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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명 엔터테인먼트 매체 <버라이어티>는 1998년부터 촉망받는 신인배우들을 발굴하고 있다. ‘Variety’s 10 Actors to Watch’가 바로 그 리스트다. 티모테 샬라메, 브리 라슨, 루피타 뇽오 등 거론된 배우들이 커리어를 넓혀나가며 영향력 있는 리스트로 자리 잡았다. <씨네21>도 이에 못지않은 신예 발굴 프로젝트를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매해 1분기에 ‘라이징 스타’를 진행해 연기력과 스타성을 고루 갖춘 전도유망한 배우들을 영상 콘텐츠 산업에 소개하고 있다. 올해 그 주인공은 김지안, 신재휘, 오예주, 장규리, 진호은, 최민영이다. 이들 모두 최근 1년 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 눈에 띄는 가능성을 보이며 더 큰 미래를 상상하게 해 <씨네21> 기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여섯 배우의 고유한 매력, 가치관과 목표, 그간 참여한 작품들까지 확인할 수 있는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재능 있는 신성을 찾는 영상 관계자들은 주목해주시
[특집] <씨네21>이 선정한 2025 라이징스타, 김지안, 신재휘, 오예주, 장규리, 진호은, 최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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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3부작과 <보이후드>에 이어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이번에는 브로드웨이의 시간에 영화의 그물 망을 놓는다. 뮤지컬 <오클라호마!>의 초연을 앞둔 단 하룻밤에 초점을 맞추는 신작 <블루 문>은 영광의 끝자락을 만끽 중인 브로드웨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조명하는 동시에 스크린에 실시간의 생기를 불어 넣는 링클레이터의 지혜가 집약된 수작이다. 그의 오랜 동반자인 배우 에단 호크가 <마이 퍼니 발렌타인 > <블루 문> 등을 쓰고 미국 뮤지컬의 황금기를 빛낸 작사가 로렌츠 하트의 천재성과 고독, 좌절된 사랑의 번민을 옮긴다. 하트와 함께 전설적 작사·작곡가 콤비로 이름 날린 리처드 로저스 역의 앤드루 스콧은 <블루 문>으로 올해 은곰상(조연배우상)도 수상했다. 애처로운 주인공만큼 얄미운 조연에게도 상패를 내어줄 만큼 <블루 문>의 품은 넉넉하고 따뜻했다. 올해 베를리날레에 참석한 그 누구라도 어루만져주
[인터뷰] 에단 호크와 나, <블루 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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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두번을 넘어졌다. 도착 직전, 프레스 메일에는 “2월 베를린의 불친절한 날씨를 주의하세요”라는 알림이 있었고 퍽 친절한 말투로 들렸으나 현실은 냉정했다. 영화제를 다년간 찾은 다수의 베테랑 기자들이 ‘역대 베를리날레 중 가장 춥고 가장 눈이 많이 온 해’라고 한 말은 폐막쯤 이르러서야 기정사실로 판별됐다. 얼어붙고 위험천만한 것은 날씨만이 아니었다. 영화제 폐막일에 총선을 앞둔 베를린은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의 돌풍을 지켜보며 깊은 우려에 잠겨 있었다. 차선책인 보수 기독민주당(기민련, CDU·CSU 연합)에서 차기 총리로 유력한 메르츠조차 트럼프 닮은꼴로 불리며 반이민자법으로 극우층에 손짓하는 형국이니 사태를 알 만했다. 영화제 셋째 날 즈음에는 <스크린 데일리>가 외면받고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인쇄된 독일 일간지들이 더 많은 영화기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눈보라를 뚫고 프레스 오피스 로비에서 만난 통신원의 말이 사뭇 달리 들렸다. “
디스토피아? 유토피아! 김소미 기자의 제75회 베를리날레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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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황금곰상(평생공로상)을 수상한 틸다 스윈턴의 표현대로 영화는, 그리고 영화제는 모두에게 “주소도 없고, 비자도 필요하지 않은 위대한 독립국가이자 인생의 학교”다. 신임 집행위원장 트리샤 터틀의 임기 첫해로 할리우드 스타들을 동원해 화려하게 문을 연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익숙한 거장들의 이름에 의존하지 않은 수상 결과로 마지막까지 쇄신의 의지를 내비쳤다. 공식 취재로는 베를리날레를 아주 오랜만에 찾은 <씨네21>도 새로운 눈으로 이곳을 살폈다. 9일간 베를린에 머문 김소미 기자의 베를리날레 에세이와 감독, 배우 5인의 인터뷰를 전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베를린국제영화제 기획이 계속됩니다.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마주친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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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게 시간뿐인 백수 거울(경수진)은 오지랖까지 넓다. 조카와 함께 동네를 돌며 갖은 민원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이다. 그런 누나가 탐탁지 않은 동생 두온(이지훈)이 참다못해 출가를 요청하고 거울은 등 떠밀리듯 독립하게 된다. 급히 입주한 낡은 백세아파트에서의 첫날 밤. 새벽 4시부터 울리는 굉음에 고통받던 거울은 직접 층간소음의 원인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이루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백수아파트>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층간소음 이슈를 소재 삼은 코믹한 추적극이다. 공권력이 개입하긴 어렵고 거주민의 삶엔 치명적인 소음 문제를 해결할 구원자로 오지랖 넓은 백수 거울이 등장한다. 호방하고 먼치킨 같은 ‘홍 반장’식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한 배우 경수진의 연기 변신이 돋보인다. 주민들이 합심해 사건을 해결하는 소시민적인 수사 과정을 통해 각박한 세태 속에 폄하되던 이웃사촌간의 따스한 연대의 감각을 되살리게 만드는 소박하고 낙천적인 이야기다.
