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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무라 겐키 감독은 제작자로서 무척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한다. 실사영화로는 나카시마 데쓰야의 <고백>, 이상일의 <분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등을 제작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들과 꾸준히 협업하며 다수의 흥행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괴물의 아이><용과 주근깨 공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날씨의 아이><스즈메의 문단속>등이 대표작이다. 게다가 일본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나 영화로 연출한 <백화><8번 출구>등을 소설로 집필하며 작가로서의 경력도 쌓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일본의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뚜렷한 궤적을 남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장편 연출작 <8번 출구>역시 칸영화제에 게임 원작 실사영화 최초로 초청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터뷰] 매체를 넘나드는 창작의 영감, <8번 출구> 가와무라 겐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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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즉시 되돌아갈 것. 이상 현상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것.” <8번 출구>의 세계관은 아주 간단하다. 동명의 인디 게임이 설정했던 규칙을 고스란히 따왔다. 평범해 보이던 지하철역의 통로로 진입하면, 어느 순간 비현실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백색 형광등으로 밝힌 이 통로는 앞으로 가도 가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무한루프’의 밀실이다. 그 많던 역내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고, 무한히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걷는 남자’(고치 야마토)만이 존재한다. 무한루프에 갇힌 이는 통로 내의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서두에 명시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규칙을 지키는 데 계속 성공하면 0번 출구, 1번 출구, 2번 출구에 이어 8번 출구까지 당도하고, 비로소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중간에 한번이라도 규칙을 어길 시 0번 출구부터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영화의 주인공 ‘헤매는 남자’(니노미야 가즈나리)는 평소와 다를 것 없던 출근길 오전, 이 무한루프의 지
[특집] 이상 현상은 우리의 일상에, <8번 출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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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원작 영화가 실패한다는 속설도 이젠 옛말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 대형 게임 프랜차이즈의 영화화는 흥행과 비평적으로 대개 실패했다. 하지만 2020년대 이후 <수퍼 소닉>시리즈, <언차티드><프레디의 피자가게>등이 흥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대성공(역대 애니메이션 영화 중 극장 흥행 2위)으로 지금은 게임 원작 영화가 대거 제작되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과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2025년에 국내에 개봉했거나 개봉예정인 게임 원작 영화만 해도 <마인크래프트 무비><보더랜드><언틸 던: 무한루프 데스게임><8번 출구>등 4편이다.
미디어 소비 환경의 변화,즉각적 리액션을 중심으로
게임 원작 영화의 제작에 가장 열성적인 스튜디오는 소니픽처스와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이다.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은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산하에 있는 세컨드 파
[특집] 밀레니얼의 문화 코드를 노려라, 게임 원작 영화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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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인디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8번 출구>가 10월22일 개봉한다. <8번 출구>는 게임을 원작으로 만든 실사영화 중 최초로 칸영화제(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된 작품이다. 1990년대부터 ‘게임 원작 영화는 잘 안된다’라는 소문이 극장가를 돌고 돌았으나, 이제는 정말 분위기가 바뀌었다.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겨울왕국>을 제치며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2위를 차지한 일이 가시적인 변곡점이었다. 이후 게임 원작 영화는 <마리오><포켓몬스터>시리즈 등의 메가 IP를 비롯해 다양한 인디 게임까지 섭렵하며 제작의 규모와 범주를 한껏 키우고 있다. <8번 출구>역시 간소한 설정과 구조를 지닌 1인 개발 게임이지만 성공적인 영화화 사례로 평가받는 중이다. 이에 <씨네21>은 밀레니얼의 문화 코드를 중심으로 작금의 게임 원작 영화 시장을 분석한 박동수 영화평론가의 글에
[특집] 게임과 영화, 이제 정말 친해졌나? - 게임 원작 영화 시장의 현황, <8번 출구> 리뷰와 가와무라 겐키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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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후회, 비탄이 깃들었다. 그러나 잔인하지 않다. 영화 <빅 볼드 뷰티풀>이 타고난 성정을, 배우 콜린 패럴은 그리 요약했다. “인생이 잔인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이 이야기는 거기에 기대지 않고 빛으로 나아간다.” 그 발자국을 함께 찍은 배우 마고 로비가 전한 속내까지 여기에 옮긴다.
- <빅 볼드 뷰티풀>이 제시하는 은유적인 세계관의 첫인상은 어땠나.
