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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말, 방송사들이 굵직한 다큐멘터리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국내 CG기술의 진보와 이를 토대로 한 팩션 다큐의 가능성을 보여준 EBS <한반도의 공룡>을 시작으로, 매운맛의 전파로를 되짚는 문명 다큐인 MBC <스파이스 루트>가 길을 열었고, KBS <누들로드>가 국수로 세계 다큐시장을 석권하겠다고 나섰다. MBC가 1년 동안 공들인 초대형 다큐 <북극의 눈물>도 방송을 시작했다.
경제 한파로 그 어느 때보다 긴 겨울이 예고되는 방송가에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다큐멘터리는 ‘찬밥’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외부 투자와 해외 판매, 그리고 무엇보다 참신한 소재 접근과 탄탄한 만듦새를 무기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는 심정으로, 각 방송사들이 자존심을 걸고 내놓은 명품 다큐들을 ‘즐감’하시길.
국수로 동서양 문명사를 좇는 <누들로드>
지난해 KBS에서 방영한
투자할만한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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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최대 잡지이자 근대지성사의 보고였던 <개벽>에 대한 본격 연구서다. 글쓴이는 검열·출판과 유통·편집체계와 사상·문학 등 매체의 핵심영역을 훑으며 <개벽>의 문학잡지로서의 위상을 재조명한다. 이 책에 주목하는 데는 그 독특한 시각과 독법도 한몫한다. 매체가 단순한 시험관이 아니라 담론이나 문학을 창조하는 역동적인 실재였고, 따라서 <개벽>이라는 매체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발상(매체론적 시각)은 매체 연구의 현주소에 비추어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 본격 연구서이지만 어렵지 않고 누구나 궁금해할 질문을 던져 답을 내놓는다.
실증은 글쓴이의 강력한 무기이자 이 책의 또 하나의 덕목. “자료가 스스로 말하게 하라”라고 말하는 글쓴이는 <개벽>의 모든 부문을 바닥부터 헤집어 명증한 시계열적 통계와 분석을 내놓는다. 실증의 직접적 부산물인 <개벽> 관련 화보와 10개의 부록(<개벽> 총목차·<
문학잡지 <개벽>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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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이야기는 해부학 수업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감각을 꾹꾹 눌러쓰는 그의 이야기에는 추위와 배고픔, 사랑과 이별, 질병의 고통이 저릿하게 담겨 있다. 읽다보면 인간의 몸이 가진 냄새와 감촉뿐만 아니라 내장의 운동까지 경험한다. 에세이를 모아 엮은 <바다의 기별>에서도 해부학 수업은 계속된다.
‘바다의 기별’에서는 사랑하는 이의 체취가 정맥을 타고 흐르고, ‘광야를 달리는 말’에서는 아버지의 몸에 밴 술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가 하면 김지하 시인이 출감하던 어느 추운 겨울날, 교도소 앞을 지키던 고 박경리 선생의 모습에서는 꽁꽁 얼어붙은 발의 냉기가 느껴진다. 김훈의 몸을 향한 애정과 집착은 몸이 아닌 것들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화가 오치균이 손가락으로 그린 작품에서 친밀감을 느끼고, 태어난 곳이 아닌 지금 내 몸이 있는 곳을 고향이라고 부르며, 도심을 질주하는 소방차를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라고 적는다. 인간을 객관화시키는 세상에
당신에게 다가가는 인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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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있다. 소녀에게는 백혈병에 걸린 언니가 있다. 안나는 ‘맞춤아기’로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제대혈, 림프구, 골수를 언니 케이트에게 기증해왔다. 그리고 열세살이 된 안나는 합병증으로 신부전까지 걸린 언니를 위해 신장을 기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부모는 이제껏 그래왔듯이 “언니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거라며 안나에게 희생을 요구하지만, 많은 것을 포기해온 안나는 제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일인 동시에 가장 좋은 일이 될 언니의 죽음을 앞두고 부모를 상대로 의료해방 청구소송을 시작한다.
도발적인 주제를 다룬 <쌍둥이별>의 원제는 <My Sister’s Keeper>다. ‘내 언니를 지키는 사람’은 안나를 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나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의 이유가 되어준 케이트를 말하기도 한다. 소설은 한 가족이 매 순간 선택한 최선이 합법적이었는지 윤리적이었는지 잔인하지는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살 권리와 죽을 권리, 자율적으로 의료
맞춤아기, 소송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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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판타지 소설의 대명사라고 할 이영도 작가의 첫 작품 <드래곤 라자>가 출간 10주년을 맞아 양장본으로 선보인다. 그와 함께 이영도 작가가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 <그림자 자국>이 함께 출간되었는데, <드래곤 라자>와 <그림자 자국> 합본 박스 세트가 10여만원의 고가에도 예약접수 2분 만에 1천 세트 매진, 추가 판매된 1천 세트도 매진 행진을 기록해 화제가 됐다.
