아니다. <고갈>은 영화폭탄이다”라고 했다는 호평이 자랑스레 소개돼 있다. 뉴호라이즌영화제에서는 이 영화가 ‘관습에 대항하는 호러’라는 평이 있었다고도 전하고 있다. 마케팅 수사로 쓰이는 허풍보다 더한 이 상찬에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아울러 이 영화를 아름다운 충격 운운하며 ‘뷰티풀 호러’라고 선전하는 포스터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가 매우 관습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아무리 반어적인 의미라고 하더라도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쓰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전략이라고 본다.
군데군데 잔혹극의 이미지를 끼워넣은 구성
<씨네21> 기자 정한석은 이 영화가 새롭지 않다는 것을 다소 완곡한 표현으로 지적했다. “이야
[김영진의 점프 컷] 쇼크의 배열이 예측 가능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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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해외영화제에 거의 30군데 정도 초청을 받았는데 바쁜 와중에도 10군데 이상 참석했던 것 같다. 유럽으로는 런던영화제와 도빌아시아영화제를 갔는데 도빌에서는 대상인 에르메스상도 받고 나는 남우주연상도 받았다. 정말 기뻤다. 미국으로는 샌프란시스코영화제, 팜스프링스영화제 등을 갔는데 공교롭게도 선댄스영화제를 못 갔다. 그런데 2000년 선댄스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난리가 났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당시 나에게는 일정 부분 교만한 마음도 있었음을 인정해야겠다. 배우로서 큰 고민에 부딪힌 것이, 과거의 사회파 영화를 비롯해 코미디와 액션 등 나름 다양한 영화들을 해서 ‘이제 뭘 해야 하나’ 답답해진 거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좋은 작품 하면 되는 건데…. 그러던 와중에 심광진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사람이 참 순진하면서도 대단한 게, 내가 일본에 가기 전 <불후의 명작>을
[박중훈 스토리 18] 이렇게 화려한데 완전히 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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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다시는 영화 안 봐 , ㅆㅆ(욕). 울고 싶지 않았는데 울었잖아. ㅆㅆ(역시 욕).”
<애자>를 보고 사람들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대낮, 극장에 올 수 있었던 하릴없어 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젊은 남자들 세명이 나누는 말이다.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영화를 두고 최루물이라고 한다. <애자>가 그렇다. 험담이 아니다. 관객의 신체적 특정 반응을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극장 안은 이미 눈물바다였다.
최영희(김영애)와 박애자(최강희)는 모녀다. 부산내기들이다. 부산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투리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감정이 오가는 방식 때문이다. <친구> 이후 <애자>라고나 할까?
생기있는 악다구니가 최고의 장점
최루물이라고 하나 이 영화의 장점은 생기있는 악다구니다. 영희는 동물병원 수의사이고 애자는 하늘이 내린 문장력의 소유자다. 시장통의 아줌마도 아닌 여자들의 입담이 대단하다. 영화는 살짝 현실적이기도 하
[전영객잔] 죽을 때에야 얻어지는 행복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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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태원 살인사건>은 여러 단점이 눈에 띄는 영화다. 범인을 찾는 과정의 퍼즐식의 장르적 공식을 포기했다는 점이나 둘 중 하나인 범인을 확증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데 머문다는 점, 그리고 곳곳에서 다소 투박한 연출이 엿보인다는 점 등은 ‘보는 이에 따라’ 무시할 수 없는 영화의 결점일 수 있다. 장르적인 구성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대중적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비판을 제외한다면 나 역시도 그러한 지적에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이태원 살인사건>은 그러한 단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미덕을 갖춘 작품이기도 하다. 극장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 미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거두절미하고 사건만 파고들다
영화는 그 시작과 함께 변기에서 소변을 보는 한 청년에게 다가가는 누군가의 시점숏을 보여준다. 그 시선의 주체로 가정된 자는 갑작스럽게 청년의 목을 칼로 찌르고 피해자는 화장실 구석에 쓰러져 피를 토한다. 홍기선 감독은 피해자의 피를
[영화읽기] 진실의 담지자를 찾는 지난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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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많은 친구를 둔 덕분이겠지만, 어쨌든 지난번에 김군이 그린 것처럼 내 인생의 그래프를 그린다면 노예들이 벽돌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바벨탑의 길과 비슷한 모양이 될 것 같다(김군처럼 직접 그려주는 상냥함을 발휘하면 좋겠으나, 난 원래 말로 떠들어대는 걸 더 선호한다). 예를 들면 한 바퀴를 돌고 나면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자리는 예전에 내가 서 있던 자리보다는 조금 더 위쪽에 있게 되는 그런 길 말이다. 김군이 (아마도 원고 분량을 줄일 속셈으로, 게다가 엉성하게) 그린 그래프의 선들처럼 인생이라는 게 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데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살아보니까 그건 나선형에 가까운 진행이다. 말하자면 ‘좋았다가 무덤덤, 나빴다가 무덤덤’의 무한반복. 그러니까 그래프가 상한선을 치고 고공행진을 계속하거나, 영원히 하한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뜻이다.
