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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갈색의 털, 차분한 걸음걸이, 생각에 잠긴 듯한 동그랗고 까만 눈망울의 EO는 서커스단의 당나귀다. 그는 곧 동물보호주의자들의 손에 이끌려 서커스단에서 벗어난다. 이런 상황이 그에게 행운인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예상치 못한 탈출에서 시작된 EO의 여정을 조용히 따라갈 뿐이다. EO는 농장에서 일하며 다른 동물을 만나기도 하고, 아이들과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기도 한다. 끝없이 들판을 달리고, 때로 밤의 터널을 홀로 걷는다. 흥분에 도취한 축구광, 제각각의 이유로 동물을 사고파는 사람들. 영화는 EO의 시간을 따라간다.
<당나귀 EO>는 로베르 브레송이 1966년 연출한 <당나귀 발타자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영화의 첫 장면은 마치 공포영화 혹은 뱀파이어 영화를 연상케 하는 붉은 영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한 당나귀와 여인의 기이한 움직임은 서커스 공연의 일부였음이 밝혀진다. 이처럼 영화는 가까이에서, 또 멀리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며 거리와 각도에
[리뷰] ‘당나귀 EO’, 보는 이 없이도 감각으로 충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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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내 협의이혼상담실에 한 부부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다. 아내는 변호사인 남편 정열(강하늘)의 유치함과 자격지심을 지적한다. 남편은 영화 PD인 아내 나라(정소민)의 막을 수 없는 똘기를 단점으로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시작은 이렇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 부부였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장점이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관계는 점점 악화됐다. 결국 갈라서기로 한 부부에게 법원은 숙려기간 30일을 부여한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이들은 크게 교통사고를 당한다. 의식을 회복한 정열과 나라는 안타깝게도 기억을 상실하게 된다. 부모의 이름도 심지어 부부였던 사실도 말이다. 기억을 회복하기 위해 둘은 이혼을 전제로 다시 같이 살기 시작한다.
<30일>은 이혼 30일 전 동반기억상실에 걸린 한 부부의 좌충우돌 결혼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영화다. 영화의 재미는 배우의 몫이 크다. 배우 강하늘과 정소민은 이병헌 감독의 &l
[리뷰] ‘30일’, 로맨스를 방해하는 진부한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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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롤라 캠벨)는 12살짜리 아이지만 집안의 생계와 가사노동을 모두 홀로 감내한다. 엄마는 하늘로 간다는 착한 거짓말을 남긴 채 병으로 떠났고, 조지는 엄마의 상실을 짐짓 성숙하게 돌보며 지내고 있다. 애도의 다섯 단계 중 타협에서 우울로 넘어가는 과정에 머물러 있는 조지는 유일한 친구 알리(알린 우준)와 함께 자전거를 훔쳐 팔거나 춤을 추면서 시끌벅적한 일상을 보내지만, 밤이 되면 엄마를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서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아이는 자신이 혼자여도 괜찮다는 사실을 설득하기 위해 바깥을 향해 날을 세운다. 조지는 아이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성장의 편린을 놓치고, 오히려 그것들을 과도하게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킨다. 늘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 조지는 단단한 반발심으로 자신을 에워싸고 슬픔을 켜켜이 쌓아 올려 하늘로 향하는 탑을 짓는 외로운 노동자를 자처한다.
그런 조지의 요새에 침입자가 발생한다. 자신을 조지의 아빠라고 말하며 불쑥 찾아온 제이슨(해리스 디킨
[리뷰] ‘스크래퍼’, 성장의 길목에 선 두 사람의 동등한 맞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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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박종환)은 조각가이지만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끝내 미술가로만 살 수는 없게 된 그는 아내와도 이혼했다. 인테리어 일을 겸하는 그에게는 고등학생인 딸 지나(이연)가 있다. 아빠와 가까운 만큼 티격태격하고, 의지하는 만큼 아빠를 증오하는 지나는 윤철을 닮아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다만 학교를 비롯한 주변인들은 어두운 여자의 초상과 혈흔을 연상케 하는 붉은색으로 물든 지나의 그림을 반기지 않는다.
