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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데드>를 떠올리고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시즌1을 감상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아니, 얘가 이렇게 죽는다고?”라는 충격적 단말마를 연신 자아내며 좀비 디스토피아의 끝없는 절망과 자극적 충격을 선사한 <워킹 데드>류의 작품과 달리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그 속의 한 줄기 희망에 유장하게 집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의 설정과 배경은 꽤 잔혹하다. 곰팡이인 동충하초가 인간을 숙주 삼아 퍼지고, 숙주가 된 인간은 좀비처럼 변해 인간을 공격한다. 감염자에게 물린 인간은 곰팡이에 전염돼 인격을 잃고 감염자가 된다. 이에 세상은 순식간에 초토화됐으며 주인공 조엘(페드로 파스칼)은 가족을 잃고 피폐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조엘의 앞에 나타난 이는 소녀 엘리(벨라 램지)다. 으레 좀비 디스토피아 장르의 전통적 ‘희망’의 역할을 지닌 엘리는 감염자에게 물려도 곰팡이에 전염되지 않는 항체의 보유자다. 이런저런 사건으로 인해 조엘
그대들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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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HBO>는 어떻게 아성을 쌓았나.
응접실을 영화관으로 만들기. 홈 박스 오피스를 표방한 1972년 신생 케이블 네트워크 <HBO>는 영화 방영 중 중간광고를 없애는 신의 한수를 택했다. 일리가 있다. 영화관엔 상영 전 광고만 있을 뿐 중간광고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약간의 구독료만 더하면 극장에서 금방 막을 내린 영화를 집에서 광고 없이 바로 볼 수 있는 <HBO>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기엔 운도 따랐다. 마침 1970년대는 미국 내 케이블TV 수요의 폭발적 증대가 이루어진 시기였기 때문이다. 1974년 5만명에 불과하던 케이블TV 이용자는 1978년 150만명으로 급증했고, <HBO>는 1977년부터 흑자를 기록했다. <HBO>의 광고 배제 전략은 영화의 2차 배급을 넘어 ‘영화 같은 시리즈’를 만들어낼 때에도 변동 없이 적용됐다. 그래서 <HBO>는 광고주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고, 광고의 외압을
스타일의 핵심 - ‘영화 같은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전략들, 에 대한 4가지 F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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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박스 오피스(Home Box Office). 유료 케이블 네트워크 <HBO>는 집에서도 영화관과 같은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1972년 출발했다. 1975년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경기 등 생생한 복싱 중계로 명성을 얻은 <HBO>는 이후 케이블TV가 미국 전역에 확산되자 콘텐츠 제작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시사코미디쇼의 시조 격인 <뉴스는 아닐지도>(Not Necessarily the News), 시트콤 <래리 샌더스 쇼>와 <드림 온>이 수익을 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모두가 아는 <HBO>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TV가 아니라 <HBO>입니다”라는 슬로건을 유행시키며 <섹스 앤 더 시티> <소프라노스> <왕좌의 게임> <석세션> 등 ‘영화 같은 시리즈’라 불리는 일련의 작품들이 등장했던
[특집] HBO 해부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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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필로서 감독님의 영화 원년을 채웠다고 할 수 있는 주요 감독들, 그중에서도 동시대에 살아 있는 감독들은- 마틴 스코세이지, 스티븐 스필버그 등- 이제 대부분 직접 만나신 것 같습니다.
노란문 영화 동아리 시절의 저를 생각하면 정말 신기한 일이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과 영화제 만찬 자리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님 다 뵈었으니까. 아직도 비현실적이에요. 조지 밀러 감독님도 여러 번 만났고요. 전 동세대 감독들과의 만남도 좋았어요. 특히 올리비에 아사야스, 웨스 앤더슨, 에드거 라이트, 타란티노 형님. <기생충> 오스카 캠페인 기간에 행사장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을 가까이서 실제로 뵌 것도 기억에 나네요. 그런데 한분 남아 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 옹. 원체 밖으로 다니시는 분이 아니라 어쩔 수 없죠.
