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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규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의 작가 퍼시 캉프는 ‘냄새’라고 말한다. <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나름의 ‘냄새’로 독자를 현혹시키는 장편소설이다. 전직 프랑스 정보부원인 엠므 씨에게, 40년 동안 고수해온 머스크 향수는 자신을 ‘완성’시키는 절대적인 필수품이다. 어느 날 향수의 포장과 냄새가 달라진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과거에 나온 머스크 향수의 재고를 찾아 세계를 떠돌지만, 남은 생만큼 쓸 분량을 확보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향수없는 세상보다는 죽음을 택하기로 결심한다. 상실감과 정체성의 회의, 페티시즘 등이 뒤얽히며 힘있게 진행되는 소설.
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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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니뮤직 발매뮤즈(Muse)는 말이 많은 밴드였다. 밴드 당사자들이 아니라 특히 밴드의 주변이 그랬다. 영국의 ‘궁벽하고 한물간 피서지 동네’(이것은 고국인 영국매체의 표현) 데번주 테인머스 출신인 이 시퍼렇게 젊은 삼인조는 99년에 이 데뷔앨범 가 발매되었을 무렵 꽤 화젯거리가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갓 라디오를 타기 시작한 이들의 싱글 이 ‘시끄러운 록’이면서도 그 이상할 정도로 ‘애절한 감성’으로 인해 매우 양면적인 존재로 부각된 탓이었다. 그 곡은 학교와 클럽에 포진한 인디 근본주의자들(알 사람은 알겠지만 회교근본주의자들만큼이나 무섭다) 사이에서도, 에미넴과 웨스트라이프가 톱텐을 다투던 주류 팝 차트곡들 사이에서도 매우 기묘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곡을 라디오에서 듣는 느낌은 흡사 다 함께 햇빛 화사한 캘리포니아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된 셈인지 나 혼자만 고대 그리스 비극 정거장에 불시착한 듯한 당혹감이었다.이 당혹감은 더 나아간다. 뮤즈의 세 사람은 열세
당혹스러운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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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슨 웰스가 만든 미증유의 걸작 <시민 케인>의 키워드는 ‘깊이’이다. 영화 속에는 또다른 영화가 있고, 케인의 승승장구 뒤에는 외로움과 추문이 있다. 화면의 한켠에 어머니가 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을 견디며 모딜리아니의 그림처럼 비스듬히 걸려 있고 그뒤로 동등한 시각적 지위를 가진 아버지와 은행가가 있듯, 화면의 포커스는 인생의 흐름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것과 겉모습을 동시에 붙들려 하고 있다. 아니, 겉모습을 뚫고 들어가 그 깊은 곳에 있는 무엇을 건지려 한다. 그 맨 끝에는 신비의 단어 ‘로즈 버드’가 있다. 영화의 구조는 케인의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거기서 다시 빠져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먼 굴뚝에서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연기가 솟아오를 뿐이다. 그러나 ‘들어갔다 나온다’는 바로 거기에 카메라의 의도가 있다.영화음악을 맡은 버나드 허먼은 예전에 <택시 드라이버>를 소개하면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아주 괴팍한 영화음
깊이에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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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면을 통해 해외 애니메이션을 소개한 지 6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가급적 다양한 장르와 국가의 작품을 소개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장편 보다는 단편, 그것도 일본이나 미국보다는 유럽 중심의 단편에 많이 편중됐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순수 단편 애니메이션계의 새로운 조류보다는 이미 거장이나 ‘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주로 소개해왔다. 실제로 이 메일을 통해 그 부분을 지적하면서 ‘선정의 편협함’을 지적한 분들도 많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미국이나 일본의 장편들은 이 지면이 아니더라도 최신 정보나 다양한 리뷰를 접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나 스스로 잘 알지도 못하고, 진지하게 감상을 했거나 또는 정말 즐겁게 본 기억도 없으면서 피상적인 정보만 나열한다는 것이 옳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보다는 ‘편협하고 한정된 영역’이지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느꼈던 감상이나 생각들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아는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해왔다. 하지
