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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어느 유명한 평론가로부터 영화를 한편 만들어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어느 지역 영화제에 ‘관객이 만드는 영화’라는 코너가 마련됐는데, 그 프로그램을 위해 5분짜리 영화를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워낙 시간이 없어 “올해는 곤란하고 내년에 하겠다”며 고사를 했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영화제 자체가 흐지부지되어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덕분에 다행히 민망한 작품을 내놓았다가 공개망신을 당하는 봉변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제안을 받고 한동안은 정말 다음해에 무슨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때 생각했던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영구기관(perpetuum mobile)에 관한 영화였다. 어디서 들은 얘기인데, 지금도 특허청에는 거의 매일 영구기관을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출한 서류가 올라온다고 한다. 나름대로는 필생의 업적이라고 내놓는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모두 실현이나 작동이 불가능한 기계들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영구기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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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읽은 책을 다시 읽게 되는 일이 있다. 다시 읽어보니 구석구석까지 기억하고 있어서 놀랄 때도 있고, 완전히 다른 책이라 놀랄 때도 있다. 후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학 2학년 때, 전공필수과목 독해 시험범위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앞 1/3이었다. 초등학생 때 읽은 게 다인데다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해서 필기의 여왕인 친구의 책을 빌려다 복사를 해서 첫장부터 해석해가며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었을 때 그 책의 주제는 “어른들은 몰라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이게 웬걸. 어린왕자가 우울한 날 작은 별에서 의자 위치를 옮겨가며 몇번이고 몇번이고 해지는 모습을 봤다는 대목에서 빠져들기 시작해 필기된 부분까지 다 읽었는데 시험이고 나발이고 <어린왕자>를 당장 끝까지 읽지 않고는 도저히 못살겠다는 생각이 날 좀먹기 시작했다. 벌떡 일어나 학교 구내서점에 가 <어린왕자> 번역본을 사서 마저 읽었다. 어린왕자가 떠나는(절대 죽는 거 아
[오픈칼럼] <씨네21>과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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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고의 아버지는 무정부주의 운동가였다. 아버지의 ‘명성’ 때문에 장 비고는 늘 어딘가로 도주하는 삶을 살았다. 결국 아버지는 체포된 뒤 감옥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는데, 어린 비고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아버지를 잃은 비고는 기숙학교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 홀로 자랐고, 그때의 경험을 <품행제로>(1933)로 남겼다. 여기엔 통제에 반발하는 아동들의 반항기가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품행제로>가 비고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면, 그의 대표작 <라탈랑트>(1934)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 제도에 포섭되지 않으려는 영원한 자유주의자 아버지의 초상이 암시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무정부주의자 아버지의 초상
영화는 센강을 오가는 화물선 ‘라탈랑트’호의 선장 장(장 다스테)과 그의 신부 줄리엣(디타 파롤로)의 선상에서의 신혼생활을 그린다. 이들의 결혼으로 시작하여, 오해에 따른 갈등, 그리고 재결합이라는 고전
[걸작 오디세이] 인상주의, 초현실주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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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부터 제가 쓰는 글을 반어법적 농담이나 야유로 이해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거부합니다.)
처음엔 전 박재정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너는 내 운명>이 시작되었을 무렵 그의 ‘발연기’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KBS1의 오후 8시30분 일일연속극에서 허우대 멀쩡한 젊은 남자 배우가 발연기를 선보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그게 일종의 의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야 진짜 주인공인 여자배우가 더 살지요. 괜히 그 자리에 신인을 쓰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몇 개월 지나다 보니 소문의 종류가 다릅니다. 인터넷이 움짤과 플짤이 하나둘씩 올라오고 그에게는 발호세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궁금해진 저는 인터넷 소스들을 하나씩 챙겨봅니다. 그리고, 네, 고백하겠습니다. 전 그 발호세(또는 호세 레저)의 연기에 매혹되었습니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익숙해져있던 KBS 일일연속극 발연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박재정의 연기는 그냥 나쁜
[듀나의 배우스케치] 박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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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전세계를 통틀어 3500개쯤 만들어진 전쟁영화들은 실제로 전쟁 중 있었을 법한 갖가지 인간 존재방식들을 보여준다. 전쟁이 터지기만 바라는 무기상(이른바 ‘죽음의 상인’), 전선의 참호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질려 머리를 감싸는 앳된 병사, “무조건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사령관 등 여러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이스라엘 출신 영화감독인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2008)이 보여주는 인간 군상은 40대 중년의 사내들, 그리고 바로 그들이 기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20여년을 거슬러간 20살 안팎의 병사들이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정을 다룬 이 영화는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벌어졌던 학살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류사의 부끄러운 기록 가운데 하나인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1982년 9월16일)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과 관련이 깊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전 이스라엘 총리)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영화읽기] 좌우갈등 속 모호해진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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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450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한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가 티켓 1장으로 관객 2명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파격 이벤트를 펼친다.직배사 UPI코리아는 27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전국 100여개 상영관에서 이 영화에 대해 2명이 1장의 티켓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특별 감사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27일 전했다.UPI는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재관람의 기회를 주고,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이벤트를 마련했다"고 말했다.9월 3일 개봉한 '맘마미아!'는 개봉 이후 7주 동안 박스오피스 3위 권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후에도 재관람 열풍이 불며 꾸준한 흥행세를 보인 끝에 '쿵푸팬더'(관객수 467만명)에 이어 올해 외화 흥행순위 2위에 올라 있다.직배사는 이번 이벤트로 '맘마미아!'가 조만간 '쿵푸팬더'를 누르고 올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외화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한국 영화와 외화를 통틀
'맘마미아!' 표 1장으로 2명 관람 '파격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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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OCN은 28일 오전 9시부터 '여사부일체 몰아보기' 특집을 통해 '여사부일체' 8부 전편을 앙코르 방송한다.
