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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한국/2025년/84분/비전 - 한국
9.22 KT 16:00 / 9.23 C2 19:00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일하고, 집에 돌아가고, 지하철의 인파 사이에 가만히 서 있다. 어딘가 언덕배기의 원룸에 머무르는 이들은 계속하여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이 미약한 움직임들은 기계 장치의 부품처럼 맞물리고 돌아간다. 카메라도 딱딱하게 멈춰 그들을 바라본다. 인물들은 말이 없다. 사람 간의 대화가 적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다. <겨울날들>은 대사라 부를 법한 발화를 제거한 무언 영화이고, 마땅한 사건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오로지 전술한 움직임들의 반복들만이 영화의 시각적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공간이 만드는 지속만이 제시될 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들은 목격되지 않는다. 최승우 감독은 전작 <지난 여름>에서 농촌 마을의 정경을 그린 바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농경이라는 계절의 순환에 맞춰 살고, 자연스레 죽었다. 시간이 흐르니 이야기도 있었다. 반면에
BIFF #6호 [씨네초이스] 겨울날들 Winter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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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폰 탐롱라따나릿/태국/2025/122/아시아영화의 창
9.22 L7 19:00
반드시 안정을 취해야만 한다.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 5주 차를 맞은 프렌에게 신신당부하며 건넨 조언이다. 허나 현대 사회에서 안온한 하루를 맞이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고층 빌딩이 우거진 방콕의 도심 속 인사과에서 일하는 프렌은 무단결근 중인 직원의 대체 인력을 고용하는 데 애를 먹는다. 출퇴근길 뉴스에선 매일 폭삭 가라앉은 경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가운데, 프렌의 일상에 숨구멍이 트일 곳은 도무지 없어 보인다. HR의 본말인 <휴먼 리소스>는 인적 자원을 의미한다. 시장경제의 톱니바퀴 속 자원이란 쉽게 소모된 뒤 끝내 교체되어 축출되고 마는 운명이다. 영화는 프렌의 시선에서 냉랭한 도시를 조용히 관조한다. 하지만 이 침묵은 번잡하다. 절망을 노래하는 뉴스와 불합리한 구조에 끼어 사라진 이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새 생명을 위해 안정을 요구하는 사회는 도리어 실존적인 불안의
BIFF #6호 [씨네초이스] 휴먼 리소스 Human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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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디코 에네디/ 독일, 헝가리, 프랑스/ 2025년/ 147분/ 아이콘
9.24 B2 15:30 / 9.25 B1 19:30
일디코 에네디 감독의 <사일런트 프렌드>가 비추길, ‘식물들의 사생활’은 인간이 범접하기 힘든 연대기로 흐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인간이 아니라 독일 마르부르크 지역에서 수 세기 이상 살아남은 어느 은행나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식물의 시간관으로 축조된 영화답게 <사일런트 프렌드>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유유히 넘나들면서 인간, 그리고 식물의 생애를 기묘하게 엮어나간다.
일디코 에네디는 긴 공백기를 뚫고 발표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에서처럼 식물적 기질과 자태를 지닌 인물들을 이번에도 불러들인다. <사일런트 프렌드>로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양조위가 대표적이다. 때는 2020년 팬데믹, 독일 대학에 초빙된 홍콩 신경과학자 토니 웡(양조위)은 캠퍼스의 고독 속에서 어느 프랑스 과
BIFF #6호 [씨네초이스] 사일런트 프렌드 Silent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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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여행을 닮았다. 출발하기 전에 가장 설렌다. 도착하고 나면 몰랐던 세상이 펼쳐진다. 언젠가는 기어코 끝난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 장의 사진과 기념품을 만지작거리며 물을 뿐이다.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 참석한 사강(수지)과 지훈(이진욱)도 궁금해한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경로로 이별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연인의 부재를 감당한다. 임선애 감독은 두 남녀를 끌어당기는 삶의 미스터리에 반해 그 회복과 치유의 나날에 동행했다. <접속>(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등 “90년대 한국 멜로의 정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 엔딩 크레딧을 보니 배우 수지가 기획자로도 참여했다. 연출을 맡은 배경은.
수지 배우가 오래 전부터 백영옥 작가의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제작사가 판권 구입 후 수지 배우를 먼저 캐스팅한 다음 내게 연출을 제안했다
BIFF #6호 [경쟁] 빛이 있는 곳으로 한 걸음 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임선애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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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이라면 언제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란 정부의 검열과 제작 금지 처분에도 창작을 지속한 여정을 한 마디로 압축했다. 역시 이란 출신인 하산 나제르 감독은 거장의 묵직한 격언을 내면화한 신작 <허락되지 않은>으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재된 이 작품은 어린이들이 출연하는 한 편의 영화 촬영 과정을 따라간다. 아이들이 그린 찬란한 꿈 사이로 어른들이 처한 현실이 고개를 들 때, 이 금지된 프로젝트의 맥박은 조용히 그러나 선명히 뛰기 시작한다.