이건 지난 15년 동안 어떻게 하면 소설을 더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도달하게 된 결론이기도 하다. 핵
[나의 친구 그의 영화] 단정하는 건 단정치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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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3부작’(<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로드>로 유명한 매카시의 대표작이다. 사막을 무대로 한 묵시록적 서부 소설 연작이다. 서부물이라고 해서 악과 싸워 이기는 선이 존재한다거나, 스릴 넘치는 총격전이 주를 이룬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을 처음 읽었던 때, 일주일가량 앓은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막과 소년들과 언제나 ‘저편’만이 존재하는 국경이 등장하는 악몽에 가까운 꿈이 밤마다 찾아왔다.
‘국경 3부작’은 앞 두권의 이야기가 마지막 <평원의 도시들>에서 대단원을 맞는 구성이다. 그러니 세권을 차례로 읽는 게 가장 좋겠지만 세권을 벼르다 한권도 읽지 않을 가능성을 대비해 한권을 추천한다면 두 번째 책인 <국경을 넘어>가 좋을 것 같다. 소년은 부모와 살던 농장에 출몰하던 늑대에 매혹된다. 소년은 어
[도서] 서부에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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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52년 4월5일 토요일 밤 9시가 조금 지나서 OOOOO를 죽였다. 그날은 햇살이 화사하고 상쾌한 봄날로, 이제 여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만큼 따뜻했고, 밤에도 적당히 쌀쌀했다.” 짐 톰슨이 1952년에 발표한 하드보일드 범죄소설 <내 안의 살인마>를 보면 이런 아이로니컬한 문장 배치가 종종 나온다. 살인을 고백한 뒤, 바로 날씨에 대한 서정적인 설명이 따라붙을 수 있다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본래 인간의 마음이 가장 무섭고 알 수 없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살인에의 충동을 ‘병’이라 지칭하는 주인공 ‘루 포드’는, 차근차근 자신의 살인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들려준다. 때론 가전제품 매뉴얼을 읽어주듯 담백하게, 때론 결말을 채근하는 독자들을 다독이면서.
이 소설은 알게 모르게 TV시리즈 <덱스터>나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에 영향을 줬을 거라 생각될 정도로, 1인칭 범죄소설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루 포
[여름에 읽는 장르소설] 나의 살인 과정을 한번 들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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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간은 완전히 상실되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사람들은 그 점을 알면서도 잃어버린 삶의 지점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추억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관통하는 주제다. 이 책은 국적과 시공간이 제각각인 아홉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지만, 상황과 인물을 거대한 상실감이 압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의 외국 여성은 세상을 떠난 연인의 나라 한국에서 상실감을 극복하려 하고, 물고문을 하다가 한 대학생을 죽게 만든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전직 대공과 형사는 그 학생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날것의 고통을 갈망했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고3 여학생은 자신이 안락함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지금 막 무엇을 잃어버리려는 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상실보다 중요한 건 상실 그 이후의 삶이다. ‘지금, 여기’에 남은 사람들은 가슴에 묻거나 책임을 지거나, 혹
[도서]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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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축물을 돌아볼 때면 가장 인상적인 공간 중 하나가 계단이다. 계단을 통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뒤로 공간이 펼쳐지는데, 가파른 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며 새로운 공간과 만날 때는 건물의 육체성을 몸으로 실감하게 되곤 한다. 종교적인 건축물의 경우 높지 않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계단에 집중해 발을 옮기다 보면 계단이 사색과 깨달음의 도구구나 싶어진다.
