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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조시현의 소설을 읽으며 밑줄 그은 대목을 다시 읽어보니, 나는 이 책을 시집처럼 읽은 걸까 싶어졌다. “영혼은 슈크림.” 달콤해서는 아니다. “이건 일기는 아니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흩어지는 생각을 모으고 싶다.” 존재함을 증명할 수 있도록, 발견되도록. “오렌지, 밤, 집게, 끈 풀린 운동화 한짝 또는 마디의 얼굴.” 표제작이자 마지막 수록작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은 다소 기묘하게 시작한다. 혼자만의 세계에 골몰한 영화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듣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정신, 뇌, 의식, 인식, 데이터, 자아, 신경, 귀신, 영혼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라 불러도 적확하지 않은 것 같지만 무엇으로도 불릴 수 있는 존재다. 그런 ‘나’가 그리움을 알게 되었다. 마치 손바닥에 묻은 슈크림처럼 문지를수록 더욱 끈적해지는 그 감정 말이다. SF라는 장르의 외피를 입고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은 머리
씨네21 추천도서 -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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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비채 펴냄
우리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102쪽) 20대의 페미니스트 여성 조에가 온라인에 쓴 글 중 위의 질문은 우리를 가장 괴롭고 슬프게 만든다. 평범하게 같은 교육을 받고 자라 같은 사건에 대한 일련의 정보를 비슷하게 접해도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그러곤 서로를 향해 ‘상식을 가졌다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라며 통탄해한다. 위의 이야기는 반대의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가지는 생각이지만 이는 다른 사안에서도 적용된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는 세명의 화자가 주고받는 메일, SNS 글 등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몇권의 책을 낸 40대 남성 작가 오스카는 우연히 과거 동경했던 배우 레베카를 보게 된다. 레베카는 젊을 때 뭇 남성들의 ‘책받침 여신’이었지만 50대가 넘어 과거의 명성을 잃었다. 오스카는 레베카의 미모가 몰락했다며 SNS에 글을 쓰
씨네21 추천도서 -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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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지음 창비 펴냄
이가 빠지는 꿈을 꾸었다. 멀쩡하던 이가 하나둘 빠지다 우수수 떨어지는 꿈. (<혼모노>) 삼십 평생 온 정성을 다해 모시던 신이 갑자기 어린 신애기에게 옮겨갔다. 하필 내 신당 앞으로 이사 온 신애기에게 옮겨간 나의 장수할멈신. 칼춤을 추다 신령님이 오지 않아 피를 보고 만 무당은 자신이 번아웃에 걸렸다고도 의심해보지만 실은 모시던 신이 죄다 떠났을 뿐이다. 이가 우수수 빠지는 꿈을 꾸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큰 굿을 의뢰받고 유튜브를 보며 접신 연습까지 한다. 성해나 소설집의 표제작 <혼모노>는 한장씩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까울 만큼 이야기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혼모노>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니 갑자기 떠나버린 나의 재능, 그리고 그 빛나는 재능을 보란 듯이 과시하는 신애기에 대한 집착에 숨이 막힐 것 같다. 주인공의 터무니없는 시도와 자기혐오가 마치 글이 너무 안 써질 때 내가 하는 말들 같다.
씨네21 추천도서 - <혼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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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 성해나 지음 창비 펴냄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비채 펴냄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 - 조시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 - 애슐리 엘스턴 지음 엄일녀 옮김 문학동네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4월의 책 - 씨네리 북클럽에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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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21> 30주년 연속 기획으로 1502호에 봉준호 감독을 만나고 이번호에 미쟝센단편영화제를 재개하는 7인의 영화감독을 모셨다. 지난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현재 30~40대 감독들 중 내로라하는 재능 있는 감독들이 많은데 과거에 비해 산업과의 접점이 약화되어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든 지점을 언급했다. 장르영화의 상영과 발굴에 대한 의미뿐 아니라 미쟝센은 제작자, 영화계 관계자 등 젊은 창작자들이 실질적으로 업계 플레이어들과 만나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을 짚어보고 싶다.