급기야 담임 선생님마저 윤철을 통해 지나의 휴식을 제안하고, 곤두박질치는 지나의 방황은 갑작스러운 출가로까지 이어진다. 한편 윤철은 우연히 알게 된 여자 영지와 애틋한 사이가 된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보였던 영지 또한 갈수록 그에게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이는 영지가 윤철에게 느끼는 감각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예측 불가능한 존재가 된 이들은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행자가 된 지나는 어느덧 윤철과 전보다
[리뷰] ‘절해고도’, 산책과 사색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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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남자가 행인을 향해 묻는다. “킴스 비디오를 아시나요?” 바삐 돌아가는 뉴욕시 거리에서 난데없는 질문을 받은 행인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세상에 누가 비디오를 빌리느냐며 웃는 사람, 뉴욕에는 많은 가게들이 생겨났다 사라지니 비디오 가게 하나쯤 망한 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람. 미개봉작과 해적판 영화를 포함해 5만5천편의 VHS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던 ‘킴스 비디오’는 대체 무슨 일로 문을 닫게 되었을까. 마침 자신도 ‘킴스 비디오’의 회원이었다고 밝힌 또 다른 행인은 카메라를 향해 조금 더 분석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아마도 디지털 시대라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 그의 추측. 마지막 행인의 대답에 간단히 수긍하며 ‘킴스 비디오’가 사라진 이유에는 더이상 어떤 미스터리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스친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카메라를 든 남자는 25만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던 ‘킴스 비디오’가 사라진 이유를 지금부터 알아볼 작정이라 말
[리뷰] ‘킴스 비디오’, 5만 5천편의 소장품은 어쩌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숨죽이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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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업로딩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두편의 단편을 엮었다. <내일의 오늘>은 40년 넘게 함께한 남편 선우를 떠나보낸 79살 희진(이주실)의 이야기다. 마인드업로딩 AI를 통해 30대 시절로 돌아간 희진(윤소희)은 가상 세계에서 젊은 시절 선우(이기혁)를 만나게 된다. 접속 시간 최대 3시간, 24시간 휴식 후 다시 접속 가능한 시스템하에서 희진은 기억이 없는 선우와의 만남을 집착적으로 이어간다. <우리의 우주>는 인공지능 온라인 장례식 서비스를 소재로 한다. 2052년 우주탐사대원 소리(김예랑)는 아빠 김형석 작곡가가 만든 곡을 들으며 소테르 은하를 횡단하던 중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는다. 소리가 이용하게 된 온라인 상조 서비스 애플은 언택트 시대에 발맞추어 3일간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고인과 비대면 영상 채팅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버지 김형석과 인연을 나눴던 지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며 소리는 고인의 생전 추억을 하나씩 각인해간다. 공통의 SF 소재
[리뷰] ‘마인드 유니버스’, 마인드 업로딩 인공지능으로 완성되는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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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임박한 어머니 곁으로 장성한 아들이 돌아온다. 창래(저스틴 전)에겐 말기암 환자인 어머니(재키 청)의 음식이 추억과 정체성의 매개다. 남자는 이제 유년 시절의 음식들을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커밍 홈 어게인>은 간병과 요리, 회상에 잠긴 한 남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집의 영화다. 상실의 예감이 침묵으로 내려앉은 실내에는 현재만큼 과거의 시간도 커다랗게 똬리 튼다. <커밍 홈 어게인>의 시선은 침대 머리맡에서 벌어지는 돌봄의 시간, 불 꺼진 집 안의 시간,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의 영화 속에 해소되지 않은 모자의 묵은 감정들이 불쑥 솟아오르는 순간들을 건져낸다.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한인들의 애환이나 1세대 이민자인 어머니와 2세대 아들의 갈등을 반추하는 영화지만, 지나간 어떤 고통도 눈앞의 죽음보다는 격렬하지 않다는 점에서 <커밍 홈 어게인>의 목소리는 담담한 어조를 유지한다. 미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한인 2세대인 이창래 작가가 1년간 어머니를