<그림자 자국>은 <드래곤 라자>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하지만 <드래곤 라자>에서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인간과 드래곤을 잇는 역할을 하던 드래곤 라자와 마법이 잊혀진 상태다. 엘프 이루릴은 거대한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바이서스의 한 예언자를 찾는데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극중 등장하는 그림자 지우개는 제목과 공명하는 흥미로운 무기인데, 상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 존재가 사라지면서 미래가 바뀌고, 그 미래의
한국 판타지 소설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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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전설을 지켜온 뮤지션이 지나친 과작이라면 팬의 입장에선 참으로 김빠지고 애간장 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밥 딜런의 팬이라면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스튜디오 앨범 32장, 라이브 앨범 13장, 컴필레이션 앨범 14장, 싱글앨범이 58장에 이르는 이 거장의 왕성한 창작력은 지칠 줄 모른다. 게다가 밥 딜런의 오피셜 부틀렉 시리즈까지 연달아 출시되는 중이다. 부틀렉은 ‘팬들이 공연 실황 등을 비공식적으로 녹음한 앨범’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오피셜 부틀렉’은 녹음까지 마쳤지만 결국 정규앨범에 실리지 못한 곡들, 기존 발표곡의 얼터너티브 테이크, 영화 O.S.T용으로 제공한 노래 등을 통틀어 일컫는다.
이번에 나온 《Tell Tale Signs: Rare And Unreleased 1989-2006》은 밥 딜런의 여덟 번째 오피셜 부틀렉 시리즈다. 말 그대로 1989년부터 2006년 사이 녹음된 희귀 음원과 미공개 곡들이 담겨 있다. 《Modern
밥 딜런의 여덟번째 부틀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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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남은 성냥에 모두 불을 붙였다. 다시는 배고프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어릴 적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며 가슴 저릿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찬바람이 살을 에는 저녁 거리, 성냥을 팔기 위해 서성이는 오갈 데 없는 작은 소녀.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비관적인 <성냥팔이 소녀>을 해피엔딩으로 각색한다면? 거기다 굶주린 소녀를 따스하게 위로할 사려 깊은 무용을 곁들인다면?
12월 말 정동극장에서 선보이는 <성냥팔이 소녀의 꿈>은 안데르센의 염세적인 세계관을 한 움큼 덜어내는 대신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탭댄스, 삼고무, 오고무 등 전통무용을 이용한 타악 퍼포먼스를 맛깔나게 곁들인 무용극이다. 지난해부터는 마술쇼도 도입했는데 누더기 옷이 드레스로 거듭나고, 빈 식탁이 순식간에 음식으로 가득 차는 장면들이 신데렐라의 변신 못지않게 화려하다. 어른이 보기에도 무리가 없지만 연말 특별한 이벤트를 바라는
해피엔딩 마술쇼 성냥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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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리메이크네, 라고 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21세기 한국 음악계를 먹여살리는 건 80, 90년대 선배 뮤지션들이니. 원곡이 낫네, 리메이크가 낫네 등 리메이크 앨범은 매번 같은 구설수를 반복해서 듣는다. 하지만 하모니카 마스터인 전제덕의 한국 가요 연주앨범 ≪Another Story-한국사람≫은 같은 말을 반복하기가 어색하다.
전제덕은 노래하는 가수는 아니지만, 그가 2년 만에 발표한 이 앨범에서는 육성이 묻어난다. 단지 하모니카가 들숨과 날숨을 이용하는 악기여서만은 아니다. <광화문 연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우울한 편지> <가시나무> 등의 연주는 대중에게 먹히는 편곡이 아닌, 자신의 감상을 그대로 눌러넣은 듯한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라틴재즈로 편곡한 나미의 <보이네>와 마치 즉흥연주를 하듯 진행되는 산울림의 <개구쟁이>에는 그의 신명이 담겨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곡은 고(故) 김현식의 음악을
육성이 묻어나는 하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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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늘 도회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최지우(33)가 잠깐이나마 극중에서 사극 연기를 펼친다. 그가 한복을 입고 사극 연기를 하는 것은 데뷔 14년 만에 처음이다.
최지우는 10일 첫선을 보이는 SBS TV '스타의 연인'에서 기생 차림으로 잠시 등장한다. 극중 배우 역을 맡은 그가 사극 촬영을 하는 장면에서다.
최근 중구 필동의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진행된 촬영에서 최지우는 매화가 그려진 병풍을 배경으로 한복 맵시를 뽐냈다.
