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의 첫해이자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던 2001년.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 경환(심현서)이 대구로 전학해온다. 취향을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 때문에 자신을 숨기던 경환에게 재민(현우석)이 마음을 열고, 두 소년은 그룹 글로브의 음악을 듣는 5분의 시간을 공유하며 가까워진다. 경환이 재민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후 이들은 새 국면을 맞는다. 영화는 인터넷과 MP3, 일본 노래를 매개로 서로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404 Still Remain’으로 사람과 장소는 사라져도 그때의 감정은 남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404 Not Found가 아닌 데서 오는 안도감, 그리고 5분처럼 짧았던 그 시절이 여전히 기억에서 재생된다는 위안의 메시지. 노래 한곡의 재생 시간만큼 5분 동안 펼쳐지는 결말의 힘이 크다.
[리뷰] 5분의 노래 5분의 엔딩 그리고 404 Still Remain, <너와 나의 5분>
-
“노래하는 선희, 그림 그리는 준상 그리고 시를 쓰는 지봄.” 무척이나 가뿐한 영화의 시놉시스처럼, <구름이하는말>은 정말 구름의 자유로운 모양새를 이야기로 치환한 듯한 작품이다. 부산에 있는 작은 카페 ‘매일이다르다’에선 곧 2인조 밴드 ‘현수와 선희’의 작은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이에 준상(이시오)은 공연의 포스터를 그리게 되고, 선희(배선희)는 노래를 준비한다. 이 과정에 청중으로 참여했던 지봄(이지봄)은 선희의 곡에 가사를 붙이게 된다. 재개발로 인해 정든 집을 떠나야 하는 지봄에게 이 일은 꽤 기분 좋은 전환의 계기가 된다. 이렇게 창작의 맥락과 협업으로 자연스레 얽혀가는 많은 이의 모습이 차근차근 포개어진다. 가까운 곳에 사는 이들이 서로의 옷깃을 스치며 살짝 만났다가 헤어지고, 각자의 일상을 사는 느슨한 군상극이다. 여기엔 지나치게 예술 작업을 지나치게 우상화하는 과잉의 터치도 없고, 감정의 골을 억지로 뽑아내려는 드라마타이즈의 압박도 없다. <구름이하
[리뷰] 구름의 테두리처럼 자유롭고 흐릿하게 뻗쳤다가, 모였다가, <구름이하는말>
-
테디(제시 플레먼스)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들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고 믿는다. 돌보는 벌집에서 일벌들이 떠나고, 엄마는 임상시험 부작용으로 수년간 입원해 있다. 직장 동료는 일하다 다치고도 보상은커녕 페널티를 받는다. 벌과 인간을 겹쳐보고 두종이 외계인 탓에 위기에 처했다고 믿은 테디는, 사촌동생 돈(에이든 델비스)과 함께 몸을 단련하고 이론을 학습하며 지구를 구할 계획을 세운다. 호일 슈트와 복면으로 무장한 두 사람은 외계인으로 의심되는 미셸(에마 스톤)을 납치해 지하실에 감금하고선 협상을 시도한다. 미셸은 테디가 근무하는 바이오기업, 벌집 군집붕괴현상의 주범으로 추정되는 살충제 제조사이자 엄마가 의식을 잃게 만든 바로 그 회사의 CEO다. 추궁하는 테디와 부정하는 미셸 사이에서 돈은 혼란스럽다.
알려져 있듯 <부고니아>는 장준환 감독의 2003년작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일단 본래 아이디어부터 란티모스의 언어로 재현되기에 적합했고,
[리뷰] 더는 가엾지 않은 자멸의 종에게, <부고니아>
-
재민(현우석)은 글로브의 <FACES PLACES>를 좋아한다. “Best of my life”을 되뇌는 노래 가사처럼, 그는 17살인 지금이 인생 최고의 날들로 기억되리라고 직감한다. 자신의 취향을 이해하고, 그 세계를 넓혀주는 전학생 경환(심현서)과 이어폰을 나눠 낄 때만큼은 전에 없던 평화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 <힘을 낼 시간> 등을 지나오며 위태로운 소년의 초상을 여러 번 덧칠해온 배우 현우석은 그 순간을 숙면에 빗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물도 이런 관계에서만큼은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차기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에서도 교복을 입는다는 그는 현우석의 소년이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물음에 엷은 미소로 말을 아꼈다.