[리뷰] ‘커밍 홈 어게인’, 잠드는 몸 위로 깨어나는 기억들이 담긴 작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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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대기업 블랙코퍼레이션 폐기처리부 아르바이트생 지오(엄상현)는 아침부터 하루가 지겹게만 느껴진다. 유일한 가족이자 같은 회사 개발자인 형 윤오(신용우)의 매번 비슷한 아침상은 보기만 해도 입맛이 떨어지고, 단순 업무에 재미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런 지오에게 일상을 바꾸는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친다. 벼락에 맞아 초능력을 얻고, 형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형의 죽음에 회사가 관련돼 있다는 걸 알게 된 지오는 변신 로봇 ‘마리오’와 함께 진실을 찾아 나선다. EBS <딩동댕 유치원>의 대표 캐릭터 번개맨을 주인공으로 한 <번개맨: 더 비기닝>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슈퍼히어로의 탄생기다. 비범한 능력이 생긴 평범한 인간이 향상된 몸을 탐구해가고, 얻은 힘으로 세상을 구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을 연상시키는 힙합 비트의 배경 음악이 전체적으로 쿨한 느낌을 주고, 하이라이트 장
[리뷰] ‘번개맨: 더 비기닝’, 아직까진 번개맨보다 분노한 소년의 힘이 더 찌릿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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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바닷마을에서 살아가는 꼬마 생쥐 패티(케이시 체이스)는 전설 속 아르고 원정대처럼 위대하고 웅장한 모험을 떠나 영웅이 되고 싶다. 하지만 아빠 고양이 샘(크리스토프 르모안)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작은 생쥐가 살아남기에 바깥세상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곳. 부녀의 동상이몽이 커져갈 즈음 마을에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제우스 동상을 세운 것을 보고 질투 많은 포세이돈(폴 보른)이 일주일 내에 자신의 동상까지 세우라고 명한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큰 재해가 닥칠 거라는 경고와 함께.
사파이어로 만든 삼지창만 있으면 포세이돈이 노여움을 풀 거라는 믿음 하나로 패티는 보물섬을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마을을 구하고 싶다는 사명감과 타고난 호기심이 뒤섞이면서 패티의 동기는 더욱 강렬해진다. <아르고 원정대: 꼬마 영웅 패티의 대모험>은 자기결정권을 가진 어린이만이 궁극적으로 건강한 자립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어려움과 고난까지 대신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달리 어
[리뷰] ‘아르고 원정대: 꼬마 영웅 패티의 대모험’, 가족의 울타리를 나서는 순간, 자립의 모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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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저널리스트로 명성과 존경을 동시에 얻은 아우구스토 공고라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던 배우인 그의 아내 파울리나 우루티아는 그를 성심껏 보살핀다. 아우구스토가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가고, 파울리나를 점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간다는 점을 빼면 이들의 일상은 우아하고 평화롭다. 파울리나는 아우구스토에게 책을 읽어주고, 연습 중인 역할의 대사를 읊어주며, 집 주변을 함께 산책한다. <이터널 메모리>는 아우구스토를 위한 파울리나의 영상 촬영에서 시작해 백발 연인의 현재를 지나 암울했던 독재하의 민주화운동 시절로 돌아간다.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역동했던 당시를 열성적으로 취재하던 아우구스토의 모습이 담긴 푸티지 필름은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 지나온 과거와 칠레의 역사를 겹쳐두고 함께 돌아본다. 마이테 알베르디 감독은 역사와 사람 모두를 기록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이 다루는 인물의 명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
[리뷰] ‘이터널 메모리’, 시대의 상징적인 얼굴과 칠레의 역사를 함께 돌아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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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남자 친구에게 친동생이 살해당한 사건으로부터 9개월 뒤, 닉(테레사 리안)은 자신이 욕조에서 익사하는 환시를 겪으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정신적 위안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깨닫고 또 다른 동생 그리고 두명의 친구들과 오스트레일리아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근처로 스쿠버다이빙과 카약을 즐기러 떠난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난 상어가 일행 중 한명을 덮치면서 힐링을 목적으로 한 여행은 생존 싸움으로 바뀌게 된다. 섬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한다.