- 2020년에 <사이트 앤드 사운드> 2월호 편집을 맡으면서 알리체 로르바케르, 아리 애스터, 한
봉준호가 만난 사람들, 영화들 – 봉준호 감독 인터뷰 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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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치의 장벽 위에서 벌인 영화의 소동
- <미키 17>까지 나온 상황에서 감독님께 종합적인 질문을 드리자면, 지금 돌아보건대 해외 프로덕션에 기반한 작업으로 규모와 방식을 점차 확장해나가는 과정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있다고 보시나요? <설국열차> 전후로 작품을 계획하는 시야가 달라졌다거나 하는.
<설국열차>는 제작진, 투자배급사(CJ 엔터테인먼트)까지 사실상 한국영화인데 다만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이 찍는 방식’으로 찍은 거예요. 인류 생존자가 타고 있는 기차인데 거기에 남북한 사람들만 타고 있으면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북미 배우들이 주요 역할에 있다 보니까 처음으로 미국배우조합(SAG)의 영향을 경험했죠. 계약 조건부터 현장을 찍어나가는 방식까지 구체적인 차이가 있었죠. 예를 들면 아역배우들도 연령대별로 세분화해서 촬영 가능 시간과 휴식 시간을 정하는. 미국 배우조합이 스튜디오와 몇십년간 줄다리기를 해서 만든 세밀한 규정을 학습한 셈입니다.
1인치의 장벽 위에서 벌인 영화의 소동 – 봉준호 감독 인터뷰 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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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미키 17>의 개봉 일정을 따라 전세계를 순회하셨죠. 관계자들 사이에서 과로하는 ‘준호 17, 준호 18’ 아니냐는 전언이 떠돌았습니다.
런던, 베를린, 파리에서 연달아 <미키 17> 스크리닝을 하고, 미국 LA와 뉴욕에서도 여러 홍보 스케줄이 있었고…. 서울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배우들이 들어와서 스케줄을 다 마쳤죠. 개봉 후인 3월 중순쯤인가, LA 오스카 뮤지엄에서 제 섹션을 만들어서 상설 전시를 여는데(아카데미영화박물관 ‘감독의 영감’전, 2027년 1월까지) 거기 다녀왔고요. 전시 오프닝 행사를 마치곤 바로 도쿄에 가서 일본 개봉 홍보를 했어요. 일본이 원래 개봉을 늦게 하잖아요? 3월28일에 일본 개봉 일정 맞춘 행사까지, 그동안의 긴 홍보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했습니다.
- 4월4일은 어떻게 보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웃음) 저는 열심히 생중계 봤죠. 매우 즐겁게. 어떤 분들은 즐겁지 않은 날이었던 것도 존중하고요. 정치적 관점
빛을 위한, 깊은 어둠의 필요 - 봉준호 감독 인터뷰 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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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백색인>과 <지리멸렬>을 거쳐 1995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2000년에 <플란다스의 개>로 장편 데뷔한 봉준호 감독의 30년은 오늘의 우리가 지시하는 ‘한국영화’에 긍지의 색채를 입힌 결정적 시간이다. 일상의 부조리를 만화적인 유머로 비튼 신선한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그 흥행 실패조차 2000년대의 새 감수성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곧이어 등장한 <살인의 추억>(2003)은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비옥함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한강에 잠복한 돌연변이 <괴물>(2006)은 봉준호식 풍자와 점액질의 장르가 천만 관객의 것임을 확인시켰고, <마더>(2009)는 범죄의 속살 위에 구세대 모성의 정념과 광기를 입혀 우리가 그를 낭만주의의 감독이라 확신할 충만한 토양으로 기능했다. 첫 해외 프로젝트인 옴니버스영화 <흔들리는 도쿄>(<도쿄!> 중)를 거쳐 첫 영어영
