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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곳에서 사오정을 만나게 될 줄이야. 보랏빛 피부에 천진난만한 표정. 안국동 참여연대 사무실 입구에 서 있는 건 분명 사오정이었다. 사람보다 크게 만들어진 이 모형은 국민의 소리를 못 알아듣는 정부를 상징하고 있었다. <날아라 슈퍼보드>의 위력을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1990년 KBS를 통해 처음 방영된 <날아라 슈퍼보드>는 방영 초기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 시청률은 42%. 얼마 전까지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포켓몬스터>의 시청률이 약 20%였음을 상기해보면 실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제작사인 한호흥업 역시 예상치 못한 인기에 어리둥절했다고 하니, 기실 사람 마음을 휘어잡는 건 치밀한 계산이 아니라 플러스 알파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허영만 원작 <날아라 슈퍼보드>는 2001년 10월19일, 이윽고 5탄 방영을 시작했다. 이번 환상여행편은 애니메이션을 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구성됐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30분
저팔계 랩에 맞춰, “치키치키 차카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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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선>의 메인 테마를 맡은 최경식의 음악은 묘한 매력이 있다. <모래시계>로 대중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바 있는 그의 선율은 때로는 과도하게 감상적이긴 해도, 그 아니면 발산할 수 없는 특유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가 지은 곡들은 바그너의 어떤 부분을 연상케 한다. 끊임없이 지속될 것만 같은, 동시에 아무리 지속되어도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끝없는 반음계의 흐름은 에로틱하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하다. 이른바 ‘무한 선율’은 아주 높고 먼 세계를 암시하면서 동시에 아주 낮은, 이 땅의 몸들의 부딪힘, 속절없는 몸부림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바그너는 후자의 것을 전자의 높이로 너무 드높이려 하는데, 최경식에게서 그런 느낌까지 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영화음악 작곡가들 중에서는 최경식의 것이 가장 그런 선율들의 느낌을 개성있게 잡아내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 어떻게 생각하면 유성영화 이후의 많은 영화음악이 반음계 화성의 미묘한 뒤척
[영화음악] <흑수선>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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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영화를 향한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는 소년 베리만은 어느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던 날 자기 형이 시네마토그래프를 선물로 받는 일이 일어나자 마구 울부짖었다. 결국 베리만은 그날 저녁 주석으로 만든 병정 인형 100개를 형에게 주기로 하고 시네마토그래프를 자기 소유로 만들고 만다. 이튿날 아침 그는 시네마토그래프의 손잡이를 직접 돌려보게 된다. 그때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흥분을 노년의 베리만은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흥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뜨겁게 달구어진 금속의 냄새, 옷장 안의 좀약과 먼지의 냄새, 손에 잡힌 손잡이의 감촉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벽 위의 떨리는 직사각형 화면도 눈에 선하다.”<마법의 등>은 스웨덴의 거장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쓴 책이다. 여기서 베리만은 일흔살이 거의 다 된 노령임에도 불구하고(이 책은 베리만의 나이 68살이 되는 1986년에 완성
