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이 없는 인터넷 유료 사이트가 있다. ‘글로벌 만화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만화 전문 사이트”이며, “이현세, 황미나, 박성우, 하승남, 양영순, 장태관, 임광묵, 이정애, 권신아 등 쟁쟁한 작가 70여명의 신간 연재만화를 올 컬러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비롯 일어, 중국어, 영어 등 다국어를 동시에 지원하는 사이트”인 코믹스투데이(www.comicstoday.com)에는 얼마 전부터 게시판이 모두 없어졌다. 적지 않은 돈을 결제한 회원들은 회원의 의견을 유일하게 게시할 수 있는 20자평 게시판을 이용해 업데이트되지 않는 만화나 각종 서비스 장애에 대한 불만을 쏟아놓고 있다. 작가도 마찬가지. 성인웹진 ‘X-Gate’에 를 연재하고 있는 박무직 역시 20자평을 이용해 연재가 중단되었으며, 공지요청은 무시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유료서비스와 연재된 작품의 자체 출판을 통해 손익분기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 코믹스투데이의 몰락은 충격이었다. 원고료 연체와 작품 서비스 기간의 연장, 작가 연재 중단 등 여러 복합적 요인에서 시작된 코믹스투데이의 혼란은 작가들의 파업과 연재중단, 절필선언(<씨네21> 336호 참조)으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게시판 철거가 진행되었다. 네티즌들에 의해 항의가 쏟아질 때, 혹은 운영자가 해명하기 곤혹스러운 사안이 발생할 때 어떤 사이트들은 게시판을 없애거나 혹은 공사중이라는 이유로 게시판을 막아버린다. 새로운 게시판을 달거나 게시판의 기능을 보수할 때라도 사이트가 접속되는 한 게시판이 돌아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게시판 철거는 그냥 보기만 하라는 배짱이거나 비판을 듣지 않겠다는 오만이거나 쏟아지는 비난을 피해보겠다는 잔머리다.
인터넷 만화 사이트는 PC통신 만화 서비스와 벤처투자 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PC통신에 기반한 만화사이트들은 구간 만화의 스캔 서비스를 통해 인터넷 만화방 서비스를 시작했고, 벤처투자시 생겨난 만화 사이트들은 신작 만화 서비스를 시도했다. 후자의 대표 주자는 엔포였다. 만화계의 편집들이 대거 온라인으로 이주해 청소년, 성인, 순정, 인디,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 게임 웹진을 구축했다. 스캔 서비스는 물론 신작 서비스, 플래시 만화, 인터랙티브 만화 등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적어도 사이트를 오픈할 때까지 작가와 편집자 그리고 기획자들에게 인터넷은 신천지였으며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철저한 사전 기획없이 ‘웹진 7개’라는 전략만을 내세운 엔포는 자금압박과 경영의 난맥을 보이며 추락하고 말았다. 작가들과 합의없이 다른 사이트에 만화를 서비스했고 작가들은 밀린 원고료와 저작권을 내걸고 엔포와 싸우기 시작했다.
엔포 이후 대형 만화 포털을 지향한 코믹스투데이와 코믹플러스는 각각 다른 모델을 들고 나왔다. 코믹스투데이는 신간 중심의 서비스를 내세웠고, 코믹플러스는 구간과 오프라인 잡지의 온라인 버전이라는 윈도 전략을 내세웠다. 유시진, 김진, 박무직, 박성우, 신영우, 이유정과 같은 오프라인의 인기작가들과 인기작(<쿨핫> <오디션> <바람의 나라> 등)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오프라인 만화와 동일한 판형으로 직접 출판에 나서기도 했다. 반면 코믹플러스는 시공사의 콘텐츠를 인터넷이라는 윈도로 서비스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40개의 CP서비스를 통해 콘텐츠 윈도의 확산을 내세웠다.
2002년 만화 사이트는 1999년 출판만화시장을 살려낼 (혹은 대체할) 대안에서 저작권 분쟁과 밀린 원고료의 산실로 전락하고 말았다. 불과 2년 만에 인터넷 희망가는 사라지고 절망의 곡소리만 남았다. 벤처를 빗댄 사기 행각이 드러나는 2002년에 다시 그날을 돌아보면 어리석은 내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네트워크로 사고하고 처음부터 네트워크에 맞는 기획을 진행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는다. 옳은 길, 바른 길을 찾는다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만화 사이트는 불황에 빠진 한국만화 시장의 유력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며, 그 대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클럽와우, D3C, 아이코믹스, 엔포, 코믹스투데이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지만 이들은 후발주자들한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었다. 인기 게임 포트리스를 서비스하는 GV에서 운영하는 X2comix는 든든한 게임 콘텐츠의 힘을 바탕으로 만화사업에 진출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X2comix가 2월5일에 창간하는 <웁스>의 창간단계부터 제휴를 맺어 온라인 게임의 공동 개발, 신인작가 육성 프로그램 등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획서상으로만 이이야기되던 온라인 매체와 오프라인 매체가 제휴를 통해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전략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또다른 제휴 모델도 있다. 온라인 만화 사이트인 카툰프로젝트와 포털 사이트 야후가 합작으로 <야후 매니아>라는 만화·문화잡지를 1월 말에 창간한다는 것. 그동안 카툰프로젝트를 통해 작품 발표를 한 새로운 스타일의 젊은 작가들, <아치와 씨팍>의 원작자 김재희, 이혜경, 이애림 등의 작품이 연재될 예정이다. 한편 코믹스투데이의 오프라인과 동일한 포맷의 만화 연재라는 전략을 선보인 이재식 편집장은 자신이 추구한 전략을 직접 자신의 회사를 통해 시험할 예정이다.
인터넷 만화 서비스는 출판만화 불황의 공범이 되기도 하며, 작가들의 원고료와 인세를 강탈하는 강도가 되기도 하며, 한탕만을 노린 악덕 기업주의 산실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가 계속될 것이며 돼야 한다. 스콧 매클루드는 <만화의 미래>에서 3가지 새로운 혁신으로 디지털 제작, 디지털 유통, 디지털 만화를 제시했다. 그만큼 디지털 환경은 우리 만화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나가는 주요한 길이 되는 것이다. 박인하 /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
사진설명
1. 인터넷 만화 사이트의 선발주자였던 코믹스투데이는 작가들의 파업과 절필 선언등으로 분란을 빚다 결국 게시판을 폐쇄하는 최악수를 두었다.
2. 하지만 만화계의 인터넷은 여전히 매력적인 매체다. 후발주자인 X2comix는 온라인을 토대로 오프라인 만화잡지 <웁스>를 창간한다. <웁스>는 윤태호의 <발칙한 인생>(사진) 등을 연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