- 이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기리는 문구로 시작한다. 그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내게 단순함의 아름다움, 세심한 관찰법, 그리고 판단 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그의 정신을 받들어 <허락되지 않은>에도 이란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담아 그들의 꿈
BIFF #6호 [경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용감하다, <허락되지 않은> 하산 나제르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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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애 / 한국 / 2025 / 108분 / 경쟁
9.22 BH 16:30 / 9.23 L4 12:00 / 9.24 SH 20:00
비행기에 탄 아이는 코가 찌릿할 걸 알면서도 사이다를 마신다. 어린 승객에게 음료를 건넨 승무원 사강(수지)도 그런 사랑을 한 적이 있다. 상대는 이미 가정을 이룬 남자이자 같은 일터의 기장인 정수(유지태). 준비된 결말이라고 해서 덜 아플 리는 없다. 자기 입으로 이별을 고해놓고도 몇 날 며칠 잠을 설친 사강은 여느 때와 같은 불면의 밤, SNS 게시물 하나에 마음을 빼앗긴다. “실연당했습니다”라고 운을 떼더니 혼자 있기 싫다면 함께 아침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는 그 글에는 참가 신청 링크까지 첨부돼 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품고, 사강은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 나간다.
초대에 응한 이들 중에는 10년 넘는 장기 연애를 마친 지훈(이진욱)도 있다. 기업 대상 강의를 전담하는 강사로서 고전문학의 명문장을
BIFF #6호 [경쟁]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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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 대만 / 2025년 / 124분 / 경쟁
9.22 B2 12:30 / 9.24 CX 09:00
대만-홍콩 스타 서기의 장편 데뷔작 <소녀>는 종종 숨이 막힐 만큼 관객을 압도한다. 답답하고 억압적인 공기가 영화 전반을 휘감으며, 폭력과 학대의 순환, 세대를 거쳐 가정 속에서 형태를 바꾸며 되풀이되는 양상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배경은 1980년대 후반, 대만의
항구 도시 기륭이다. 주인공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소녀 샤오리(바이샤오잉). 친구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는, 웃음이라곤 찾아기 힘든 아이이다. 이는 어머니 촨(가수 9m88)으로부터 이어받은 상처의 유산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촨의 고통은 고스란히 딸의 현실을 어둡게 물들인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 치앙(구택)은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어머니는 그 분노를 다시 샤오리에게 쏟아낸다.
정반대의 성향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법. 발랄하고 사교적인 전학생 리리(린핀퉁)는
BIFF #6호 [경쟁]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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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우스칭 / 대만, 프랑스, 미국, 영국 / 2025년 / 108분 / 경쟁
9.22 BH 12:30 / 9.23 B3 12:20 / 9.25 CX 12:30
린 시절은 흔히 단순함과 순수, 장난기와 모험심, 경이와 발견의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과 보살핌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대만계 미국인 감독 쩌우스칭의 <왼손잡이 소녀>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담아낸다. 어른들의 얽힌 관계, 무거운 책임, 그리고 경제적 곤란 속에서 자라나는 성장의 단면을 비춘다. 싱글맘 수펀(차이젠얼)과 두 딸, 20대의 이안(마스위안)과 다섯 살 이칭(예니나)은 시골에서 타이베이로 상경해 야시장에 작은 음식 가판대를 차린다. 새로운 삶의 기반을 마련하려 애쓰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은 번번이 그들을 가로막는다. 생계를 꾸려가야 할 뿐 아니라 친족들의 시선과 평가까지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왼손잡이인 어린 이칭은 할아버지로부터 끊임없이 ‘악마의 손’을 쓰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그 말은 이
BIFF #6호 [경쟁] 왼손잡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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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6호 [Topic] 오늘의 이벤트
BIFF #6호 [Topic] 오늘의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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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 줄리엣 비노쉬··· 2주 차에도 별들이 뜬다!
흔히 영화제의 2주 차는 1주 차보다 적막하다는 오해가 있지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다르다! 오는 24일, 25일 홍콩의 대배우 양조위가 출연작 <사일런트 프렌드>의 상영 이후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다. 23일 오픈 토크에서는 <왼손잡이 소녀>의 제작자이자 <아노라>의 감독인 션 베이커가 관객을 만나고, 같은 날 ‘까르뜨 블랑슈’에선 봉준호 감독이 <유레카> 상영 후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이어서 25일엔 한국과 홍콩의 거장 이창동 x 두기봉 감독이 대화를 나누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얼굴 줄리엣 비노쉬 배우가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다.