봉준호의 영감과 시간 - 영화 만들기의 30년, 봉준호의 현재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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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에 따르면, 챗GPT 이미지 생성 기능이 업데이트된 후 1억3천만명이 7억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특히 지브리풍 이미지를 생성하는 게 유행처럼 번져갔다. 자신의 얼굴을 지브리 그림체로 바꾸거나, 유명 장면을 애니메이션처럼 재현해 SNS에 공유하는 식이다. 그러자 비슷한 질문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거 법적으로 문제없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현행법으로는 문제 삼기 어렵다. 지브리 스타일은 법이 보호하는 대상이 아니다. 저작권법은 구체적인 ‘표현’을 보호하지만, 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스타일’은 보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울’이나 ‘토토로’ 캐릭터를 그대로 베끼면 불법이지만, 지브리 느낌만 담긴 새로운 이미지는 불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 스타일은 보호받지 못할까? 창작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법은 창작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작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스타일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열어뒀다. 특정 스타일을 법으로 독점하는 순간 그 스타일
지브리 그림체로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도 문제없나요? - 저작권법은 화풍을 보호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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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니까 올려봅니다.” AI에 비판적인 초로의 인문학자의 프사(이하 프로필 사진)까지 지브리풍으로 바뀐 것을 보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지브리풍이 함의하는 평화와 선함, 자연과의 공존, 공동체 연대가 정말 갈급했나보다. 그러나 지브리풍으로 도배된 프사는 더이상 한 개인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챗GPT가 만든 ‘지브리 스타일’(이하 지브리풍)의 ‘가상’(시뮬라크르)일 뿐이다.
오픈AI가 지난 3월25일 공개한 GTP-4o 이미지 생성 서비스 열풍은 2주가 넘어가는 지금도 여전하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출시 직후부터 거의 매일 SNS 서비스 X(옛 트위터)를 통해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녹고 있다”라거나 “제발 이미지 생성 서비스 이용을 조금만 쉬어달라. 1시간에 100만명이 가입했다”라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올트먼은 지난 4월4일, 원래 계획보다 수개월 앞당겨 GPT-5 출시를 예고했다. 브래드 라이트캡 최고운영책임자(COO)도 같은 날 X에 “
우리 시대의 무의식 - 지브리풍 챗GPT이미지 생성 열풍과 생각의 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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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기술은 우리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어,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로 데려간다. 오픈AI가 GPT-4o를 업데이트하면서 세상이 온통 지브리 스타일로 도배 중이다. 원하는 이미지를 맞춤형으로 그려주는 기술 자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중립적인 결과물이다. 예측할 수 없었던 건 왜 많고 많은 화풍 중 유독 ‘지브리’ 화풍이 (특히 한국에서) 대유행일까 하는, 사용 방식이다. (<데스노트>의 사신 류크의 대사를 빌린다면) “역시 인간은 재미있다”. 이 카오틱한 존재의 행보를 AI 따위가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
몇 가지 짐작 가능한 이유는 있다. 우선 ‘지브리’ 스타일은 아날로그의 끝자락에 있다. <바람이 분다>의 4초짜리 군중 장면을 만들기 위해 1년 3개월을 투자하는 비효율의 극치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도구를 활용하여 그것으로부터 제일 먼 결과물에 당도했다. 그 거리가 멀수록 신기하고 매력적이므로. 여기엔 아날로그적인 수작업의 결과물 중
[기획] “챗GPT야, 이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꿔줘” 놀이는 왜 논쟁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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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레틱>은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감독이 10여년간 머릿속에서 굴리며 애정을 키워온 영화라고 들었다. 작품과 연을 맺은 계기는.