잉마르 베리만 <마법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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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영상물로 변신한 ‘해리 포터’ 열풍이 지금 전세계를 항해 휘몰아치고 있다. 소설에서 출발하여 영화와 게임, 캐릭터상품으로 발전하는 전형적인 ‘원 소스 멀티 유징’의 전철을 착실하게 밟고 있는 이 작품은 한국에서 쉽게 쓰이는 비유인 ‘자동차 몇 만대 수출량’에 비견되는 또 하나의 대박상품임에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가장 알기 쉬운 이 투자대비 수익률만으로 콘텐츠를 보는 것은 학생이 수학문제를 풀 때 참고서에 나와 있는 답만 베끼겠다는 생각과 똑같다.올해 가장 주목받았던 애니메이션인 <슈렉> 역시 성공한 콘텐츠상품답게 제작사인 ‘드림웍스’의 상업적 부와 함께 자사의 기술을 전세계에 홍보하는 등 여러 부수적인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해리 포터’가 <슈렉>과 다른 점은 이 작품은 ‘영국’이라는 한 나라의 이미지를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한 나라가 가지는 문화의 어느 특정한 요소 하나만으로 판단될 수는 없겠지만 문화마다 타문화사람이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살아있는 감정, 문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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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화 칭찬을 한 것에 대한 앙갚음(?)인지 위 만화집이 뒤늦게 내게 전해졌다. 올해 4월에 출간되었으니 반년도 더 지난 셈인데 그 사이 4쇄까지 펴냈으니 걱정할 것 없어 다행이기는 하다. 사실 이 만화책 술턱을 일찌감치 얻어먹기는 한 셈이다. 한쪽으로 실내 낙시터가 있고 민물찌개탕이 종류별로 일품이었던 일산의 한갓진 명물음식점에서 작곡가 김민기가 후배 노래평론가 김창남의 영국 연구교수행 환송을 겸해 마련한 자리에서였다.야, 은홍이가 상을 다 받으니(이 책은 상금 500만원짜리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이다) 민주주의가 되긴 됐구나…. 김민기는 그렇게 흔쾌히 웃어주었지만 그의 운동권 만화보다야 사람 됨됨이를 훨씬 더 좋아했던 나로서는, 물론 축하할 일이되 긴가민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글쎄 만화가 얼마나 좋아졌을까….‘됐냐? 00야----!!!!!’로 끝맺고 있는 ‘술꾼 이은홍, 자필 이력서’에는 ‘스스로를 노동운동가라 착각하고…(중략) 1989년 결혼 후에야 전문 만화가로서 자기
이은홍 그리고 씀 <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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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사쿠이시는 내게는 제법 신비로운 만화가이다. 그 신비란 ‘추앙’이라기보다 ‘미스터리’에 가깝다. 80년대 후반에 나온 그의 대표작 <고릴라맨>(학산문화사 펴냄)은 고단샤 만화상을 수상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수상스럽지만 강한 남자 ‘고릴라맨’을 주인공으로 한 학원 액션물로, 예상을 살짝살짝 빗나가는 개그 터치에 독특한 청춘물의 뉘앙스도 겸비하고 있어 나 역시 즐겁게 읽었다. 90년대 후반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자 당연히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했는데, 이상스럽게도 그들은 이 책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일진회’ 파동을 만들어낸 <로쿠데나시 블루스>(최근 ‘비바 블루스’라는 제목으로 정식 번역), <오늘부터 우리는> <상남 2인조> 등 비슷한 계열의 만화들이 해적판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는데도, 이 만화는 유독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무엇 때문일까? 내가 볼 때 이 만화가 훨씬 재미있는데. 왠지 무덤덤해
청춘 록만화, <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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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뿌리>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으로 두번 콩쿠르상을 받은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집. ‘인간이라고 하는 거대한 허영에 대한 신랄한 탄핵’이라는 말처럼, 로맹 가리의 소설은 인간이라는 종의 비애를 돌아보게 한다. ‘생의 비리고 안타까운 아름다움’을 그린 <모든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빠른 호흡과 거친 말투로 독특한 느낌을 던져주는 <몰락>, 인간의 욕심을 공격하는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등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처절한 육탄전을 맛볼 수 있다.
[책]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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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라면 나직하게 말을 걸어오듯 흐르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 같은 클래식 연주가 귀에 익지만, 첼로 어쿠스틱스는 첼로를 비롯한 현악기의 소리가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새삼 일깨운다. 이들은 재즈 첼리스트 요시히로 기카와를 중심으로 바이올린, 피아노, 퍼커션의 4인조로 구성된 일본의 첼로 앙상블 그룹. 피아졸라의 애수어린 열정을 재해석한 <Liberte Tango>, 첼로의 피치카토와 피아노의 서정적인 즉흥연주가 어우러진 <AURORA> 등 재즈와 뉴에이지, 클래식을 넘나드는 사운드가 들려준다.