'두사부일체' 시리즈의 여성판 TV버전인 '여사부일체'는 조직 보스의 문제아 딸을 무사히 졸업시키라는 명을 받은 여자 조폭 3인방이 여자 고등학교에 학생으로 위장 잠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박예진, 정시아, 김미려, 박상면 등이 출연했다.
지난 9월19일 첫회에서 순간 시청률이 5.14%까지 치솟으며 관심을 모은 '여사부일체'는 매회 평균 2%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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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 '여사부일체' 전편 29일 앙코르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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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여균동 감독의 액션 사극 '1724 기방난동사건'은 반듯한 이미지의 두 남자 배우가 독특한 캐릭터로 변신을 시도해 색다르다.영화 '태풍', 드라마 '에어시티' 등에서 정의롭고 남자다운 정보요원을 연기한 이정재(35)는 실없이 껄렁대는 뒷골목 한량 천둥을 연기했다. 눈빛과 말투, 행동에서 그는 후반부에는 복수심으로 투지를 불사르는 모습까지 소화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선보였다.반면 드라마 '홍길동', '토마토'로 깔끔하고 의로운 이미지를 선보였던 김석훈(36)은 야망으로 가득찬 만득을 연기하면서 기이한 차림에 코믹하면서도 소름끼치는 말투를 사용했다.이정재는 최근 인터뷰에서 만득 역을 맡았다면 어땠을지 묻는 말에 "아무래도 김석훈만큼은 못했을 것"이라고 답하면서 김석훈의 연기 변신을 칭찬했다."천둥은 욕망도, 사랑도 모르다가 점점 깨달아 가는 인물이고 만득은 물욕과 야망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예요. 제게 만득 역이 주어졌으면 또 다
이정재 "악역 김석훈 만큼 못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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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영화 '비스티 보이즈', '이리'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윤진서(25)가 디지털 싱글곡 'L'amourse'를 내놨다.
28일 음반기획사 락스미스바이쇼쇼타입에 따르면 윤진서는 이 곡을 프로듀서 진바이진(Jin by Jin)과 함께 작업했으며 직접 작사도 맡았다.
윤진서는 가사를 통해 "사랑은 믿으면 보이고, 믿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았으며 불어 실력도 동시에 선보였다.
윤진서는 이 곡을 시작으로 '사랑에 대한 5부작'이라는 콘셉트로 다섯 곡짜리 미니앨범을 작업해 내년 2월 발매할 계획이며 전 곡의 노래와 함께 가사와 뮤직비디오 연출도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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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진서, 디지털 싱글곡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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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새 학기 첫날인 3월2일, 신광여고 미술교사 송기복씨는 교장실로 불려갔다. 그곳에 있던 안기부 직원들은 조사할 것이 있다면서 송씨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송씨의 지옥문은 그때부터 열렸다. 송씨는 이로부터 116일 뒤까지 안기부 조사실에 불법구금된 채 온갖 고문과 협박, 그리고 성적 모욕을 당했다. 그리고 안기부는 9월10일 송기복씨가 포함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북한에 체류 중인 송창섭을 정점으로 한 간첩단 29명이 아내 한경희와 딸 송기복, 아들 송기홍, 송기수씨 등 모두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송창섭을 제외한 이들 28명은 지난해 10월24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 의해 이 사건이 날조된 간첩조작사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간첩이라는 멍에를 쓴 채 사반세기를 버텨야 했다.