- <아이를 위한 아이> <돌핀> <힘을 낼 시간>에서와 달리 <너와 나의 5분>에서 비로소 사사로운 학창 시절의 풍경
[인터뷰] 자극과 안정 사이의 순수, <너와 나의 5분> 배우 현우석
-
-
경환(심현서)은 글로브의 <DEPARTURES>를 좋아한다. “사진 속 두 사람”을 그리는 노래 가사처럼, 그는 전학 간 학교에서 어른이 되어도 바래지 않을 추억을 현상한다. 그 장면을 함께 채운 이는 우정 이상의 애착을 느끼게 하는 짝꿍 재민(현우석). 그래서 경환에게는 재민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쌓여간다.
거기에 먼저 귀 기울인 배우 심현서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데뷔해 단편 <유월>(2018)로 영화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적이 있다. 자유로이 춤추던 어린이는 사랑에 아파할 줄 아는 소년으로 자라 첫 장편영화 주연이라는 기회를 잡았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안다는 신예는 “성인이 되기 전에 이런 일을 경험할 줄 몰랐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 오랜 사랑을 받은 단편 <유월>의 주인공이 이렇게 자랐다니 반갑다. 작품이 얻은 호응을 기억하고 있나.
촬영할 당시에만 해도 내가 배우라는 의식이 별로 없었다. 영화
[인터뷰] 내 마음에 꽂아둔 책갈피들, <너와 나의 5분> 배우 심현서
-
<소년탐정 김전일> 대 <명탐정 코난>. <슬램덩크> 대 <드래곤볼>. <이누야샤> 대 <원피스>. 전자만 고르는 소년과 후자만 고르는 소년은 서로 맞는 게 하나도 없다며 투닥거리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다. 각 만화의 매력을 견주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서로밖에 없음을.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 <피터팬의 꿈>(2020)으로 주목받은 엄하늘 감독의 첫 장편 <너와 나의 5분>은 그런 간극을 파고든다. 평상시엔 흐릿하다가도 단숨에 선명해지는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건져내기 위해서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2001년 대구 수성구라는 배경도 아이들의 뒤를 받친다.
그 앞에 선 배우 심현서와 현우석은 촬영 전부터 사투리 수업을 들으며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들이 연기한 경환과 재민 또한 일본 가요를 매개로 친구가 되었다. 익숙한 말씨에서 벗어나며 거리를 좁힌 두 사람은
[커버] 소년들의 시간, <너와 나의 5분> 배우 심현서, 현우석
-
성우. 영화 <연의 편지><드래곤 길들이기><퇴마록><극장판 원피스 스탬피드>등 목소리 출연
<F1 더 무비>
주인공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를 보면서 내가 앞으로 따라가야 할 길, 내가 닮아가고 싶은 모습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슬램덩크>
한마디면 된다. 인생의 교본. (웃음) 내 유튜브 채널 <남도형의 블루클럽>에서도 <슬램덩크>를 입 아프게 찬양한 영상이 있다.
NC 다이노스
(인터뷰 일자 기준으로) 내일모레 시구 갈 예정이다. 야구에 진심이 된 지 꽤 오래되어서, 매일매일 감독의 마음으로 보고 있다. 모두가 열성을 다해 기도 중이다.