<더 리프: 언더 워터>의 여성들은 모두 각자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겪는 고통은 상어와 맞설 때 판단을 늦추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서퍼들에게 ‘회색 옷을 입은 남자’라고도 불리는 상어는 여성을 위협하는 학대 남성의 은유이기도 하기에 이 설정은 의미가 있다. 상어가 나타날 듯 말 듯한 공포 효과가 그리 성공적인 편은 아니지만 <47미터&
[리뷰] ‘더 리프: 언더 워터’, 해상 스릴러 영화의 공식을 정석으로 따라가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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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채 무자비하게 은행을 폭파하고 다니는 범죄 집단으로 인해 뉴욕 시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목격자들을 스스럼없이 죽일 뿐만 아니라 범죄 현장에 증거 하나 남기지 않는 용의주도함 때문에 경찰들은 수사에 난항을 겪는다. 일각에서는 이 집단에 뉴욕 시장까지 연루되어 있다는 말까지 돈다. 이에 경찰은 과거 과도한 폭력 성향으로 인해 살인까지 저질러 징역을 살고 있는 형사 나이트(브루스 윌리스)를 소환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는 사이 범죄 집단의 리더인 콘런(로클린 먼로)은 교도소를 폭파해 재소자들을 탈옥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추종자들을 집결시키려 한다.
<리벤지 나이트>는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나이트 형사 역을 맡아 범죄 집단을 상대하는 ‘디텍티브 나이트’ 삼부작의 두 번째 작품으로, 그가 은퇴 전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찍은 여러 편의 영화 중 한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영화 내내 그의 활약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영화를 지탱해야
[리뷰] ‘리벤지 나이트’, 존재해선 안될 범죄, 제작되어선 안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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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을 꿈꾸는 잔고(정광우)는 배우가 되려는 동생 잔디(정수진)에게 영화를 찍기 위해 모아뒀던 돈을 양보한다. 그러나 잔디는 악랄한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빚갚으리오(손이용) 밑에서 인신을 구속당한다. 현상금 사냥꾼 닥터 솔트(서현민)는 노예로 끌려가던 잔고를 구하고, 둘은 잔디를 데려오기 위해 빚갚으리오를 찾아 나선다.
눈치챘듯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패러디한다. 전격 C급 무비를 표방하는 작품은 잘 알려진 방송인이 구사하는 말장난과 인터넷 밈으로 넘쳐난다. 영화 제목 <잔고: 분노의 적자>, 잔고와 닥터 솔트가 타는 말의 이름이 각각 ‘러시’와 ‘캐시’인 점 등은 언어유희일 뿐 경제적 궁핍에 관한 알레고리와 크게 관계없다. 이른바 B급 무비로 통칭하는, 주류 상업영화 또는 유명 작가주의영화와 자리를 달리하는 영화의 속성 하나가 그저 말장난이나 유행하는 개그 아이템의 혼합이어도 무방하다고 여긴 듯하다. 오히려 이 작품에
[리뷰] ‘잔고: 분노의 적자’, 대상과 방향이 불분명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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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로는 가족과 함께 도시 토리노를 떠나 찾은 알프스 산속 마을 그라나에서 마을의 유일한 아이이자 동갑내기인 브루노와 만난다. 변변찮은 배움의 기회 없이 방목장이나 벽돌공 일을 돕던 브루노를 안타까워한 피에트로의 부모는 비용을 전부 부담해서라도 브루노를 토리노의 학교로 입학시키려 한다. 하지만 브루노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고 브루노는 아버지 일터로 불려간다. 도시는 브루노를 황폐화시킬 것이란 사실을 직감한 피에트로도 이미 반발한 터였다. 그렇게 헤어진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장성한 뒤 우연히 한번 마주치지만 눈길만 주고받을 뿐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다시 뒤돌아선다. 20대를 아버지와 단절한 채 보낸 후 서른이 넘어 그라나를 찾은 피에트로(루카 마리넬리)는 그간 브루노(알레산드로 보르기)가 자기 아버지와 긴밀한 유대를 형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시 대 산속 아이들의 구도는 일견 작품이 이항대립으로 구성된 드라마의 재판처럼 보이도록 한다. 도시와 자연, 정주와 방랑, 유식과
[리뷰] ‘여덟 개의 산’, 아이맥스 지향 일색에 협소한 화면 구도가 주는 반향