이 사건으로 송씨 집안은 한마디로 풍비박산났다. 이들은 고문에 못 이겨 서로의 혐의를 입증하는 거짓증언을 해야 했기에 형기를 마친
[영화화 추천 역사 속 인물]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가 추천하는 송기복·송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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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길지 않은 박헌영(1900~55)의 인생은 정말이지 파란만장했다. 그는 경성고보를 졸업하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뒤 일본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22년 공산당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두 차례의 체포 뒤 28년 또다시 러시아로 탈출한다. 32년 상하이로 건너가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조선으로 압송된 그는 출소한 뒤 남한에서 본격적인 공산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8·15 해방 이후 해외파 공산주의자들을 자신의 깃발 아래 장악했고, 공산당이 불법화되자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 정권에 가담한다. 그리고 그는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김일성 등에 의해 미국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아 55년 처형당했다.
극적이었던 것은 ‘공식’ 활동만이 아니다. 첫 아내 주세죽이 그가 죽은 줄 알고 동지였던 김단야와 결혼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주세죽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비비안나와 남한에서 만난 다른 부인
[영화화 추천 역사 속 인물] 성균관대 교수 임경석이 추천하는 박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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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9월 스웨덴 스톡홀름 기차역에 조선의 여인 한명이 비장하게 서 있었다. 스물한살 최영숙(1906~32), 스웨덴을 찾은 첫 번째 조선인. 이화학당을 마친 최영숙은 말하자면 ‘마르크스 걸’이었다.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폭넓게 실현하려던 그녀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회운동가 엘렌 케이의 나라 스웨덴으로 무작정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스웨덴어는 가서 배웠다. 그러나 5년 만에 스톡홀름 대학 경제학사를 취득하고 그 사이 황태자 도서관 연구 보조원으로 근무할 정도로 뛰어난 학업 능력을 보였다. 숱한 스웨덴 남자들의 구애에도 자신은 조선으로 돌아가 큰일을 해야 하므로 당신의 연애를 받아줄 수 없다고 뿌리쳤다 한다. 아시아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구스타프 아돌프 황태자의 정중한 만류에도 그녀는 1931년 11월 귀국했다.
그런데 혼자 온 것이 아니라 둘이 되어 왔다. 최영숙은 귀국길에 들른 20여개국의 여행지 중 마지막인 인도에서 미스터 로라는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의
[영화화 추천 역사 속 인물]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전봉관이 추천하는 최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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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1865~1945)는 구한말과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전후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포레스트 검프 같은 존재다. 16살 때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개화 사상에 젖은 그는 그곳에서 익힌 영어 실력으로 1883년 초대 주한 미국공사 푸트 장군의 통역관이 된다. ‘조선 최초의 영어통역’이었던 그는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의 움직임을 눈앞에서 접하며 국제정치에 눈을 떴다. 하지만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개화파로 지목된 그는 이듬해 피신차 상하이로 건너가 다시 유학생활을 한다. 이어 1888년에는 미국에서 신학 교육을 받으면서 동서양의 근대문물을 익혔던 그는 갑오개혁이 일어난 뒤인 1895년 귀국해 독립협회를 주도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애국계몽운동을 펼쳤으며 대한자강회를 이끌었고, 1916년에는 YMCA 총무, 1930년에는 YMCA 연합회 회장을 맡는 등 기독교계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하지만 <애국가>의 작사자로 알려졌고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영화화 추천 역사 속 인물] 오슬로국립대 교수 박노자가 추천하는 윤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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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1786~1856). 주로 추사나 완당이라는 호로 많이 불린다. 조선 후기 최고의 명필가라는 극찬을 받을 만큼 서예로 널리 알려졌고 그 밖에 시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한편으로 금석학, 고증학, 불교학 등 당대 학문 연구에서도 남다른 연구 성과를 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생전에 자신의 저술서들을 두 차례나 불태워버려 지금 남은 건 대부분 그의 서신들뿐이라고 한다. 김정희는 예술가였지만 동시에 관료였다. 34살에 과거에 급제한 뒤 정계에서 크고 작은 벼슬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말년에는 당쟁에 휘말리며 기나긴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김정희에 관련된 몇 가지 전설이 있는데, 어머니의 뱃속에서 24개월 동안이나 있었다거나 그가 태어나자 집 주변의 산천이 갑자기 생기를 찾았다거나 하는 출생 전설. 또는 그가 여섯살 때 입춘대길이라 써서 대문에 붙인 글씨를 보고 당대의 지식인 박제가가 스스로 이 아이의 스승이 되겠다고 자청했다거나 당시 영의정이었던 체제공이 지나다 이걸
[영화화 추천 역사 속 인물] 소설가 심윤경이 추천하는 김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