애니메이션에 신선한 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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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슬로 스탭> <`H2`>의 인기 만화가 아다치 미쓰루의 신작 <미소라>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소년 챔프>에 연재중인 이 만화는 90년대의 역작 <`H2`>에 뒤이은 아다치의 메인 장편으로, 연재 초기부터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타이틀 히로인인 미소라를 비롯해 미야코, 류도, 쥬지 등의 친구들이 다양한 개성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데, 이야기는 이들이 13살을 맞는 해에 시작된다. 미소라는 4년 전인 초등학교 캠프에서 위패를 들고 13살 생일에 무엇인가 선물받기를 비는데, 뜻밖에도 그의 친구들과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고양이까지 약간의 신통력을 얻게 된다. 미소라와 미야코 두 패거리로 나뉜 현재, 그들은 각 스포츠부에 부족한 인원을 채워주는 렌털클럽을 운영하는데, 약간의 경쟁과 은근한 로맨스와 들뜬 청춘의 심장이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간다. 스포츠 만화와 연애 만화의 경
미소라 단행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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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도 질투를 했던 것일까? 큐피트가 어느 날 장미의 아름다움에 반해 키스를 하려는 순간, 꽃에서 벌들이 튀어나와 그의 입술을 쏘아버렸다.화가 난 큐피트의 어머니, 비너스는 그 벌들의 침을 장미 줄기에 붙여버렸는데, 이것이 결국 장미의 가시가 되었다. 장미를 사랑한 벌들은결국 영원히 그 장미에 붙어, 장미를 탐하는 키스를 막고 있는 것이다.첫키스, 무섭고도 강압적인만화 속의 주인공들도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는 키스의 목전에서 방해를 받기 일쑤다. 잔혹한 라이벌에 의해 얼굴에 화상을 입기도 하고, 운명의장난으로 멀어져 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손바닥 키스를 날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기억 속에 떠오르는 최고의 방해꾼은 역시 알량한심의의 가위질이다. 불과 5, 6년 전만 해도 사랑에 불타는 두 주인공의 입술 위에 의미없이 올라붙은 검은 막이나, 기묘한 효과 선을 보는것이 어렵지 않았다. ‘입술이 닿는다’는 사실에도 강박적인 불쾌감을 표시해온 몇몇 어른들 때문에 수많은 만화 독자들은
비너스도 그들을 막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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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 5월6일 7시/ Access/ 02-3141-3488
애초 4월15일 체조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판테라 내한공연. 폭설로 체조경기장의 천장이 붕괴되는 바람에 미뤄졌던 그들의 공연이 테니스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겨 5월6일 마련된다. 메탈리카, 메가데스와 함께 스래시 메탈계의 대명사로 불리는 판테라. 보컬리스트 필립 안젤모, 기타리스트 다임백 대럴, 드러머 비니 폴, 베이시스트 렉스로 구성된 판테라는 지난해 봄 통산 5번째 앨범 <`Reinventing the steel`>을 발표했다. 올 초부터 시작하여 총 42회의 미국 내 공연을 진행중인 이들은 이번 서울공연 뒤 뉴질랜드와 호주로 옮겨 투어를 계속한다.
공연 - <`Real Steel 2001 Seoul Tour`-판테라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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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아트센터 5월1∼12일 평일·토요일 2시30분·5시, 공휴일·일요일 11시·2시30분·5시 LG아트센터, SBS 02-2005-0114
일본의 그림자인형극단 쓰노부에의 공연. 다양한 캐릭터 인형들의 생생한 움직임이 대형스크린에 비친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국내 성우들이 대사와 노래를 더빙했다. 우정의 소중함, 가족간의 사랑, 어린이의 희망과 꿈을 주제로 한다. 이연경과 ‘미달이’ 김성은이 사회를 맡아 그림자 놀이를 배워보고 함께 노래하는 시간도 갖는다. 일본 후생성이 선정한 우수아동연극. 극단 쓰노부에는 1963년 설립된 이래 설화와 아동문학 등을 각색해 공연해오고 있는 그림자인형극 전문단체다.
공연 - <어린이 그림자 뮤지컬 “빨간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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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캐넌 발매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의 보컬 롭 핼포드가 주도한 ‘핼포드’의 라이브 음반. 롭 핼포드는 90년 명반으로 꼽히는 <`Paintkiller`>를 끝으로 주다스 프리스트를 탈퇴하고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처음 결성한 밴드 ‘Fight’와, 나인 인치 네일즈의 트렌트 레즈너와 함께 작업한 ‘인더스트리얼+하드코어’ 사운드를 선보인 <`Two`>는 주목을 끌지 못하고 단명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핼포드’의 <`Resurrection`>에서 과거의 사운드를 재연하며 재기했다. <`Live Insurrection`>은 전작에서 발표한 핼포드의 곡, 롭 핼포드의 솔로작, 주다스 프리스트 시절의 명곡, 3곡의 신곡 등 롭 핼포드가 걸어온 음악사를 총정리한 2장짜리 라이브 음반이다.
