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 초청된 해외장편 애니메이션 중 두 작품이 영화진흥위원회의 심의 면제를 받지 못해 상영 자체가 무산된 일이 있었다. 우메다 야스오미라는 일본감독의 1998년작 <카이트>(KITE)와 2000년작 <메조포르테>(MEZZO FORTE)인데, 국제영화제라는 네임밸류와 심야상영, 성인관객에게만 공개한다는 옵션에도 불구하고 상영불가가 된 것은 무소불위의 문화적 방패막인 ‘선정성’과 ‘폭력성’이라는 요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성인층 마니아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인 <카이트>가 올 1월 말 미국에서 ‘디렉터스 컷’ 비디오로 출시된다. 애니메이션 비디오의 경우 미국에서도 디즈니를 비롯한 메이저사 작품 혹은 <포케몬>과 같은 아동용이 아닌 성인이나 마니아 취향의 ‘재패니메이션’은 그 수요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추가 생산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의심의 여지없는 하드코어물인 <카이트>는 2000년에 이미 현지에서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비디오 재킷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디렉터스 컷’이라는 부제를 달고 재출시된다. 그것은 이 작품에 단순한 60분짜리 포르노물로 치부될 수 없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물론 2000년에 출시되었던 타이틀이 과격한 장면은 자른 편집판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한자 뜻 그대로 해석하면 ‘모래날개’(沙羽)로 해석되는 제목을 지닌 <카이트>는 소녀 킬러 사와의 이야기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 밑에서 청부살인을 하고 성적노리개가 되는 사와의 극한적 상황, 여학생 킬러와 청부살인을 지휘하는 두목이 현직 형사라는 등의 캐릭터 설정이 작품의 현실성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리긴 하지만, <카이트>는 여러 면에서 평가할 만하다. 감독 자신이 캐릭터, 각본, 작화까지 도맡아 만든 장인정신이 배어나는 정교한 그림과 감각적인 색채는 물론,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같은 적은 동화 매수와 반복된 신으로 일관하는 일반 성인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을 뒤엎는 정밀하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비극적인 결말 등은 이 작품이 일본 하드코어물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인정받는 요소가 되고 있다. 어차피 이 ‘비디오’ 역시 한국에서는 당연히 ‘수입 및 반입금지물품’이겠지만.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제작과정에서, 등장인물이 오토바이를 탈 때는 교통법규를 지켜야 되므로 헬멧을 써야 하고, 총이나 칼 같은 무기는 위험하니 지워버리든지 물총처럼 피해가 없는 것으로 바꾸라는 등의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과연 상식적 판단기준으로 그어진 규범 안에서 만들어진 작품 속에 얼마나 많은 창작력이 녹아 있을지 의문이다. 물이 넘쳐나는 것이 무서워 컵에 선을 그어 그 이상을 못 따르게 한다면 언제나 물은 그 선을 밑도는 양밖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영상이나 음악 같은 문화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그 전달속도가 거의 제작과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것’에 대한 접촉이 점점 손쉬워지고 있는 지금도 <카이트> 같은 애니메이션을 금지한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김세준/ 만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