최지우는 "짧은 시간의 촬영이라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사극에 처음 출연한 셈이니 소원을 풀었다"며 기뻐했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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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우 "'황진이'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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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독도를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감독 최현묵ㆍ제작 지오엔터테인먼트)가 31일 극장 개봉한다.독도 거주민 김성도 할아버지 부부와 그의 손자 가족,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펜팔을 통해 독도를 알리려는 초등학생, 해외에 독도를 알리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80대 할아버지, 사이버 외교 단체 반크(VANK) 등 평범한 사람들의 독도 사랑을 담은 영화다.독도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져 극장에 정식으로 걸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미안하다 독도야'는 지난해 여름부터 17개월의 제작기간을 거쳐 만들어졌으며 최근 후반작업을 마쳤다. 특히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게재했던 가수 김장훈이 내레이션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됐다.김장훈과 함께 광고를 실었던 한국홍보 전문가 서경덕씨가 기획 프로듀서로 나섰고 연출을 맡은 최현묵 감독은 '산책', '맨발의 기봉이' 등의 제작을 맡았던 프로듀서 출신이다.최근에는 광고 포스터가 영상물등급위원회
첫 독도 다큐영화 '미안하다 독도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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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투자ㆍ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의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43.1%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돼 독과점 현상이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10일 영화진흥위원회의 '2008년 1~11월 영화산업 통계'에 따르면 CJ엔터테인먼트는 올해 1~11월 모두 17편의 한국 영화를 배급했으며 이들 영화의 관객수는 전체 한국 영화 관객수의 43.1%에 달했다.한국영화의 배급 점유율에서 CJ엔터테인먼트의 점유율이 40% 를 넘은 것은 올해 처음이다. CJ엔터테인먼트의 관객 점유율은 2006년과 2007년 각각 34.5%와 36.2%였다.배급업계 2위 업체인 쇼박스는 2006년과 2007년 각각 31.1%와 26.6%의 점유율을 보였지만 올해는 19.5% 로 10% 대로 점유율이 떨어졌으며 2007년에는 15.1%였던 시네마서비스의 영화들은 올해부터 CJ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하고 있다.이는 외국 영화를 제외한 한국 영화만을 포함한 수치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모두를 아우르는 배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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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포뇨>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녹슬지 않는 신공을 기다려왔다. 결과는 예상 밖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어느 전작보다 맑고 쉬운 동심의 영화를 만들었다. 백발이 성성한 피터팬이 세상을 꿈꾸는 방식. 다섯살짜리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니! <벼랑 위의 포뇨>는 그럼 어떤 영화일까. 확실한 것 한 가지. 올 겨울 당신의 아이에게 이걸 보여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쁜 부모다.
“소년과 소녀, 사랑과 책임, 바다와 생명 이러한 자연의 것들을 서슴없이 그려내어 이 시대의 신경증과 불안에 맞서나가고자 한다.”-미야자키 하야오
실없는 퀴즈를 한번 내보는 것도 괜찮겠다. 최근 애니메이션 중 가장 귀여웠던 물고기 주인공을 대시오. 누구는 <니모를 찾아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럴 만하고 재미있었다. 니모가 변기를 통해 바다로 빠져나간 것이 기억에 깊이 남았던지
<벼랑 위의 포뇨> 다섯살 동심으로 바다를 색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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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는 매력적이다. 진시황과 알렉산더 등 수많은 영웅호걸이 염원하던 불사의 존재이며, 인간보다 월등하게 빠르고 힘이 세다. 타인을 조종할 수도 있고, 간혹은 다른 존재로 변신할 수도 있다. 피를 빤다는 행위 자체도 그리 혐오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피를 빠는 행위는 곧 생명의 근원을 마시는 것이고, 타인에 대한 정복과 지배의 의미를 지닌다. 연인이나 의형제를 맺는 이들이 서로의 피를 먹거나 합치는 행위는, 둘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생명을 보호하고 뻗어나간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 뱀파이어 전설이 전세계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뱀파이어 전설은 트란실바니아, 불가리아, 모라비아 등 동구권에 많았고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멕시코와 로키산맥의 인디언들에게도 전해진다. 외계에서 온 뱀파이어가 나오는 토브 후퍼의 <뱀파이어>나 고대 마야문명의 유적이 뱀파이어의 소굴로 쓰이는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의 <황혼에서 새벽까지> 등에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뱀파
<드라큘라>에서 <트루 블러드>까지, 뱀파이어물의 장르적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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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게 훌륭한 외모”로 묘사된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 컬렌은 뱀파이어이면서도 사람의 피를 빨지 않는다. 놀라운 의지와 절제력으로 인간의 피를 먹고자 하는 욕망을 견뎌낸다. 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그래서 시시때때로 자신의 의지를 시험받게 되지만 그녀를 지켜주려는 마음은 끝까지 변치 않는다. 에드워드는 완벽하다. 사실 배우로서는 욕심나는 캐릭터지만 로버트 패틴슨도 고백했듯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럽다”. 잘 입으면 승승가도를 달리게 해줄 날개옷이 될 테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돌아올 비난의 화살은 몇배 더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패틴슨은 해냈다. 영화 <트와일라잇> 개봉 이후 소녀팬들은 그에게 기꺼이 자신의 목덜미를 바치겠다고 줄을 서고 있기 때문이다.
패틴슨은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다. 숨겨진 매력을 발견해내는 재미가 더 많은, 불완전해서 개성있는 외모를 지녔다. 그의 얼굴에서 가장 먼
<트와일라잇> 에드워드 역 로버트 패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