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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배다른 형제?
2001-06-14

8개월 만에 발표된 라디오헤드의 신보 <Amnesiac>

<Amnesiac> EMI 발매

90년대(얼터너티브계)를 너바나(Nirvana)가 열고 라디오헤드(Radiohead)가 닫은 시대라고 말한다면 억지가 될까. 된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큰 것만 대충 보고 치우는 편리하고도 무서운 이른바 ‘일반적 시각’에서는 그런 대로 아귀가 맞는 소리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혹은

그러기를 희망한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음악의 스타일이나 뭐 그런 것을 떠나 전 지구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는 수용론적인 면에서 특히.

그런 면에서 라디오헤드는 확실히 거물급 밴드이다. 그런데 이 거물 밴드가 자신들을 그런 거물로 만들어준 <OK Computer>

이후의 (당연한 부담감을 안은) 신보를 꽤 이상한 방식으로 공개했다. 같은 세션에서 나온 결과물을 두장의 앨범으로 만들고, 그것을 더블 앨범이

아니라 서로 다른 독립된 작품으로서 8개월의 시차를 두고 따로따로 발매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10월에 먼저 발표된 <Kid A>는

단연 떠들썩한 화제와 조용한 논쟁의 대상으로, <OK Computer>의 업그레이드 버전일 것이라는 주변의 추측을 긍정하면서 또한

부정한, 말하자면 테크놀로지는 전자였지만 대중성은 후자인 앨범이었다.

그리고 반년 뒤인 지난 6월 초에 도착한 <Amnesiac>은 매우 묘한 작품이다. 이것은 <Kid A>의 자매이면서

마치 <Kid A>와 배다른 형제처럼 군다. 얼핏 일별하기엔 어려운/거북한 형에 대해 쉬운/상냥한 동생을 자처하는 듯 보이지만 가만

보면 결국은 똑같이 난형난제인, 이상한 방식으로 한 핏줄임을 드러내는 이 두 아이 키드 A와 키드 B. 전체적으로 워프(Warp) 레이블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와 비밥 재즈 사운드를 동시에 듣는 느낌이 이럴까 싶은 이번 신보 세션들 중에서도, 지난번에 비해서는 확실히 머리보다 마음이

기울게 만들어진 <Amnesiac>의 사운드는 방금 말했다시피 어차피 처음부터 끊임없는 <Kid A>와의 비교를 통해

설명될 운명이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이 앨범은 그에 대해 가타부타 별 말이 없다. 즉 <Kid A>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Kid A>를 닮아 있는 것이다. 정말 기억상실증(amnesia)인 걸까? 이런 상태라면 아무리 <Pyramid Song>이나

<Knives Out>이 이토록 (라디오헤드 스타일로 낯익게) 아름다워도 맥락 파악이 되지 않는 불편함은 여전히 잔존한다.

그러나 이런 불안감이 오히려 과잉인지도 모른다. 정작 라디오헤드의 팬들은 (찬반양론을 떠나) 좀더 본능적으로, 나아가 쉽게, 이 앨범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 못한 쪽은 전통적으로 어떻게든 이 앨범을 전체 구도 속에서 ‘규정해야만 하는’ 입장, 라디오헤드라는 이름하에서 어떻게든 재단을

하고 싶어하는 입장들이다. 사서 고생하는 그 입장도 알고 보면 퍽 딱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이 앨범을 들으면서 어쩔 수 없는 의심과 직관이

동원된 질문들로 스스로를 가득 채운다; 과연 <Amnesiac>은 실험적이었던 <Kid A>를 일종의 극복의 대상으로

본 대중적 벌충안인가, 아니면 한번 해 본 심각한 농담(‘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이었던 <Kid A>에 예상대로 당황한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친한 척하는 악수(‘놀라지 마, 나야 나’?)인가. 이제는 충분히 자의식을 거론할 만한 경지에 이른 영국 옥스퍼드 출신의 이

거물 밴드는 다음 앨범쯤에서 다시 기타 사운드를 수용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은 우리 등뒤에서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성문영|팝음악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