BIFF #6호 [Topic] 양조위, 줄리엣 비노쉬··· 2주 차에도 별들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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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지만 한국 영화산업 전반에 드리운 암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에 9월 21일 13시부터 포럼 비프에서는 ‘멸종위기영화 K무비, 다음 10년을 위한 대화’가 진행됐다. 영화계 관계자들과 관객들이 모여 한국 영화의 위기론을 논하는 자리였다. 포럼을 주최한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 소속의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가 근래 국내 영화계의 생태계를 정리하여 보고했다. <장손>의 오정민 감독, 조소나 프로듀서(<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프리 철수 리> 등), 양준영 키노라이츠 대표 등 영화계 각 분야 관계자가 발제를 이어갔다. 오정민 감독은 ‘이 시대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라는 제목의 도발적인 의제를 던졌다. 오정민 감독은 “이제 극장이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며”, “지금까지 너무 많이 극장을 찾아 줬던 관객들이 유튜브, OTT 시리즈, 전
BIFF #6호 [News] 관객의 마음을 파악하라, 포럼 비프 ‘멸종위기영화 K-무비, 다음 10년을 위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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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재능이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단편으로 영화제에 초청되는 성과를 냈던 손경수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진학한 뒤 기나긴 좌절을 겪었다. 그에게 지난 시간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7년간 찍은 단편이 타인의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더라.” “마지막이어도 좋겠다”는 심정으로 만든 첫 장편 연출작 <아코디언 도어>에는 창작의 문제를 고민하던 자화상이 비쳤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현주(이재인), 순수한 과학소년 종윤(김건) 그리고 기억상실을 댓가로 미지의 생물에게 글쓰기 재능을 얻은 지수(문우진). 세 아이의 일면은 전부 손경수 감독의 것이었다. “재능만을 믿던 지수의 나태함과 재능의 소중함을 알던 현주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해내던 종윤은 영화를 향한 나의 시간과 닮았다.” 하지만 풋풋함처럼 보이던 청춘의 한 꺼풀을 벗겨내면 “물속에 푹 잠긴 듯한” 몽환적인 혼란이 자리한다. 수포음과 여울치는 물의 속성이 도처에
BIFF #5호 [인터뷰] 도약, 착지, 그리고 성장, <아코디언 도어> 손경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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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75>에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죽음을 권장하는 국가 정책을 두고 고민하는 한 70대 여성에 주목했다면, 제7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르누아르>에선 아버지를 바라보는 후키(스즈키 유이)의 시점으로 아이와 가족의 삶을 두루 살핀다. 타인의 죽음을 궁금해 하고, 마침내 받아들이는 아이의 시선엔 서늘함과 애틋함이 동시에 어린다.
- 10대 때부터 <르누아르>의 소재를 영화화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11살 무렵부터 영화 연출의 꿈을 꿨다. 어릴 때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보고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라는 생각을 한 것이 계기였다. 언젠가 나도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서,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 한 아이가 ‘이 영화가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길 바랐다.
- 영화는 후키가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며 쓴 에세이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 나의 죽음에 관해 상상하는 버릇
BIFF #5호 [인터뷰]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르누아르> 하야카와 치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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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출신의 프랑스인 타마라 스테파냔 감독은 <기억의 잔상>(2012) <해안가의 이방인들>(2016) 등의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한국에도 꾸준히 소개된 이다. <아르토의 땅에서>는 첫 극영화다. 다만 그는 “극영화 연출 계획을 10년 전부터 시작”했으며 “모든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거쳐야만 극영화를 만들 수 있다”라는 신조를 밝혔다. 레바논에서 극영화 연출을 배웠던 그가 덴마크에서 다큐멘터리 연출을 배우며 “이제 앞으로의 영화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과 인물과 현실을 어떻게 영화에 끌어들일지 배웠고, 이를 통해 극영화를 수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아르토의 땅에서>는 그의 지난 다큐멘터리와 상당한 접점을 보인다. 아르메니아인의 미시 서사를 국가의 역사를 꿰뚫는 거시 서사로 확장해 온 감독의 시선이 한결같다. 프랑스 여인 셀린은 아르메니안 남편 아르
BIFF #5호 [인터뷰] 아르메니아의 현실을 논픽션과 픽션으로, <아르토의 땅에서> 타마라 스테파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