한준희 미쟝센단편영화제 재개 소식이 알음알음 소문이 났는지 연출팀 친구들이 자주 되물어왔다. 기다렸던 신인감독들, 이 업계에 얼마나 많겠나.
장재현 신인감독을 찾을 때 미쟝센 수상작, 출품작이라는 통로가 있으면 투자자와 제작사들에게도 좋은 물꼬가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일단 검증된 것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특히 장르영화제라는 점에서. 사실 신인감독을 이제
미쟝센단편영화제 재개 프로젝트 - 7인 감독 인터뷰 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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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쟝센단편영화제 재개를 기념하는 트레일러 촬영을 얼마 전 마쳤다. 어떤 기획 과정을 거쳤나.
장재현 엄태화 감독님이 처음에 짧은 아이디어를 냈다. 4년 만에 재회하는 이들의 멜로드라마 같은, 샤방샤방한 이야기다. 영화제를 대하는 우리 마음과도 비슷하단 생각이 들더라.
엄태화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는 것’에서 착안했다. 여러 컨셉을 경유했다. 멈췄다 돌아가는 카세트테이프, 다시 콸콸콸 흐르기 시작한 폭포, 막혀 있다가 터지는 댐!
이상근 댐에 구경 간 이들이 물도 없고 목도 마른데 막혀 있던 댐이 뻥 뚫리면서 겪는 버전의 이야기를 썼다가 현실적인 문제로…. (웃음)
장재현 잠깐 멈췄던 영화제를 다시 이어간다는 이미지를 지키고 싶었다. 이전 회차의 지속성을 살려서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로 그대로 이어간다. 막 사무국을 꾸리는 중이다. 7명의 감독들로 사단법인을 우선 만들었고, <씨네21>이 주관사로 참여한다. 5월부터 예심을 열어 출품작을 살펴보
미쟝센단편영화제 재개 프로젝트 - 7인 감독 인터뷰 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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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장르영화 발굴 플랫폼으로 신설된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이현승 감독을 중심으로 김대승, 김성수, 김지운, 나홍진, 류승완, 박찬욱, 봉준호, 허진호(가나다순) 등 당시 한국영화계를 이끌던 쟁쟁한 감독들의 수호 아래 성장해왔다. 영화제는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2021년 잠정 중단되었고, 이에 동시대 극장가를 이끄는 영화감독 7인이 새롭게 의기투합했다. 엄태화, 윤가은, 이상근, 이옥섭, 장재현, 조성희, 한준희는 모두 한여름 땡볕 아래 열리는 단편영화제의 요람에서 자란 ‘미쟝센의 채무자들’이다. 이상근 감독은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2004), <베이베를 원하세요?>(2006), <간만에 나온 종각이>(2010)로 세 차례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최다 상영, 최다 수상자이고 조성희 감독은 <남매의 집>(2009)으로 미쟝센 역사상 7년 만의 대상 수상자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엄태화 감독은 <숲>(2012)으로 절대악몽(호
[커버] 다시 흐르는 장르의 피 – 7인 감독이 전하는 미쟝센단편영화제 재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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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자기만의 컴퍼스를 지닌 세옥(박은빈)은 언제나 자신을 중심축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원의 크기나 모양, 위치는 제각기 달라도 모든 곳에 그대로 남아 있는, 세옥의 지나간 자리를 암시하는 바늘자국만이 그가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병원에서 벌어진 난투극, 불법 뇌수술, 살인과 위협 등 모든 사건은 오직 세옥의 선택과 결정으로 흘러간다. 충동과 무절제로 점철된 세옥은 어느새 병원에서 쫓겨나 섀도 닥터로 불법 수술을 도맡고 있었고, 그를 위협하는 이들을 몇몇 죽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구렁텅이로 빠트린 덕희(설경구)가 나타나서는 자신의 뇌를 수술해 달라고 말한다. 한때 스승이었던 원수 앞에서 세옥은 갈등한다. 그를 수술할까, 말까. 오랫동안 굳건한 지지대가 되었던 컴퍼스 축조차 이제는 동요하기 시작한다. 세옥과 덕희 사이에 놓인 여백을 보다 면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김선희 작가를 만났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메디컬 스릴러로서 <하이퍼나