[음반] 첼로 어쿠스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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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화가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명성을 쌓아온 박재동 화백의 작품집 <목 긴 사나이>(글논그림밭 펴냄)가 5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 속에서도 꾸준히 작품집을 내온 박 화백은 1999년 <정치야 맛좀볼텨> 이후 2년 만에 출판가에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이다. ‘한겨레 그림판 베스트 33’, ‘샐러리맨 네 멋대로 해라’ 등은 만화가로서, 또 예술가로서 박재동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코너들. 또한 MBC에 방영되었던 시사애니메이션의 콘티와 단편 <샤위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책에 소개되는 내용이다.<천마의 혈족> 발간 <바람과 나무의 시>로 70년대 소녀만화를 이끌었던 다케미야 게이코 작품이 처음으로 국내에서 번역되어 나온다. 기마민족 타구르족의 소녀를 주인공으로 방대한 대하역사 판타지를 펼쳐내는 <천마의 혈족>. 정통의 왕위계승자를 상징하는 ‘천마’를 중심으로 권력과 사랑을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장대한
박재동의 <목 긴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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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트랑샤르와 얀 데스타뇰이 98년에 결성한 프랑스 출신 듀오 모조의 데뷔 음반. 70년대의 디스코와 펑크(funk)에 뿌리를 두고, 하우스와 테크노의 전자음 향연부터 드럼 앤 베이스, 몽환적인 트립합까지를 아우르는 실험적인 변주를 보여온 일렉트로니카의 연장선상에 있되, 복고적인 사운드에 좀더 충실하다. 70년대 뉴욕의 디스코 스타 쉭의 음악을 샘플링한 <Lady> , 라틴음악의 결을 섞은 <What I Mean> , 신시사이저 사운드 위주의 <Acknowledgement> 등 펑키하면서 세련된 댄스음악이 흥겹다.
[음반] 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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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힙합그룹 업타운, 2인조 여성 힙합듀오 타샤니를 거쳐 T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중인 힙합, R&B 가수 윤미래가 <시간이 흐른 뒤>의 인기를 타고 따뜻하게 여는 크리스마스 콘서트. 지난 11월 대학로 라이브 극장에서 열렸던 첫 번째 콘서트 의 앙코르 공연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향기롭고 부드러운 R&B 노래들을 좀더 큰 무대에서 좀더 다양한 레퍼토리로 엮어 들려줄 예정이다.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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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맞아 윤도현 밴드가 마련하는 대형 콘서트. 이제껏 윤도현 밴드가 공연한 장소 중 가장 큰 규모인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공연으로, 2억여원을 넘는 제작비가 투입됐다. 화려한 볼거리로 큰 무대를 한껏 달굴 예정. 미리 사연을 보내 채택된 연인 1쌍을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코너, 무대 한켠의 ‘윤밴 카페’라는 공간에서 윤도현이 어쿠스틱 반주에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들을 부르는 코너 등 다양한 이벤트들이 열릴 예정이다.
[공연] <윤도현밴드 `크리스마스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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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니와 준하>는 그 완성도와 상관없이 상당히 모범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드라마의 전개에 긴장감이 떨어지고 때로는 지나치게 손을 가한 것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 없지는 않지만, 멜로와 애니메이션을 결합시키려고, 또 그 애니메이션과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우회적으로 맞닿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도 그렇고 장면 장면 신경을 쓴 흔적들이 보이는 것도 그렇다.젊은 시절에 겪게 되는 뼈아픈 사랑의 고통을 통해 결국은 무언가를 긍정하게 된다는, 일종의 성장영화인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음악은 그 시간축을 한축으로 놓고 미묘한 심리적 움직임들을 다른 한축으로 놓고 움직인다. 많은 영화들이 그러하듯, 앞의 축에서 주로 기능하는 음악들은 ‘선곡된’ 음악들이다. 용돈만 생기면 사 모았다는, 영민의 방에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던 LP들이 과거의 상태로 존재하다가 현재의 심리축으로 넘어오는데, 그건 준하가 영민의 방에서 LP를 트는 순간
왜소한 모범답안- <와니와 준하>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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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창간된 문학계간지. 편집인 이인성 편집위원 김예림, 박철화, 성기완, 함성호가 참여했다. 우리 문학에 드리운 패배주의와 그 이면을 이루는 맹목주의를 비판하며 우리 문학의 여러 판들이 활기차게 들끓는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 특집은 지금 한국사회의 문화적 주류가 되고 있는 ‘엽기적 상상력’에 관한 글 5편. 김명인, 김혜순의 시와 윤후명, 이승우의 소설, 박이문 교수의 논문 ‘세계 문명권의 대화는 가능한가’와 장석남의 서해 기행 등이 실려 있다.
[책] <문학·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