<계단, 문명을 오르다>는 생활에 밀접하지만 막연하게만 인지되었던, 혹은 불편함으로만 존재를 인정받았던 계단의 인문사회학적 의미를 캔다. 의도와 관계없이 생겨난 ‘변형된 대지 계단’(등산로를 생각하면 된다)이 가장 기초적인 형태였고, 고대 종교에서 계단은 하늘로 오르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쭉 뻗은 곧은 계단이 하늘을 향해 긴 거리를 수직으로 거침없이 뻗어 올라가는 장면은 그 자체가 종교적 아이콘이었다. 이런 장면은 곧 정치적 권위와도 직결되어서, 고대 문명에서 정치 지도자에게 곧은 계단을 갖는 수직 구조물은 필수 조
[도서] 계단에 무슨 비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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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이라 죄송해요 ★★★★★
구할 수 있다면 모노를 추천 ★★★★★
비틀스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부정할 필요도, 굳이 온갖 자료를 들먹여 ‘신화’에 힘을 보탤 이유도 없다. 모두가 그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온 인류가 입을 모아 비틀스를 칭송하는 덴 다 이유가 있다. 1963년에 첫 앨범을 발표한 청년들은 20세기 내내 대단했고 그중 몇이 세상을 떠난 21세기에도 대단하다. 물론 비틀스 신화는 1960년대 제1세계의 정치·문화·사회적 격변기와 결합해 형성된 바가 크고, 원곡을 어떤 형태로도 제공하지 않는 비틀스와 EMI의 사업적 태도와도 연관이 깊다. 비틀스는 영화나 드라마, 인터넷 어디서도 음원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김성수 감독의 <비트> 엔딩에 흐르던 <Yesterday>가 국제 논란으로 비화될 뻔했던 아련한 해프닝!) 오로지 음반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인터넷 어디서도 비틀스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이유다. 비틀스의 오리지널리티와 신화는 바로
[음반] ‘비틀스’ 하면 역시 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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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뜻이, 약간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천기의 흐름을 읽는 것으로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유지한다. 그런 미실을 백성들은 경외하고 두려워한다. 알고 보면 과학의 힘을 빌린 이 음모성 짙은 연극에 미술감독이 있다면 단연 미실의 동생 미생이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미생은 하늘의 뜻이 평범하게 알려지는 일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불상이 있다면 솟아올라야 하고, 우물이 있다면 그건 핏빛으로 물들어야 한다. 창의성과 지력을 사용해 하늘의 경고를 더욱 비극적이고 위험하게 포장하는 그의 역할은 예술가를 위시한 과학자다.
뛰어난 과학자는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명제는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산이다. 경험과 이론이 결합된 과학을 주장했던 다빈치에게 인체 해부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인물화나 자연의 이치에 따라 그려진 풍경화는 과학의 완성이나 다름없었다. “회화는 화가의 마음을 자연의 심성 그 자체로 전환시켜 화가를 자연과 미술 사이의
[아트 & 피플] 예술은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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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아트에 백남준이 있다면, 조각에는 이우환이 있다. 40년간 돌과 철판을 주 소재로 작업해온 이우환 작가는 일본 미술의 한 경향인 ‘모노하’의 창시자로 불린다. ‘모노하’(もの派)란 나무, 물, 점토, 철판 등의 소재를 있는 그대로 놓아둠으로써 사물과 공간 각자의 고유성과 관계성을 살피는 미술 장르를 뜻한다. 주요 소재인 돌과 철판을 예로 들면 돌의 자연성과 철판의 인위성이 한 작품 안에서 따로 또 같이 공존하는 것이 ‘모노하’적인 작품이다. 별다른 기교나 수식이 없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은 간결하고 소박해 보이는 동시에 자연과 인공의 소통과 교류라는 깊은 철학을 담고 있다. 이러한 작품의 특성은 동양 사람들이 추구하는 미덕이기도, 서양 사람들이 동양 미학에 기대하는 판타지이기도 하다. 때문에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프랑스 문화성으로부터 예술가 훈장을 수여받는 등 국제 무대에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작가임에도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이우
[전시] 돌, 철판을 만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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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의 음악적 자산은 헤비메탈이다. 그게 아니고선 문득문득 댄서블한 멜로디 속에 이빨을 드러내는 공격성을 납득하기 어렵다. 강렬하고 독창적이다.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여느 밴드들처럼 뮤즈가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에 깔려 질식하지 않은 이유다. ≪Black Holes&Revelations≫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간 뮤즈의 발자국이었다. 신작 ≪The Resistance≫도 그렇다. 전작의 인상적인 순간들, <Map Of The Problematique>나 <Knights Of Cydonia>를 이어받는다. <Uprising>이나 <Resistance>, <MK Ultra> 말이다. <Undisclosed Desires>나 <Guiding Light>, <I Belong To You>가 뜻밖의 서정을 드러내지만 앨범의 백미는 3부작으로 구성된 <Exogenesis: Sym
[음반] 뮤즈, 절대반지를 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