<Hello Mr. My Yesterday>
명탐정 코난 10기 한국판 오프닝곡이다. 최근 커버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LIST] 남도형이 말하는 요즘 빠져있는 것들의 목록
-
할리우드 스타들의 수백억원짜리 저택들과 수만명에 이르는 노숙인들의 텐트촌이 공존하는 도시, 로스앤젤레스. <굿 포춘>은 야심차게 이 ‘천사들의 도시’를 영화 전면에 내세운다. <굿 포춘>은 신임 천사 가브리엘(키아누 리브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두 사람의 인생을 맞바꾸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판타지 코미디로, 화려한 배우진과 함께 기그 이코노미와 노동유연화라는 동시대적 주제를 다룬다. 가브리엘은 교통사고를 낼 뻔한 이들을 보호하는 단순한 업무를 맡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차에서 숙식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아르지(아지즈 안사리)의 삶을 보게 된다. 아르지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지만 일을 할수록 점점 가난해진다. 반면 제프(세스 로건)는 성공한 벤처 투자자다. 접점이 없던 두 사람의 인생은 제프가 심부름 앱으로 일일 도우미를 구하면서 교차한다.
영화는 아르지의 일상을 통해 길거리의 타코 노점, 고깃집들이 자리한 한인타운의 상점가 풍경, 노동자들이
[LA] LA 겉핥기의 매력, 화제작 <굿 포춘>공개… 확실한 매력만큼 아쉬움도 커
-
넷플릭스 | 감독 캐스린 비글로 출연 레베카 페르구손, 이드리스 엘바 공개 | 10월24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여전히 생생하게, 의외로 따스한 ‘비글로’의 지금 미국 현장 속으로
간밤의 불면과 저녁 계획 이야기가 오가는 백악관 상황실의 평범한 아침. 총괄 책임자 올리비아 대위(레베카 페르구손)가 전력사령부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태평양 상공에서 미확인 탄도미사일이 포착됐다는 보고다. 클리블랜드와 콜럼버스가 직접적인 위험 지역으로 추정되며,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20여분 남짓. 곧바로 데프콘 2단계가 발령되고, 대통령(이드리스 엘바)과 국방장관(재러드 해리스)이 참석한 긴급회의가 소집된다. 어떤 영화는 긴 설명보다 한마디가 더 정확한 정보가 된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허트 로커><제로 다크 서티>의 캐스린 비글로가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이번에도 현재적 문제를 품은 미국 사회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위기 상황에서
[OTT리뷰]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
따뜻한 오디션·서바이벌프로그램. 어쩐지 낯선 조합이지만, 최근 몇년간의 오디션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이 말이 더 이상 모순으로 들리지 않는다. 독한 평가를 내리는 심사위원, 경쟁자를 향한 스왜그 넘치는 도발, 빌런과 갈등 서사 부각 등 기존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흔히 보던 장면이 요즘엔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서로를 향한 존중, 자신의 업(業)에 대한 자부심, 선의의 경쟁을 통한 성장 서사가 중심이 된다. 경쟁 중심 사회의 반동이랄까. 쿠팡플레이의 <저스트 메이크업>은 그 변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1세대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그들을 보며 꿈을 키운 신예 아티스트, 뷰티 크리에이터들이 제목처럼 오롯이 메이크업으로 경쟁한다.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상 누군가는 탈락하지만, 출연자들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 바라보며 견제 대신 감탄을, 비난 대신 칭찬을 주고받는다. 심사를 맡은 정샘물, 서옥, 이사배, 이진수와 사회를 맡은 이효리 또한 결과보다 과정에 주목하며
[오수경의 TVIEW] 저스트 메이크업
-
“7개월 전에 이 자리에서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결과물로 만나게 되어 감사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아직 하루 동안의 긴 여정이 남아 있다.” 지난 10월28일, CKL 기업지원센터에서 ‘CREATIVE LAB: 중/저예산 영화 기획개발 프로그램’(이하 ‘크리에이티브 랩’)의 프로젝트 피칭과 비즈니스 미팅이 개최됐다. 크리에이티브 랩은 서울독립영화제가 2019년부터 운영해온 독립영화 기획개발 사업의 연장으로서, 12명의 업계 전문가가 멘토로 참여해 청년 창작자의 기획 역량을 강화하고 콘텐츠 산업 진출을 지원한다. 단순한 멘토링을 넘어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 발굴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크리에이티브 랩은 신진 창작자에게는 도약의 발판이자 산업에는 신선한 자극이 되어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과의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의 범위와 대상이 한층 확장되었고, 이에 따라 지원자 수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본격적인 피칭에 앞서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램위원