음반 - <`Live Insurrection`> Hal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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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세호, 배영진 지음 | 중앙 M&B 펴냄 | 8천원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750일간의 세계여행을 떠난 ‘이상한’ 부부의 여행이야기. 연애 5년, 결혼 4년의 기간을 함께하고 헤어진 뒤 남자는 인도로 떠났다. 떨어져 지낸 몇달 뒤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집을 세놓고 자동차를 팔고 적금과 보험을 해약해서 만든 약 5천만원으로 2년간 40여개국을 떠돌았다. 그리고 하이텔에 ‘바람난 부부의 세계여행’이라는 타이틀로 부부가 번갈아 쓴 기행문과 갖가지 여행정보를 올려 하루 방문객이 7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방송작가였던 여자와 카피라이터였던 남자의 톡톡 튀는 글재주로 담아낸 ‘기행문’은 시시콜콜한 정보와 감흥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다.
책 - <바람난 부부의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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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M 어틀리 지음 | 두레 펴냄 | 1만2천원
원주민의 땅에 침범한 백인에 맞선 라코타족 대추장 시팅불의 삶을 그린 책. 1831년경 라코타족의 한 갈래인 훙크파파족에서 태어난 시팅 불의 일생은 백인의 속임수와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결국 비극으로 끝났지만 ‘참다운 의미에서 인디언이었고 진정한 인간이었으며 자신의 전통문화에 완벽하게 충실한 문화의 수호자’로서의 의미는 21세기로 넘어오며 더욱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리틀빅혼 전투에서 커스터 장군이 이끄는 제7기병대를 전멸시켰던 전설적인 영웅담의 주인공 시팅불의 삶은 쇠락해간 ‘인디언의 삶’이 던져주는 새로운 가치와, 백인의 물질주의 문명이 파괴한 우리의 영혼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책 - <시팅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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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란> O.S.T | 록 레코드 발매최민식의 혼신을 다한 연기가 정말 인상적인 영화였다. 속초 부둣가에 앉아 장백지가 보낸 편지를 읽을 때 담배를 물려다가 떨어뜨리며 우는 장면에서는 <길>에서의 앤서니 퀸이 연상되었다. 내러티브의 견고함은 좀 떨어지나 그 약점을 넘어서는 어떤 영화적인 힘이 이 영화를 울림있는 영화로 만들고 있다. 내 생각에 그 힘은 ‘쓰레기들에게 일종의 회한의 형태로 남아 있는 일말의 인간됨’을 관찰해내는 데 이 영화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애정이나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게 관객에게 전해진 것이다. 동시에 영화는 그러한 이해가 신파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데에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려는 차분한 시선이 영화를 끌고가고 있다. <박하사탕>에서 내면적인 흐름을 짚어내는 음악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재진은 이번에도 역시 그러한 차분
절제된 멜로디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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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선물> | 포니 캐년 발매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동요 작곡가는 누구일까. 윤극영, 윤석중, 홍난파… 여러 사람이 거론될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 20세기 후반에 존재하는 최고의 동요 작곡가를 꼽으려고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후보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이다.어떤 면에서는 그의 모든 노래가 동요적이다. 어른을 위한 동요라고나 할까. 반대로 특별히 그가 지은 동요라 하여 다른 노래들과 특별히 구별되지도 않는다. “꼬마야 꽃신 신고…” 하는 노래는 동요인가 아닌가. 퇴폐적이라고 하여 금지곡까지 되었던, 그의 가장 사이키델릭한 넘버에 속하는 “시계 소리 멈추고 커튼을 내려요” 하는 노래에서마저도 그는 약간은 동요적이다. 우선은 ‘∼∼요’ 하는 어미를 말할 때 김창완이 들려주는 특유의 귀여운 발음이 그렇다. 또 그의 앳된 하이톤의 목소리가 그렇다. 다음으로는 특유의 단순하고 진솔한 멜로디가 그렇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의 모든 노래를 동요로
일상에 날개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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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앙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오는 6월4일부터 9일까지 6일간 프랑스의 소도시 앙시에서열린다. 그동안 2년제로 열리다가 지난해부터 매년 개최하는 방식으로 바뀐 앙시페스티벌은 규모나 상영되는 작품의 질면에서 세계최고 수준을자랑한다. 히로시마나 오타와 페스티벌이 작가 중심의 조금은 배타적인 성격이 짙은 행사라면, 앙시는 페스티벌 외에 견본시, 애니메이션 작가들의국제모임인 ASIFA가 주제하는 학술회의 등이 열리는 ‘종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올해 앙시페스티벌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행사로는 ‘영국 애니메이션 특집’과 ‘알렉산더 알렉세이예프’ 특집을 들 수 있다. 최근 들어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영국 애니메이션의 70년에 걸친 발자취를 둘러보는 회고전에서는 최근 국내에 비디오로도 출시된 <톰 섬의비밀 모험>을 비롯해 <미스터 파스칼> 등 영국 애니메이션의 특색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소개된다.사실 그동안 히로시마페
앙시, 애니메이션의 세계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