[리뷰] 각박한 소음도 덮겠다는 낙천주의자의 우직한 선의, <백수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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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으로 식당을 물려받은 혜경(문예원). 가업에 집중하느라 바쁜 와중에 자신의 엽기 동영상이 SNS에 유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상을 게시한 현우(박상남)는 사과의 의미로 요식업에 문외한인 혜경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시장 조사 겸 맛집 탐방을 하는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귀여운 연하남의 직진에 혜경의 마음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만택 감독의 첫 로맨틱코미디영화인 <로망스>는 두 주연의 케미스트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반복되는 만화적 연출이 다소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기자기하고 말랑말랑한 극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다만 배우의 미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전개는 자칫 작품 전체를 멋진 데이트 브이로그 영상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소재들을 장난스럽게 소비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리뷰] 극의 개연성이 배우의 미모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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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카타(다카하시 후미야)는 본인이 다녔던 중학교에서 체육 교사를 하고 있다. 어느 날 10년 전 프랑스로 갔다가 귀국한 중학교 동창 타카기(나가노 메이)가 그가 근무하는 중학교에서 3주 동안 교생 실습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중학생 때처럼 타카기의 장난기는 여전하고 니시카타는 그 장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둘 사이에는 오래전 짝사랑했던 마음이 움튼다.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은 야마모토 소이치로의 전설적 러브 코미디 원작 만화를 드라마화한 동명 드라마의 극장판이다. 영화는 드라마의 10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 청춘멜로로 보이는 외양과 달리 고백 직전 썸의 감정선을 현실적으로 그린다. 이는 〈사랑이 뭘까> <그날들> 같은 영화로 사랑의 심연을 파헤쳐온 감독 이마이즈미 리키야 덕분이다. 에릭 로메르의 영향을 체화한 그는 러브 코미디의 발랄함을 쇼도시마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롱숏으로 중화한다.
[리뷰] 심장이 도큥도큥! 러브 코미디와 로메르의 이상한 만남으로 그려진 리얼한 썸 타기,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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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스톤 이어원>은 이준석 의원이 논란으로 국민의힘 초대 대표에서 축출되고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2024년 4월10일 총선에서 당선되기까지 1년여의 시간을 담았다. <시인 할매>로 제10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되었던 이종은 감독의 신작이다. <준스톤 이어원>은 정치인 팬덤을 겨냥한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답습한다. 우선 영화를 보기 전에 이준석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를 둘러싼 논란이나 외부의 평가를 최소화해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할 객관성을 포기한다. 대신 꾀죄죄한 머리를 한 이준석에게 렌즈를 들이밀어 인간 이준석을 조명한다. 특히 이준석을 호감형 인물로 그리려 교육 봉사 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보낸 시간을 길게 담는다. 정작 그가 개혁신당을 창당할 때 겪어야만 했던 고초와 이를 이겨내는 과정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 당선의 의의와 쾌감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리뷰] 어느 쪽이든 정치인 팬덤 다큐의 종말을 바라게 된다, <준스톤 이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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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사망했다. 석연치 않은 그의 죽음을 뒤로한 채 추기경들은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선거 ‘콘클라베’를 빠르게 추진한다. 이 콘클라베는 추기경 단장 로렌스(레이프 파인스)가 이끌며 콘클라베에 참석하기 위해 선거권을 갖고 있는 추기경들이 전세계에서 소집된다. 이들은 득표가 과반수를 넘은 후보가 선출될 때까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투표를 진행한다. 추기경들도 은연중 파가 나뉘어져 있다. 벨리니(스탠리 투치)는 로렌스를 비룻한 진보주의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반대편엔 보수주의자 대표로 나선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가 있다. 그러나 과반수 표를 얻어낸 건 나이지리아 출신의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였다. 첫 흑인 교황이 선출될 찰나, 로렌스가 아데예미의 과거 추문을 확인하고 선거 결과를 무효 처리한다. 이후 투표가 반복되며 후보군이 추려지고 오직 교황만이 정체를 알고 있던 ‘인 펙토레’ 추기경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스)가 의외의 키를 쥔 인물로 급부상한다.