[씨네스코프] 정체된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구원 투수를 찾아라! 서울독립영화제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 프로젝트 피칭 현장
-
“자, 다시 한번 정리할게요.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오고 있어요. 에베레스트만 한 혜성이 지구로 오는 일이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우리끼리 최소한 합의도 못하고 있으면 대체 정신이 어떻게 된 거예요? 아니, 지금 서로 대화가 되기는 해요? 어디가 망가진 거예요? 어떻게 고치죠?… (중략)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두렵고, 똑같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발, 제발 정부가 생각이 있고, 국민을 생각하는 거면 정말 좋겠는데, 진실은 이 빌어먹을 정부는 완전히 미친 것들 같아요! 그리고 우린! 전부 다! 죽을 거예요!!”
갑자기 유튜브 알고리즘에 <돈 룩 업>(2021)이 계속 떠서 다시 보는 중이다. 확실히 이 영화는 과소평가됐다. 지금 와서 보니 이건 거의 예언서에 가깝다. 랜들 박사(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핏대를 올리며 인류 멸망의 경고를 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혜성 충돌을 며칠 앞두고 토크쇼 카메라 앞에서 절규하는 랜들 박사, 아니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영화로 혁명하기 1탄
-
노년의 삶을 흔히 생의 마무리라 포장하지만, 영화 속 노인들에겐 버티기일 뿐이다. 마무리를 할 만큼 생의 과정이 정연하지 않았고 아름다운 끝을 설계할 만큼 삶을 꾸미며 살지 않았다. 폐지를 줍고 노상에서 채소를 팔며 생을 이어가는 세명의 노인은 법과 제도의 보호망 밖에 있다.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고기를 먹고 도망치는 이들의 행위는 사회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 존재가 현실의 질서 안으로 잠시 침투하는 순간이라 말할 수 있다.
영화에서 범죄를 다룰 때 종종 명확한 판단을 요구하지만, 이 영화는 그 판단을 미루게 한다. ‘노인들이 잘못한 건 알겠는데, 왜 나는 그들을 미워할 수 없나.’ 관객은 무전취식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분노보다 혼란을 느낀다. 세 노인의 삶이 이미 사회의 손이 닿지 않는 구역에 놓여 있다는 걸 알아서다. 영화는 도덕의 내용보다 도덕이 의미 없어지는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관객은 그들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대신 자신의 판단이 어떤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주시한
[비평] 살아 있는 척하기, 최선 평론가의 <사람과 고기>
-
최근 독립영화계의 두드러진 경향 중 하나는 여성의 사라진 서사를 다시 쓰는 일이다. 미처 쓰지 못한, 시간에 파묻혀버린 이야기. 그래서 이런 시도는 대개 선대의 여성을 향한다. <양양>은 이런 조류 위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양양>을 ‘선대 여성 서사 쓰기’ 카테고리 속 하나로 심상하게 분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가족 내부에서 지워진 고모를 가족 안에서부터 다시 찾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특별한 영화의 성취를 오롯이 인정하면서도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그건 <양양>뿐 아니라 여성 서사의 복구를 시도하는 작품들에 함께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말해지지 않던 것을 말하는 작업
술에 취한 아버지의 한마디 고백으로부터 <양양>은 시작된다. 나에게 고모가 있었다고? 초반에 영화를 추동하는 것은 가족의 역사에서 사라진 고모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녀와 나 나이의 ‘닮음’이 이끄는
[비평] 침묵 깨기의 어려움, 홍수정 평론가의 <양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