기존 촬영감독을 대신해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감독의 전작 <65>의 재촬영을 도운 적이 있다. 그때 두 감독을 알게 됐는데, 어느 날 <헤레틱> 시나리오를 전해주더라. 그 후 제작이 진전되지 않는 것 같더니 2023년 미국작가조합, 영화배우조합의 파업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A24는 독립영화 제작·배급사라서 파업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아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 종교와 믿음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집 한채 안에서 다루는 실내극이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읽었나.
너무 대사밖에 없더라! 지문도 거의 없어 도대체 어떻게 찍으라는 건지 의문이었다. 두 감독에게 “그냥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지 그래? 팟캐스트에서 2시간 동안 읽고 끝내는 건 어때?”라고 농담도 했다. (웃음) 하지만 그런 텍스트도 다르게
[인터뷰] 영화적 어둠을 구현하는 정교한 과정에 대하여 - <헤레틱> 정정훈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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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레틱>은 이단자를 뜻하는 원제 <Heretic>을 그대로 음차한 제목이다. 영화의 등장인물은 두 소녀와 한 남자. ‘시스터’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은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일명 모르몬교를 전도하기 위해 리드(휴 그랜트)의 집을 방문한다. 남자는 모르몬경은 물론이거니와 지상의 모든 종교 경전을 독파한 양 교리들간의 유사성을 꼬집으며 소녀들의 신앙을 조롱한다. 현대 종교는 서로 참조하며 분화한 상품에 지나지 않으니 당신들의 독실함 또한 무력하다고 꾸짖는다. 반스와 팩스턴은 배교를 부추기는 언설에서 나아가 감금까지 시도하는 리드에게서 도망치려 하고, 리드는 그런 두 사람을 두개의 문 앞에 데려다놓는다. 길 잃은 어린 양을 인도하려다 그 우리에 갇히고만 선교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반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싶어 하지만 팩스턴은 타협을 탈출구로 여긴다.
A24의 독특한 공포영화 <헤레틱>을 즐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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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레틱>은 보이는 것만 믿는 자와 보이지 않는 것도 믿는 자의 대결이다. 긴 말싸움과 잠깐의 몸싸움으로 공포를 조성하는 이 영화는 지난해 말 북미 개봉 후 A24 배급작 중 역대 7번째 흥행작이 되었다는 명성을 얻으며 <유전> <톡 투 미> 같은 화제작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나리오작가이자 <65>를 쓰고 연출한 감독 콤비 스콧 벡과 브라이언 우즈는 오랫동안 제작을 고대해온 작품으로 이런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한 촬영감독이 바로 정정훈이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고들 한다. 하지만 말로 펼치는 난장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가 중요한 영화가 있다. <헤레틱>이 그렇다. 이 수다스러운 영화를 시각적으로도 충만하게 만든 장본인, 정정훈 촬영감독과 화상으로 나눈 대화를 리뷰에 덧붙인다. 다시 한번 리드의 저택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즐겨주시길.
*이어지는 글에서 공포영화 &l
[기획] 수다스러움에 속아 넘어가리니, A24의 독특한 공포영화 <헤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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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던 주연의 삶이 일그러진 건 ‘박재영’이라는 화상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다. 학창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을 트라우마에 잠식시킨 가해자의 이름을 마주한 뒤, 주연은 그를 향한 복수심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돈에 눈이 멀어 거리낌 없이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이들 사이에서 배우 신민아가 연기한 주연은 유일하게 선을 넘지 않는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 현재까지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잠을 이뤄본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채 자신의 삶을 지킨다. 의사 가운을 걸친 메마른 얼굴. 이토록 건조한 표정을 유지하며 상대에게 날을 세우는 신민아를 만난 적이 있던가. 그렇기에 더욱 주연의 감정과 변화에서 눈을 뗄 수 없다.
- <악연>은 시리즈의 엔딩까지 다 본 뒤에 인물들간의 얽힌 관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대본 자체도 흥미로웠을 것 같은데.
처음
[인터뷰] 꽉 찬 분노를 넘어서기, <악연> 배우 신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