<서부 전
[리뷰] 무결한 자는 없나니. 완력 다툼의 결과가 의외의 통쾌함을 안긴다, <콘클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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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사태를 정면 돌파하는 의협심 강한 피자 배달부(<워킹데드>)는 마음 앞선 환경운동가(<옥자>)가 되고, 의미심장한 말로 미스터리한 아우라를 펼치던 청년(<버닝>)은 두발로 디딘 땅이 무르게만 느껴지는 이민자의 외로운 얼굴(<미나리>)이 된다. 오랜 시간 누적된 분노 끝에 선 한국계 미국인 대니(<성난 사람들(비프)>)는 또 어떤 삶으로 이어질까. 스티븐 연의 선한 얼굴은 마치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듯 작품 속에 생동하는 인물의 모습으로 반듯하게 변모한다. <옥자> 이후 봉준호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을 마친 스티븐 연은 능글맞고 장난스러운 박자로 <미키 17>의 티모를 이룬다. 철저히 자기밖에 모르는 욕심 많은 파일럿은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다각적 투쟁과 성장을 자극하는 동시에 자기만의 자유를 꿈꾼다. 여러 형태의 삶을 거쳐온 스티븐 연을 직접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결코 복제될 수 없는 고유한
[커버] 끝까지 놓지 않은 마지막 퍼즐 조각, <미키 17> 스티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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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8일 개봉한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이 만든 네 번째 SF영화다. 이중 <괴물> <설국열차>에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된 <옥자>는 뛰어난 시네아스트의 과학적 상상력과 생태학 담론이 만나 탄생한 독창적인 공상과학영화였다. 개봉 당시 스트리밍 플랫폼의 부상과 시네마의 정의를 논하는 거시적 이슈에 밀려 작품 자체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점을 고려할 때 재고할 가치가 충만하다.
<옥자>의 주인공은 글로벌 기업 미란다사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슈퍼 돼지 중 강원도 산골로 보내진 ‘옥자’ 그리고 그의 가족인 소녀 미자(안서현)다. 시대가 바뀌고 미란다사의 새로운 CEO가 된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턴)는 아버지와 같은 노동·자연 착취적 방식으로는 더이상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대신 농화학 기업을 축산·식품 회사로 탈바꿈하며 환경, 생명, 제작공정의 효율성까지 고려하는 축산업계의 혁명을 일으키겠다
[임수연의 이과감성] 봉준호식 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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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동안 영화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는 대상의 관계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성영화 시절의 미국영화는 드넓은 평원과 사막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개척 신화를 그렸다. 비슷한 시기 독일 영화감독들은 대자연 앞에서 초라하게 서 있는 인간의 모습에서 모종의 불안을 감지했고, 소비에트 영화감독들은 만물의 생사를 관장하는 자연을 예찬했다. 이후에 등장한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서 자연은 인류에 멸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위협적인 대상으로 묘사되었다. 영화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대체로 자연은 인간의 운명으로 다루어졌다. 인간은 자연을 멀리서 바라보았고, 자연은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저 멀리 어딘가에 배경처럼 우뚝 서 있었다.
이제 영화 속 세계에서 자연의 존재 양식은 유동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시각효과 기술은 자연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 자연
[이도훈의 영화의 검은 구멍] 예측 불가능한 자연현상을 그리는 세계 디지털 시각효과를 활용한 세계-만들기(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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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영화를 향한 반응은 대체로 저널리즘 윤리를 끌고 들어온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이하 <9월 5일>)은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대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맥락 역시 중요한 영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미디어 환경을 대입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ABC사 스포츠 중계팀은 저널리스트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더 닮았다. 이들은 연출자라는 이름으로 사건을 서사로 치부하며 드라마화한다. 사실을 엄정하게 전달하는 뉴스 브로드캐스팅 대신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장을 카메라로 생중계한다는 내용은 현대의 포노 사피엔스를 다룬 이야기라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또 <9월 5일>은 현대 스릴러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디지털 신인류의 재현 양상의 한계를 환기한다. 그러니 이 영화가 저널리즘 윤리로 귀결되는 결론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전세계 최초의 테러 생중계라는 오명의 역사는 곧 현대 장르영화에서 무분별하게 반복되는 포노 사피엔스와 그 재
[비평] 생중계의 역사, 포노 사피엔스의 역사, <9월 5일: 위험한 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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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에는 늘 어둡고 지저분한 밑바닥에서 사회의 폭력을 모조리 받아내는 인물이 나온다. 이들은 사슬처럼 물고 물리는 폭력 구조의 맨 하부에서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하고 고통받기 일쑤다. 가령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탈락한 채로 지하실에 숨어드는 남자(<기생충>(2019))와 거대한 열차의 부품이 되어버린 아이(<설국열차>(2013)), 간편하고 맛 좋은 식품이 되기 위해 보금자리를 떠나는 돼지(<옥자>(2017))는 본질적으로 같다. 최근 개봉한 <미키 17>에서는 미키 17(로버트 패틴슨)이 이런 위치에 있다. 죽을 만큼 위험한 곳에서 가장 먼저 죽는 것이 임무인 남자. 그는 인류 발전에 필요한 위험을 홀로 감당한다.
이런 인물을 마주할 때 여태 나를 압도한 건 폭력의 잔혹함이었다. 그래서 정작 그 인물을 눈여겨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 사이를 관통하는 특징이 있다는 것, 그것이 최근 들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
[비평] 비극의 작동 방식, <미키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