마고 로비 스토리텔링을 위한 아름다운 장치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다소 아이러니했다. 보통 어떤 배역을 맡으면 그 캐릭터가 어린 시절에 쌓았을 기억들을 내가 직접 만들어내는 편이다. 그가 겪었을 경험을 상상해서 글로 써보고 그걸 좀더 확장한 다음, 인물의 과거가 시나리오에 드러난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준 건지 설명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과거의 이야기가 이미 시나리오에 다 들어가 있어서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웃음) ‘아, 이번에는 내가 사라의 어렸을 적 기억을
[인터뷰] 환상은 길 잃은 자를 위한 것, <빅 볼드 뷰티풀> 배우 콜린 패럴, 마고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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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의 영화 사이에 두편의 드라마가 있었다. <애프터 양>이후 Apple TV+ 시리즈 <파친코>, 디즈니+ 오리지널 <애콜라이트>일부 에피소드를 연출하며 “더 큰 규모의 장편영화에 필요한 감각을 익힌” 코고나다 감독은 <빅 볼드 뷰티풀>에 그 학습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사라진 시간, 사라질 기억을 스크린에 붙잡아두기 위해 프레임을 정돈해온 시네아스트는 이번에도 지난날로 향하는 문을 연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염두에 둔 상상력을 펼친 그는 설레어하며 한국 관객을 환영했다. “서구권 관객은 영화 속 환상의 작동법을 궁금해하는 반면 아시아 관객은 영화가 보여주는 마술 그 자체에 열려 있더라.” 한 차례의 화상 인터뷰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대면 인터뷰를 종합해 코고나다가 줄곧 견지한 ‘가능성’의 모험을 복기해본다.
- 직접 각본을 쓴 <콜럼버스><애프터 양>과 달리 <빅 볼드 뷰티풀>은 처음으로 타인이 쓴
[인터뷰] 무엇도 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을 재생시키지 못한다, <빅 볼드 뷰티풀> 코고나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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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으로 다시 보는 나. 내 몸으로 다시 서는 나. 내 마음이 다시 겪는 나. 오직 나만이 나로서, 몇번이고 거듭 살 수 있다. 어떤 후회와 환희를 내포한 이 부활은 무참히 관념적이지만 지극히 실제적이다. 그래서 코고나다 감독의 신작 <빅 볼드 뷰티풀>은 현재와 과거의 구분이 흐트러지는 지대 위에서 생생해진다. 그 이음새를 자처하는 건 문(門).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힐끗 드러나는 지도를 따라 운전하면 문 한짝이 나타나고, 그 문을 열면 어제의 그들이 오늘의 우리를 맞이한다. 이야기는 한 동네에 살던 데이비드(콜린 패럴)와 사라(마고 로비)가 같은 렌터카 업체에서 자동차를 빌려 같은 결혼식에 당도하는 것을 계기로 시동을 건다. 온전한 개인이 되지 못한 두 사람은 완벽한 타인 곁에서 자기 자신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 섹션 초청작으로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난 후 10월22일 정식 개봉하는 <빅 볼드 뷰티풀>은 묻는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기획] 사랑이 품은 가능성, 코고나다 감독, 배우 콜린 패럴, 마고 로비가 말하는 영화 <빅 볼드 뷰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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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스타급 감독들의 신작 AI영화 특별 영상 상영과 출연배우가 참석한 GV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콘퍼런스를 통해 채수응 감독은 <아파트: 리플리의 세계>를, 강윤성 감독은 국내 첫 AI 장편 <중간계>특별 영상을 최초 공개했다. 배우 김강우·송재희·조복래·문주연은 각각 채수응, 강윤성 감독과 함께 자신의 출연작에 대한 촬영 비하인드를 전하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아파트: 리플리의 세계> - 채수응 감독과 배우 송재희·조복래·문주연
관객의 선택으로 서사가 바뀌는 AI 기반 인터랙티브 영화 <아파트: 리플리의 세계>가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이머시브 경쟁부문에 초청된 데 이어 2025 SGAFF를 찾았다. <아파트: 리플리의 세계>는 2080년 기억 보존 시스템을 고안한 과학자를 중심으로 미제 살인사건을 추적한다. 채수응 감독은 “AI가 우리의 역할을 대체할까에 대한 고민이 들어갔다”며 "실시간으로 A
[기획] 궁금증을 묻고 답하는 콘퍼런스 지상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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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AI 융합 국제 영화제로 생성형 AI와 영화가 만나는 장을 도모한 2025 SGAFF의 대상작 네편을 소개한다. 필름·뮤직·K-브랜드 3개 부문에서 총 24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고 그중 4편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필름 콘텐츠 대상작 <시구문> 유형준, 전예린, 홍진욱
심사위원단으로부터 “AI의 장점을 살려 우리가 AI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질문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상인 과기부장관상을 수상한 <시구문>은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첨단영화제작교육 과정을 통해 제작한 AI 단편영화다. 병자호란 직후의 조선시대로 돌아간 이 작품은 원칙과 명분에 사로잡힌 사대부 헌택이 정체불명의 역병에 걸린 아들로 인해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을 그린다. 유형준, 전예린, 홍진욱 감독은 서울 광희문을 AI로 복원해 한때 광희문이 죽음의 문을 뜻했던 ‘시구문’으로 불렸던 까닭을 재해석했다. 묵시록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독특한 화면의 질