[인터뷰] 전형성을 완전히 파괴하는 여자 - <하이퍼나이프> 김선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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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윤성희 동네’의 지도를 쉽게 그릴 수 있다. 오래된 친구들이 찌개에 소주잔을 부딪치는 이름 없는 한식당, 간이 테이블에서 가족들이 캔맥주를 나눠 먹는 편의점, 여고생들이 즉석 떡볶이를 기다리는 분식집, 노인들이 산책 중인 공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몸을 푸는 학교. 망한 세탁소와 슈퍼와 문방구. 도로에는 삼촌의 만물상 트럭이 씽씽, 길가에는 어린이들이 와다다다. 그리고 이젠 없는 소중한 존재와 꿈에서 만나기 위해 잠을 청하는 누군가와 그를 몰래 찾아와 재우려는 영혼이 사는 집까지. 윤성희 작가는 1999년 데뷔 이래 꾸준히 애틋하고 소박한 자기만의 동네를 만들어왔다. 애써서 살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을 오래 바라보며 그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올해 3월에 출간된 윤성희의 일곱 번째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의 테마는 생일이다. 생일 맞은 사람들로 가득한 단편들은 인물들에게 웃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온
[trans x cross] 슬픔의 자리에 능청을 - 일곱 번째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을 펴낸 윤성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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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마에스트라> <백일장 키드의 사랑>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등 출연
영화 <링>
고등학생 때 처음 봤는데 기괴한 사운드와 TV에서 기어나오는 귀신의 움직임에 소름이 돋았다. 원래 공포영화를 정말 못 보는데 <링>(1998)은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이제는 해마다 무조건 보는 작품이 됐다.
도쿄
지도 없이도 다닐 수 있다. 길거리의 풍경, 사람들의 대화, 신호등과 지하철 소리 같은 것들이 좋아서 커피 한잔 들고 길거리를 구경하곤 한다. 한번 갈 때마다 하루에 4만보씩 걷는다.
실리카겔
요츰 내 최애 밴드. 앨범 《Tik Tak Tok》을 즐겨 듣는데 김춘추의 기타 연주는 정말… 최고다!
맥도날드 감자튀김
평생 감자튀김만 먹고 살라고 해도 살 수 있다. 그런데 반드시 맥도날드 감자튀김이어야 한다. 다른 프랜차이즈 감자튀김은 짠맛이
[LIST] 진호은이 말하는 요즘 빠져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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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무대를 직접 관람한 것은 처음이었다. 신명이 이런 걸까. 공연 도중 입 밖으로 탄식과 경악이 절로 튀어나온 것도 모자라 생전 처음 ‘얼씨구!’ ‘잘한다!’와 같은 추임새를 흥에 겨워 무조건반사처럼 뱉어냈다. 짐작건대 <기차의 도착>이나 <대열차강도>를 처음 본 관객의 마음이 이랬을 것이다. 소리꾼이며 창극의 음악감독이고, 연극·뮤지컬 배우인 동시에 로커인 이자람이 5년 만의 신작 <눈, 눈, 눈>의 초연 무대를 가졌다. 일찍이 브레히트, 헤밍웨이, 마르케스의 희곡과 소설을 판소리로 재해석해 파란을 일으킨 그가 이번에 선택한 작품은 톨스토이의 단편 <주인과 하인>이다. 1800년대 성탄 축제 주간. 한밤중에 부호 바실리는 고랴츠키노 숲을 매입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추위보다 매서운 것은 바실리의 욕심이다. 그는 과묵한 일꾼 니키타, 충직한 종마 제티를 재촉해 숲을 향해 달리지만,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는 이들의 눈을 멀게 해 목적지