[기획] 필름·뮤직·K-브랜드 분야별 대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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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76개국에서 1400편이 넘는 작품이 출품된 제1회 2025 서울 국제 AI 필름 페스타(Seoul Global AI Film Festa, 이하 2025 SGAFF)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MBC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서울시가 공동주최한 2025 SGAFF는 9월30일부터 10월2일까지 서울 코엑스와 메가박스에서 사흘간 열렸다. 1980년대 프랑스 르망24 레이스를 AI로 재현한 개막작 <팬텀 드라이버>를 시작으로 좌담회, 콘퍼런스, GV 등이 열린 가운데 사전 진행된 ‘AI 영상 콘텐츠 공모전’ 출품작을 대상으로 총 1억5천만원 규모의 시상식도 이뤄졌다. 이는 전세계 AI 관련 영화제 중 가장 큰 규모다. 심사위원으로는 김준홍·김태용·장호기·맥닛(McNitt) 감독, 김태호 총괄 프로듀서, 김형석 작곡가, 박천휴 작가, 제영재 프로듀서, 배우 하지원, 샤론 리 디자이너 등이 함께했다. AI 콘텐츠의 잠재력을 알리는 네편의 대상작과 함께 강윤성·채수응 감독,
[기획]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위하여, 서울국제AI필름페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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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 시장에서 여유롭게 완승을 거둔 <보스>는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수 200만명을 돌파하며 극장가를 채웠다. 보스 임대수(이성민)의 죽음으로 차기 보스를 뽑아야 하는 조직 식구파. 하지만 그 전개가 수월하지만은 않다. 가장 유력한 후보 순태(조우진)는 중식당 미미루를 프랜차이즈로 키우고 싶어 하고, 원로 위원들의 신임을 받는 강표(정경호)는 어느새 탱고에 매료되어 새로운 삶을 꿈꾼다. 이 와중에 모두가 떠름해하는 판호(박지환)는 판도를 바꾸어 보스의 자리를 노린다. 과거의 명성과 명예로부터 멀어진 허름한 조직폭력배의 모습은 새로운 갈래의 코미디를 완성하기 충분하고, 각 인물의 개성과 취향에 맞춰 뒤늦게 진로를 모색하는 모습은 무척 현대적이기까지 하다. 보스가 되길 거부하는 조직원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라희찬 감독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유독 길었던 추석 연휴 동안 의미 있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열흘 만에 누적 관객수 200만명을 기록했다.
시
[인터뷰] 코미디는 관객의 예상을 비껴나가야 한다, <보스> 라희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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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씨네21상’은 손경수 감독의 첫 장편 <아코디언 도어>에 돌아갔다. 씨네21상은 <씨네21>이 후원하는 상으로 비전부문에 오른 한국 작품 중 독창성과 가능성을 두루 갖춘 1편에 주어진다. <아코디언 도어>의 비상함은 절박한 자기 탐색과 과감한 이미지 실험에서 온다. 중3 지수(문우진)는 9살 때 ‘재능’이 몸속에 들어온 뒤부터 글을 잘 쓰게 되지만 그것이 전학을 온 축구선수 현주(이재인)에게 옮겨가면서 격랑을 겪는다. 재능에 관한 고민은 현실과 환상의 공간을 오가며 확장하고 의외의 폭발, 과잉, 단절의 숏을 통과해 깊어진다. 건국대학교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손경수 감독이 창작자로서 겪은 성장통이 고스란히 스민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특별히 ‘재능’과 같은 디자인의 넥타이를 구해서 매고 왔다는 그는 영화처럼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이제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마지막 답변에서 그
[인터뷰] 슬픈 성장 끝에 발디딘 곳에는, <아코디언 도어> 손경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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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K컬처의 시대다. 한국의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향한 열광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K성형 역시 K컬처의 일부로 잘 알려져 있다. 긴 연휴가 시작되기 전 노르웨이와 중국, 일본 등에서 온 학생과 교수진을 대상으로 한국 성형의 ‘테크노컬처’를 주제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평소 K뷰티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얘기해준 중국 학생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강연 중에 최근 유행하는 피부미용 주사시술을 언급했는데 하필 연어 추출물이 주성분이라서 노르웨이에서 오신 분들이 흥미로워했던 것은 여느 때와 다른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이렇게 외국인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한국의 성형수술에 대한 내 연구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K성형을 신기한 구경거리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다행히(!) 그날 강연 후 받은 질문
[임소연의 클로징] K뷰티? K뷰티 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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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이주인(서수빈)은 인생을 120%로 사는 18살이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왁자지껄한 반나절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장혜진), 동생(이재희)과 도란도란 하루를 마무리한다. 태권도, 봉사활동, 공부, 무엇보다 연애까지 열심히 하느라 늘 분주한 주인을 얼어붙게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주인은 같은 반 수호(김정식)가 주도하는 서명운동을 납득할 수 없고, 책상 밑에서는 자꾸 익명의 쪽지가 발견된다. <우리들>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이 6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전작들보다 나이대를 높여 10대 후반을 주인공으로 한 <세계의 주인>은 그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 사회 전반까지 가닿는다. 중반 이후부터는 연출자가 자신이 품어온 세상에 대한 의문을 하나둘씩 건네면서 심도 있게 넓어진다. 고통이 사라지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사려 깊은 답변이 신뢰를 안긴다.
[리뷰]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세계의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