[culture stage] 이자람 판소리 <눈, 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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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제일 힘들다. 그중 4월은 최악이다.” 빛을 차단한 어두운 방에 죽어가는 식물들과 함께 누워 있던 대학생 정희완(김민하)의 말이다. 그런 그의 앞에 첫사랑 김람우(공명)가 나타난다. 희완이 람우이고, 람우가 희완이던 시절이 있었다. 희완은 원래 “잘 뛰고 잘 먹고 잘 놀고 건강한 애”였다. 희완이 고등학교 2학년이던 6년 전 만우절 날, 교생 선생님을 놀리려고 전학생 람우와 이름을 바꾼 후 람우와 ‘절친’이 된다. 람우는 희완의 첫사랑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친구들과 졸업 여행을 떠난 곳에서 가스 폭발 사고로 람우가 사망한다. 희완은 람우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 세상과 멀어진 채 죽은 듯 살게 된다. 그런 그 앞에 4년 만에 람우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희완에게 말한다. “너는 176시간12분35초 후에 사망할 거야.”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4년 전에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가 희완과 함께 “남은 일주일 동안” 야경 보면서 맥주 마시
[오수경의 TVIEW] 내가 죽기 일주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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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미러 시즌7>
넷플릭스 | 6부작 | 연출 토비 헤인스, 오언 해리스 등 출연 크리스 오다우드, 라시다 존스, 아콰피나, 피터 카팔디 등 | 공개 4월10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가까운 미래, 더 먼 불안
워터스(크리스 오다우드)는 곧 돌아오는 결혼기념일에 어디 갈지를 고르며 행복해하는 남편이다. 그렇지만 아내 어맨다(라시다 존스)가 돌연 중증 뇌질환에 걸리면서 그를 살릴 만한 병원을 알아보는 게 급선무가 됐다. 가까스로 의료 첨단기업 ‘리버마인드’를 알게 된 그는 고액이지만 확실한 프로젝트에 아내를 참여시킨다. 뇌 일부를 리버마인드 시스템과 연동해 지속해서 관리해주는 것. 이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어맨다는 안정을 찾지만 곧 부작용을 겪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 고액인 ‘플러스’ 등급에 가입해야 한다는 직원의 얘기를 듣고 부부는 아연실색한다. 넷플릭스의 유구한 SF 시리즈 <블랙 미러>가 시즌7로 돌아왔다. 앞서 언급한 &
[OTT리뷰] <블랙 미러 시즌7> <죽도록 하고 싶어> <데빌 메이 크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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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팀 FC 티에이가 하루아침에 해체 위기를 맞는다. 모기업의 파산도 모자라 팀의 성적도 4부 리그로 강등됐기 때문이다. 이때 대형 연예기획사 새온의 김 대표(오창석)가 구단을 인수한다. 하지만 그는 티에이에서 수완을 본 냉철한 사업가일 뿐이라 에이스 선수들을 방출하고 오로지 꽃미남 선수들만 팀에 남긴다. 에이스들이 나간 자리는 새온에 소속된 연예인들이 채우고, 그중엔 한차례 물의를 빚어 자숙 중인 배우 강재(고덕원)가 있다. 슬럼프에 허덕이던 지우(박종훈)는 한동안 강재를 덕질한 과거가 있지만, 팀이 자연히 선수파와 연예인파로 진영이 갈리자 분위기에 휩쓸려 강재와 대립각을 세운다. 연습장에서 로커룸에서 또 그라운드에서 함께 땀을 흘리고 몸을 부딪치는 축구. <FC SOLD OUT>은 그 속에서 피어 나는 로맨스를 담은 BL 시리즈다. 2024년 12월30일. <씨네21>이 입조차 떼기 힘든 강추위 속에서도 축구공과 사랑을 힘차게 주고받던 <FC SOL
[씨네스코프] 축구도 사랑도 힘차게, "FC SOLD OUT" 촬영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